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능은 겨우 몸을 이끌고 우문호가 누웠던 침상에 쓰러졌다. 정신을 되찾고 보니 온몸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요 며칠동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만 발생했다.대뇌개발의 성공은커녕 일이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과학과 신학의 끝은 같다고 말했었다. 만약 대뇌가 어느정도 개발된다면 의식만으로도 물건을 옮길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도 있었다. 대뇌는 자동으로 각종 정보들을 읽을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모시는 신처럼 말이다.원경능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소매 속으로 뻗었다. 약상자라도 만져야 조금이나마 든든해질 것 같았다. 소매가 흘러내리면서 새하얀 손목이 드러났다. 그러자 뜻밖에도 처음보는 빨간 상처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조금 의아했다. ‘언제 부상을 입은 것이지? 아까 우문호와 싸울 때?’아니었다. 상처 끝부분의 혈액은 이미 응고되었고 소매에도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최소 반 시진전에 생긴 상처일 것이다.‘반 시진 전이라?’원경능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전 밖에서 기다릴 때 우문호가 자신의 손을 뿌리쳤었다. 그때 저명취가 자신을 부축했던 것이 떠올랐다.‘설마 그냥 부축한 게 아닌 건가?’그는 저명취가 제왕 곁으로 돌아갈 때 조금 의아한 눈빛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원경능은 그제야 확실히 깨닫았다.저명취는 일부러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다. 다만 그녀가 자금탕을 복용하고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것을 몰랐다. 만약 예전의 원경능이였더라면 분명 면전에서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이렇게 엄숙한 장소에서 그렇게 했다면 죽을 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옥에 갇힌 뒤 이혼을 당했을 것이다. 원경능은 온몸이 다 서늘해졌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악독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원경능은 다들 멸시의 눈빛으로 자신을 볼 때 유독 다가와 안부를 물었던 저명취를 좋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얼굴 뒤에 이렇게 악독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니.원경능은 그녀가 저명취 자신과 초왕의 관계를 망가뜨려 어쩔 수 없이 제왕에게 시집을
모든 태의들이 멍해졌다.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태상황이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심장 쇠약 현상이 아주 심해서 물도 한 모금 삼키지 못할 것 같았는데.원판은 재빨리 들어가서 태상황을 진맥하였다. 그러더니 울면서 말했다.“하늘이 북당을 도왔습니다. 하늘이 태상황을 도왔습니다!”병세가 호전되고 있었다. 금색 휘장이 들려지고 청색 휘장이 열렸다. 태상황은 나른한 표정으로 내전 안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전부 꿇어앉아서 무엇들 하느냐? 일어나거라!”그 목소리는 비록 모기 소리처럼 가늘고 힘이 없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레와도 같았다. 다들 뛸 듯이 기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가 일어났다. 태상황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입술에 어렸던 적홍색이 서서히 옅어졌다. 그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소리를 늘어뜨리면서 물었다.“다섯째는?”상공공은 재빨리 대답했다.“초왕께서는 상심이 크셔서 혼절하셨습니다. 지금 측전에서 휴식하고 계십니다.”"다섯째를 부르거라."태상황은 복보의 머리를 토닥이고서는 담담한 미소를 머금었다.“가보거라, 착한 아가야. 과인이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구나.”복보는 침상에서 뛰어내리더니 꼬리를 흔들며 떠났다.“빨리 초왕을 부르거라!”상공공이 분부했다.“그리고 그의 부인도….”태상황은 마치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력을 다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바짝 바른 입술로 몇 글자를 더 뱉아냈다.“함께 부르거라.”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모두 의아해했다. 특히 저명취는 더 멍해보였다. ‘태상황이 원경능을 만나려 하시다니?’태상황이 호전되자 명원제는 친왕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은 모두 내전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 내전에는 명원제와 예친왕 그리고 태상황 곁을 지키는 상공공만 남겨졌다. 당연히 어의원 원판도 함께 남겨졌다.****우문호의 마취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태상황의 부름이 도달하기도 전에 진작 깨어났다. 원경능은 그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활활
원경능은 몰래 태상황의 안색을 살폈다. 입술은 적홍색에 호흡은 순조로운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목숨은 살려낸 것이었다.우문호는 자신을 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태상황의 등 뒤에 재빨리 담요를 넣어 지탱했다.“다섯째야, 너의 부인은 과인이 처음 보는 것 같구나.”태상황의 목소리는 방금 전 보다 기력이 있어 보였지만 정상적인 사람에 비하면 아직 많이 허약했다. 우문호는 착잡했다. 태상황이 깨어난 후 먼저 이 여인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었다.태상황은 최근 일 년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냈다. 태상황이 편찮았던 지라 우문호는 혼인한 후 원경능을 데리고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지는 않았다.원경능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태상황이 엄청난 통찰력으로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태상황의 위엄은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이 시대에서 삼십 팔 년간 재위하면서 다져진 것이었다. “황조부, 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지 않았었습니다. 혹여나 황조부께 병이라도 옮길까 두려웠습니다.”우문호는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과인은 곧 죽을 노인인데 무슨 병을 두려워하겠느냐?”태상황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는데, 그 말투가 매우 부드러웠다. 원경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태상황의 예리한 눈빛과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황조부,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지실 겁니다.”우문호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명원제와 예친왕도 옆에서 말했다.“하늘이 부황을 도우실 겁니다.”환관이 좁쌀죽을 올리자 상공공이 시중을 들었다. 태상황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왜, 과인은 젊은 사람의 시중 받을 가치도 없단 말이냐? 이 영감탱이야, 네 눈 밑이 얼마나 검은지 보았느냐? 과인이 너의 몰골에 놀라 죽겠구나. 나가거라, 돌아가서 자. 이곳은 초왕비가 시중을 들면 되느니라.”상공공은 오랫동안 태상황의 시중을 들어와서 태상황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태
