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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난 미모의 여대표와 결혼했다
이별 후 난 미모의 여대표와 결혼했다
Author: 영준

제1화

"대표님, 연봉 협상하고 싶습니다."

대표 사무실, 남지훈이 초조하게 서 있다.

한창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김명덕이 고개를 들었다.

"지훈 씨,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의자에 앉은 김명덕이 묘한 표정으로 남지훈을 바라보았다.

두 주먹을 꽉 잡은 남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대표님, 제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도 벌써 7,8년 정도 됐죠. 졸업하고 나서 인턴부터 지금까지 쭉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제 동기들은 승진이네 뭐네 승승장구 하고 있는데 저만 제자리네요. 대표님, 저희 집 사정 잘 아시잖아요. 저희 어머니... 암으로 수술하시고 항암치료까지 받으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남지훈의 애절한 말에도 김명덕은 손을 저을 뿐이었다.

“지훈 씨, 우리 공과 사는 구분합시다.”

아무리 남일이라지만 너무나 가볍게 말하는 대표의 말투에 남지훈은 치미는 모욕감에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졸업하고 나서 이 회사에서 8년 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업계에서 나름 경력도 쌓고 실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서른을 앞둔 그에게 남은 건 그저 여자친구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내 것이라 생각했던 여자친구가 이제 결혼을 해야 하지 않냐며 집 마련, 차 마련으로 부담을 주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전부 다 돈이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한달 월급 200만 원, J시에서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수준의 월급이다. 여자친구가 남지훈에게 요구하는 집과 차는 꿈도 꿀 수 없는 먼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여자친구를 사랑했기에,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주고 싶었기에, 얼굴에 철판 한번 깔고 깽판이라도 치자는 심정으로 대표 사무실까지 찾아와 연봉 인상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지금 이대로 여자친구가 그를 떠난다면...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아픔은 물론이요, 솔직히 현실적으로 이 정도 조건의 남자를 어떤 여자가 만나줄까,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그리고 돈 들어갈 구멍은 여자친구뿐이 아니었다.

편찮으신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투잡, 쓰리잡은 기본으로 뛰고 계셨다.

이번 연상으로 부모님 호강까진 아니어도... 그래도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좀 덜어드렸으면, 자식 노릇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남지훈의 침묵에 돌아온 건 김명덕의 비열한 미소였다.

그가 책상 위로 서류 하나를 휙 던졌다.

“지훈 씨, 이번 달 정리해고 직원 리스트입니다. 남지훈 씨가 정리해고 일순위네요. 내 말 무슨 뜻인진 알겠죠? 지금 연봉 인상 소리나 할 때가 아니라 이 말입니다. 상황 파악됐으면 사인하세요. 지훈 씨 사정 아니까 내가 퇴직금은 두둑히 챙겨줄게요.”

“정... 정리해고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충격을 받은 남지훈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 제가 왜 정리해고 대상인 겁니까?”

그의 질문에 김명덕이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

”남지훈 씨가 한달에 받아가는 월급이 200이든가? 그건 당신이 그 정도 가치의 일밖에 처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요. 차라리 신입을 뽑으면 지훈 씨처럼 이렇게 연봉 인상을 들먹이진 않겠죠? 건방지게?”

“그... 그럴 리가요!”

남지훈이 떨구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200만 원, 말도 안 되는 월급이라는 거 대표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돈으로 이 J시에서 뭘 할 수 있죠?”

D시와 M시만큼은 아니지만 J시도 나름 신도시 붐에 휩싸여 물가며 집값이며 상승 루트를 타고 있는 상황, 가끔은 차라리 밖에서 노가다를 뛰는 게 이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제가 남지훈 씨한테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김명덕은 이 상황이 귀찮은 듯 귀를 후벼팠다.

“어쨌든 해고통지서에 사인을 하든 그게 싫으면 연봉 20만 원 삭감하고 계속 출근하는 걸로 깔끔하게 합의보죠. 선택은 지훈 씨 몫이에요.”

김명덕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과 달리 남지훈의 입술 사이로 튀어나오는 말은 너무나 비굴하고도 타협적이었다.

“그냥 월급을...”

“하하하!”

그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박장대소를 하며 일어선 김명덕이 남지훈에게 다가갔다.

그는 치욕감에 부들부들 떠는 남지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역시. 지훈 씨라면 현명한 선택할 줄 알았어요. 내가 원망스럽겠지만... 지금 그만큼 회사 사정이 안 좋아요. 대외적으로야 회사가 성장하고 있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입장일 뿐입니다. 회사 사정 어려운 걸 알면 투자자들이 바로 불안해 한다고요. 그래도 지훈 씨 사정 생각해서 연봉 삭감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겁니다. 우리 이 힘든 시기 같이 견뎌냅시다. 지훈 씨 입장은 잘 알았으니까 다음엔 무조건 승진시켜줄게요.”

김명덕은 남지훈의 해고 서류를 갈기갈기 찢었다.

바닥으로 흩어지는 종이쪼각들을 바라보며 남지훈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겨우 한고비를 넘긴 듯한 기분이었다.

연봉 인상을 위해 대표 사무실을 찾았다는 원래 목적은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고 그저 직장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인사팀에는 내가 알아서 얘기할 테니까 나가봐요.”

화장실이 급한 듯 휴지를 챙겨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던 김명덕이 멈칫했다.

“아, 지훈 씨. 컴퓨터 좀 잘 다룬다고 했었나? 내 컴퓨터 좀 봐줄래요? 아니 900만 원이나 주고 산 컴퓨터인데 요즘따라 자꾸 렉이 걸리네. 짜증 나게...”

