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반 시진 후, 궁녀가 낙영전에 들어와 외쳤다.“마마?”거울 앞에 고묘묘는 이미 강상군의 얼굴로 바뀌었다.원래 류운아의 가면을 강상군의 얼굴로 바꾼 것이었다.이것은 류운아 대신 입궁하기 위해 배운 기술이었다.인간의 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면, 아무도 보아낼 수 없었다.오늘 밤에 이렇게 쓰이게 되다니.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목을 세게 졸랐다.“마마, 계십니까?”궁녀는 매우 긴장했다.바로 그때, 고묘묘가 몸을 일으키고 방문을 열었다.그녀의 모습을 보자, 궁녀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마마, 무슨 일입니까?”고묘묘는 밖에 궁녀가 한 명인 걸 확인하고 방으로 끌어왔다.바닥의 시체를 본 궁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해 급히 입을 막았다.“마마! 운비가…”고묘묘가 덤덤하게 말했다.“죽었다.”그녀는 빨개진 목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시체를 보며 말했다.“이 운비가 본궁을 죽이려고 하더구나.”“본궁이 실수로 죽여버렸다.”“월로야, 오늘 밤 일은 너와 나밖에 모른다.”고묘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월로를 바라보았다.월로는 심장이 덜컥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월로는 후회했다.마마께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일이 터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운비를 죽일 줄은 몰랐다.“근래 황상도 보이지 않고, 운비도 총애를 받지 못했다. 낙영전에는 아무도 없으니, 운비가 죽었다는 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본궁을 도와 시체를 처리해라.”월로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어떻게 처리할까요?”“정원에 묻어라.”두 사람은 어둠을 틈타 정원에 큰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었다.구덩이를 모두 메운 후, 두 사람은 다시 풀로 덮었다.화초 몇 개를 올려두니 아예 흔적이 없었다.월로는 방의 핏자국을 모두 청소했다.그러나 구석에서 피 묻은 옥패를 발견했다.위에는 해라고 적혀 있었다.이건 해씨 집안의 옥패였다!이 옥패는 상비 마마가 해씨 집안에서의 권력이자 지위의 상징이었다.마마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인데, 어찌 이곳에
이 말을 들은 고묘묘는 차가운 눈빛으로 월로를 바라보았다.옥상…다음 날 밤, 옥상은 실족사로 목숨을 잃었다.옥상의 시체를 보자, 월로는 겁에 질렸다.상비 마마께서 죽인 것이다!아니, 그 여인은 상비가 아니다!비록 슬피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절대 상비 마마가 아니었다.사흘째 되는 날, 서진한도 낙영전에 갔으나 류운아를 보지 못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고묘묘가 산책하고 있었다.낙영전에서 나온 서진한은 곧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차를 마시는 상비를 보았다.서진한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류운아의 행방을 물으려고 했다.“서 장군,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출궁하신 분이 어찌 아직도 궁에 계신 겁니까?”이 말을 들은 서진한은 몸이 떨렸다.상비의 눈빛을 보자, 서진한은 바로 그 도도한 눈빛이 떠올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였다!“마마, 잠시 말씀을 나눠도 되겠습니까?”고묘묘는 손을 흔들어 주위의 하인들을 내보냈다.곧바로 모든 하인이 정원 밖으로 나갔다.서진한은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묘묘, 맞습니까?”고묘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말했다.“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서진한은 급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어찌 지금 상비인 척하는 겁니까!”고묘묘는 차가운 눈빛으로 서진한을 보며 말했다.“저를 데리고 가지 않으니 살길을 찾을 수밖에요. 상비는 진익이 총애하는 후궁인데, 어찌 안됩니까?”서진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모릅니다!”“이 신분으로는 복수도 권력도 얻지 못합니다!”“진익은 곧 낙요를 얻게 될 겁니다! 누가 낙요보다 더 총애를 받겠습니까?”이 말을 들은 고묘묘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뭐? 낙요가 후궁에 들어온다는 말입니까?”“그럴 리가!”서진한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이 말을 들은 고묘묘는 그제야 깨달았다.진익이 며칠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함정을 꾸미기 위해서였다.이제야 후궁의 총비라는 신분을 얻게 되었는데, 또 찬
