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첫 경험을 하게 된 문하서.이 사실을 알게 된 문하서의 남편 강연준은 재산분할 없는 이혼을 요구했다.6년 후, 그는 문하서의 곁에 서 있는 자신을 똑 닮은 아이를 보고서야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깨닫게 되는데…까칠하고 차갑던 강연준은 밤마다 문하서를 찾는 어리광쟁이가 되었다.그 후, 그녀가 결혼식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연준은 결혼식장을 박차고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문하서, 네 남편은 내가 되어야 해!”모두는 크게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큰아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저 사람, 나랑은 모르는 사이야.”둘째 아들은 눈을 가리며 말했다.“이게 뭐야, 너무 창피해! 그냥 안 볼래!”셋째 아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한테 엄청 혼날 것 같은데?”넷째 아들은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부릅뜨며 혀를 내둘렀다.공주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만이 강연준에게 달려가, 그의 바지 자락을 잡고는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아빠, 엄마는 친구 결혼식에 오면 안 돼요?”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강연준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뭐라고...? 이렇게 민망할 수가...!’
더 보기가정부가 들어와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급한 일이 있다며 당분간은 이혼을 하지 않고 내일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어요.”하서는 얼굴을 찡그렸다.“방금 연준 씨가 다녀갔어요?”“네, 대표님이세요.”하서가 당황해서 얼른 쫓아 나가자 아직 연준의 차가 보였다.하서는 그를 쫓아가면서 소리쳤다.“이봐! 차 세워! 강연준, 차 세우라고...”하지만 검은 리무진은 거대한 용처럼 하서를 두고 몇 분 만에 저 멀리 가버렸다.별장 대문까지 달려갔을 때는 차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하서는 씩씩거렸다.‘뭐야 이게, 고작 사인 하나 하는 게 어려워? 재산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급한 일이 있어도 사인하고 가면 될 것 아니야!’하서는 화가 났다. 바로 전 이혼을 할 수 있었는데 결국 또 실패했다!신이 자신을 괴롭히는 건지, 아니면 이 결혼에 깨지지 않는 저주라도 걸린 건지, 이혼 한번 하는데 무슨 서역으로 불경을 가지러 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새로 온 가정부는 초조해하는 하서를 보고 위로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내일 먼저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셨으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하서는 기가 막혔다.그까짓 하루 기다리고 만다. 어떻게 해서든 이혼만 하면 된다.드디어 제대로 된 답을 들은 셈이었다!가정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한남더힐을 나서며 하서는 태하에게 전화를 걸어 윤호의 안부를 물었다.하서는 여전히 아이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었다.윤호가 아직 자는 것을 확인한 하서는 마음 놓고 병원이 아닌 곧장 집으로 향했다.지금 이 순간, 세 아이는 집에서 조촐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아이들은 이번에 하서가 돌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그 전화도 건우가 연락한 것이었다.아이는 이 도시가 엄마에게 좋지 않고, 엄마도 여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얼른 엄마 대신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몰래 조사했었다.그리고 뜻밖에도 과거의 일들을 알아냈다.문씨 가문에서는 문하서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대신 강연준과 결혼하라고 강요했다.강연
자신이 떠났을 때와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다만 사람들이 바뀌었을 뿐이다.3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하서는 이곳의 안주인이었지만 이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평생 이곳에서 살면서, 늙어서 강연준과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그런데 결국은...인생은 결국 드라마고 연극이었다.답답했던 하서는 눈을 감고 찻잔을 들어 차를 몇 모금 마시고 조용히 연준이 이혼하러 돌아오기를 기다렸다.30분이 지나 연준은 한남더힐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귀국 첫날 서류상의 아내와 이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적이 있었고, 그 후 다시는 오지 않았다.차가 멈추고 연준이 문을 열고 내리는데, 발이 땅에 닿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태하의 전화였다.[연준아, 강혁 삼촌이 지금 병원에 오셨어. 널 만나고 싶으시대.]5억 투자금 때문이겠지.연준은 차갑게 말했다.“요즘 바빠서 시간 없다고 전해. 그리고 돈 버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시간 내서 딸 교육 좀 잘 시키라고 해.”한번 회수한 투자금을 다시 넣는 건 불가능했다.서혜지가 자신의 은인이긴 해도 언제까지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전화를 끊고 연준은 본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정부가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알겠습니다.”하서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자 연준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드디어 그를 만난다!결혼하고 2년, 떨어져 지낸 시간 6년을 더하면 자그마치 8년이다!8년 동안 부부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하서는 한 번도 강연준을 본 적이 없었다.강연준이 오늘 퉁명스럽게 대하든, 모욕감을 주든 하서는 오직 이혼만 바랄 생각이었다.그런데 연준이 대문 앞에 들어서기 바쁘게 전화가 다시 울렸다.서강혁이었다.연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전화를 받았고, 입을 열기도 전에 혜지의 목소리가 들렸다.“연준아, 나 때문에 서씨 가문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거야? 우리 아빠가 내가 네 기분 상하게 했대. 흑흑... 네가 이러면 난 정말 당황스러워. 난 널 화나
