한편, 명원제는 사람을 시켜 안풍친왕의 움직임을 계속 감시했다. 그리고 안풍친왕비가 장문전으로 갔다는 말에 명원제는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제서야 황귀비의 아버지가 나장군으로 과거 안풍친왕비의 부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군인사이에 상호를 감싸 주는 것은 상당히 끈끈했다. 특히 안풍친왕비의 성격은 거칠어서 만약 이번에 황귀비가 안풍친왕비 면전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날엔 안풍친왕비가 어서방으로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명원제는 좌불안석으로 침전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거의 해시(밤 9시~11시)까지 어서방에서 기다렸는데, 안풍친왕비가 건곤전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말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명원제는 다음날 아침 일찍 어서방에서 회의를 한 뒤 거의 점심때가 되어 관리들은 돌려 보내고, 호비 궁으로 발길을 옮겼다.그런데 채명전에 도착하기 전에 채명전 사람이 와 보고하기를 십황자가 상처도 아직 다 낫지 않은 채로 건곤전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태상황 폐하께 옳고 그름을 가려 황제 폐하를 벌해 달라고 고자질을 하러 간 것이었다.명원제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띵하고 울리며 십황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곤장 3대는 너무 가벼운 벌이었군, 목여태감이 제대로 힘 주어 때리지 않고 척만 했어.’하지만 목여태감도 십황자가 아직 이틀도 안돼서 또 문제를 일으킬 줄은 생각도 못했다.명원제가 건곤전으로 얼른 갈 수 밖에 없었다. 태상황이 화가 나서 심장발작을 또 일으킬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막 건곤전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마당에서 울음소리와 황태손 만두의 상당히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긴 왜 웁니까? 억울한 게 뭐가 있어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죠.맞기 싫으면 말을 잘 들으시면 되죠. 아들 된 자가 부모님 말을 안 듣고서 고자질할 낯짝이 있어요? 사내 대장부가 잘못을 했으면서 반성할 줄은 모르고, 울고 고자질이나 하지를 않나. 이거 해줘라 저거 해 줘라 창피하지도 않아요? 작은 아버지는 황조부의 아들이에요. 황조부
이번 성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학사가 초고를 완성하자 바로 도장을 찍게 해서 그대로 태자에게 보냈다.다섯 도시로 인한 분쟁은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사건으로 일단락 지어졌다.한편 저녁이 되자, 십황자가 와서 명원제에게 잘못을 빌었다. 이번에는 상당히 성의가 느껴지는 게 조그만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꿇어앉아 잘못했다고 빌며 용서를 구했다.명원제는 곤장을 때려도 깨우쳐 주지 못한 십황자를 만두가 엄하게 꾸짖어 뉘우치게 할 줄은 몰랐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기쁘고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황태손이란 이름이 명불허전이었어!명원제는 목여태감을 건곤전으로 보내 태상황 앞에서 황태손을 칭찬하자, 태상황이 다 듣고 나서 목여태감에게 몇 마디로 답했다. “그의 공이 아니야!”목여태감도 숨기지 않고 돌아가서 그대로 명원제에게 보고하자 그가 한동안 멋쩍어하더니 무안한 말투로 목여태감에게 말했다. “짐은 그와 같은 황태손이 있는 게 가장 위안이 되고 기쁠 뿐이야.”명원제의 가마는 장문전으로 향했다.황귀비는 명원제를 안으로 들이게 한 뒤 기름 등에 불을 붙이고 탁자에 마주 앉았다. 황귀비의 표정은 평온했고, 아무 말이 없었다.명원제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돌아가, 여긴 당신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아니요, 좋습니다. 신첩은 평생 이곳에 있을 생각입니다!” 황귀비가 말했다.“어째서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짐을 벌하려고 하느냐?” 명원제가 황귀비를 바라봤다.황귀비는 입가에 고요한 미소를 띠었다. “괴롭지 않습니다. 신첩은 정말 여기가 좋아요. 고요하고 절 옭아매는 잡다한 일이 없습니다. 매일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지난날 수만 가지 일에 묶여 있을 때보다 지내기 좋습니다.”명원제가 뭐라고 더 말하려 하자 황귀비가 명원제를 똑바로 쳐다보며 먼저 입을 뗐다. “폐하, 더는 말씀하지 마세요. 신첩은 옮기지 않을 것으로 여기가 좋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여기는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곳으로 바깥의 소란스럽고 어수선함보다 낫습니다. 신첩이 황귀비에 봉해지기 전에
