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네요, 민설아 씨. 지금 당신이랑 이럴 시간 없으니까 이렇게 찾아오지 마요.”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민설아를 쳐다봤다. 사실 그녀는 서란 보다 더 총명했다. 배인호가 거리를 두고 밀어내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배인호의 다른 친구를 매수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나만 괴롭혔다.이우범도 민설아가 먼저 회유한 건 아닐 것이다. 아마 오래전부터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봐야 했다.민설아는 불같이 화를 냈다.“쓸데없는 생각이라고요? 허지영 씨, 참 매정하네요. 인호 씨를 뺏어가더니 빈이까지 뺏어가려는 거예요?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이 말은 맞았다. 빈이를 뺏어오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빈이의 친모도 아니고 빈이에게 그렇게 못되게 구는데 빈이가 계속 학대받게 남겨줄 수는 없었다.“아빠 휴식 방해하지 마요. 간호사 선생님!”나는 민설아와 더는 입씨름하기 싫어 옆에 있는 간호사를 불렀다.“이 사람 지금 환자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는데 경비 불러서 쫓아주세요.”간호사는 아빠는 알고 있었지만 민설아는 누군지 몰랐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아가씨, 나가 주실래요? 환자가 휴식이 필요해서요. 협조 안 하시면 경비를 부르는 수밖에 없어요.”민설아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딱 봐도 마음에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여기는 병원이라 경비가 그녀를 내쫓으러 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민설아는 나를 서늘하게 째려봤다. 그 눈빛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내가 죽기를 바라는구나.’순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었다.민설아가 가고 나는 바로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전에는 계속 서울에 있으면서 노민준을 지켜보라고 했었다. 하지만 노민준은 이미 살인 미수를 인정받아 형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민설아를 토해내기 전까지 나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이 변호사님, 전에 가보라고 했던 곳 있잖아요, 가봤나요?”나는 전화에 대고 변호사에게 물었다.“네, 허지영 씨, 전에 말한 곳은 이미 가봤습니다. 노민준은 나이 든 어머니와 이혼한 전처 사이에
노민준의 반응을 보니 나도 한 줄기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 하여 계속 아들 얘기를 이어갔다.“하지만 수술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입천장갈림증과 손가락 기형은 여러 번의 수술을 거쳐 조금씩 고쳐야 해요.”노민준은 바싹 바른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물었다.“얼마나 걸려요?”“그건 나도 잘 몰라요. 만약 더 좋은 병원에 가서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겠죠. 아이가 아직 어려서 모를 수 있지만 크면 외모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위축될 거예요. 여자 친구를 찾는 것도 영향을 받겠죠.”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계속 노민준의 심리적 방어를 무너트리려고 했다.만약 이런 일을 저지른 게 단순히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가 한 말에 무조건 매우 초조해할 것이다.이미 교도소에 들어온 이상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아예 도울 수 없으니 말이다.“어떻게 된 거지? 민...”노민준은 관건 인물을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표정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민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려는 사람은 민설아일 것이다.나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만약 민설아가 배후라는 증거를 여기서 얻을 수만 있다면 나와 배인호에게 모두 좋게 작용할 것이다.배인호는 민설아와 양육권을 경쟁하기 위해 이미 많은 증거를 모았을 것이다. 거기에 민설아가 살인을 교사했다는 증거까지 내가 찾아주면 거의 100퍼센트 승률이다.민설아가 아무리 빈이 배인호의 친자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도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양육권을 박탈당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 내가 빈이를 입양해도 된다.“노민준, 나를 죽이고 싶었다면 내 신분도 조사했을 거 아니야.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어. 알아?”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회유를 이어갔다.“어머니는 요양원에 있는데 조건도 별로 안 좋던데. 내가 최고급 요양원으로 옮겨서 남은 나날을 편안하게 보내게 해줄 수도 있어. 그리고 율이, 남은 치료 비용도 다 책임질게. 입학하면 학비도 전부 제공할 거야, 성인이 되어서 자립할 때까지.”내 제안에 노민준의 눈동자가 흔
