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수문장이 가기도 전에 사람들이 놀라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불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숲에서 달려나왔는데 뒤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날이 이렇게 추우니 숲에 있는 너무는 전부 이파리 하나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바닥에 낙엽 더미가 쌓여 있어 쉽게 불이 붙은 것 같았다.하지만 경조부의 순찰 경비가 제 위치에 지키고 있었고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 소방 시설도 언제든 쓸 수 있게 갖추어져 있어 불길은 쉽게 잡혀 다행히 금방 쓸 수 있었다. 불길이 일어날 때부터 원경릉은 배가 좀 이상한 것이 태동이 잦아지고 커지는 것 같았다. 원경릉은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했다.우문호는 계속 원경릉을 지켜보고 있다가 쓰러질 것 같은 원경릉을 얼른 일으켰다. “왜 그래? 배 아픈 거 아냐?”“배가 아픈 게 아니라, 뱃속에 애들이 엄청 움직여..“ 원경릉이 끙끙거리며 우문호에게 기댔다.“우리 먼저 내려 가는 게 어때?” 우문호는 원경릉이 바로 아이를 낳을까 봐 걱정이 됐다.“조금만 있으면 불꽃놀이도 시작하는데 이것만 보고 내려가자.” 원경릉은 배가 아픈 게 아니라 태동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천천히 안정되게 심호흡을 했는데, 다행히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버틸 수 있겠어?”“괜찮아.“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제왕을 보고는 물었다. “불꽃 쏠 준비 됐나요?”제왕이 말했다. “곧 쏩니다.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요.”제왕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징과 북소리가 울려퍼졌고, 사람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곧 불꽃을 쏜다는 뜻이였다. 징과 북소리에 맞춰 성루의 횃불 절반이 꺼지더니 주변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시끄럽던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모습이 명절 분위기가 한껏 짙어져 보였다. 마침에 첫번째 불꽃이 쏘아 올려져 하늘에서 터지자 순간 어둡던 하늘이 찬란해지고, 뒤이어 두 번째가 쏘아져 올라갔고, 거대한 소리와 함께 휘황찬란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아이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며 환호했다. 작
초왕부로 돌아온 시간은 대략 술시(저녁 7시~9시)로 초왕부에는 이미 산파가 대기하고 있었고할머니도 계셨다. 전에 미색이 아기를 낳을 때 있었던 여러 상황을 듣고, 우문호도 이미 적당한 준비를 갖춰두었다. 솥에는 항상 뜨거운 물을 끓여두게 했고 출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심지어 고기요리까지 언제든 먹을 수 있게 철저히 대비해 두었다.원경릉이 돌아온 뒤 할머니와 산파가 바로 와서 관례에 따라 우문호는 문 밖으로 보내고 원경병, 원용의, 사식이, 요 부인, 손 왕비, 그리고 우문령은 안으로 들어와 원경릉의 출산을 함께 했다.이렇게나 흥겨운 오늘밤에 만약 아이가 때맞춰 자시(밤 11시~1시) 전에 태어날 경우 정말 이성적일 것이다. 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불안한듯 밖에서 왔다 갔다했고, 떡들과 쌍둥이도 우문호처럼 마음이 조급해 보였다. 한편, 초왕부의 여섯 남자들은 전부 안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자신과 다른 성별이기를 바라며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빌고 있었다. ‘여자애가 태어나기를, 여자애가 태어나기를.’하지만 반 시진즈음 지나자 그들은 슬슬 걱정이 되어 아무 말 없이 ‘아무일 없이 평안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일 없이 평안하기만 하면 됩니다.’ 라고 기도했다. 원경릉의 진통은 아직 아주 분명한 상태는 아니였지만, 자궁 수축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비교적 빈도가 잦은 것으로 볼 때, 머니는 자시 전에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사식이가 아이를 낳을 때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원경릉이 이렇게 가뿐한 모습을 보이자살짝 부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지 않은 게 좋기도 했다. 원경릉이 첫 애를 낳을 때는 정말 죽을 뻔 했으니까 말이다. 산실의 분위기는 가벼웠지만 바깥 분위기는 갈수록 무거워져서 제왕과 구사 등이 저마다 우문호를 위로하며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게 분명 고비인 건 맞지만 평안히 잘 지나갈 거라고 위로했다.