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은 바로 차설아가 임채원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영상을 찍은 신비한 사람이었다.그는 그 영상으로 성도윤과 차설아를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하지만 그건 단지 갈라놓았을 뿐이었다. 성도윤이 차설아에게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심지어 더 깊어졌다.매번 성도윤이 차설아를 지켜주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는 성취감은커녕 오히려 자존심이 짓밟히는 느낌이 들었고 그에 따라 차설아에 대한 미움도 점점 더 많이 쌓여갔다.그래서 지금 서은아는 정말 차설아가 죽기를 바랄 뿐이었다.차설아가 죽으면 성도윤은 자기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차설아 그 여자는 정말 쉽게 죽지 않았고 매번 도망쳐버렸다.“서은아, 사실대로 말해 봐. 네가 말한 설아 씨가 강에 뛰어들었다는 말은 거짓말이지?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런 미련할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야.”성진은 얼마 남지 않은 약간의 이성으로 차설아가 강에 뛰어들 가능성을 분석했다.“허허.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너도 뛰어들어 찾아보면 알겠지?”서은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넌 차설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지금은 왜 이러는 거야? 두려운 거지? 너희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신뿐이지. 어떻게 확신이 없는 요소 때문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어?”서은아는 심하게 성진을 비웃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창고 입구에 있는 건장한 남자가 보였다.서은아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성도윤이었다!오직 성도윤만이 이렇게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었다.“도윤아, 너는 왜 왔어? 아주머니랑 같이 온 거야?”서은아는 갑자기 장난기가 사라지더니 조급하게 발버둥 치며 그의 곁으로 가려고 했다.“성도윤?”성진도 고개를 돌려 창고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떠보는 말투로 말했다.“전염병에 걸려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보니 멀쩡하네.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빛이 너무 어두워서 성진은 검은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성도윤에 대해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 할 수도
자유를 되찾은 서은아는 재빨리 창고 입구에 있는 성도윤에게 달려갔다.“도윤아, 어때?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아주머니는... 너 혼자 온 거 아니겠지?”서은아는 자기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도윤의 팔을 붙잡고 소영금을 찾기 시작했다.“혼자 왔어.”성도윤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별 감정이 없었다.“뭐? 혼자 왔다고? 너... 정말 어떻게 왔어. 진짜 다친 데는 없어?”서은아는 눈이 먼 성도윤이 어떻게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별장에서 이 험악한 외딴 창고에 도착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 설아는 어디에 있어?”성도윤은 그윽한 눈동자로 서은아를 쳐다보며 다급하게 물었다.“정말 그렇게 사랑해?”서은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붉히면서 말했다.“걔가 우리 둘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너는 전혀 원망스럽지 않아? 혼자 이렇게 먼 곳까지 오면서 원수와 부딪히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 그런 상황이 없다고 해도 기차나 자동차에 치인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냐고. 진짜 그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어?”“내가 말했잖아. 이건 다 중요하지 않다고.”성도윤은 차가운 표정으로 서은아의 팔을 뿌리치고 벽을 더듬으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알려주기 싫으면 내가 직접 찾을 거야.”“같... 같이 가줄게. 어디 있는지 알아.”서은아는 속으로 아무리 미워하고 화가 나더라도 성도윤 혼자 내둘 수 없었다. 게다가 성진이 부근에 있기에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성도윤을 부축했다.“말했지. 나는 곧 네 지팡이야. 네가 어디를 가든 나는 너와 함께할 거야.”“고마워. 은아야. 너는 좋은 사람이야. 절대 설아를 죽이지 않았을 거야.”성도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은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제발 찾아줘. 설아가 무사하기만 하면 나는 따지는 않을게.”“잠깐만! 나도 같이 갈 거야.”성진은 줄곧 창고 안쪽에 서서 성도윤과 서은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서은아와 성도윤의 대화는 너무 이상했
하지만 성진과 성도윤은 전혀 믿지 않았다. 성진은 버럭 화를 내면서 서은아를 위협했다.“아직도 우리를 속여? 내가 믿을 것 같아? 네가 강으로 밀어 넣은 거잖아.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이러는 거지. 설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너도 같이 죽을 줄 알아.”성도윤도 말했다.“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숨기지 마. 설아가 살아 있는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을게. 강물이 이렇게 철철 흐르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난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숨길 생각도 없고. 설아는 정말 투신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강물을 다 뺀다고 해도 찾을 수 없어. 그냥 헛수고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해주는 거야.”서은아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때 성진은 핸드폰의 불빛으로 강가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저 옷! 설아 옷이잖아. 이곳에서 떨어졌네.”서은아는 그쪽을 보고 깜짝 놀랐다.“설아 옷 맞아. 정말 발을 헛디뎌 빠진 건 아니겠지?”“...”성도윤은 물살 소리를 듣더니 서은아의 팔을 내던지고 강가를 향해 달려갔다.“차설아!”그는 난간을 더듬으며 차설아의 이름을 불렀고 그에 응답한 것은 물소리뿐이었다. 성진도 따라가 물살을 살피고 옆에 있는 성도윤을 살폈다. 