연준이 병실 침대 옆에 앉아서 윤호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태하가 그를 위로하였다.“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은 괜찮아.”연준은 목울대를 일렁거렸다. 하서가 보이지 않자 곧 태하에게 물었다.“그 여자는?”“급한 일 있다고 갔어.”연준이 시선을 홱 돌렸다.“갔다고?”“응.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다네.”연준은 얼굴을 찡그렸다.“...”태하가 말했다.“본인 생활이 있는 사람인데 가둘 수는 없잖아. 게다가 어쨌든 도움도 받아야 하는데 감금하면 사이가 틀어지지 않겠어? 진짜 그렇게 되면 마음 놓고 윤호 맡길 수는 있고?”며칠 전이었다면 연준은 상관없다고 말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연준은 문하서가 윤호의 친모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문하서가 윤호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감정이 복잡했다.“담배 좀 피우고 올게.”연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태하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예전 같으면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윤호 곁을 지켰을 텐데 말이다.오늘... 보아하니 정말 마음이 복잡한 것 같았다.하서는 병원을 나간 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한남더힐로 향했다.차에 탄 하서는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태하에게 보낼 처방전을 입력했다.그런 다음 정보를 알려준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연준의 부하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연준이 아직 해외 출장 중이라는 말을 들은 하서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거짓말하지 마세요. 지금 J시에 있는 거 다 알아요!”상대방이 대답을 하지 않자 하서는 그 정보가 사실임을 알았다.하서는 화가 났다.‘이혼하는 것뿐인데 왜 자신을 피하는 걸까?’‘재산이라도 달라고 할까 봐?’“지금 한남더힐에 가는 중이라고 전해요. 내가 계속 귀찮게 하는 게 싫으면 당장 한남더힐로 와서 이혼서류에 사인하라고요. 안 오면 지금부터 계속 귀찮게 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건 됐고 이혼만 하면 된다고 전해요! 일전 한 푼 안 바라
하서는 마음이 아팠다.“아이가 학교 안 다녀요?”“네, 저 상태로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죠.”“그럼 아이 마음은 들여다본 적 있어요?”태하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기회가 없었어요.”“최면은 어때요?”“시도는 해봤지만 잘 안됐어요.”“...”태하가 말했다.“윤호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요. 너무 지나치게 똑똑해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게 대하면 안 돼요. 윤호는 똑똑하고, 예민하고, 경계심이 지나쳐요.”하서는 다시 병실을 흘끗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저를 왜 데려왔는지는 알지만 저는 의사도 아니고 집안에서 한의학을 조금 배우면서 틈틈이 아동심리에 관한 책을 몇 권 더 읽었을 뿐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부민재를 진정시킬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에요. 시도는 해볼게요. 깨어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아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태하가 서둘러 말했다.“네네! 그 정도로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는 이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준이가 절대 섭섭하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원하는 걸 말씀하셔도 됩니다. 뭐든 다 가능해요. J시에서 쟤가 못할 일은 없으니까요.”하서는 속으로 생각했다.‘그럼 강연준 씨와 이혼을 서두르는 것도 도와줄 수 있을까?’‘연준?’‘강연준?’‘두 사람의 이름이 같은데 우연일까?’하서가 태하에게 연준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하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연준이랑 이혼하고 싶다고?”“어? 어떻게 알았어요? 누구세요?”[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연준이가 지금 J시에 있다는 거야. 출장 간 게 아니야. 걘 널 속였어. 이혼하고 싶으면 집이든 회사든 찾아가.]상대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하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강연준이 출장을 간 게 아니라니?’하서는 황급히 다시 전화를 걸어 해명을 요구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고 없는 번호라고만 떴다.하서는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전화를