욕설을 내뱉으며 김명덕이 자리를 뜨고 어느새 사무실엔 남지훈만 남게 되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남지훈이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 등신아. 너 연봉 인상 얘기하러 온 거잖아. 쥐꼬리만한 월급 깎이고 뭐가 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느끼고 있냐.’

한숨과 함께 김명덕의 컴퓨터 앞에 앉은 남지훈은 다시 현타가 밀려왔다.

‘이딴 컴퓨터 하나에 900만 원? 회사 어렵다면서. 자기 컴퓨터 살 돈은 있고 직원들 월급 올려줄 돈은 없다 이거냐?’

남지훈은 컴퓨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왜 이렇게 많아... 도대체 무슨 사이트에 접속했던 거야...’

누군가는 회사에서 게임에 야한 사이트를 접속하면서도 떵떵거리면서 살고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하면서 비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니.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계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던 남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효진이한테는 또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연봉 인상은커녕 되려 삭감됐다는 걸 알면 무조건 헤어지자고 할 텐데.’

대학교 동기로 만나 두 사람이 사귄 지도 어느새 10년.

자리만 잡히면 결혼하려고 했었는데...

그 자리 하나 잡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올해 안에 결혼 안 할 거면 헤어지자는 효진의 최후 통첩에 남지훈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때 카똑 알림음이 울리고 뭔가에 홀린 듯이 화면을 클릭한 남지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익숙한 프로필 사진, 효진이었다.

‘효진이가 대표님을 어떻게 아는 거지?’

떨리는 손으로 그 전 채팅기록을 확인한 남지훈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사진 속 야한 슬립 하나만 있고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자는 분명 그의 여자친구 효진이었다.

‘자기야, 나 오늘 어때? 아, 참. 내가 저번에 말했던 신상 가방... 사줄 거지?’

그리고 이어지는 김명덕의 답장.

‘이제 사진으로만 보는 건 슬슬 질리는데. 우리 그냥 만날까?’

대화를 확인하던 남지훈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누구보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효진의 이중적인 모습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더 가관이었다.

“남지훈도 그렇게 나한테 쩔쩔맨다니까.”

“오빠, 그 자식 얘기는 왜 갑자기 꺼내. 나 오늘 걔량 헤어질 거야. 그럼 이제 우리 두 사람 정정당당하게 만날 수 있다고.”

“안 돼. 난 이런 스릴 넘치는 관계가 더 끌리거든. 자기 애인이랑 놀아나는 것도 모르고 나한테 굽신대는 표정을 보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알아?”

“쾅!”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한 남지훈이 주먹으로 모니터를 내리쳤다.

‘지금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지? 그리고 두 사람 도대체 언제부터...’

이때 남지훈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지났다.

‘반년 전, 회식자리에 우연히 이효진도 참석했던 그날... 분명 그날부터일 거야.’

6개월을 감쪽 같이 그를 속이고 농락해 왔을 두 사람을 생각하니 당장 칼부림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현실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몰래 분을 삭힐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 한스러웠다.

‘아니야. 못 참아. 이대론 못 넘어간다고.’

이성을 잃은 남지훈의 눈에 테이블 위에 놓인 과도가 들어왔다.

‘김명덕, 이효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지만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남지훈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지훈아... 지훈아...”

수화기 너머로 훌쩍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아버지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어. 피가... 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뭐라고요?”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기분에 남지훈이 휘청거렸다.

“일단 병원으로 이송되긴 했는데 수술비가 1800만 원이라네... 어떻게 마련해 볼 수 없을까? 네 아버지.... 네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려야지...”

그 뒤로 한참 동안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남지훈의 귓가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1800만 원?’

매달 50만 원씩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갑자기 1800만 원이라니.

“지훈아, 엄마 말 듣고 있어? 친척들은 이제 엄마 전화도 안 받아. 미안하다... 못난 부모 만나서 우리 아들만 고생이네...”

어머니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남지훈의 가슴도 찢겨지는 듯했다.

“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돈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은 남지훈은 차마 과도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없었다.

‘하느님, 왜 저한테만 이렇게 매정하신 건데요.’

남지훈이 고통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악! 이게 뭐야! 내 컴퓨터!”

이때 사무실로 돌아온 김명덕이 박살난 모니터를 발견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남지훈 씨. 당신 미쳤어요? 이게 얼마 짜린 줄 알고!”

김명덕이 남지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바로 어제까지 이효진과 음란한 대화를 주고 받았을 그 더러운 얼굴을 마주하니 또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의 치욕과 분노보다 더 중요한 건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이었으니까.

맥없이 고개를 떨군 남지훈이 말했다.

“대... 대표님, 정말 죄송한데 저 월급 가불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급한 사정이 생겨서요. 1800만 원만 좀...”

남지훈의 말에 김명덕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장난합니까? 멀쩡한 모니터 부숴먹고 뭐요? 가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가불이고 뭐고 모니터나 배상해야 할 겁니다.”

“대표님!”

이에 남지훈이 참았던 분노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항상 순종적이기만 하던 남지훈의 고함에 김명덕의 눈동자 역시 살짝 흔들렸다.

“효진이랑 언제부터 그런 사이셨습니까? 1800만 원, 그 돈만 빌려주시면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겠습니다. 안 그럼...”

순간 남지훈의 눈동자에 광기가 스쳤다.

‘그냥 우리 셋 다 여기서 죽는 거야.’

남지훈의 말에 부서진 모니터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김명덕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순간의 당황도 잠시, 김명덕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진짜 오냐오냐 해줬더니 어디서 협박질이야. 야, 너 정말 죽고 싶어?”

김명덕의 주먹이 남지훈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퍽!”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틀거리던 남지훈이 뒤로 나자빠지고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 버둥대던 남지훈의 손이 부서진 모니터에 닿고...

참을 수 없는 찌릿함과 함께 남지훈은 정신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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