그리고 강 중앙의 한 곳을 가리키며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저것 봐. 떠다니는 게 혹시 설아인가? 꼼짝도 하지 않네...”“어디?”“바로 형 정면 두 시쯤 방향에. 이럴 게 뻔한데도 못 봤단 말이야?”성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당장 구조 전화를 걸게... 빌어먹을, 여기 신호가 안 좋네. 내가 다른 곳에 가서 전화를 걸게. 여기 있어.”“늦었어.”성도윤은 성진을 아랑곳하지 않고 단숨에 강에 뛰어들었다. 강물이 너무 세서 성도윤은 여러 번 탐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떠내려갔다.“도윤아!”서은아가 올라왔을 때 그녀는 성도윤이 점점 더 멀리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성진은 핸드폰을 들고 덤덤하게 걸어와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차설아가 운전석 문을 열고 도도하게 걸어왔고 자동차 불빛에 서은아와 성진이 환하게 비쳤다.“둘이 뭐해?”차설아는 차갑게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모두 멍해졌다.“잘됐네요! 드디어 나타났네요. 설아 씨!”성진은 긴장이 풀리며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너무 놀랐잖아요. 하마터면 뛰어내려 설아 씨를 찾을 뻔했어요.”그러자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날 찾으려고 뛰어내려?”차설아는 큰집을 떠난 후 바로 성심 전당포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서은아가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와 그녀를 놓아주고 성도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려고 했다.그리고 창조에 도착했을 때, 강변 쪽에서 두 사람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차를 멈춰 세웠다. 두 사람이 바로 서은아와 성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성진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 서은아는 성진의 팔을 뿌리치고 차설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더니 그녀의 뺨을 호되게 내리쳤다.“이 재수 없는 년아. 도윤이가 너를 구하려고 강에 뛰어들었어. 만약 도윤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너를 죽일 거야.”“성도윤?”그러자 차설아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무슨 농담을 하세요? 도윤이는 큰집에 있는데 어떻게 강에 뛰어들어요.”“당연히 너를 구하기 위해서지. 왜 안 죽었어. 이 계집애야. 네가 죽으면 우리가 모두 해방되는 건데.”서은아가 차설아에 대한 원한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차설아의 머리를 잡아당겼다.“서은아. 미쳤어? 설아 씨를 다치지 마!”성진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 서은아의 머리채를 잡아 그녀를 옆으로 내동댕이쳤다.“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얼굴은요?”성진은 차설아의 얼굴을 부여잡고 선명하게 보이는 손바닥 자국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제가 차라리 저 계집애도 강에 밀어 넣을까요? 앞으로 설아 씨 털끝도 다치지 못
“차설아, 우리 이혼해.”등 뒤에서 성도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차설아는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다.지글거리는 뜨거운 기름이 얼굴에 튀었지만,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우리는 명의상 부부일 뿐 정은 없잖아. 이제 4년이란 시간도 채웠으니, 이쯤에서 끝내자.”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느껴졌다.차설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드디어 이날이 왔군.’4년 전 차씨 집안이 파산당하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부담감에 못 이겨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결국 차설아는 홀로 모든 뒤처리를 감당하게 되었다.차설아의 할아버지와 성도윤의 할아버지는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였고, 차설아의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성도윤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차설아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눈에 밟히던 사람이 바로 어린 손녀딸이기에 성도윤의 할아버지한테 잘 좀 챙겨달라고 신신당부했다.그래서 이런 유명무실한 혼인을 치르게 된 것이다.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고, 성도윤한테 푹 빠졌다.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라는 역할만 충실히 이행한다면 언젠간 그의 마음을 얻을 거로 믿었다.하지만 이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너한테 보상으로 800억이랑 동탄구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줄게. 이건 이혼 신고서야. 별다른 문제 없다면 사인해.”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 대수롭지 않은 그의 태도는 마치 이혼마저 하나의 사업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차설아는 서류를 건네받아 일련의 숫자를 내려다보았다.4년에 800억이라...성씨 집안은 역시나 씀씀이가 달랐다.“꼭 해야겠어?”차설아는 서류를 내려놓고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그녀가 4년 동안 사랑한 남자는 조각 같은 외모에 훤칠한 몸매를 가졌는데, 매사에 진지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했다. 그는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응.”성도윤의 싸늘한 음성에는 일말의 망
