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마세요, 그때가 되면 도범이 우리 집 데릴사위가 아니라고 하면 되니까. 그리고 전에 했던 약속을 다들 알고 있잖아요, 왕호 도련님께서도 우리랑 도범이 한 약속을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정말 도범 신분을 인정했더라면 도범이랑 박시율을 박 씨 집안에서 쫓아냈을 리도 없잖아요!”박이성의 말을 들은 어르신도 고개를 끄덕였다.“이성이 말이 맞다, 우리는 아직 도범 신분을 인정한 적 없으니 도범을 박 씨 집안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그럼 좋은 소식이라는 건 뭐냐? 시율이랑 연관이 있는 거라고? 시율이가 정말 용 씨 집안에 가서 일을 하게 된 거냐?”그 말을 들은 박준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어르신, 이건 어제 다 얘기된 일이잖아요, 그리고 시율이 능력 있는 아이잖아요, 2억도 많은 건 아니에요. 용 씨 집안이고 부장 자리잖아요.”“그럼 무슨 좋은 소식이 있다는 거예요?”박이성이 묻자 사람들도 의아한 얼굴로 박준열을 바라봤다.“제가 듣기론 용 씨 집안에서 성남의 땅을 매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땅이 얼마나 큰 지 다들 알고 있겠죠. 그리고 용 씨 집안에서 부동산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어요, 남산토지라고 고급 아파트를 건축하기로 해서 대량의 건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산토지 프로젝트를 맡은 구매팀 부장이 바로 시율이라는 겁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박준열이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건재가 수요될 겁니다, 적어도 천억은 벌 수 있다고요, 이천억을 벌 가능성도 있고요.”“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다니! 하긴 땅이 크니 돈을 많이 벌 만도 하겠네요.”“시율이가 책임자라고 하니 건재를 구매할 때에 무조건 우리 박 씨 집안을 찾아오겠죠.”소식을 들은 박 씨 집안 친척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렇게 되면 저희 박 씨 집안도 이류 가문으로 될 가능성도 있겠네요?”하지만 박 씨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좋은 일이긴 하다만 시율
“맞아요, 시율이 어쨌든 우리 박 씨 집안사람이니 이렇게 큰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당연히 우리를 생각해 줘야죠.”박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박 씨 집안이 이류 가문이 된다면 어디를 가도 당당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되면 박시연과 함께 놀던 삼류 가문의 사람들은 박시연을 부러워하고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 게 분명했다.“그러니까요, 시율이 우리 집안사람이니 당연히 우리를 생각해 줘야죠!”박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박이성을 보며 말했다.“그런데 이성아, 시율이한테 사과할 거면 무조건 성실한 태도로 해야 돼, 알겠지?”“걱정 마세요, 시율이가 저희 집안을 돌봐줘서 돈을 벌게 한다면 시율이한테도 돈을 좀 쥐여줄 생각이에요.”“그런 일은 조심하는 게 좋아,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돼, 다른 사람이 알고 제보라도 한다면 좋지 않으니까, 시율이도 금방 가서 용 씨 집안사람들의 믿음을 완전히 얻진 못했을 거다.” 박 씨 어르신은 이 관계를 이용해서 프로젝트를 따내고 싶지 않았지만 박 씨 집안을 이류 가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결국 타협했다. 그리고 박 씨 집안의 재료는 질량이 좋았기에 용 씨 집안에서도 뭐라고 말을 못 할 것이다.박 씨 집안에게 있어서 이는 좋은 기회가 분명했다. 적어도 이삼 년은 지속되어야 할 프로젝트였기에 일단 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다면 적어도 이삼 년은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박시율의 사무실에서 나온 최소희는 구매팀의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자,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오늘 저녁에는 야근하지 말고 칼퇴 합시다.”그녀의 말을 들은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심지어 어떤 이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잠깐만, 잠깐만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최소희가 직원들을 진정시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새로 오신 부장님께서 오늘 저녁을 사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래방도 쏘시겠다고 합니다. 최고로 좋은 호텔이랑 노래방에 갈 예정인데 다들 어떠세요?”“너무 좋아요!”“
최소희는 말을 마치자마자 복도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통화를 마친 그녀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그때, 최소희와 사이가 꽤 좋던 여직원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최 주임님, 주임님께서 여기에서 일을 한 세월이 얼마인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아요, 이번에 주임님께서 부장님으로 승진을 해야죠.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박시율이 오자마자 부장 자리를 꿰차는 건 너무 하지 않아요?”여직원이 최소희를 대신해 불만을 토로했다.그 말을 들으니 최소희는 다시 화가 났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어쩌겠어요, 박시율 씨 능력 있는 분이잖아요, 그리고 신애 아가씨께서 직접 모셔온 분이니 저희 대표님 말을 들어야죠. 박시율 씨 박 씨 집안사람 중에서도 여장부에 속하잖아요.”“무슨,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 5년이나 되었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쓰레기를 줍는 걸 본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신애 아가씨께서 왜 저런 사람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모르겠어요.”여직원이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주임님 모든 청춘을 회사에 바쳤는데 이번에 저 여자가 오지 않았다면 부장 자리는 무조건 주임님의 것이 됐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박시율이 이 회사에 들어온다고 해도 최 주임님께서 부장으로 승진을 하고 박시율은 주임 자리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최소희도 이를 악물더니 냉랭하게 웃었다.“부장 자리도 그렇게 쉬운 자리는 아닙니다, 박시율도 잘 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거죠.”말을 마친 최소희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루비 씨, 이번에 부장님이 회식자리를 마련하라고 한 건 그저 다 같이 밥이나 먹자는 소리였거든.”그 말을 들은 루비도 얼른 최소희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그러니까 그 호텔로 갈 생각은 없었다는 거예요?”“네, 그리고 노래방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부장님께서 똑바로 말을 하지 않았으니 제가 모르는 척하고 호텔을 잡은 거예요.”최소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었다.“루비 씨도
