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야, 이어폰 같은 거 없어? 있으면 끼고 할래?”단유혁의 웃음기는 빠져 원래의 무뚝뚝하던 모습으로 다소 돌아왔다.그는 그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다 이어서 바다가 예쁘다는 둥 감탄하는 말을 하여 순간 강하랑은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청력을 의심하지 않았다.이혁진이 그녀에게 이어폰 같은 것을 가져다주었었다. 행여나 부잣집 아가씨가 가족과 통화하는 내용을 다른 누군가가 듣는 것을 부끄러워할까 봐 말이다.그러나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고 이어폰을 착용한다면 음량을 크게 높여야
다른 것은 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배에서 음식을 공수하려면 오르내릴 곳이 있어야 했고 그들의 마음대로 막 공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배의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강하랑은 웃으면서 단유혁의 말에 대답했고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다.물론 단유혁의 요구도 듣고 있었다.단유혁이 안심할 수 있게 화면을 오른쪽으로 돌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선창에 숨은 두 사람이 대체 뭘 할 것인지 지켜보기 위해 돌린 것이다.화면을 돌린 후 비록 거리가 조금 있긴 했지만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강하랑은
사실도 강하랑이 생각한 대로였다.배의 어디에서든 그녀를 주시하는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가거나, 풍경을 보는 척 시선을 돌리기는 했지만, 그녀를 힐끔거리는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아주 저급한 스토킹 기술이었다.강하랑은 이혁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충돌이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말하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더군다나 상대가 인정하기 전에는 그녀에게도 증거가 없었다. 영상 통화 중 찍힌 것은 너무 웃겨서 말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괜히 말했다가 되레 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럴 바에
“알았어, 얼른 가자.”단유혁은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출발했다.그는 원래 두 사람을 데리고 현지 음식을 먹으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현지인이 한 음식이라면 배에서 질리도록 먹었다. 레스토랑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해도 이미 생겨버린 편견을 깰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도전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그래서 단유혁도 금방 다른 레스토랑을 찾았다. 현지 음식이 맞지 않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레스토랑은 그저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강하랑이 좋아할 것 같아
강하랑이 화제를 돌린 다음 식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계속되었다. 나눈 얘기라고는 가벼운 일상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기분 상할 화제가 다시 시작되면 모두 일제히 다른 말을 했다.점심밥을 먹고 나서 단유혁은 두 사람을 호텔에 데려다 주리고 했다. 비행기 시간은 내일 오전이었는데, 오늘은 오후 내내 실컷 자고 저녁에 잠깐 나가서 놀 예정이었다.이에 관해 강하랑도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노는 것을 거절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호텔로 가는 길 그녀는 장난스레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차에서 단이혁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이혼하자.”결혼 3년 만에 연유성이 두 번째로 그녀에게 건넨 말이었다.첫 번째로는 신혼 첫날밤이었다.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한 바퀴 빙 돌더니 방긋 웃으며 그에게 예쁘지 않으냐고 물었다.그러자 그가 답했다.“결혼식은 이미 끝났으니 내가 보낸 사람이 널 공항까지 바래다줄 거야.”그렇게 그녀는 결혼식 끝나자마자 3년간 홀로 해외에 나가 살게 되었다.다만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이혼하자는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혼이라. 오늘은 그들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굳이 꼭 이혼해야 해?”
강하랑은 잠깐 침묵에 잠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후련한 어투로 말했다.“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그 덕에 운 좋게 오빠도 찾고 말이야. 그 사람들은 나를 키워주기도 했으니까 그냥 여기서 그만하자.”그녀는 그간 키워준 은혜로 이번 사건을 눈감아 줄 생각이었다.“막내야...”남자가 뭐라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그러나 강하랑은 문밖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오빠, 나도 오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지금은 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난 어차피 곧 그
그는 고개를 떨군 채 물었다.“그럼 너는?”“뭐?”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낮았던 탓에 강하랑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아무것도.”그는 서류를 고쳐 들고 이내 다시 강하랑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일찍 쉬어.”강하랑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그래, 너도.”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방문을 닫아버렸다.연유성은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얼굴을 잔뜩 굳혔다.머릿속에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하랑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시선을 옮겨 손에 든 서류를 보더니 몸을 틀어 자리를 떴다.바로 다음 날, 강하랑은 강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