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 감히 내 뒤에서 수작을 부리면 하루도 살지 못하게 될 걸 알고 있어야 할 거야.” 원유희는 두피가 저리고 한기가 몸에 스며들어왔다.“알아, 하지만 내 말은 사실이야. 손예인이 성형외과에서 가서 나를 난처하게 만들고 책임자에게 날 해고하라고 강요해서 그런 거야, 네가 직접 가서 물어봐도 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는 자신이 한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겁에 질린 말투와 약한 자세가 마치 수년 동안 박해당한 피해자처럼 보였고, 김신걸이야말로 악랄한 가해자였다. 그녀는 불안이 엄습했고, 휴대폰 벨이 다시 울렸을 때 깜짝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휴대폰을 보자,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다.“여보세요?”“저는 퍼펙트 성형외과 인사부 직원입니다. 원유희 씨, 당신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더군요. 왜 출근을 안 하신 거죠?”원유희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을 했다, 월급을 정산하러 갔을 때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던 것 아니었나? “알겠습니다, 오후에 갈게요.” 전화를 끊자, 원유희는 그제야 김신걸의 전화를 받기 전에 여러 통의 전화가 인사부에서 걸려온 것을 발견했다. 점심을 먹고 성형외과로 출근하고 나서야 그녀가 없는 사이에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를 해고했던 그 책임자는 제명되었고 상사가 재배치 된것이 라고 하는데, 이유인즉슨 이유 없이 직원을 해고하고 직원을 무시하며 오히려 생떼를 부리는 손님의 비위를 맞춰줬다는 것이다. 매우 타당한 이유였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일의 정황은 원유희만이 알고 있었고, 이는 김신걸의 권력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원유희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 임시 신분증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그녀가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영희 이모의 전화가 왔다. 그녀는 일할 때 음소거 상태로 해놔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전화를 보지 못했고, 점심시간에 휴대폰을 꺼내어 보았을 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영희 이
원유희가 눈물을 머금은 눈을 치켜떴다.“생리통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그녀가 배를 움켜쥐고 있는 걸 본 안가희가 물었다.“심각해? 병가 내고 병원 가보는 게 어때?”그러자 뒤에 있던 장인영이 입을 삐죽거렸다.“어이가 없네. 생리통 때문에 휴가를 다 내고. 나도 생리 때마다 아프지만 단 한 번도 휴가 낸 적이 없었잖아요?”“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안가희가 목소리를 낮추며 눈살을 찌푸렸다.“내 말이 틀렸어요? 여자라면 다들 생리통쯤은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걸로 일일이 병가 내고 그럼 되겠어요?”“딱 봐도 심각해 보이잖아요.”“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장인영의 적반하장에 안가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장인영은 전 팀장과 워낙 사이가 좋았던 동료였고, 전 팀장은 원유희 때문에 해고된 거나 마찬가지니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원유희가 벽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괜찮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화장실을 나섰다.물론 생리통이라고 말한 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 그렇다고 진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성형외과 전체는 김신걸의 주관이나 마찬가지, 병가든 월차든 내면 바로 그가 알게 될 것이다.마치 그녀가 해고된 지 12시간도 되지 않아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왔던 것처럼 말이다.김신걸의 감시하에서 신분증이며 여권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제성을 떠나기는 쉽지 않을 터.하지만 딸이 아프다니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설령 다시 김신걸에게 잡힌다 해도 말이다.원유희는 최대한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일을 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30분 정도가 지나고 결국 초조한 마음을 못 이긴 원유희는 화장실로 들어가 영희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발신음이 울리는 1분 1초가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그때, 드디어 영희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모님, 애는 좀 어때요?”“방금 병원에 도착했어요.” 영희 이모가 숨을 헐떡였다.원유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을 거예요
“오늘이 첫 날인 거야!”상우의 말에 유담이 중얼거렸다.“아직도 14일이나 남았잖아. 아직도 오래 기다려야 해…….”시무룩한 유담의 모습에 영희 이모가 아이들의 포동포동한 손을 꼭 잡았다.“할머니랑 같이 기다리면 곧 오실 거야. 엄마도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까 우리도 여기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야? 응?”“네!”비록 아이의 상태가 안정됐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하루 종일 유담이 생각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자식이 잘 지낸다 해도 항상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게 엄마 마음인데 자식이 아프다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엄마가 곁에 없어도 항상 씩씩한 유담이었지만 아플 때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넘어지기만 해도 마음이 찢어지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너무 걱정되네.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원유희는 바로 영희 이모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하지만 연결음이 울리기 바쁘게 화들짝 놀란 듯 바로 끊어버렸다.영상 통화를 해도 되는 걸까? 아이들 얼굴을 보고도 침착할 수 있을까? 행여나 이성을 잃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려다 김신걸에게 걸리진 않을까?아이들이 아픈 것도 걱정됐지만 김신걸에게 아이들을 빼앗기는 게 더 두려웠다.고통스러운 얼굴로 주저앉은 원유희가 손바닥을 붉어진 눈시울을 감싸 쥐었다.이 모든 일의 원흉인 김신걸이 죽도록 증오스러웠다.이때 다리 옆에 둔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문자 알림이었다.휴대폰을 확인한 원유희가 미간을 찌푸렸다.김신걸이 보낸 문자의 내용은 단 두 글자, “나와”였다.