“높다고요? 전에 부장처럼 2000만 원 월급에 각종 수당까지 합쳐서 3000만 원쯤 하는 거 아니었어요?”최소희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아니요, 제가 듣기로는 2억 월급에 보너스까지 있다고 했어요. 저도 월급이 왜 그렇게 높은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한 거 아니에요? 박시율이 용 씨 집안의 친척이라고 하면 몰라, 그런 것도 아닌데 부장 자리에 앉혀주고 월급까지 그렇게 많이 주다니요!”루비의 말을 들은 최소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신이 부장 자리에 앉으면 역시나 그렇게 많은 월급이 주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쉬웠다, 그녀는 그래도 용 씨 집안의 먼 친척에 속했기 때문이었다.박시율이 없었다면 부장 자리는 무조건 자신의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오후 내내 우울했다.“여러분, 오늘 제가 첫 출근을 해서 여러분들과 얼굴도 익힐 겸 밥을 살 생각인데 다들 최 주임님께 얘기 들으셨죠?”퇴근시간이 되어 사무실 밖으로 나온 박시율이 웃으며 물었다.스무 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밥을 사주려면 적어도 몇 십만 원은 써야 했다.5년 동안 힘들게 살아온 박시율에게 있어서 몇 십만 원을 쓰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자신이 2억의 월급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박 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통 크세요, 저 6성급 호텔은 처음 가봐요.”그때, 여직원 하나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제 처음을 박 부장님이랑 함께 할 줄은 몰랐어요.”“애 나이가 몇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농담을 했다.“6성급 호텔 처음 간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장님은 남자도 아니잖아요. 밥 먹고 노래방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나요!”“6성급 호텔? 최고급 노래방?”박시율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저 최소희에게 야근을 하지 말고 밥이나 한 끼 먹자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최소희가 제멋대로 직원들에게 말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네, 부장님
“네, 부장님께서 부탁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큰 룸으로 예약했어요, 최저 소비 금액이 3500만 원입니다. 부장님 한 달에 2억씩 받는다면서요, 이 정도는 괜찮겠죠?”최소희가 웃으며 물었다.“세상에, 룸을 예약해 주셨다고요? 부장님, 저희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최저 소비 금액이 3500만 원인 곳이라니!”최소희의 말을 들은 직원들이 들떠서 말했다.그 모습을 본 박시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최저 소비 금액이 3500만 원이라니, 게다가 노래방까지 간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박시율은 최소희를 욕하고 싶었다, 왜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호텔을 예약한 건지, 너무나도 괘씸했다.하지만 박시율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최소희를 욕한다면 자신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최소희는 이곳에서 오래 일한 주임님이었기에 그녀를 따르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 분명했다.만약 평범한 식당을 간다면 기대를 했던 직원들은 실망할 게 뻔했다, 그리고 뒤에서 박시율을 쪼잔하다고 욕할 것이다. 그랬기에 이곳에서 최소희를 욕하는 것은 박시율에게 그 어떤 유리한 점도 없었다.“왜요? 박 부장님, 부장님께서 저한테 안배하라고 한 거잖아요,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 거예요?”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박시율을 보며 최소희가 속으로 웃었다.박시율은 얼른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웃으며 말했다.“로얄 호텔 말하는 거죠? 갑시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 두 시간 드릴게요, 집에 가서 옷 바꿔 입고 준비하고 오세요.”“네, 알겠습니다. 부장님!”제일 흥분했던 여직원이 신이 나서 말했다.“부장님 정말 짱이에요, 6성급 호텔에서 밥을 사주시다니, 이런 상사는 저도 처음 봅니다.”“그러니까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직원들이 흥분해서 각자 한마디씩 했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소희는 멍청해졌다, 박시율이 정말 허락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5년 동안 일도 하지 않고 쓰레기를 줍는 걸 목격한 사람도 있었는데 적어도 5, 6천