우문호는 우글우글한 수컷들의 무리가 지긋지긋했다. 재잘재잘 끝이 없다. 우문호는 을 휘휘 내젓저으며 말했다. “됐으니 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기쁜 눈으로 일제히 주재상을 바라봤다. 태상황이 손바닥을 주재상 눈 앞에 흔들더니 물었다. “정말 보여?”“손가락 4개!” 주재상이 태상황을 보더니 감탄의 눈빛으로 말했다. “엄지 손가락은 접었네.”태상황과 소요공이 손바닥으로 주재상의 어깨를 탁하고 치며 거의 동시에 울먹였다. “좋아졌구나!”희상궁은 너무 기뻐서 울며 주재상에게 기댔다.태상황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복이 임하니 생각도 틔였는지 갑자기 미친듯한 기쁨을 뿜어냈다. “과인의 꼬마 봉황이 드디어 태어나는구나.”그러자 소요공도 놀라서 물었다. “그래?”태상황이 재빨리 내전으로 돌아와 박달나무 상자에서 편지를 꺼내고는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달려나왔다. 편지를 펼쳐 본 뒤 바로 소요공에게 전해주고 소요공도 받아서 보더니 얼굴에 점점 놀라움이 번졌다. “....태어나기 전에 때마침 천년이 가도 만나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을 맞닥뜨릴 것이니 난새가 태어나 왕부에 날아들 것이라!”소요공은 말을 마치고 놀란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른 물었다. “대주의 용태후 편지입니까?”“그렇다. 태자비가 아직 임신하기 전에 형수님이 사람을 시켜 이 편지를 과인의 손에 보냈어.” 태상황 또한 가슴을 벅차하며 말했다.“천년이 가도 만나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이란 것이 바로 오늘 밤 이 현상이 아닙니까?” 주재상이 묻자 태상황이 고개를 돌려 외쳤다. “여봐라, 어서 마차를 준비하거라. 과인은 초왕부로 갈 것이다!”멀찍이 뒷짐을 지고 서있던 사람이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눈가에 기쁨이 일더니 혼자 조용히 말했다. “제자가 드디어 아이를 낳는구나!”매화나무 숲에 안풍친왕비 라만이 바깥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았다. 매화가 분분히 흩날리는 것이 꽃비 같아서 신선이 사는 선경과도 같다. 안풍친왕비는 하늘을 보더니 눈빛이 마구 빛났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곁에 서 있는 안풍친왕 우문소에게 팔을 휘감았다. “오늘 밤이군요.”우문소가 미소를 지었다. “응, 맞아!”“한 번 다녀 올까요? 애
한편, 오늘의 주인공인 원경릉은 자궁 수축이 점점 심해지면서 진통이 더 세지는 것을 느꼈다. 실내 사람들은 바깥의 빛을 모르고 다들 가슴을 졸이며 원경릉을 바라봤다.하지만 그 순간 눈 앞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곧 빛이 사라지고 마치 환각을 본 듯 사람들은 꿈을 잠시 꾼 건가 했다.다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원경릉의 배가 격하게 아프더니 잠시 후 고통의 비명을 지르자 모두 걱정스럽고 기대가 가득찬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할머니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조용히 옆에서 그녀가 안심하게 도와주었다. “당황하지 마라. 할미 여기 있어. 힘 주면 돼. 호흡을 가다듬고 자궁수축이 시작되면 숨을 내뱉고 들이쉬고......”그때 비명이 울려퍼지고 우문호는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귀를 문에 대고 모든 내력을 기울여 안쪽의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평안하면 됩니다. 평안하면 됩니다.’ 우문호는 마음 속으로 이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기도했다.아이들도 우문호를 둘러 싸고 그와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은 아이의 성별이 어떻든 원경릉이 무사히 아이를 낳기만을 바라기만 했다. 원경릉은 쌍둥이를 낳을 때 많이 힘들지 않아서 세번째 출산은 더 쉬울 줄 알았기에 이렇게 격하게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나 아픈지 두 손으로 이불을 쥐어 뜯으며 산파와 할머니의 말에 따라 천천히 호흡을 하며 아이를 밀어내는데 산실 안에 여자들도 모두 곁에서 묵묵히 힘을 실어주었다.해시에 접어들었고, 마침내 우렁찬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모든 사람의 귀에는 이 소리가 천사의 소리처럼 느껴졌다. “낳았어, 낳았어!” 모두가 함께 기뻐하며 외쳤고 고개를 들어 그제서야 온 하늘을 수놓은 기이한 현상을 보았다. 빛은 이미 점점 사라지고 있어 엷은 홍색만 남은 채 흐려지고 있었다.우문호는 꽉 쥔 주먹에 힘을 빼고 무의식적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서야 등이 긴장으로 축축하게 젖었고 두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걸 알았다. 마침내 낳았다니 정말 다행이였다.