나오라는 문자는 김신걸의 차가 아파트 단지 앞까지 도착한다는 걸 의미했다.감히 거역할 수 없는 명령조에 원유희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홧김에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지만 쿠션에 통통 두 번 튀길 뿐이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도 휴대폰 하나 차마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한심했다.잠깐 망설이던 원유희가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지금은 나가고 싶지 않아. 다음에 봐.”한편 답장을 확인한 김신걸의 표정이 차갑게 굳더니 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이런 상황 정도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모습이 원유희도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녀가 말없이 조 대표 곁으로 다가가자 조 대표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김신걸 여자인 줄 알았는데…… 왜 나한테…….’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이런 접대에 나름 익숙해진 원유희는 자연스럽게 조 대표의 잔에 술을 따랐지만 그는 바로 만류하며 술병을 받아들었다.“아니에요. 제가 직접 하죠.”자신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른 조 대표는 예상외로 원유희의 잔에는 조금도 따르지 않았다.김신걸의 손에 이끌려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것도 벌써 여러 번. 하지만 조 대표처럼 젠틀한 남자는 처음이었다.그제야 고개를 들어 조 대표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 원유희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어딘가 낯이 익은데…… TV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하긴 김신걸과 함께 술자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평범한 사람이 있을 리가.’조 대표는 나름 김신걸의 체면을 생각해 원유희에게 젠틀하게 대하는 듯했지만 그 모습이 원유희는 우스울 따름이었다.‘어차피 김신걸이 원하는 건 내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일 텐데.’알아서 잔에 술을 따른 원유희는 조 대표와 술잔을 부딪힌 뒤 쓰디쓴 액체를 원샷했다.‘내가 만약 취하면 어디로 데리고 갈까? 어전원으로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신분증이랑 여권 좀 챙기게. 그럼 어떻게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한참 동안 술잔이 오고 가고 조 대표가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술…… 잘 마시시네요?”살짝 고개를 끄덕인 원유희는 말없이 또 한 잔 술을 들이켰다. 한쪽에서 원유희를 뚫어져라 관찰하던 김신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송곳처럼 원유희의 몸을 꿰뚫는 듯했다.술자리가 무르익고 원유희는 아예 조 대표는 내팽개치고 혼자 자작을 하기 시작했다.어떻게든 집에 들어가 여권을 챙기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오늘 하루 정말 기분이 엉망이었던 그녀는 알코올로 정신을 마비시키고 싶었다.‘필름만 안 끊기면 돼…….
김신걸이 다행히 살인충동을 잘 참아낸 것인지 다음 날, 원유희는 무사히 눈을 뜰 수 있었다.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일어난 원유희는 자신이 계단 근처의 카펫 위에서 자고 있었음을 눈치챘다.마치 버려진 쓰레기처럼 말이다…….뭐 누구 짓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이 됐다.자리에서 일어선 원유희가 익숙한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어전원이네. 역시…… 하늘이 날 아직 완전히 버린 건 아니야.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까!”욕실에서 엉망진창인 얼굴을 대충 정리한 원유희가 1층으로 내려갔다.그녀를 발견한 해림이 다가왔다.“아가씨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김신걸은요?”“대표님은 나가셨어요.”고개를 끄덕인 원유희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음식물을 씹으면서도 그녀의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김신걸이라면 내 여권을 어디에 숨겼을까? 방? 아니면 서재? 운에 맡겨보는 수밖에.’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주방에서 나온 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다행히 문은 열려있는 상태였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연 원유희는 쏙 하고 안으로 들어간 뒤 급히 문을 닫았다.심플한 분위기의 큰 서재는 어딘가 차갑고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김신걸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에 원유희는 숨이 턱턱 막혔다.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멍하니 서 있을 시간은 없었다.원유희는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걸어가 책상 위의 파일이며 서랍을 전부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여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살짝 실망하던 원유희는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책들을 하나하나 뒤져보던 그때, 두터운 책 한켠에 짙은 푸른색 작은 수첩이 그녀의 시선을 끌어당겼다.‘역시…….’뭐에 홀린 듯 꺼낸 수첩의 정체는 여권이었다. 신분증까지 여권 사이에 끼어있는 걸 발견한 원유희는 기쁨의 환호를 내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휴대폰은 버리고 도망치는 거야. 휴대폰 위치 추적이 없으면 아무리 김신걸이라도 날 잡을 순 없을 걸…….여
‘12살일 때는 3일…… 이번에도 3일일까? 아니, 이젠 성인이니까 더 오래 가두려나? 한 1주일 정도?’마지막 희망의 불씨까지 꺼져버리고 원유희는 발버둥 칠 힘마저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또다시 이렇게 비참한 처지가 된 자신의 팔자가 원통했다.지하실에는 침대는 물론, 먹을 것도 심지어 물도 없었다.기나긴 어둠을 견뎌내기 위해 잠을 청하려 해도 문이나 벽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아침을 먹어서일까 첫날은 나름 견딜만 했다.하지만 두 번째 날부터 원유희는 온몸의 수분이 전부 증발하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세 번째 날. 입술이 전부 말라비틀어진 원유희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구석쪽에 웅크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원유희가 감금되어 있는 동안 김명화는 미친 듯이 그녀를 찾고 있었다.