어쩐지 성도윤이 오늘 밤에 나가라고 하더니, 새로운 애인을 집에 빨리 들이기 위해서일 줄이야!아까 고작 이런 남자 때문에 가슴 아파한 자신을 떠올리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임채원은 도도하게 차설아 앞으로 걸어가 거만한 말투로 쌀쌀맞게 말했다.“당신이 차설아야? 아직도 안 갔어? 도윤이가 가라고 하지 않았나? 여태껏 미적거리며 버티고 있었던 거야? 뻔뻔스럽기도 하네.”차설아는 그녀의 도발 따위 가뿐히 무시하고 계속해서 땅바닥에 널브러진 짐을 챙겼다.“이봐, 당신 귀먹었어? 내 말 안 들려?”“미안, 못 들었어.”차설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개가 멍멍 짖는 소리만 들렸거든.”“감히 나한테 욕한 거야?!”“내가 언제 욕했어? 본인이 직접 인정하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말을 마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길을 막는 임채원을 향해 고개를 까닥했다.“비켜줄래? 사람이 지나가면 개도 눈치껏 피해준다고.”“이...!”임채원은 화가 나서 발발 동동 굴렀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전설 속 성씨 집안 둘째 며느리는 동네북으로 소문났을 텐데, 입이 이토록 거침없을 줄이야!이를 본 도우미가 쪼르르 달려가 아첨하기 급급했다.“채원 양, 화 푸세요. 집에서 쫓겨난 여자 때문에 몸이라도 상하면 본인만 손해잖아요. 앞으로 이 별장의 안주인은 채원 양이라고요, 저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죠. 둘째 도련님의 부탁대로 채원 양이 지낼 방을 마련했으니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도우미의 말이 기분이 풀어진 임채원은 차설아를 공기 취급한 채 도우미를 따라 별장으로 들어갔다.매서운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밖에 또다시 차설아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눈앞의 웅장한 저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이곳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엔 이처럼 초라한 결말을 마주하니, 정말 아이러니했다!“안녕!”차설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그날 밤 도심으로 올라온 그녀는 원룸을 계약했다.비록 방이 크지는
다음날.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차설아는 8시 30분부터 구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일찍 도착한 건 물론 화장까지 정성껏 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롱드레스를 입고 그동안 풀어헤쳤던 머리카락마저 높게 묶어 백조처럼 길고 하얀 목덜미를 훤히 드러냈다.멀리서 보면 여신이 따로 없었고, 우아하면서도 시크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하지만 그날 밤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열이 살짝 난 탓에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9시 정각이 되자, 은색 부가티 베이런이 지상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섰다.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설아를 발견하자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꽤 적극적이네?”성도윤은 무심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스쳐 지나가 기다란 다리로 접수창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별난 놈이야.’차설아는 듬직하면서도 어딘가 쌀쌀맞아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몰래 생각했다.‘뒤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줄 알았네! 자기도 급하게 가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이혼 신고는 생각보다 빨리 처리되었다. 사인하고 날인하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새로 도입된 법에 따르면 이혼하고 나서 한 달 동안 숙려기간이 있는데, 등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혼을 원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둘 중에서 아무나 접수증을 들고 와서 취소해도 돼요.”구청 직원은 말을 마치고 이혼 접수증 2부를 각각 나눠줬다.매일 매일 이혼을 접수하면서 울고불고 심지어 현장에서 싸우기는 별의별 상황을 다 접했지만, 이렇게 무덤덤하게 처리하는 부부는 처음 본다.게다가 남자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여자는 날씬하고 예쁘기만 한데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어쩌다 이혼까지 하게 되었단 말인가?차설아는 접수증을 건네받아 빼곡히 적힌 내용을 들여다보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이혼할 때 숙려기간이 있으면서 결혼하기 전에는 왜 없대? 만약 혼인 신고할 때 숙려기간이 있다면...”성도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이리 당당하단 말이지?차설아는 모든 게 어이가 없었다.그동안 성도윤은 속세를 벗어난 선비처럼 남녀관계에 관심이 없고, 여자를 돌같이 볼 줄 알았는데 결국 소리소문없이 시한폭탄을 터뜨렸다.애인을 집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가지다니?순간 정신이 번쩍 든 차설아는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슬픔마저 말끔히 사라졌다.“그러니까 지금 불륜이란 말이지?”성도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임채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차설아 씨, 이게 다 제 탓이에요. 화풀이하고 싶으면 저한테 해요!”이 여자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제대로 보여주네?“그래?”차설아는 당장이라도 뺨을 때릴 기세로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임채원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깜짝 놀라 성도윤의 등 뒤로 쏙 숨었다.“자기한테 화풀이하라더니 왜 숨는데?”차설아는 그대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작작 좀 해, 난 나름 소양 있는 사람이라 내연녀와 개싸움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둘이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데 방해하기는커녕 그 소원을 이뤄줘야 하지 않겠어?”“뭐... 뭐라고?”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임채원은 어리둥절했다. 몰래 준비한 ‘감성팔이’ 작전도 무용지물이 된 듯싶었다.보아하니 성도윤과 차설아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계약 부부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아니면 내연녀를 마주친 상황에서 대체 어떤 와이프가 이처럼 무심하고 관대할 수 있겠는가?이내 차설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다만 불륜인 만큼 이혼 합의서에 적힌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을 다시 협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임채원은 차설아가 재산을 언급하자 조급한 나머지 가식을 떨기는커녕 한층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도윤이가 당신한테 800억에 동탄구 아파트 펜트하우스까지 넘겨주지 않았어?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해줬다고 보는데? 게다가 그동안 도윤네 집에서 그쪽 집안 뒤처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다고!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못 써.”차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