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한 사람은 콩이 선생님이었다. 콩이 아빠가 애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너무 불안했다. 신호연이 평소에도 절대 안 하던 콩이 하원 픽업을 갑자기? 바로 신호연에게 전화했다. 너무 익숙했던 번호가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긴 통화연결음 끝에 신호연은 애정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순간 너무 화가 났다. “신호연!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누구 맘대로 애 데리러 가?”“여보, 화내지 마.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보러 간거야. 콩이를 만난 게 얼마 만인지 몰라. 너무 보고 싶었어!”입바른 말만 하는 신호연이라는 인간에 너무 소름 끼쳤다. 콩이가 보고 싶다고? “여보라고 하지 말라고 했지? 진짜 너무 싫어! 지금 어디야?”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습관이 돼서 그렇잖아. 내 평생 여보는 당신 하나뿐이야.” 신호연은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지만 나를 약 올리기 위함이 틀림없다. “우리 지금 겨울왕국에 있어.”신호연이 더 말하기 전에 빨리 전화를 끊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 내가 콩이 하원 픽업 간다고 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나보다 더 화낼 게 분명했다. 최대 시속으로 겨울왕국을 향했다. 겨울왕국은 대형 어린이 공원이다.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과 각 연령대에 맞는 놀이 기구가 있다. 콩이는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신호연에게 아빠라고 부르긴 하지만 아빠 자격은 오래전부터 없었다.조급한 마음으로 겨울왕국 안으로 뛰어갔다. 저 멀리 신호연이 의자에 앉아서 콩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날 감동하게 하기도 했었다. 콩이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의자에서 뛰어내려 나에게 달려오려고 하자 신호연은 바로 콩이를 안고 일어섰다. 신호연 팔에 안겨 발버둥 치는 콩이도 내키지 않아 하는 게 보였다. “엄마!”바로 콩이 앞으로 달려가 신호연에게서 콩이를 뺏었다. 콩이를 꼭 껴안았더니 콩이도 내 목을 끌어안았다.신호연은 살짝 웃음을 띠며 말했다. “뭐가 이렇게 급해? 콩이
웃으면서 나를 봤지만, 다른 속셈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콩이도 신호연의 모습에 놀라 아이스크림마저 까먹고 내 팔을 꼭 껴안았다. “여보. 나 그렇게 보지 마. 당신 힘들게 할 생각 없어. 오늘도 봐. 우리 셋이 이렇게 있으니 얼마나 좋아.” 신호연은 뻔뻔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콩이 요즘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예전처럼 말을 많이 하지도 않고... 예전에는 재잘재잘 말을 정말 많이 했잖아. 근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신호연은 전부 내 탓인 듯한 말투로 나를 보며 물었다. “애를 봐서라도 다시 생각해. 그리고 여보. 할 말이 있는데 천우그룹 주인이 곧 바뀔 거야. 당신의 제일 큰 버팀목이 사라진다고. 계속 버틸 수 있겠어?” 신호연은 이미 승자가 된 듯 나를 바라봤다. 마음속은 뒤집어졌지만,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꼭 쥔 채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서?”내 마음을 느끼기라도 한 듯 콩이는 내 팔을 꼭 껴안았고 신호연과 싸울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손에 쥔 숟가락을 버리고 콩이를 꼭 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지금 있는 데서 계속 살아도 돼. 돈도 필요 없어. 단지 장인어른, 장모님에게는 집에 돌아가시라고 해줘. 나는 제때 집에 들어갈게. 당신과 콩이 같이 다시 살고 싶어.” 신호연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듯 수치심도 모른채 나를 떠보고 있었다. “꿈도 꾸지 마!” 이를 악물었지만, 최대한 차분한 말투를 유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콩이만 없었으면 뺨을 몇 대 때렸을 것이다. 신호연은 또 한 번 피식 웃었고 애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어이구! 당신. 나는 왜 당신을 못 잊는 걸까? 지아야. 너무 고집부리지 마. 근데 하나만 말할게. 나 더 이상 예전의 신호연이 아니야. 현재 상황도 예전의 상황이 아니고. 오기 부리지 마. 신흥도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나는 당신에게 충분한 기회를 줬어. 몇 안 되는 공급업체와도 제대로 얘기가 안 되는데 계속 이럴 필요가