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니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원수정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까지 찾아갔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실종이라도 된 듯 이틀째 성형외과에 출근도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자 김명화는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바로 드래곤 그룹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드래곤 그룹 대표 사무실.고건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명화님께서 오셨습니다.”“하, 꽤 적극적이네. 안 볼 거니까 돌아가라고 해.”코웃음을 치던 김신걸이 말했다.“네.”한편, 한참을 기다려도 김신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진 김명화는 그의 앞을 막아서는 비서들을 밀치며 무작정 안으로 달려들었다.“들어가게 해줘! 형 만나야 하니까!”경호원을 밀던 김명화가 소리쳤다.하지만 무선 이어폰을 낀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은 바로 제압용 스틱을 꺼내며 소리쳤다.“대표님은 뵙고 싶다고 마음대로 봴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예약부터 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쫓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경호원까지 기고만장한 모습에 김명화는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정말 억지로 밀어붙였다가 괜히 김신걸의 화를 돋군다면 뒤처리가 귀찮아지니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일단은 유희부터 찾아
해림의 말에 김명화의 얼굴도 차가워졌다.“그쪽도 어차피 이 집안에서 일하는 직원 아닌가? 우린 형 가족이에요.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말문이 막힌 해림이 멈칫하는 사이 김명화가 안쪽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상황 보고를 위해 해림이 휴대폰을 꺼냈지만 그마저도 김영이 막아나섰다.“유희 여기 갇혀있는 거 맞습니까?”김영의 젠틀한 목소리에도 해림은 여전히 경계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대표님께서 원하시는 건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어서 여기서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한편, 문에 기대 정신을 잃어가던 원유희는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기분에 눈을 번쩍 떴다.‘착각인가? 명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유희야! 유희야 너 어디 있어?”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김명화가 지하실 문을 두드렸다.“유희야, 안에 있어?”오랜 어둠 끝에 드디어 새벽을 맞이한 듯한 기분에 원유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나…… 나 여기 있어.”원유희의 미약한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김명화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유희야, 겁 먹지 마. 내가 구하러 왔으니까!”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원유희는 인체의 신비로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온몸에 수분이 다 말라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직도 흐를 눈물이 남아있네…….“유희야, 문에서 멀리 떨어져. 내가 차서 열 거니까.”“응.”짧은 대답과 함께 원유희는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잠시 후, 김명화가 있는 힘껏 문을 걷어차고 문이 열리는 순간, 무기력한 얼굴로 벽에 웅크려있는 원유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를 향해 다가가는 발걸음이 살짝 떨려왔다.“유희야?”사흘내내 캄캄하기만 했던 지하실에 드디어 빛이 들어오고 원유희가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너랑 연락이 안 돼서. 병원에도 안 왔다고 하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무슨 일 생겼다 싶어서.”원유희를 번쩍 들어올린 김명화가 말했다.“여기서 나가자.”하지만, 거실로 나간 그는
사흘 내내 물 한 모금 못 마신 원유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침대에 살짝 몸을 기댔다.‘그래. 내가 팔자가 사나워서 그래…… 내가 운이 나빠서…… 그게 아니라면 김신걸한테 이렇게까지 괴롭힘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행여라도 데리고 나갈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이 총에 맞아 죽어서 영혼으로라도 남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든가.”말을 마친 김신걸은 자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듯 권총으로 멀리 있는 꽃병을 향해 총을 한 발 발사했다.총알이 정확히 화병을 명중하고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화병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으악!”처음 듣는 총소리에 깜짝 놀란 원유희는 비명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잠시 후,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김영과 김명화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친 데는 없는 것 같으니까 다행이야…….’“들어와!”김신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장정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김영과 김명화를 노려보았다.“지금 바로 움직일까요?”순식간에 불리해진 상황에 김영은 몰래 주먹에 힘을 주었다.딱 봐도 이쪽이 불리하니 대놓고 맞설 수도 없는데다 부자끼리 서로 싸운다는 패륜이 일어나는 건 눈 뜨고 볼 수 없었다.한편 김명화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대로 원유희를 두고 가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만 같았으니까.하지만 고개를 돌린 순간, 원유희의 눈동자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너라도 얼른 가…….’김명화가 여전히 망설이자 원유희가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날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말없이 한참을 고민하던 김명화는 결국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집을 나가버렸다.김영은 이제 정말 악마처럼 변해버린 아들을 향해 한 발 다가갔다.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니 대화로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신걸아,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그 죗값은 내가 갚을게.”아버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김신걸은 마치 악귀에 빙의라도 된 듯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