명원제는 결국 장문전에서 나갔다. 오래되고 중후해진 정문이 닫히면 나는 끼익하는 소리가 황귀비와 매사에 서로 돕고 지내던 동병상련의 추억들을 밖으로 내모는 듯했다.명원제가 목여태감에게 말했다. “짐은 황귀비를 잃었어.” 적적한 그의 목소리는 체념으로 가득찼다.“폐하 곁에는 아직 호비 마마께서 계시고, 후궁의 많은 마마님들께서 계십니다.” 목여태감은 위로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비꼬았다.“달라!” 명원제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파쇄석이 깔린 길을 걸었다. 발걸음이 붕 뜬 게 기분이 가라앉으며 마음이 은은하게 아렸다.목여태감이 명원제의 걸음에 맞춰 밖으로 걸었다. 당연히 다르고말고. 온 후궁에서 유일하게 황귀비가 가장 이해심이 풍부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을 잘 헤아려줬지만 알고보면 상당히 원칙적이었다.황귀비는 자신을 장문전 안에 가둔 채 명원제의 숙고를 다시 한번 거치게 한 뒤 후궁의 권한을 손왕의 어머니인 정비 마마에게 주고 경귀비로 책봉하도록 했다.경귀비는 궁 안에만 틀어박혀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았고, 후궁 일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으니 갑자기 후궁의 권한이 자신에게 떨어져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경귀비 위로도 주 황후와 적귀비, 그리고 총애를 받는 호비가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성지가 내린 이상 경귀비는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장문전에 가서 황귀비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경귀비는 깊은 한숨을 토하며 처량하게 말했다. “반평생, 폐하의 은총을 구한 적 없이 지냈는데 권세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황공하기 그지없네요. 행여나 시비에 휘말려 두 아들에게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황귀비가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분수껏 하면 됩니다. 혹여나 문제가 있으면 절 찾아오셔도 되고 아니면 태자비를 찾아가셔도 돼요. 태자비는 후궁의 일을 간여할 수는 없지만 의견을 제시해 줄 수는 있을 겁니다.”경귀비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 밖에요. 동생도 몸 조심해요. 그런 시끄러운 일로 몸 상하지 말고요.”“
“좋아질 수 있는 거야? 언제 좋아져? 대체 뭘 하면 돼?” 태상황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원경릉은 솔직하게 답했다. “전부 아직 미지수예요. 재상의 머릿속에 핏덩이가 흡수될지 지켜보고 만약 흡수될 경우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흡수되지 않을 경우엔 실명 외에도 다른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어요.”“다른 방법은 없나?” 태상황의 마음이 또 한없이 작아졌다. 겨우 마음이 호방해졌는데 캄캄한 안개 속을 아직 다 헤치고 건너온 게 아닐 줄 몰랐다.“당분간은 없어요!” 원경릉이 힘없이 말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쩌면 궁에서 나가서 좋은 환경으로 가면 마음이 편해 병세가 일정한 호전을 보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궁 분위기는 너무 무겁고 답답했다.태상황은 일찍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라 원경릉의 건의에 사람을 불러 짐을 꾸린 뒤 황실 별장으로 보내고 날을 잡아 이사하기로 했다.태상황이 이번에 궁을 떠나는 것은 철저하게 마음 먹은 것으로,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명원제가 말렸지만 붙잡을 수 없어 마차로 그들을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다. 떠날 때조차 태상황은 명원제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주 재상이, “소신 이제 몸이 온전치 못해서 중임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소신이 재상직에서 물러나기를 원하오니 폐하께서는 윤허하여 주십시오!”명원제는 콧등이 시큰했다. 주 재상이 재임하던 기간을 돌이켜보니 몸과 마음을 바쳐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얼마 전부터 반쯤 물러난 상태라고는 해도 온통 마음이 조정 일에 있어 전쟁이 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출정하기까지 했다.“재상은 몸 상태만 신경 쓰고 나랏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네!” 명원제는 목이 메었다.주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원제를 보더니 살짝 한숨을 쉬었다. “폐하, 소신 한 마디만 올리겠습니다. 늙은이의 잔소리라고 괘념치 마시고 일단 들어주십시오. 북당은 발전해야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정은 인재를 선발해 적폐를 처단하고 정치를 쇄신해야 합니
