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이 동작을 멈추고 비수를 한쪽에 놓았다.“말해봐, 누구야.”박철봉은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제 강무진은 정말 자신이 입을 열 때까지 그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자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이 손가락은 아마 영영 못 쓰게 될 것이다.잠시 후, 박철봉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네, 강씨 집안 사람이에요.”“강씨 집안 사람? 누구?” 무진의 음성에 짙은 살기가 실렸다.“네, 강일헌이요.” 박철봉이 바로 인정하며 대답했다.“강일헌, 맞아?” 입꼬리를 당기는 무진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예, 예, 지금 사실대로 말했어요. 살려주세요.” 박철봉이 무릎을 꿇은 채 무진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고개를 숙였다.무진이 박철봉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옆에 있던 수하를 향해 말했다.“데리고 가.”박철봉은 남겨 두면 쓸모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쉽게 둘째, 셋째 일가의 약점을 잡을 수 있겠는가?무진이 직접 강명재의 집을 찾아갔다.저택 입구의 경호원은 수하들 몇 명과 함께 사나운 기세로 들이닥친 무진을 보았다.무진 일행의 이런 기세에 경호원은 감히 앞으로 나서서 막을 수가 없었다.무진은 순조롭게 강명재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강일헌이 있는 곳을 찾았다.그런데 침대에 누워 쿨쿨 잠을 자고 있는 강일헌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전혀 몰랐다.무진은 강일헌을 침대에서 끌어올린 후 말도 없이 바로 주먹으로 한 차례 내려쳤다.통증 때문에 깨어난 강일헌의 눈에 무진의 무서운 표정이 들어왔다. 순간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던 강명재는 무진이 왔다는 고용인의 보고에 즉시 아들 강일헌의 방으로 달려갔다.도착하자마자 무진이 강일헌을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평소 자신의 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던 강명재였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손가락 하나 건드린 적 없었다.그런데 지금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들 강일헌을 때리고 있었다.그 놈이 바로 자신들이 뼈에 사무치
무진이 강명재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손건호는 벌써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시 엄청나게 분노한 상태의 무진은 아마도 성연만이 설득할 수 있을 터였다.성연은 전화를 받았을 때 마음이 조급해짐과 동시에 화가 났다.‘강무진, 어린애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충동적이야?’이번에 강명재의 집에 침입함으로써 분명 꼬투리를 잡히게 될 터였다.‘하지만 무진 씨도 무척이나 오래 참았을 테지.’이전에 무진이 아직 강씨 집안의 실권자가 되지 않았을 때, 둘째, 셋째 일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강무진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집안과 회사를 물려받은 후에도 무진은 매번 참으며 저들에게 따지지 않았다.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무진을 오늘 이 지경까지 몰아붙였다.성연은 이미 다른 것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무진이 위험할까 걱정이 되어 바로 차를 몰아 강명재의 집으로 달려갔다.성연이 강명재의 집에 도착했을 때, 강명재는 테이블 위의 과도를 집어 들고 눈을 빛내며 무진에게 달려들었다.마음이 급해진 성연이 손목에서 은침 하나를 더듬어 빼내서 바로 날렸다.은침이 강명재의 손에 꼿꼿하게 박혔다.강명재는 손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쿵’ 하며 그의 손에 들렸던 칼이 곧장 바닥으로 떨어졌다.손건호가 그 틈을 타서 앞으로 나가 강명재를 제압했다.무진은 계속해서 강일헌을 두들겨 팼다.강일헌은 무진의 주먹 아래에서 무기력하게 맞고 있었다.이미 맞은 주먹 때문에 숨이 간당간당한 상태로 간신히 콧구멍으로 숨을 내쉬었다.성연은 강명재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졌음을 보고 걸어가서 무진의 어깨를 짚었다.“무진 씨. 그만해요.”성연의 목소리를 들은 무진은 마치 이성이 돌아온 것처럼 동작을 멈췄다.성연은 그 틈에 피가 묻은 무진의 손을 꽉 잡았다.무진은 피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피가 가득 묻은 자신의 손이 너무 더럽다는 생각때문에. 그는 성연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성연은 무진이 ‘달아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주 단단히 무진