낙요는 궁에서 사흘 동안 찾았다녔다.집혼산에도 세 번이나 갔지만, 진익은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찾는 곳마다 진익의 옷이나 신발이 보였다.안에는 작은 목각 인형과 부적 한 장이 붙어 있었다.우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사람은 우리를 혼동시키려는 것 같아. 진익의 위치를 알아낼 것을 알고 이런 것들을 준비한 거지.”점을 친 모든 곳에 진익이 없었고, 진익의 물건과 목각 인형만 보였다.낙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진익은 어쩌면 이미 출궁했을지도 몰라. 이것들은 그저 미끼일 뿐이지.”우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럴지도 몰라!”“정말 잡히면 어디로 데려갈까?”낙요는 무거운 어투로 답했다.“강회현!”“찾지 말고 강회현으로 가자.”양행주가 정녕 진익을 잡았다면, 강회현에 갈 수밖에 없다.진익의 피로 동초 대제사장을 부활하는 것.“사흘 동안 있었으니 궁에서 시간 낭비할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우유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궁에는 어떡합니까? 진익이 실종한 사실을…”“우선 아프다고 하자.”“그럴 수밖에 없어.”두 사람이 강회현으로 출발하려던 그때, 제사 일족의 제자들이 급히 달려왔다.“대제사장, 이걸 받았습니다!”서신을 본 낙요는 깜짝 놀랐다.‘진익을 구하려면 낙요를 어화원 정자로 데려와라.’위의 내용을 본 우유는 놀라며 말했다.“수상하네. 우리를 궁에 남겨두려는 것 같아.”“진익은 이 사람 손에 없을 수도 있어.”하지만 낙요는 걱정되어 말했다.“그래도 가봐야겠어.”“갈라져서 움직이자. 난 어화원에 갈 테니, 넌 강회현에 가.”낙요는 도안 한 장을 꺼내 낙요에게 건넸다.“속혼진이니 미리 함정을 꾸며.”“나침반도 줄게.”말을 마친 후, 낙요는 천명 나침반도 우유에게 건넸다.우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나한테 주면 어떡해!”우유는 이 나침반의 무게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이건 여국의 보물이었다.“그게 어때서? 지금 실력으로는 다룰 수 있잖아.”“강회현에서 혹시라도 양행주를 만나면, 이걸로
제사 일족의 제자들은 모두 우유와 함께 출궁했고, 통천탑 주위는 고요하다 못해 바람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궁녀 한 명이 황급히 달려와 낙요를 치고 사과한 후 다시 떠났다.낙요는 깜짝 놀라며 손바닥을 폈다.조금 전 그 궁녀가 넣은 쪽지였다.‘통천탑 매복.”낙요는 서서히 통천탑 아래로 걸어가 관찰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통천탑은 매우 고요했으며,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았기에 매우 어두웠다.하여 달빛으로 길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다 지어지지 않은 탓인지, 층마다 역겨운 냄새가 났다.낙요는 한층한층 올라 30층까지 갔다.곧바로 창문을 바라보는 검은 그림자와 의자에 묶여 있는 진익이 보였다.낙요를 보자, 진익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낙요는 서서히 앞으로 다가가 실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낙요는 남자가 가면을 쓴 것과, 검은 옷을 입은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때,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낙요를 에워쌌다.위층에도 사람들이 몰려와 길을 막았다.거의 40, 50명 되는 것 같았다.“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 통천탑에 몸을 숨긴 것이오?”낙요는 심오한 눈빛으로 유유히 입을 열었다.곧바로 사람들은 공격해 왔고, 낙요도 이에 맞섰다.그러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낙요의 상대가 아니었다.바로 그때, 진익 옆에 있던 사람이 검을 꺼내 진익의 목을 겨눴다.“가만히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소.”낙요는 멈칫했다. 이 목소리는…낙요가 생각하던 그때, 가면을 쓴 남자가 의자를 창문 밖으로 끌고 갔다.진익의 몸은 절반이 창문 밖에 매달려 있었다.“그만!”낙요는 급히 호통쳤다.그러자 곧바로 두 사내가 낙요의 팔을 누르고 특별 제작한 끈으로 낙요를 묶었다.바로 그때, 낙요는 끈에도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약초의 냄새.통천탑에 손을 쓴 게 분명했다.“서진한, 네가 어찌 감히.”낙요는 차가운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낙요는 이미 그 목소리로 정체를 알았다.그러나 상대도 놀라지 않고 마스크를 벗으