“이 얘기도 더는 하지 마요. 나 이제 의사 안 해요.”이우범은 이 화제를 매우 꺼리는 것 같았다. 그는 차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데려다줄까요?”나는 차가 아직 교도소 근처에 있었기에 대답했다.“교도소 근처까지만 데려다줘요. 내 차로 돌아가면 돼요.”이우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를 돌려 교도소 근처에 내가 차를 세운 곳으로 바래다줬다.요즘에 계속 서울에 있을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칙칙한 그의 눈을 보고 도로 삼켰다.이쪽 일은 계속 변호사에게 맡길 예정이었다. 민설아가 나를 기소한 사건이 곧 개정을 앞두고 있기에 서울에 계속 남아있기 힘들었다.집에 돌아오자 이미 늦은 밤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볼에 살며시 뽀뽀하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했다.마음이 불안해서 그런지 그날 밤 나는 너무 어이없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와 배인호는 로아와 승현이를 나눠 안았고 빈이는 뒤에서 도저처럼 보이는 하얀 강아지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공원에 봄나들이하러 나갔는데 주변에는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게 봄기운이 물씬했고 분위기가 너무 화목했다.로아와 승현이는 이미 한 살이 넘은 듯한 모습이었고 달콤하게 배인호를 아빠라고 불렀다.나는 두 아이가 상큼하게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보니 도우미가 아이들은 일찍부터 바람 쐬러 나갔다고 했다.나는 뭔가 마음이 씁쓸했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왜 이런 꿈을 꾸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마 나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었다.오늘은 아빠가 퇴원하는 날이다. 엄마는 새로운 코슈메디컬 대체 방안을 찾았고 많은 사람이 반대했지만 그래도 계속 밀고 나갔다.엄마는 오늘 계약서를 체결하러 가는 날이라 아빠의 퇴원은 내가 동행하게 되었다.나는 운전해서 병원으로 향했고 퇴원 수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병원 문을 나서려는데 배인호의 전화를 받았다.오늘 빈이가 특수 병실에서 나오는 날이었다. 상황이 좋아 병실에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을
나는 민설아가 빈이를 보러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빈이는 기대하고 있었다.아이들은 원래 그랬다. 자기가 좋아하고 신경 쓰는 사람이 다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건호와 김미애를 만나니 민설아도 자기를 보러 와주기를 기대했다. 그가 소위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빈이는 아직 모르고 있다. 배인호와 민설아 중에 그와 피를 나눈 사람이 없다는 걸 말이다.하지만 아이의 세계는 단순했다. 아무리 민설아가 전에 학대하다시피 해도 같이 지낸 시간이 길다 보니 엄마라는 존재를 매우 의존하고 있었다.빈이는 가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문 쪽을 두리번거렸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빈이의 생각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김미애가 빈이를 안으며 주의력을 다른 데로 돌리려 했다.“빈아, 아줌마가 너 놀이공원 데려가 준다고 했다면서?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도 같이 가면 안 될까?”김미애의 말을 들은 빈이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요, 좋아요!”“그래, 그럼. 그 며칠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옆에 있어줄게.”김미애의 태도는 많이 바뀌었다. 최근에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병실 안은 화기애애했다. 배건호, 김미애, 배인호만 여기 있으면 될 것 같아 나는 조용히 병실에서 나왔다.아빠는 산책하러 가지 않고 아직 병원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 아빠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이제 집으로 가요.”아빠가 약간 의외라는 듯 말했다.“이렇게 빨리 왔어?”“네, 괜찮으면 된 거죠.”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배건호와 김미애가 빈이를 받아들이자 나도 기뻤다. 이렇게 되면 내가 없어도 배씨 집안에서 잘 보살펴줄 테니 말이다.아빠는 내 손을 다독이더니 말했다.“그래, 집에 가자.”최근 두 달간 아빠는 거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국내와 외국의 병원을 전전하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자 조금 흥분되어 보였다. 손주들을 보자 안고 마구 뽀뽀했다.로아와 승현이는 이제 사람을 알아볼 나이가 되었기에 아빠를 보자 매우 친