소식을 들은 안금여와 강운경도 달려왔다.강명기와 강진성 두 사람도 왔다.이렇게 큰 일이 발생할 때면 그들은 반드시 그 자리에 지키고 있었다. 강명재의 저택에 와서 눈앞의 장면을 보게 된 강명기와 강진성은 한순간에 굳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강명재는 제압되어 꼼짝 못하고 있었다. 강일헌의 몸은 온통 피범벅이었고, 강무진의 손도 피로 덮여 있었다.강일헌이 이렇게 된 것은 강무진의 솜씨가 분명했다.무진은 뜻밖에도 강명재가 보는 앞에서 강일헌을 두드려 팼다.그것도 너무 무서울 정도로.이 장면을 본 안금여와 강운경의 표정이 다소 복잡해 보였다.그러나 생각해보면 강일헌은 맞아도 싸다.저들은 무진을 목숨을 빼앗으려고 계획했지만, 안타깝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지금 무진은 겨우 저들에게 작은 교훈을 준 것에 불과했다.둘째, 셋째 일가는 원래 하나였다.이때 바닥에 누워있는 강일헌을 보고 강명기가 즉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강무진, 너 미쳤어? 네가 때린 사람은, 강일헌이야, 피를 나눈 네 동생.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독하게 손을 댈 수 있아?”이것은 그들은 이처럼 크게 화내는 강무진은 처음 보았다. 마치 극도로 누르고 있던 것이 한순간에 폭발한 듯한 것이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강명기가 무진을 비난하는 소리에도 안금여와 강운경은 시큰둥한 모습이다.저들이 지금 무진을 손가락질할 때인가?안금여는 강명기를 가리키며 바로 질책했다.“네 놈들도 원래 소위 혈연을 신경 썼어? 애초에 무진이 강에 떨어진 것도 바로 네 놈들 짓 아니야? 지금 또 다시 그런 낡은 수법을 쓰다니, 괜히 찔려서 화가 난 것 아니냐?”강운경도 옆에서 안금여의 뒤를 이어 비난했다.“누군지 모르겠지만, 무진의 병이 위중할 때 도와 주기는커녕 일부러 핍박하고 주주들을 선동해서 무진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셈 아니야? 무진이가 지나쳤다고? 그럼 당신들은 진짜 양심도 없는 거지?”강운경은 강명기를 향해 조금도 거리낌 없이 비난을 퍼부었다.강명기와 강명재의
질식할 듯한 공기 속에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는데 경찰이 들어왔다.그리고 바로 강일헌을 잡아갔다.“강일헌 씨, 살인 미수 혐의로 연행하겠습니다. 서에 가셔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끌려가던 순간 아직 의식이 남아있던 강일헌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강명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강명재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하지만 증거가 눈앞에 있는 이상, 강명재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자기 아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는 그의 마음도 몹시 괴로웠다.강일헌이 구속된 후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무진이 이렇게 쳐들어와서 소란을 피우는 동시에 뒤로는 경찰에 신고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경찰 관계자들이 모두 떠난 후, 무진은 강명재, 강명기 그리고 강진성을 향해 경고했다.“만약 둘째, 셋째 일가에서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한 명 한 명 제 손으로 보내 드리죠. 믿지 못하시겠으면 어디 한번 해 보시든지요. 당신들이 저지른 일들로도 이미 충분합니다.”무진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다. 날카로운 시선은 마치 잘 벼린 칼날 같았다.강명재와 강명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고받는 시선에 무척이나 어두웠다.어린 조카가 이렇게 위협을 하고 있는데도, 자신들에게는 아무도 없었다.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강무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때가 올 것이다.할 말을 마친 무진이 안금여 등과 함께 고택으로 돌아갔다.“무진아, 이 일을 벌이기 전에 잘 생각했어야지. 너 혼자 강명재의 집으로 쳐들어갔다가 위험에 처하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 했니?” 안금여의 눈에 짙은 염려가 서려 있었다.강명재와 저들은 누구 하나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그저 뒤에서 남몰래 사람을 죽일 작당만 벌일 아는 놈들이다.안금여는 정말이지 무진이 그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할머니, 우리는 더 강하게 나가야 해요. 더 이상 둘째, 셋째 일가 쪽에서 우리 머리 위에 앉아 마음대로 하게 둘 수 없어요.” 무진은 아무리 해도 둘째, 셋째 일가와의 대립을 피할 수 없다는 사