냉정언이 조회를 마치고 나와 어서방으로 갔는데, 명원제는 내각 학사들과 회의 중이었다.이번 왕조 최연소 재상인 냉정언은 이름을 드러나게 날린 적이 없었다. 줄곧 이전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천천히 재상의 태사의에 앉았는데 냉정언의 입술에 보일 듯 말듯한 미소가 걸렸다.햇살이 궁에서 나서는 길을 비추고 궁 양쪽 담장을 뒤덮은 무성한 나뭇잎이 냉정언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뒤로 멀어졌다. 출궁하는 길에 보이는 금군 시위들 무도가 순찰을 돌다가 “냉재상!”하고 냉정언에게 깍듯이 예를 취했다.냉정언은 입술을 쭉 내밀며 미소를 짓더니 더욱 천천히 걸어 나갔다.막 궁문을 나와 머뭇거리던 냉정언의 낫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빠르게 나타난 그림자는 악의가 가득해 순식간에 살기를 충천하며 흉악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턱 내!”냉정언은 손가락 끝으로 관복 가슴팍에 톡톡 두드리며 눈을 살짝 치켜떴다. 눈꼬리는 여전히 예리함이 번득였다. “현 재상에게 돈을 강탈하고자 협박하는 게 어떤 죄목에 해당하는지 알고 있겠지?”우문호는 냉정언 목을 겨누었던 손을 풀고 바로 냉정언의 어깨를 시원하게 안마하며 물었다. “아직도 태자 앞에서 재상입네 하는 것 좀 봐. 아이고, 대단하셔라. 다시 묻자, 낼 거야 안 낼 거야? 안 내면 우리 형제들이 가만있지 않을걸!”우문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오문(午門:궁의 정문) 쪽에서 몇 사람이 나란히 걸어오는데 제왕, 손왕, 회왕을 필두로 구사, 전진 장군, 사촌 소형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 성큼성큼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활보하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위풍당당하고 호탕했다.냉정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눈에 맑은 빛이 반짝였다. “현 태자 전하에 현 황제 폐하의 친왕 전하는 물론이고 이렇게 많은 분이 오셨는데, 목숨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한 턱 내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요.”우문호가 휘파람을 불며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구사에게 소리쳤다. “동서, 가서 홍엽이랑 박씨 부부 불러서 초왕부에서 모이자고
훼천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며 날카로운 말투로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고상을 떨어? 늑대골에서는 화장한 뼈 담은 항아리도 썼던 주제에.”그러자 모두가 껄껄 웃었고, 냉정언도 눈웃음을 지었다.사발이 다시 홍엽 앞에 놓이자, 이번엔 홍엽이 받을 수밖에 없어 머지않아 고개를 들고 한 잔을 다 비워냈다. 그러자 구사가 바로 또 가득 따랐다. “계속 마셔!”홍엽이 또 다 비웠는데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계속 기침을 하는데 홍엽이 죽든 말든 구사는 또 사발에 가득 따르며 외쳤다. “마지막 한 잔!”그러자 홍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어질어질한 상태였지만, 손을 뻗어 사발을 잡으려는 순간 냉정언이 가로채 손을 뻗었다. “내가 대신 한 사발 하지!”“됐어!” 홍엽은 ‘고작 세 사발이 뭐 대단하다고?’ 다시 사발을 가져오려 했다.냉정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손대지 마!”냉정언은 곧바로 술잔을 들고 고개를 살짝 젖힌 뒤 술 한잔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세 모금에 한 사발을 다 마셨다. 냉정언은 원래가 우아한 사람으로 사발에 술을 마셔도 군자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나 이렇게 소탈하게 마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홍엽의 눈빛은 자기도 모르게 따듯해져 있었다. ‘냉정언이 알고 보니 의리의 사나이였군.’재상이 술을 대신 마셨지만 아무도 감히 트집 잡을 생각을 못 하는데 우문호만 냉정언을 쓱 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냉대인이 술이 고팠나 보네. 냉대인에게 건배!”사람들이 우르르 건배하러 냉정언에게 몰려가 너도나도 신임 재상에게 건배를 청했다.냉정언이 사발을 들고 일어나 우문호를 째려보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입을 뗐다. “빌어먹을 태자야!”우문호가 아니라며 손을 내저으며 태자로서 한껏 거드름을 피워댔다. “말하는 것 좀 보게!”접객실에서는 황실의 며느리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 중이었다.그동안 남편들이 어디 낮술 마실 짬이 있기나 했나? 낮술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로, 그동안 뼈가 부서지도록 고생했으니 오늘은 마시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마시고 즐거워서 다행