초왕부에 돌아온 우문호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그는 원경능이 바늘로 황조부를 찌르는 걸 보았다.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독인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비록 황조부는 조금 호전되었지만, 그 독약은 황조부의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 약은 황조부에게 다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황조부의 정신을 좌우지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가 알던 원경능은 이런 것들에 지식이 없었다. ‘혹시 누가 배후에서 그녀에게 가르쳐준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아버지 경후 원팔융(元八隆)이?’경후에게는 그러한 배짱이 없었다. 원팔융은 그저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며 빌붙는 소인일 뿐이었다. 우문호는 후에 따를 수 있는 좋지 않은 결과를 생각해봤다. 원경능은 그의 왕비였다. 그녀가 태상황에게 한 짓들이 발각된다면, 자신은 분명 배후에서 지시한 사람으로 찍힐 것이다. 누구도 그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그는 생각할수록 불안해졌다. 결국 탕양에게 녹아와 기씨 어멈을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녹아와 기씨 어멈은 늘 원경능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었다. 이상 행동이 있었다면 기씨 어멈을 속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녹아는 이번에 함께 입궁했었다. 황궁에서 나올 때 원경능이 건곤전에 남아 시중을 든다는 소식을 들고는 돌아와 기씨 어멈에게 말하자, 기씨 어멈도 깜짝 놀랐다.부름을 받은 두 사람은 다급히 왕야에게 갔다.“왕야!”서재에 들어온 두 사람은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우문호는 기씨 어멈을 흘끔 보았다. 문득 기씨 손자의 일이 생각나 생각없이 한마디 물었다.“화가는 어떻게 되었느냐?”“왕야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우문호는 조금 의외라 생각했다.“보아하니 이의원의 의술이 훌륭한가보구나.”“네…그렇습니다!”기씨 어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문호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꿰뚫어 보았다. 담담하게 기씨 어멈을 보더니 물었다.“기씨 어멈, 본왕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가?”기씨 어멈은 몸을 움찔하더니 재빨
건곤전 안에서 태상황은 명원제, 예친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조금 피로해지자 그들을 물렸다. 그리고 태의들도 모두 밖으로 보냈는데 유독 원경능만 내전에 남겼다.명원제는 나가기 전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전 안은 고요했다. 휘장이 겹겹이 드리워져서 바람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원경능은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침상 옆에 서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태상황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매섭게 말했다.“꿇어 앉아!”원경능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자금탕의 약효가 떨어져서 온몸에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무릎을 꿇는 것이 앉은 자세보다 훨씬 편했다. “너의 죄를 알렸다?”태상황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원경능은 태상황이 최소한 지금은 자신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태상황이 이 속세에 미련이 있는 한 자신은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원경능은 고개를 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네.”“무슨 죄냐?”“의술이 신통하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나선 죄입니다.”원경능은 큰 죄가 아닌 작은 죄를 택했다. 태상황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의술이 신통하지 못하다니. 너는 어의원의 태의들을 모두 돌팔이로 만들어 버리는구나.”원경능은 이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태상황이 자신의 의술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순조로워질 것이다. 태상황은 또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곳에 앉아서 과인의 병을 말해보거라. 죽느냐, 사느냐? 죽는다면 언제 죽고, 산다면 언제까지 사는 것이냐?”원경능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감히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태상황께서 제가 진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아직도 우두커니 서서 무엇 하느냐? 와서 진맥하거라.”태상황은 원경능이 어느 곳에선가 이상한 물건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이상한 물건을 귀에 걸더니 웃으며 말했다.“먼저 심장소리를 먼저 들어봅시다….”잠시