신호연은 계속 염치없이 말했다.“우리가 손을 잡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기회는 있을 거야. 이 서울 땅에 우리가 있을 자리가 없겠어? 건축 자재 업의 주도자가 될 날이 머지않아, 안 그래, 여보?”“꿈 깨. 당신은 비겁한 소인배야! 이번 생에, 다시는 내가 당신이랑 손을 잡을 생각을 하지 마! 당신 참 부도덕해, 하늘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나는 이 역겨운 남자 때문에 화가 나 미쳐 버릴 게 같아 콩이를 안고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다음에 콩이를 만나고 싶으면 미리 전화해! 다른 일은 생각도 하지 말고!”“한지아, 3일 안에 결과를 볼 수 있을 거야, 난 언제든지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 거야. 아이를 생각해야지, 너무 고집부리지 마!”신호연은 내 뒤에서 비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다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여보!”나는 콩이를 품에 안고 뛰쳐나오면서 이를 악물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아니면 그가 말한 소식에 놀라서인지, 계속 떨고 있었다.콩이는 얌전하게 내 어깨에 엎드린 채, 커다란 두 눈으로 줄곧 겨울 왕국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콩이를 꼭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나는 콩이가 볼까 얼른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차로 돌아온 나는 콩이를 어린이 의자에 올려놓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씩씩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콩이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쳐다보더니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외할머니, 외할머니도 함께 가요?”“그래, 함께 가지! 우리 외할머니, 외할머니 모시러 집으로 가자!”나는 콧소리가 심했다.이제부터 콩이의 세상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나는 깊이 자책했다.부모님과 함께 해산물을 먹으러 갔지만, 저는 항상 긴장하고 있었고, 그 감정으로 인해 폭발할 것 같았다.극도의 인내와 자제는 나를 좀 초조하게 만들었다.밥을 먹고 나서 나는 그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나는 차를 몰고
다음날.유빈이 그 공급업체의 독촉장을 나에게 건네주었을 때, 나는 조용히 이해월에게 대표적인 상가를 몇 군데 선택하게 했고, 수집된 자료에 대응하여 모든 준비를 마쳤다.그리고 유빈에게 소란을 피운 모든 공급업체를 상대로 다음 주 월요일에 신흥에 가서 답변회를 열라고 했다.유빈은 어리둥절했다.“한 대표님,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실 예정이세요?”그의 절박한 눈빛을 보며 나는 갑자기 웃었다.“유 매니저님, 어떤 결말이 가장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하세요?”“한 대표님, 도대체 무슨 생각 하세요? 저는 대표님을 잘 모르겠어요!”“하하!”나는 쾌활하게 웃었다.“언제는 절 알았나요?”그도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긴 해요!”“나는 유 매니저님을 잘 알아요!”나는 일부러 그를 놀렸다.그의 눈은 움츠러들어 약간 긴장되었다.“긴장하지 말고 일이나 해요!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나는 그에게 얼렁뚱땅 둘러댔다.그는 나를 좀 달갑지 않게 쳐다보더니, 내가 이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씩씩거리며 나의 사무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나는 정말 모든 준비를 다 했다. 기껏해야 함께 죽는 것이다. 기껏해야 고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이 바로 내 마음의 버팀목이었다.그런데 그때, 나는 통지를 받았다.이 통지는 천우 그룹이 보내온 것이었다. 일요일 저녁 6시, 스타라이트 펜트하우스 홀에서 천우 그룹 아시아본부의 기자회견을 열고, 천우 그룹 아시아본부의 신임 회장을 발표한다고 한다.이 소식은 단순히 서울을 경악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발칵 뒤집었다.천우 그룹과 협력한 모든 사람이 발표회장에 초대되었다고 한다.공교롭게도 마침 신호연이 말했던 3일 후다.이 연락을 받은 지 30분도 안 돼 신호연의 전화가 걸려왔다.나는 피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당당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여보! 어때, 내 정보가 정확하지?”나는 눈을 감고 속으로 참 역겨운 인간이라고 욕했다.“당신 남편을 얕보지 마. 나 신호연은 이제 당신