미색이 턱을 괴며 물었다. “둘째 형님, 남의 인륜지대사에 뭘 그렇게 신경 쓰시나요?”그러자 손 왕비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쨌든 냉 대인이 지금 재상인데 혼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작은 일도 신경 써야 할 건 신경 써야 하는 것이야.”요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한테 신경 꺼. 한가해서 그러는 거니까.”손 왕비가 한가한 게 당연한 거 아냐? 지금 희동이도 커서 곁에 붙어있으려 하지 않고 집안일은 별것 없는 데다 싸울 첩도 없다. 손왕은 또 출장을 가서 나름 일을 잘하고 있다니 손 왕비가 매일 고민하는 게 고작 오늘 하루를 또 뭐하면서 보내나였다.손 왕비가 개탄하며, “심심해도 너무 심심해. 뭐라도 할 일이 좀 있나 찾고 있다니까.”“정말 그렇게 심심하면 정화를 좀 도와줘. 거긴 하루하루가 전쟁이던데.” 요 부인이 말했다. 요 부인은 요즘 내내 거기서 돕고 있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모두와 만나고는 싶지만 애들을 내려놓지 못해 안 오려는 정화를 억지로 끌고 와야만 했다.“그래, 둘째 형님. 할 일 없으면 와서 우리 애들이나 좀 데리고 있어.” 정화가 웃으며 말하는데 아이들이 생긴 뒤로 의지할 곳이 있자 사람이 아주 생기로 충만했다. 안색은 아직 좀 안 좋은 게 잠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갓난아이 엄마가 세상에서 잠이 제일 부족하기 마련이다.손 왕비가 말했다. “그래, 내일 갈게.”그러나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 않는 것은 손 왕비가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닌, 정화의 아이이기에한참을 아이들에게 정을 붙였는데 자기 아이가 아닌 걸 알면 정을 떼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었다.손 왕비가 안 왕비에게 물었다. “언제 강북부로 돌아갈 생각이야?”안 왕비가 입을 열었다. “며칠 있다가요. 왕야의 상처가 거의 나아서 오늘 제가 온 것도 겸사겸사 여러분께 작별 인사도 드리고요!”손 왕비가 어머 하고 놀라했다. “이렇게나 빨리 간다고? 좀 더 있지? 지금 넷째가 다쳐서 아바마마께서도 쫓아내실 리가
“주 어르신은 좀 어떠세요?” 미색이 원경릉에게 물었다.“눈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다른 후유증이 있을지는 아직 잘 몰라. 없기를 바라고 있고.” 원경릉이 탄식했다.원용의가 말했다. “일곱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어르신이 주씨 집안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서 조정 관리가 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과거도 보지 말라고. 예전에 소국공 소창 나리 느낌이에요!”“아마 뒷일을 걱정하셔서 그러실 거야. 주씨 집안의 일부는 아주 뼛속까지 나빠 처먹었거든.” 미색이 콧방귀를 뀌었다.주씨 집안은 주 재상 전에 사실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함부로 날뛰는 것으로 유명했고 애초에 주 재상의 아버지는 황위를 넘본 적도 있었으나 말로는 비참했다.이렇게 뼛속 깊이 뿌리박은 야심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게 아닐지 걱정해서 주 재상이 그런 엄명을 내린 것으로 야심을 품지 못하게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원용의가 문가를 보더니 물었다. “사식이는요? 오늘 왜 사식이가 안 보이죠?”“기 상궁이랑 구경하러 갔어. 좋은 비단을 몇 필 사고 싶다던데. 애 낳고 입을 수 있게 옷을 만들겠다며.” 원경릉이 대답했다.사식이가 임신한 뒤로 배가 엄청 불렀는데 아이를 낳고 나면 분명 지금 이 옷은 못 입게 되므로 다시 급하게 새 옷을 지어야 할 것이다.“굳이 당신까지 갈 필요까지 있어요?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지. 무턱대고 부딪히고 본다니까요. 자기가 임신한 몸인 걸 신경 안 쓰나 봐요.” 원용의는 사식이가 불안하고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식이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물불을 안 가리는 무모한 동생이었다.“조심할 거야, 전에 착상을 위해 꼼짝도 못 해서 답답해 죽을 뻔했거든.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고 해. 사식이가 이제 많이 철이 들었어.”원경릉이 이 말을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사식이 뿐 아니라 모두가 철이 들어버렸다. 미색마저 처음의 예리함은 없고, 원용의는 어머니가 된 뒤로 상당히 우아하고 차분해지며 점점 일국 친왕비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었다.모두가 성장했고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