밤이 되자 무진은 이미 집으로 돌아왔다.강일헌을 힘껏 때리다가 무진의 손도 상처를 입었다.그래서 무진의 손에도 얇은 거즈가 감겨 있었다.그때, 손건호가 어디 불이라도 난 듯이 불쑥 뛰어들어 왔다.평소 늘 침착한 모습의 손건호가 이렇게 당황한 적은 거의 없다.무진도 몸을 바로 세우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앞에 서서 초조한 낯빛으로 말했다.“보스, 그룹 임원 세 명이 합심해서 회사 공금을 횡령하고 빼돌렸는데, 현재 행방이 묘연합니다.”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손건호는 무진의 결정을 기다렸다.무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이미 둘째, 셋째 일가가 그룹에 남겨둔 사람들을 이미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물에서 빠져나간 물고기가 또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성연도 이 소식을 듣고 속으로 엄청 놀랐다.이쪽에서 강일헌의 일을 해결하자마자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틀림없이 둘째, 셋째 일가가 벌인 복수일 터.마음을 가라앉힌 성연이 물었다.“횡령액은 얼마나 돼요?” 손건호가 대답했다.“몇 천억이 넘습니다. 이미 경찰에 신고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해외로 빼돌리고 달아났을 수도 있습니다.”얼음장처럼 냉랭한 얼굴과 새까맣게 짙어진 눈빛의 무진은 마치 폭풍을 준비하는 것 같다.“비용을 아끼지 말고 바로 그 세 사람을 찾아!”비록 몇 천억이 때로는 많다고 할 수 없지만, 현재의 자금 흐름에 위협이 될만했다.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음 주의 일부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예,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잠깐, 그 세 사람에 관한 자료 있어? 보여줘.”무진은 도대체 누구가 이렇게 대담하게 감히 자신의 눈앞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나 보고 싶었다.“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자료를 뽑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메일로 보스에게 보냈습니다.” 손건호가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휙휙 터치했다.바로 옆
반대편에서는 강명재와 강명기가 자축하고 있었다.그렇다. WS그룹 내부 자금 횡령은 그들이 사주한 것이다.이제 강무진은 우왕좌왕하며 조급할 것이다.강명재가 음산한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감히 나를 건드린다고? 자신의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하지 않고서?”강명기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강무진이 우리와 맞설 망상에 빠져 있다니,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거죠!”강명재는 무진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생각하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오래된 생강이 맵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들 머리 위에 올라서려는 강무진의 망상은 불가능한 것이다.강명기가 계속 옆에서 거들었다.“형님, 그 세 명의 임원들,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그리고 우리는 또 돈으로 그 놈들 입을 막아야 합니다. 그 정비기사가 모든 일을 다 떠안은 채 입을 못 열게 해야 해요. 그렇게 일헌이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합니다.”“그 정비기사가 그렇게 말을 잘 듣지 않아.” 강명재도 생각었했다.강무진이 무슨 방법이 썼는지 모르겠지만 정비가사가 실토한 모양이다.그도 당연히 알고 있다. 지금은 단지 아들 강일헌을 조사하는 시기일 뿐이다.만약 증거가 없다면, 저들도 자연히 강일헌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쉽게 처리할 수 있을까?강명기가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만약 그 놈이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놈 가족에게 손을 쓰면 됩니다. 정비기사는 아직 수감 중이지만, 제가 이미 사람을 보내 비밀리에 접촉했습니다. 지금 정비기사는 멘탈이 붕괴된 상태예요. 좀 진정하면 다시 잘 이야기해 봅시다.”강명재는 강명기의 말을 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명기야, 네가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동안 나는 왜 몰랐지?”그는 천성이 의심이 많아서 주변 사람을 잘 못 믿는다. 동생 강명기라도 피할 수 없다.멍하니 있던 강명기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형님, 지금 일헌이 걱정 중이신데, 그 임원들 움직이는 일까지 신경 쓰시게 할 수는 없지요. 저는 단지 형