술잔이 뒤엉키고 떠들썩한 가운데, 나는 더욱 허탈해졌고, 마음속에는 이미 대세가 가버린 황량함이 있었다. 군중들 사이에서도 모두 조용히 오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의논하고 있었다.신호연이 방금 나한테 흘린 정보에 따라 나는 천우 그룹의 도련님이 누구일까 생각해봤다.원래 협력했던 단골손님 몇 분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걸 봤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다 무감각해서 최대한 빨리 최종 선고를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오늘 온 건 결국 이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닐까?사람이란 이런 것이다,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품고 있다.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비로소 내가 얼마나 작고 외롭고 무기력한지 느끼며, 순간순간 나는 정말 작은 도시로 도망가서 편안히 딸을 지키며 세상과 다투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누군가가 무대에 올라갔고, 모두가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많은 사람의 뒤를 따라 걸어갔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 주먹을 꽉 쥐었다.예전에는 천우 그룹이 내 생사가 걸린 것일 줄 몰랐다.어느새 신호연은 내 곁에 서 있었고, 넋을 잃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다 원하는 걸 다 얻었는데 왜 나한테 달라붙어 있냐고,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욕했다.무대 위에서 각종 발언과 번거로운 절차가 진행됐는데, 마치 신비로운 시상식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한 어르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리의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갑자기 홀 전체의 불빛이 어두워지더니, 한 줄기 강한 빛줄기가 홀 입구를 비췄다. 모든 사람이 떨리는 마음으로 입구 쪽을 향해 그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홀 전체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우레와 같이 울렸다...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비켜 무대로 향하는 길을 터주었다. 사람들 속에 끼인 나는 걸어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다만 수많은 별이 달을 받들고 한 사람을 따라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옆에 서 있던 신호연의 표정이 일순
오늘은 월요일.나는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고, 많은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조금 귀찮았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매일 떠들썩하던 사무실에서 갑자기 너무 조용해서 내가 층을 잘못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유빈이 문을 두드리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다크서클이 깔린 얼굴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한 대표님, 오늘 회의를 그대로 진행할까요?”“당연하죠! 왜 안 해요? 계획대로 해요!”나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가 무엇 때문에 흥분했는지 묻고 싶었다.그러자 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네, 그럼 바로 확인하겠습니다.”10시에 대회의실에 도착했는데, 안이 소란스러웠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나를 몰아붙이려는지 떠들고 있었고, 반드시 오늘 결제해야 한다고 했다.나는 회의에 오기 전에 구 변호사를 불렀다. 신흥을 인수한 후, 그와 위탁 계약을 체결했으니 그는 제 개인 변호사일 뿐만 아니라, 신흥의 법무이기도 하다.유빈은 회의를 주재하며 여전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서둘러 그 사람에게 소개했다.아래 사람들을 힐끗 보니 한결같이 적개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앞장선 사람은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직접 물었다.“한 대표님, 오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가 여기 온 지도 며칠 됐으니 미루지 말아요. 먹고 마시는 것도 다 돈이에요!”“신호연이 오라고 했어요? 그럼 그 사람이 당신들을 위해 결제하라고 하면 되잖아요.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말하는 사람을 차갑게 바라보았다.그는 즉시 펄쩍 뛰더니, 흉악하게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뭐라고? 당신들 이리저리 돌릴 거야? 두 사람 이혼한다면서? 우리가 우스워? 갖고 노니까 재미있어? 앞에서 그렇게 보여주고 뒤에서 뭔 짓 하는지 모를 줄 알아? 우리가 거지야? 지금은 당신이 인수하지 않았어? 그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결제해.”다른 사람들도 모두 맞장구 치며 마치 들보를 치는 광대들처럼 굴었다.