저녁이 되어 명원제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 태상황의 병세가 호전된 것을 보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리를 떴다.원경능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존재감이 없었고, 명원제의 주의를 불러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별일 또한 없었다. 명원제가 떠난 뒤 상공공은 여느 때처럼 태상황의 몸을 닦아주었다. 원경능은 자리를 비켜주려 정전으로 나갔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주사를 한 대 놓았다. 그러나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다시 바꿀 방법이 없었다. 상처부분이 축축해졌다. 다시 핏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주사를 맞은 뒤 원경능은 엎드려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안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상공공이 일을 끝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급히 몸을 일으켜서 그런지 심장은 울렁거리고 목구멍에서는 피가 올라왔다. 그녀는 입에 피를 머금고 부들부들 떨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피를 나무뿌리에 토해냈다. 나무에 한참을 기대어 몸을 지탱하고서야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왕비, 무슨일입니까?”그때 뒤에서 상공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능은 몸을 돌려 손을 저었다.“괜찮아요. 체한것같네요.”“아!”상공공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떠났다. 원경능은 의문을 억누르면서 내전에 들어갔다. 태상황은 침상에 앉아있었는데 예전보다 훨씬 생기가 있어 보였다. 원경능은 그에게 말했다.“태상황 또 수액을 맞으셔야 합니다.”태상황은 손을 뻗으며 담담하게 그녀를 보았다.“과인이 저 영감탱이를 쫓아 내보냈으니 한시름 놓고 그것을 놓거라.”원경능은 먼저 심장 박동수와 호흡을 체크하였다. 호흡은 여전히 썩 순조롭지 않았다. 다시 어느 정도 양의 도파민을 주사하고 수액을 놓았다. 원경능은 설저환 한 병을 꺼내 태상황에게 건넸다. “이것은 구급약입니다. 심장이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혀 아래에 넣으시면 됩니다.”설저환의 라벨과 설명서는 이미 찢어버린 지 오래다. 설저환 약병은 아주 정교했다. 태상황은 약병을 손으로
저명취는 태상황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놓였다. 비록 태상황이 초왕을 총애하고, 또 그 총애로 인해 원경능이 내전에 남아 병시중을 들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원경능은 분수를 모르는 바보였다. 큰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태의는 태상황의 표정이 굳어지자 바삐 약을 들고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태상황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어서 빨리 약을 가져오지 못할까? 초왕비가 약을 마셔야 한다고 한 말을 못들은 것이냐?”뭇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모두 원경능을 바라보았다. 저명취의 낯빛은 바로 어두워졌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원경능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사실 입을 열기 싫었었다. 그러나 태상황이 약을 먹지 않고 호전된다면 의심을 살게 분명했다. 명원제는 기뻐하며 말했다.“얼른 탕약을 가져오지 못할까?”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명원제는 한번도 바로 원경능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칭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태상황은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정말로 쓴 것을 싫어하는지, 약을 마신 뒤 얼굴을 찡그렸다. 태후가 재빨리 약과를 건네어주고 나서야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우문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다. 이러한 상황은 그를 더욱 불안하고 걱정되게 만들었다. 황조부는 정말 원경능의 말에 따랐다. 혹시 그녀는 이미 음모를 달성한 것이 아닐까?태상황이 약을 마시자 태후도 매우 기뻐했다. 태후는 원경능을 가까이로 불러 칭찬했다. 늘 과묵하고 말수가 적은 예친왕도 원경능을 칭찬했다.황후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매우 억지스러웠다. 보아하니 저명취의 걱정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명원제는 정무를 제쳐둔 채로 시중을 들려고 온 것이었다. 비록 태상황이 호전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제 어의원의 태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태상황이 수명을 다했다고 하였다.태상황이 그들의 시중을 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명원제와 예친왕더러 돌아가라고 했다. 명원제는 떠나기 전에 원경
우문호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이 여인이 방금 죽더라도 초왕비로 죽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인가?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녀가 온갖 궁리와 계략을 다 짜내어 얻은 것이 바로 초왕비라는 자리가 아니었던가?“얼른 정신차리고 제대로 설명하거라!”우문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려 한번 ‘툭’ 쳤다.희씨 어멈은 화를 내며 원경능의 앞으로 다가가 그를 막아 섰다.“어찌 이리도 모진 것입니까? 왕야, 어찌 이리도 잔인해지셨습니까? 부부의 정은커녕, 남들끼리도 이렇게 까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박정하십니다.”우문호는 귀신처럼 하얗게 질린 원경능의 낯빛을 슬쩍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이 차올라 그렁그렁했지만, 끝내 울음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 고집스러운 모습은 냉담하기까지 했다.뜻밖에도 그는 그녀의 이런 고집스러움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는 곧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우문호는 측전(侧殿) 밖 홰나무 아래에 서서 바람 따라 회전하는 누런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음속에도 거센 바람이 한차례 일고 지나간 듯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초왕!”뒤에서 제왕비 저명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문호는 표정을 가다듬고 그녀를 향해 돌아봤다.복도 앞에서 긴 치맛자락을 뒤로 늘어뜨리고, 우아하게 서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선녀가 강림한 듯싶었다.그녀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평범 그 이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죽마고우인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버렸다. 그의 가슴 한쪽이 아련하게 아파왔다.저명취는 그의 눈에 서린 우울함을 발견하고, 자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조금 의기양양한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눈가에 웃음을 띠고 기쁨과 안도의 목소리를 담아 말을 걸었다.“태상황의 병세도 호전되었고, 아바마마께서도 당신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 저도 무척 기쁘네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이 지난 후, 그녀가 가냘픈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신 건가요?”우문호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