약을 먹자, 약효는 빠르게 작용했다.낙요가 차갑게 말했다. “이제 진익을 풀어주시오.”곧이어 서진한은 앞으로 다가가 진익의 입을 틀어막던 천을 빼냈다.그리고 진익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고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낙요는 서진한의 이 행동을 보고 곤혹스러웠다.“대제사장… “진익은 이미 밧줄을 풀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맥없이 땅에 넘어졌고 온몸에 힘이 풀려 그녀 앞으로 기어갔다.“대제사장, 나는 당신이 짐을 구하러 올 줄 알았소.”“그들이 짐에게도 약을 먹였소.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소. 대제사장께 폐를 끼쳤소.”진익은 힘겹게 몸을 지탱하여 낙요 곁으로 왔다.그리고 그녀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았다.낙요는 아예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서진한이 당신을 묶었소? 양행주가 아니요?”진익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행주는 누구요?”“대제사장, 짐은 지금 온몸에 힘이 풀렸소. 약효가 언제 지나갈지 모르겠소. 당분간 당신 밧줄을 풀지 못할 거 같소.”진익은 괴로워하며 의자를 붙들고 앉았다.한마디 말을 하는데 한참 숨을 헐떡였다.낙요의 미간은 더욱 찌푸렸다.양행주는 궁에 나타난 적이 없다!만약 양행주가 진익을 납치한 것이 아니라면 서진한은 절대 불가능하다!“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거요?”낙요는 미간을 찌푸리며 진익을 쳐다보았다.진익은 멍해 있더니 말했다. “뭐라고? 짐은 못 알아들었소.”낙요는 냉랭하게 말했다. “양행주 외에 침궁에서 당신을 쥐도 새도 모를 사이에 납치할 사람은 없소. 서진한도 불가능하오.”“조금 전 서진한 옆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소리 소문 없이 이렇게 큰일을 해낼 수 없소.”“당신이 그들에게 협조했다면 모를까!”“도리대로라면 서진한이 당신을 붙잡은 건 복수를 위해서였소. 하지만 나와는 큰 원한이 없소.”“서진한이 나를 잡으려는 이유는 양행주를 위해서 일뿐일 텐데 그는 나를 통천탑게 버려두고 아무것도 하지
“악귀가 나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 알고 있소?”낙요가 말을 끝내자, 진익의 안색이 변했다.낙요가 이 자식이 그래도 양심은 좀 있어서 그녀를 풀어준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진익이 말했다. “나오면 나오게 두면 되오. 짐은 당신을 믿소.”“당신에게 천명 나침반이 있으니, 악귀가 나오면 일거 소멸하면 더 좋지 않소?”그의 덤덤한 말투에 낙요는 깜짝 놀랐다.“그분은 동초 대제사장이요! 나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소! 그것을 완전히 없애려면 수많은 생명의 대가를 치러야 하오!”“어서 저를 풀어 주시오!”하지만 진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제사장, 짐은 알고 있소. 당신은 결국 부진환 때문이잖소.”“짐은 절대 당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오.”“짐은 당신이 영원히 여국에 남아 있기를 바라오. 또한 영원히 여국의 대제사장이길 바라오!”“그 악귀는 그때도 봉인할 수 있었으니, 지금도 봉인할 수 있을 거요. 짐은 당신이 해낼 거라 믿소.”“설령 수많은 생명의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당신만 남겨둘 수만 있다면 짐은 다 동의한다.”“당신만 있으면, 여국의 안정을 지킬 수 있소!”이 말을 듣자 낙요는 점차 평온해졌다.낙요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정녕 여국을 위해서요?”“아니면 당신의 사욕 때문이요?”그 눈빛은 마치 진익을 꿰뚫어 본 듯했다.진익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의 눈빛은 그윽했고, 진지한 표정으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짐은 타고난 자질이 부족하여 무슨 일을 해도 몹시 우둔하오.”“짐은 불공평한 하늘을 원망하오. 짐은 모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질투하오.”“남녀불문이요.”“그해 당신이 낙청연의 신분으로 여국으로 왔을 때, 거리에서 만인이 무릎을 꿇고 절하던 광경을 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소. 그때 짐은 처음으로 질투 외에 부러움이 생겼소.”“그때부터 짐은 당신에게 끌렸소.”“당신과 부진환 사이를 바라보면서 짐은 질투했소.”“비록 짐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소. 짐은 당신을 좋아
섭정왕부(攝政王府).동상방(東廂房) 내 꽃무늬가 새겨진 침상 주위에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낙청연(洛清淵)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침상 위의 난잡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햇빛이 빨간색의 흔적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어젯밤 신방(新房)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쳐들어왔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수치심과 모욕감이 울컥 치밀어올라 돌연 그녀를 견딜 수 없었고 굴욕으로 인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왜 우는 것이냐? 