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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0화

날카로운 칼날이 부드러운 피부를 살짝 찌르자 검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박연희는 두려움이 없었다.

한때, 그녀의 눈은 온통 조은혁뿐이었지만 지금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원망과 끝없는 증오만이 가득했다...

세상의 치욕과 원한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오고 떠나가기도 한다.

“대체 왜!”

조은혁은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그녀의 표정 변화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박연희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은 환각일 뿐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얼마나 되뇌며 세뇌했는지 모르겠다.

그의 연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런 박연희의 몸이 어떻게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박연희는 그의 믿을 수 없는 눈빛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당신이 미워서요. 당신을 떠나고 싶어서요! 이제 만족해요? 조은혁 씨, 우리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어요. 하지만 당신은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죠. 그런데 그건 내가 당신을 따르며 계속 깨끗한 몸을 가졌기 때문이죠. 진시아, 그리고 당신의 그 셀 수 없이 많은 여자와 비하면 제 유일한 강점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나는 다른 사람과 잤고 이 유일한 장점, 당신이 가장 신경 쓰는 것도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조은혁, 지금 날 죽이든지, 풀어주든지 하나만 하세요.”

...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또 날카로운 과일 칼끝을 앞으로 당겼다.

“박연희!”

조은혁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튀어 올랐다.

혈액 속에 숨어 있던 포악한 인자는 지금, 이 순간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도록 부추겼다. 그래야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몸을 낮추어 한 여자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으며 밤낮으로 한 여자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대치했고 검붉은 핏방울은 칼끝을 타고 알알이 흘러내렸다...

문득 그는 칼을 옆으로 던지고는 그녀의 팔을 잡고 욕실 안을 향해 당겼다.

“조은혁 씨, 뭡니까?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조은혁은 그녀를 욕실로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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