원경릉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괜찮아, 그렇게 안 아파.”우문호가 한 손으로 원경릉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 원경릉과 깍지를 끼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을 담아 말했다. “고생했어.”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우리 아기 좀 봐.”우문호가 침대에 앉아 아이를 안자 우리 떡들과 쌍둥이도 침대 곁으로 와서 엄마 안부부터 물은 뒤 아빠와 아이를 봤다.원래 눈을 감고 자던 아이가 우문호가 안아 들자 천천히 눈을 떴다. 달을 꽉 채워서 눈매가 또렷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한 것이 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보다 나았다. 특히 검게 빛나는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는 모습은, 막 태어난 아이 같지 않고 검은 눈동자 속에 한 줄기 빛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우문호는 마음이 따듯해지며 사랑스러움과 기쁨이 뭉개뭉개 피어나서 속삭였다. “네가 아빠의 복덩이가 아니어도 아빠는 똑같이 널 사랑해.”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복덩이가 아니야? 딸인데, 아무도 얘기 안 해줬어?”우문호는 원경릉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강력한 기쁨이 쓰나미처럼 덮쳤다. 자신의 떡들과 쌍둥이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우문호는 얼른 품 안의 아이를 보더니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기뻐했다. “정말 딸이야? 정말로?”“그럼 거짓말이겠어?” 할머니가 웃으며 다가오셨다. 원경릉의 배에 뜨거운 쑥찜질을 하시며 사위를 놀렸다. “이렇게 이목구비가 또렷한 아이인데 한 눈에 딸인 걸 알아봤어야지.”“맞아요 맞아!” 우문호는 입이 찢어져서 귀에 걸렸다. 기쁨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안았을 때 깃털처럼 가볍던 아이가 마치 천금의 무게처럼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들을 낳을 때보다 묵직했다.방금까지 마음속으로 아들도 똑같다고 느낀 건 자신을 위로하는 말에 불과 했으며 진짜로는 딸을 바랐고 지금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동생 좀 봐요, 여동생 좀 봐요!” 아이들이 앞다투어 다가왔고 검게 빛나는 눈동자의 여리여리한 여동생을 한없이 바라봤다. “너무
왕비 합방하다북당(北唐), 초왕부(楚王府) 봉의각(鳳儀閣)일렁이는 촛불에 방안 곳곳에 붙여 놓은 낡은 붉은 ‘희(喜, 축 결혼)’종이가 비치고, 금박의 대조가 어슴푸레한 느낌을 떨쳐내는 가운데 벽에 한 쌍의 그림자가 떠오른다.원경릉(元卿淩)은 원하지 않는 것을 참고 또 참는 얼굴이다.결혼한지 어언 1년, 그는 원경릉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제 입궁했을 때 태후(太后)가 원경릉의 밋밋한 배를 보고 실망한 기색으로 후궁(侧妃)을 들이는 것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태후께 하는 수 없이 둘이 결혼한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 합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울고불고 고자질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니까 그냥,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13살에 처음 그를 본 이래, 마음을 온통 그에게 빼앗겨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결국 그의 정비가 되었다. 제 아무리 차가운 돌덩이라도 뜨겁게 타오르게 하리라 믿었건만, 그건 단단히 착각한 거였다.서로 부부이고, 낭군이 분명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 한 가닥 연민조차 없이, 오히려 집착에 가까운 증오만 있을 뿐이었다.“윽……”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원망이 솟구치며 그녀는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선혈이 배어 나와 비릿한 피가 입안으로 방울져 들어갔다.그는 낮게 깔린 눈빛으로 훤칠한 몸을 일으켜, 한 손을 그녀의 얼굴 옆에 바짝 댄 채 얼음같이 냉정하게, “원경릉, 네가 바라던 대로 짐이 너와 합방했으니, 이제부터 짐은 너와 일체 타인이다.”원경릉은 절망과 슬픔의 웃음을 띄우며, “당신은 결국 절 미워하는군요.”푸른 옷자락 아래 초왕(楚王)의 건장한 몸매와 늘씬한 다리로 쭉 걷어차니, 탁자고 의자고 우당탕탕 넘어지며 물건이 사방에 떨어지고 깨지는 가운데 그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미워한다고? 당치도 않은 소릴. 짐은 네가 혐오스러워. 짐의 눈에 너는,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존재야. 사람을 증오심에 불타게 한다고. 아니면 짐이 약의 힘까지 빌려 너와