붉어진 연준의 두 눈에 하서는 두려움에 떨며 설명했다.“침놓으려고요. 일단 재워서 진정시켜야 해요. 지금 아이는 너무 고통스러워해요. 몸은 자려고 하는데 뇌는 저항하고 있어요. 스스로 자기 몸을 망치는 격이라 격하게 찌르면 몸을 다치게 하고 심각한 일이 생길 위험이 있어요.”연준은 하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은지 한참을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손을 놓았다.하서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서둘러 침을 놓았다.곧 윤호의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태하는 긴 숨을 내쉬었다.“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다행입니다.”하서는 침을 뽑으며 말했다.“이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태를 봐야겠어요. 이 아이와 민재가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둘 다 조울증이라고 들었어요. 민재는 어릴 때 납치된 충격 때문인데 이 아이는 왜 이러는 건가요?”“엄마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이죠. 엄마를 많이 보고 싶어 해요.”하서는 의아했다.“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니, 아이 엄마는 어디 갔는데요?태하는 할 말이 없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돌려 연준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없어요.”하서는 무의식적으로 죽은 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물었다.“언제 돌아가셨는데요?”이번에는 태하가 말하기도 전에 연준이 단호하게 말했다.“누가 죽었대? 애 엄마는 살아있어! 누구보다 건강하게!”연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하서는 깜짝 놀랐다.하서는 그런 연준을 노려보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연준도 자신이 화를 냈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은 벙긋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지 연준은 윤호를 내려다보았다.태하가 얼른 중재에 나섰다.“돌아가신 게 아니라 윤호를 낳고 사라져서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겁니다.”“살아있어!”연준은 고개도 들지 않고 끼어들었다.태하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네네, 살아있어요.”연준 앞에서 하서에게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태하는 하서를 복도로 데리고 나가서 말했다.“사실 윤호의 생모는 윤호를 낳은 후
“윤호야, 진정해, 진정해...”윤호는 말없이 창가에 서서 연준을 노려보았다.병원에 있던 소아과 전문의들이 모두 달려와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쉽게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태하는 낮은 목소리로 젊은 여성 간병인에게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간병인은 울먹이며 말했다.“모르겠어요. 침대 옆을 지키고 있다가 아이가 깨어나는 걸 보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가 목이 마르느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흥분하더라고요...”윤호가 차갑게 말했다.“말했잖아요, 난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윤호야 내 말 좀 들어봐. 이분은 나와 태하 삼촌이 널 위해 고용한 간병인이고, 나는...”“엄마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는 다른 여자가 내 옆에 있는 건 싫어요. 엄마 데려와요! 엄마 데려오라고! 엄마! 아아악...”연준은 미쳐 날뛰는 작은 짐승처럼 울며 난동을 부렸고, 그렇게 요란법석을 떨다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려 했다.연준은 재빨리 달려와 아이를 꽉 붙들었고, 이 모습을 본 태하와 다른 의사 간호사들이 달려와 윤호에게 진정제를 놓았다.30초 정도 지나자 윤호는 드디어 조용해졌다.소아과 의사가 윤호의 상처에 붕대를 감는 동안 태하는 옆에서 연준에게 말했다.“윤호 상태가 안 좋아, 연준아. 얼른 문하서 씨 불러서 봐달라고 해. 민재 상황 보고 윤호를 다시 봐봐...”연준은 윤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 숨을 헐떡였다.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야 겨우 진정하고 윤호를 힐끗 돌아보고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했다.“문하서 윤호 병동으로 데려와.”마침 하서는 또다시 연준에게 갇히자 당황한 상태였다.그런데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고 지훈이 윤호를 봐달라며 급히 데려갔다.하서가 물었다.“윤호가 누구예요?”“우리 대표님의 아드님인데 민재 드련님이랑 상황이 비슷해요. 조울증도 있고요.”하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연준의 아이라고?“얼른 가서 봐줘요. 윤호 도련님은 오늘 하마터면 건물에서 뛰어내릴 뻔했어요
하서는 당황했다.“?!”연준은 굳어진 얼굴로 하서에게 반응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끌고 옆에 있는 빈방으로 들어갔다.연준은 하서를 문에 세게 밀어붙인 뒤 시선을 내리고 한참을 노려보았다.등이 문에 딱 붙은 하서는 물러날 곳도 없어 그대로 허리를 곧추세운 채 경계하는 눈빛으로 연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뭐 하는 거예요?!”드디어 연준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 건가?폭풍우가 몰아치는 걸까?결국 돈을 요구할까?“...”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복잡한 표정으로 하서를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연준은 눈앞에 있는 여자가 자신이 그토록 찾던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확신이 없으니 어떤 태도로 그녀를 마주해야 할지, 심지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하서는 차 안에서부터 연준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연준이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여전히 차가웠지만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연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서는 가볍게 헛기침하며 말했다.“당신... 왜 또 날 찾아온 거예요? 연준 씨가 찾아올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연준을 빌미로 협박해도 통하지 않자 하서는 이렇게 말했다.