해가 기울어지며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숙인 황금 빛 논자락이 오랜 역사를 품은 이 시골 마을에 색채감을 더하고 있다.마침 하교 시간이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을 따라 늘어선 교복 차림의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책가방을 손에 든 송성연이 아이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다소 나른한 듯한 표정에 몸을 더 작아 보이게 하는 헐거운 교복, 개성을 드러내는 길이가 다른 바지자락. 개구장이처럼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흔들거리며,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얼굴이 더욱 시선을 끌게 한다.길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더위를 식히던 할아버지가 성연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성연이 학교 다녀오는 거냐?”“네. 학교 다녀왔어요.”성연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한 알을 꺼내 건넸다.“새로 나온 맛이에요. 드셔 보세요. 무척 달아요.”“그래.”‘허허’웃으며 받은 할아버지는 잠시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참, 네 아버지가 또 왔었다. 너를 도시에서 지내게 하려고 데리러 온 걸게야.”그 말을 듣던 성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며, 어두워진 눈동자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집 쪽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벤츠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하…… 그렇다면 좋겠네요!”성연의 입가에 한 줄기 조소가 걸렸다.성연의 부모는 어렸을 때 이미 이혼했다. 3개월도 안 되어 새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그녀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도 데려왔다.계모는 그녀를 키울 수 없다며 집에서 쫓아냈다.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성연의 친엄마 역시 그녀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을 불쌍하게 생각한 외할머니가 데려와 여태까지 키웠다.하지만 몇 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할 수 없이 엄마가 성연을 떠맡았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려 안달이 난 엄마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녀를 아버지에게 버릴 생각인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성연을 키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성연이 막 집 입
남자는 거의 1미터 90에 육박하는 키와 체중이었다.묵직한 체중에 눌린 성연이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넘어졌다.“윽, 아파!”성연에게서 숨이 터져 나왔다.등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정도로 넘어진 데다 위에서 누르고 있는 남자때문에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이중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그러다 성연은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심하게 잘 생긴 이목구비는 성별이 모호할 만큼 정교해서 천사와 요괴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반듯한 미간을 쓸어 올리니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냉랭한 포스가 배어 나온다.꽉 다문 얇은 입술은 서늘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도자기 같은 피부는 병적일만큼 창백해 보였다.그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이마 위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약하고 가쁜 호흡이 그녀의 얼굴 위에 뿌려졌다.몹시 초조해진 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다 뭐람?’그러나 남자가 이미 몸을 누르고 있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젖 먹던 힘까지 짜내 간신히 일어난 성연은 남자를 끌며 근처의 폐창고로 갔다.이 폐창고는 평소 달리 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성연이 망설이지 않고 피로 물든 비싼 양복과 셔츠를 재빨리 풀어헤쳤다.상처가 드러났다!복부에 위치한 새끼손가락 길이의 상처는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흘린 피의 양을 봤을 때, 확실히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이 상황이라면 병원에 보내는 게 맞겠지만, 이 작은 마을엔 제대로 된 병원이라고는 없었다.유일하게 진료하는 보건소에서도 이 상처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성연에게는 이 정도 상처 치료쯤 일도 아니었다. 성연은 손을 재게 놀리며 책가방을 열고 안에서 잡다한 병이랑 용기들을 꺼내었다. 남자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한 다음 지혈을 시키고, 약을 발랐다!치료하는 모든 과정들이 아주 깔끔한 것이 매우 숙련되어 보였다.모든 처치를 끝낸 성연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