나는 그들의 포효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여러분, 당신들은 신호연과 협력하고 계약이 있어요. 어떻게 물건을 납품하고 결제하는지, 갑을 쌍방이 어떤 의무를 이행하는지, 모두 똑똑히 알고 있어요. 당신들은 정말 계약서가 휴지 한 장이라고 생각하나요? 매번의 계약이 완성되고, 대금이 결제되는데, 만약 연체된 것이 있다면 당신들은 신호연을 찾아서 결제받으면 되잖아요. 설마 신호연이 당신들에게 결제하지 않았단 말인가요?”“그럼 잔금도 많이 밀렸어요!”누군가 떠들어댔다.“잔금? 정말 뻔뻔하게도 그게 잔금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잔금을 나한테 달라고 하는 건, 당신들이 정말 거지라서야, 아니면 나 같은 여자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희 같은 낯짝으로 감히 장사판을 기웃거려?”나는 강경한 어투로 말을 뱉고 이해월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료 뭉치를 건네주었다. 자료는 ‘턱!' 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 테이블에 떨어져 멀리 미끄러져 나갔다.“정말 당신들이 하는 짓이 빈틈없는 줄 알아? 당신들은 신호연과 계약 기간 조잡한 물건으로 공사품질을 속이고 있는데,내가 개발업자를 함께 찾아서 이야기할까, 아니면 관련 부서에 보고해서 조사를 시작할까? 그 업주들 안 와도 돼, 명단은 나한테 있어!”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란 사람에 대해 아마 들은 바가 있을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소송이고, 게다가 백승불패의 철부리 변호사도 불렀어. 모두 함께 수법을 써봐, 내가 반드시 당신들에게 좋은 의견을 줄 거야. 만약 당신들이 이런 방법으로 이길 수 있다면, 당장 당신들에게 결제해주고 한 푼도 빚지지 않을 거야.”회의실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나는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이의 없는 사람은 내 회사를 떠나세요. 구 변호사님, 오늘 온 사람들의 모든 협력 계약을 해지해 주세요. 그들은 저 한지아와 협력할 자격이 없습니다.”“잠깐만요, 한 대표님! 오늘 회의라는 것이...”유빈은 나를 쳐다보더니 표정이 복잡해진 채 달갑지 않은 것
나는 이 기세를 몰아 회사 전체 직원들을 불러 회의까지 소집했다. 이로써 이번 이슈는 일단락되었다. 신호연은 지금쯤 형원그룹에 정신이 팔려 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혜선에게 연락해 형원 그룹 내부 상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가끔 어떤 일들은 사전에 예상하여 후폭풍을 미리 준비하고 조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위기의식을 항상 갖고 있어야 어떤 일이든 나중에 잘 방어할 수 있다. 도혜선은 정말 훌륭한 스파이 자질이 있었다. 도혜선이 나를 위하는 마음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마음에 보답하는 최선이 도혜선에게 하는 이런 내 부탁들이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내키지 않은 그 무언가가 계속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고 어제저녁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해월은 종일 싱글벙글해 있었지만 나는 같이 즐길 수 없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이미연에게 전화해 언제 퇴근하는지 물었다. 이미연은 나의 조급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만날 시간을 바로 정했다. 약속 장소를 따로 정하지는 않았고 내가 술과 안주를 사서 강변 옆 잔디밭에서 만나기로 했다. 강변에 도착한 이미연은 강과 잔디밭의 어우러진 공기에 한껏 들떠있었다. “지아야, 여기 너무 좋다.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이미연은 좀 더 편하게 즐기기 위해 차에 있는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다시 자리에 왔다. 우리는 잔디밭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서로 마주 보며 맥주캔을 부딪쳤다. 이미연은 그 누구보다도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친구다. 이미연은 맥주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배현우에 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못 하자 이미연은 본인 생각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 “네가 좀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한 명은 닿을 수 없는 저 하늘 끝에 있는 별 같고, 한 명은 수심도 안 보이는 바다 밑에 있는 것 같아. 물론 네가 엄청나게 노력은 하겠지. 근데 분명히 힘들 거야. 네가 배현우를 따라갈 수 있을까?”사실 나도 늘 생각해 왔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