모든 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박시율이 우울한 얼굴로 회사를 나섰다.그녀에게는 2000만 원밖에 없었는데 팀원들에게 밥을 사려면 6, 8천만 원이 있어야 했다.하지만 박시율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박소희의 뜻대로 된다면 그녀는 앞으로 회사에서 버텨내기가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월급도 낮지 않았기에 첫 월급만 받게 된다면 많이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결국 그녀는 나봉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전에 도범이 내놓은 2억중 1억 8천만 원은 나봉희의 손에 있었기에 지금 그녀에게 돈을 내놓게 해 급한 불을 꺼야 했다.“어머니…”“시율아, 회사는 어때?”하지만 박시율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나봉희가 다시 말했다.“시율아, 너 얼른 도범이랑 이혼하는 게 좋을 거야, 빠를수록 좋아, 내일이나 모래 시간을 내서 얼른 가서 이혼해. 아니면 그놈이 언젠가는 우리를 다시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거야.”박시율은 그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졌다.“어머니, 저한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 도범이랑 이혼 안 해요, 할아버지 칠순잔치 때 도범이 60억을 못 내놓는다고 해도 이혼 안 할 거예요!”“너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니, 그때 너희 할아버지랑 우리 말을 듣지 않고 아이를 남겨둬서 우리 집이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어쩌다가 이런 불효한 자식을 낳아서는, 자기 부모를 잡아먹으려고 하네.”나봉희가 갑자기 박시율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말문이 막힌 박시율은 더 이상 이 일을 두고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어머니, 저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예요, 돈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6000만 원 좀 보내주세요.”“6000만 원?”돈 얘기가 나오자 나봉희가 목소리를 높였다.“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 돈 벌려고 출근한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건데? 설마 도범 그 쓰레기 같은 게 전기스쿠터를 타다가 명품 자동차를 긁은 건 아니지?”나봉희의 말을 들은 박시율은 자신의 어머니의 상상력에
나봉희는 여전히 집요했다.결국 박시율은 실망스럽게 전화를 끊었다.“여보, 왜 그래? 첫 출근인데 벌써 기분 나빠?”그때, 도범이 전기스쿠터를 타고 박시율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줬다.“날도 더운데 시간이 좀 남길래 아이스크림 사 왔어!”“여보,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회사에 오자마자 다른 사람 수작질에 걸려들었어. 더 실망스러운 건 어머니한테 6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빌려주지 않았어, 내가 월급 받으면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계속 여보가 사고를 쳐서 배상해야 하는 거 아닌 거냐고 의심만 하고.”박시율이 웃으며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도범을 보며 말했다.울먹이며 말을 하는 박시율을 보니 도범은 마음이 아팠다.“여보, 괜찮아, 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6000만 원일 뿐이잖아, 내가 지금 2억 꺼내 줄게, 그래야 자기가 편하게 돈 쓰지.”말을 하던 도범이 갑자기 냉랭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런데 누가 우리 여보가 첫 출근하는 날에 수작질을 부린 거야, 말해, 내가 당장 목을 따줄 테니까. 나 도범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죽고 싶은 건가.”“그러지 마, 뭐든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사실 큰일도 아니야, 회사에서 오랫동안 주임으로 일한 사람이 이제 곧 부장으로 승진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나타나서 그 부장 자리를 꿰찬 거니까.”박시율은 도범이 무엇이든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났다, 심지어 목을 따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은 싫었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과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다.“그래, 그럼 주먹으로 해결하지 않을 게. 6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건 무슨 뜻이야?”도범이 물었다.“내가 너무 방심했어, 우리 회사에 최소희라는 주임이 있는데 여기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거든… 그런데 최 주임이 글쎄 6성급 호텔을 예약한 거야, 그리고 노래방도 가야 해서 내가 대충 계산해 보니까 8000만 원은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 그런
도범이 몰고 온 스쿠터 뒷자리에 올라탄 박시율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5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가장 막막하고 괴로웠던 시기에 제일 처음 그녀의 앞에 나타나준 것도 그였다.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자신도 모르게 도범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무르익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 볼멘소리로 말했다.“천천히 좀 몰아. 놀랐잖아.”도범이 고개를 숙이고 박시율의 백옥같이 흰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충분히 늦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은행에 도착했다. 도범이 스쿠터를 길가에 세웠다.“여보, 우리 저기서 큼직한 여행 가방이라도 사야 하지 않아? 현금 4억이면 부피가 꽤 클 텐데 작은 가방으로는 어림도 없을걸.”도범이 씩 웃으며 박시율을 데리고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당, 당신 정말 그 돈을 꺼낼 수 있어? 무려 4억을?”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도범이 부대에서 공을 한 번만 세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에게 상금으로 5,6억씩 줬을 리가 없었다.“무거워서 한 번에 다 들고 가지 못하는 게 걱정되어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여기서 200억이라도 꺼내 보여 줄 수 있어!”도범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박시율에게 말했다.“200억이라니! 당신 참 농담이 심해!”박시율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범이 갈수록 허풍만 늘어가는 것 같았다. “사장님, 여기 가방 좀 삽시다!”은행 옆에 있는 작은 잡화점에 들어선 도범이 곧바로 주인을 불렀다.“네. 얼마나 큰 걸로 사시려고요?”잡화점의 사장은 한 중년 여자였는데 도범과 박시율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옷가지를 담으려고 그러죠? 일 나갈 준비하시나 봐요? 옷이 많지 않으면 이만한 크기면 충분할 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