드디어 네 바람대로 섭정왕부에 시집왔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낙청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 위에 정좌로 앉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위엄 있으면서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우면서도 냉담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낙청연은 그의 시선이 칼이 되어 살을 에이는 것 같았고 온몸이 피 칠갑이 된 것 같았다.낙청연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내 가슴 부근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왕야(王爺)… 줄곧 여기 계셨습니까?”남자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너와 내가 혼인을 올린 날인데 본왕이 여기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그 순간, 낙청연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어젯밤 신방에 쳐들어왔던 남자들과 도처에 남겨진 어지러운 흔적들에 그녀는 수치스러웠고 분했는데 그녀와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던 남자는 그 방 안에서 밤사이 그 남자들이 어떻게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는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왜입니까? 제가 그렇게나 미우십니까?”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낙청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분통을 터뜨렸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첫날밤 하인들더러 그녀의 순결을 빼앗게 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더럽혔다.낙청연은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를 경모했었고 당시 태황태후(太皇太后)는 두 사람이 금동옥
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낙청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난 죽었는데? 왜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지?’어멈처럼 보이는 하인이 대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울고불고 소란 피울 생각은 마시옵소서. 왕야께서는 그런 수작에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동생을 대신해서 혼인을 치르러 하다니요? 섭정왕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등 어멈(邓嬤嬤)은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 늙은 어미를 모시려 했으나 염치를 모르는 왕비가 자결 시도를 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그녀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승상부의 아씨로서 살 것이지 이런 추접한 일이나 벌리다니, 차라리 죽어버리지.”머리 위로 욕설과 불평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낙청연은 이 모든 게 낯설었다. 그녀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어젯밤은 섭정왕과 낙월영의 혼인날이었다. 그러나 낙청원은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로 위장하고는 방 안에 미정향(迷情香)을 피워놓고 섭정왕의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그런데 부진환이 결정적인 시각에 정신을 되찾았고 화가 나서 사람들을 대여섯 명 불러들였으며 낙청연은 깨어난 뒤 굴욕을 참지 못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벽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 했다.몸의 원래 주인은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었고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괴로움과 마지못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여국(黎國)의 대제사장(大祭司)으로서 그녀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영혼이 흩어지지 않았고 천궐국(天闕國) 승상의 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난폭한 하인이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서 넘어뜨렸고 그 바람에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찧게 되었다. 뒤이어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면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봤고 피가 흥건했다.“돼지처럼 무거운데 누가 아씨를 옮기겠습니까? 눈치 좀 챙기세요. 섭정왕부로 시집왔다고 해서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