모든 일이 안정을 되찾자 내 마음도 다시 차분해졌다. 나는 대부분 정력을 두 아이에게 쏟았다. 정아는 아이들에게 조기 교육반을 찾아줄 것을 건의했다. 스타트라인에서 밀리면 안 된다면서 말이다.나는 살짝 놀랐다. 이제 한 살도 안 된 아이를 조기 교육을 보낸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자료를 찾아본 나는 결국 정아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로아와 승현이에게 값비싼 조기 교육반을 등록해 주었다. 강의는 주 3회였고 부모가 동행했다.“나 서울 돌아가려고.”정아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난감한 말투로 말했다.“서울은 왜 갑자기?”살짝 의외였다. 노성민을 피하고자 멀리 도망가길래 적어도 반년 이상은 숨어지낼 줄 알았다.비록 노성민은 이미 정아를 찾아냈지만 정아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도망갈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하지만 정아가 내게 폭탄과도 같은 소식을 던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나 노성민이랑 재혼할 거야.”로아와 승현이를 데리고 카드놀이를 하던 나는 이 말을 듣고 손에 들었던 카드를 떨어트릴 뻔했다.“재혼? 너...”정아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넌 모를 거야. 이번에 나를 찾아내더니 얼마나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는지. 아무리 욕하고 때려도 소용없었어. 나는 전혀 감동하지 않았는데 엄마, 아빠가 감동해서는 나한테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타이르더라고. 아이들도 철들면서 아빠 보고 싶다고...”나는 정아의 말투에서 난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아도 두손 두발 다 든 이상 나는 계속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정아의 성깔로 본인이 마음이 약해지지 않은 이상 아무리 부모가 부담을 주고 신선이 와서 협박한다 해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너만 괜찮으면 돼.”나는 정아의 선택을 늘 존중했다.“그냥 재혼할 준비만 하는 거야. 서울 가서 어떻게 나오는지 일단 다시 볼 거야. 이쪽 프로젝트도 거의 마무리 단계니까 내 기분을 좋게 만들고 성의만 보인다면 선심 써서 마지막으로 기회 주는 거지.”정아는 말은 대수롭지
김미애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민설아는 빈이를 못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무 들키기 쉬웠다. 예전 같았으면 작은 수작으로 빈이를 학대해도 발견할 사람이 없었다.“우리도 설아가 경찰을 데리고 병실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빈이를 데리고 절대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을 텐데.”김미애는 말하면 할수록 분노하기 시작했다.“시간이 오래 지나도 설아 걔는 아직도 그렇게 독해.”나는 빈이의 안전이 너무 걱정되었다. 내일 재판만 끝나면 민설아가 빈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튈까 봐 걱정이었다. 그때가 되어 배인호가 민설아를 기소하려면 더 복잡해질 것이다. 두 나라의 법률과 관련되어 있으니 교섭이 필요할 것이다.김미애와 통화를 마치고 나는 바로 해커에게 연락해 민설아의 번호로 위치를 추적할 것을 요구했다.하지만 민설아는 이미 눈치챘는지 위치 추적을 방지하는 프로그램을 깔아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게다가 배인호도 내 문자에 아직 답장하지 않았기에 나는 전체적으로 붕 뜬 상태로 매우 불안해했다.밤새 기다려도 배인호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문자 한 통도 없었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빈이를 위해서였다.이튿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씻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법원으로 향했다. 변호사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나는 배인호가 온 연락인 줄 알고 빠른 속도로 받았다. 하지만 상대는 배인호가 아니었다.내가 서울에 두고 온 변호사였다.그는 드디어 내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허지영 씨, 노민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고 하네요. 전에 약속한 일 꼭 지킬 거라고 약속해달라고 합니다.”전에 약속한 일이라면 그의 가족을 잘 챙겨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돈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민설아는 이런 부분에서 참 쪼잔한 편이었다. 노민준이 교도소에 들어간 후 그의 가족을 잘 챙기