“나한테 돈 달라고 할 거죠? 난... 난 돈이 없어요. 그리고 그쪽에서 먼저 우리 진우 괴롭힌 거라고요!”“...”하서는 다시 말했다.“그쪽이 손을 댄 게 아니더라도 난 잘못한 것 없어요. 돈으로 배상해야 한다 해도 전부를 다 줄 수는 없어요. 그리고 난 지금 정말 돈이 없어요. 날 죽인다 해도 없어요. 있으면 진작 줬죠.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내가 마련해 볼게요.”“...”연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서는 당황하기 시작했다.“돈 때문에 온 게 아닌가요? 설마 그 늙은이 대신 복수하러 온 건가요? 미리 말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절 건드렸고 난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에요.”연준은 여전히 침묵했고 하서는 슬슬 짜증이 났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에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연준이 입술을 벙긋했
‘아니면 문하서 씨의 가벼운 키스 한방에 우리 보스의 마음이 흔들린 걸까?’사실 지훈은 연준이 윤호의 생모를 포기하길 바랐다. 6년이나 찾아도 아무 소식 없는 거면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혹 윤호의 생모를 찾는다 해도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면?연준 성격에 그녀에게 이혼을 강요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지훈은 오랜 시간 동안 연준의 곁에 있으면서 그에게 형이라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연준이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한편 하서는 부민재의 병실에 도착했다. 못 본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민재의 얼굴이 너무 창백했다.아이는 소리나 비명도 지르지 않았고, 눈을 감은 채 온몸을 떨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부영호 내외를 비롯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의사 몇 명이 허둥지둥 환자의 진단서를 살피고 있었고 최정선은 하염없이 눈물만 쏟고 있었다..하서는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서둘러 민재의 상태를 확인하러 다가갔다.연준도 뒤따라오며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하서를 바라봤다.하서가 민재의 맥박을 재는데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민재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아악, 아악, 아아악!”이 모습을 본 하서는 고개를 돌려 최정선을 바라보았다.“아이와 단둘이 있고 싶으니 모두 나가주세요.”부영호는 하서를 믿고 곧바로 모두를 내보냈다.방문이 닫히자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고 민재의 통곡 소리만 들렸다.부영호 내외는 마음이 불안하여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최정선이 말했다.“저 여자는 의사도 아니고, 의사 자격증도 없고, 우리랑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마음 놓고 민재를 맡겨요?”최정선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흐느끼고 있었고 부영호는 한숨을 내쉬었다.“저 여자가 아니면 누구에게 맡기겠나. 전문가란 전문가는 다 불러도 누구 하나 치료하는 사람 없으니. 이대로 가다가 민재에게 큰일이 생기는 것보다 한번 시도라도 해보는 게 낫
주지훈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하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서주혁을 보고는 느긋하게 다가갔다.차창 너머로 옷이 흐트러진 서주혁의 모습을 본 지훈은 어쩔 수 없이 연준에게 말했다.“이 서주혁이라는 사람 정말 못 쓰겠네. 어디 가서 아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아, 쪽팔려!”연준은 시선을 들어 올려 밖을 내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옷 벗는 걸 좋아하니까 알몸으로 J시를 세 바퀴만 뛰어다니게 해. 옷 한 벌도 주지 마.”지훈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이 추운 날 옷 하나 안 입고 뛰어다닌다고?재밌네.어차피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남자가 여자를 괴롭히기나 하고, 함부로 손을 대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건지.지훈은 차에서 내려 하서를 데리러 갔다.막 문을 열고 차에서 뛰어내린 하서가 도망가려는데 문득 앞에 있는 지훈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서주혁의 차에서 뛰어내리기 바쁘게 연준의 차에 오르게 되었다.하서는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앉았다.짜증이 난 그녀는 연준과 나란히 앉고 싶지 않았다.두렵기도 했다. 돈을 빌린 건 둘째 치고, 툭 하면 자신을 가둬놓는 남자였으니까.이 순간, 지훈은 아직 차에 타지 않았고 둘 뿐인 차 안에 적막감이 감돌았다.하서는 조수석에 앉아 앞을 바라보는데, 등을 곧게 편 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이 남자는 돈 때문에 자기를 찾는 게 분명한데, 자신에겐 돈이 없다. 이러다 빚이라도 독촉하면 그땐 어떻게 도망갈까?게다가 자신이 강연준의 아내라는 걸 알면서도 감히 찾아온다고?강씨 가문이 두렵지도 않나?그게 아니면 강연준이 자신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하서의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나며 심장이 쿵쾅거렸다.적이 움직이기 전까지 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연준이 가만히 있자 하서도 침묵을 지켰다.하서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분명하게 느꼈다. 이 남자는 자신이 차에 탄 이후로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하서는 연준의 시선에 두피까지 저리며 안절부절못했고,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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