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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이 정도 다쳐서 형을 막은 거면 싸게 먹힌 거지 뭐.”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밝은 김명화의 목소리에도 원유희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어제는 왜 왔어?”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지. 내가 가서 다행이었지 뭐. 아, 여권은 어떻게 됐어? 정말 내가 안 도와줘도 되겠어?”

“여권은 이미 재발급 신청했어. 이틀 뒤면 나올 거야.”

“하루라도 빨리 형한테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될 거야.”

‘꼭 그렇게 될 거야. 아이들이랑 김신걸이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숨어버릴 거야.’

“언제 떠날 거야? 내가 비행기 티켓 알아봐줄게. 걱정하지 마. 형이 알아낼 수 없는 안전한 티켓으로 구할 테니까.”

“그래, 고마워.”

통화를 마친 원유희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끝없는 터널을 걷다 드디어 빛 한 줄기가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후쯤, 여채아는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틈을 타 다급하게 원유희의 아파트로 향했다.

원유희가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로 아파트에 들어간 그녀는 딸이 부탁한 휴대폰을 남기고 조용히 아파트를 나섰다.

그녀가 아파트를 나서던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여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원수정?’

여기서 원수정을 만나게 될 거라 생각지 못한 여채아가 다급하게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

장을 봤는지 식재료를 잔뜩 든 기사와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는 원수정을 바라보던 여채아가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원수정과 만나는 건 아직 안 돼…….’

얼마 후, 퇴근하고 아파트로 돌아온 원유희는 문을 열자 왠지 이상함을 느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하고 곧이어 주방에서 원수정이 달려나왔다.

“고모?”

“왔어? 마침 잘 왔네. 식사 준비 다 끝났으니까 얼른 손 씻고 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향해 원수정이 미소를 지었다.

고모가 아파트를 찾아온 것도 모자라 식사까지 차려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원유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씻고 식탁 앞에 앉았다.

원유희가 상다리 부러질 듯한 진수성찬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그녀의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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