나는 법관이 내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기 때문이다.변호사는 나 대신 문제를 몇 개 대답하고는 휴정을 신청했다. 휴게실에서도 정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오늘 민설아와 재판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에게 알라지 않았다. 엄마는 처리할 일이 많았고 아빠는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자극을 주기 싫었다.하여 지금 이 자리에는 나와 내 변호사밖에 없었다. 그는 사건의 경과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을 뿐 나와 민설아 사이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다.“허지영 씨, 다시 잘 고민해 보세요. 원고가 한 말을 덮을만한 다른 유력한 증거가 있나요?”변호사가 내게 물었다.있긴 했다.그냥 내가 사람들에게 빈이는 아예 배인호의 아이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민설아의 친자도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민설아는 진작부터 이 일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한 걸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내가 질투 때문에 일부러 빈이에게 독극물을 탔다는 사실이 성립되기 어렵다.내 두 아이가 배인호 아이였기에 배인호와 혈연관계도 없는 아이를 질투할 필요가 없었다.문제는 지금 이런 걸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앞으로 배인호는 민설아를 기소해 양육권을 경쟁하려 할 텐데 그러려면 빈이와 친자 관계여야만 했다. 만약 내가 이 사실을 들춰내면 배인호가 민설아의 손에서 빈이의 양육권을 뺏어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비밀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민설아가 직접 말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럼 배인호가 빈이의 양육권을 뺏어오는 건 거의 가망이 없게 된다.이때 휴게실 문이 열리더니 민설아가 찾아왔다. 그녀는 아예 내 담당 변호사를 무시하더니 우쭐대며 물었다.“허지영 씨, 내가 이 일을 꺼낼 줄은 몰랐죠?”“민설아 씨, 이렇게 하면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져요? 빈이가 인호 씨 아이라면서요. 배씨 가문의 움직임에 응해 내가 아이를 돌려보내면 민설아 씨와 빈이의 지위가 점점 흐려지는 거 몰라요?”나는 이성을 되찾고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허허.
빈이는 티 나지 않게 몰래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보아낼 수 없었다.사람들은 민설아가 혼자 빈이를 키워냈기에 못 해줬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학대당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빈이 어린이, 원고가 준 동그란 물건이 뭔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어?”법관은 빈이에게 꽤 부드러운 편이었다. 아이를 놀라게 할까 봐 온화한 얼굴로 상냥하게 물어봤다.예전에 빈이 무조건 민설아의 말에 복종하던 게 떠올라 나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빈이는 이미 민설아의 압박에 습관되어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민설아가 하라는 대로 할 것이다.그러면 나는 해명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민설아는 이미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태연하게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빈이 입을 열어 나를 나락으로 보내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그 동글동글한 물건은 달았어요.”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빈이의 말을 들은 민설아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여 무서운 눈빛으로 빈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예전부터 이를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빈아, 그 물건 진짜 달콤했던 거 맞아?”민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질책하는 듯한 말투에 법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행위를 제지했다.빈이는 민설아를 보지 않고 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빛에서 신뢰와 굳건함이 느껴졌다. 작은 몸에 거대한 힘이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말을 이어갔다.“아줌마가 저에게 준 캔디는 달콤했어요. 하얀색에 복숭아 맛인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캔디에요.”이 말에 민설아는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가 어릴 때부터 키워온 도구가 처음으로 자기의 암시에 따르지 않고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이런 느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민설아는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되었고 빈이를 호통치거나 질책해서도 안 된다. 하여 그저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