두 명의 원경릉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스스로에게 주사한 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 보니, 여기였다.그리고 머리 속에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 본인의 기억과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했다. 정후(靜候)의 적녀(嫡女, 정실부인의 큰 딸) 원경릉은 초왕 우문호(宇文皓)를 사모한지 오래다. 15살에 성인식을 올리고, 공주부 연회에서 치밀한 음모로 초왕이 그녀를 ‘범하도록’ 함정에 빠뜨렸다. 원경릉은 죽네 사네 한바탕 연극 끝에 댓가로 소원하던 왕비의 자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왕부에 시집 와서 1년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초왕은 원경릉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공대 여자로 연애를 해 본적은 없지만,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이 죽기 전에 한 차례 성적 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을.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이 뇌에 남긴 기억도 이를 뒷받침했다.현대의 천재 박사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왕조의 초왕비가 된,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수중에 있던 연구과제를 계속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혼이 시공을 초월한다는, 과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 그녀의 몸에 일어난 지금,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기는 커녕, 만약 다시 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심령학을 연구할 텐데 하는 아쉬움 뿐이다.원경릉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사고가 점점 흐릿해져 아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침대로 돌아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어서, 어서 가서 의원을 불러 오너라!”문밖에 기상궁의 다급하고 혼란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비릿한 피냄새가 대충 닫아 둔 문틈으로 스며 들었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의자에 기대 덜덜 떨리는 발을 간신히 딛고 서서 밖을 내다 보았다.보이는 건 기상궁과 시녀 하나가 어린 시동 하나를 복도에서 부축하고 있는 것으로, 그 시동의 눈에서 철철 피가 흐르고, 시동의 눈에 뭐가 박혔는지 격한 통증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기상궁은 다급히 시동이 그러쥐고 있는 눈 가에 손을 뻗으려 다가, 예리한
연구실로 돌아갔다 다시 왕비로원래 주인이 몸이 많이 약했는지, 원경릉은 정신을 잃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꿈에 뜻밖에도 현대 연구실에 돌아와 있었다.회사가 마련해 준 연구실은 극비로, 회장과 그녀의 어시스턴트 외에 연구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책상, PC, 현미경을 만져보다가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던 때 사용한 주사기가 한쪽 시험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봤다.PC는 켜져 있고, 카톡은 온라인 상태로 창이 즐비하게 떠 있는데 전부 가족들이 보낸 것으로 그녀가 어디 있는지 묻는 내용이다.그녀가 키보드를 만지자, 그제서야 마음 저 밑에 있던 죽음에 대한 실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는 부모님과 가족을 볼 수 없다.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책상에 요오드팅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주사를 놓기 전에 자리에 가져온 것으로,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연구소 안은 여기저기 할 것없이 온통 약품 투성이다. 약상자를 열어보니 약품은 거의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다.만약 이 약품만 있으면, 그 아이는,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영차 하고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녀가 등을 들고 들어왔는데, 손에 찐빵 한 접시를 가져 와 탕하고 탁자에 놓고는 쌀쌀맞게: “왕비님 식사하시지요!”말을 마치고, 등은 탁자 위에 그냥 두고 나가버렸다.원경릉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게 꿈이었다니!원경릉은 배가 고파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바닥에 놓인 약상자를 봤다.순간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이 약상자는, 연구실에 있던 그 약상자와 똑같다.황급히 약상자를 집어 탁자에 올려놓고 열어 젖혔다. 떨리는 손 끝으로 약 상자 안에 약품을 만지는데, 똑같다, 완전 똑같다, 연구실에 있던 바로 그 약 상자다.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원경릉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영혼이 시공을 넘나드는 것도 이미 충분히 상식밖의 판타지인데, 약 상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