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남자친구 강우석과 이복언니에게 처절하게 배신을 당했다. 그 충격으로 쓰레기 남자친구를 향한 복수의 마음을 품은 그녀는 남자의 삼촌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후 일은 부스터라도 단 듯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삼촌과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그녀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숙모 자리에 앉아 어른 노릇을 할 달콤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친구 찬유로부터 자신이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된다. 심지안:??? 아기까지 생긴 마당에 이제 와 그런 얘기를 한들 뭐 어쩌란 말인가? 눈앞 신이 빚어놓은 듯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를 바라보니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크게 밑지는 장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됐어. 그냥 살지 뭐...’ 그러던 어느 날, 심지안은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남자가 무려 세계적으로도 1, 2위를 다투는 어마어마한 금융계 큰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더더욱 충격적인 건 강우석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그의 진짜 삼촌은 알고 보니 심지안의 남편의 부하직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더 보기성연신이 그녀를 응시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조사해 볼까요?”“아니요. 이대로 둬요.”위험하지만 않으면 됐지. 비밀조직과 임시연이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앙심을 품은 다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더 조사하기 귀찮기도 했다. 어차피 곧 임시연을 찾아 옛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윙-”성연신의 핸드폰이 진동하자 가까이 앉아 있던 심지안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갸웃하여 화면을 바라보았다.이진우가 걸어온 전화였다.“말해.”성연신이 긴 다리를 꼬고는 몸을 뒤로 기댔다.“소민정이 돌아왔어.”이진우의 흥분이 핸드폰을 넘어서 느껴졌다.성연신이 순간 허리를 꼿꼿이 폈다. 얇은 입술이 가볍게 열리고 닫혔다.“바로 갈게.”안철수는 비밀조직의 사람이 또 소란을 피운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 무슨 일입니까?”성연신이 몇초간 침묵을 지키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소민정이 돌아왔대요.”“깨어났답니까?”“네. 미리 말 안 해줬어요.”“잘됐네요!”“깨어나다니 너무 다행이에요.”“빨리 보러 가봅시다!”안철수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끊임없이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에 심지안이 물었다.“소민정이 누구예요?”모두가 그녀를 좋아하는 듯했다. 통화 중의 말투를 들어보니 산만한 성격의 이진우도 꽤 진지해 보였다.성연신이 대답했다.“비밀조직의 의료진이에요.”“그뿐이겠어요? 실력은 대단하지 않지만 인내심 있고 착한 사람이에요. 전에 몇 번이나 중상을 입었는데 민정 씨가 밤낮으로 절 돌봐주었었어요.”안철수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인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녀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보였다.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럼 ‘깨어났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이에 안철수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더니 조금 다급한 듯 말했다.“그건 말하자면 기니까 나중에 민정 씨 만나면 얘기하기로 해요. 전 먼저 만나러 가봐야겠어요.”심지안이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성연
도윤지는 기쁜 마음에 핸드폰을 들고 응접실을 뱅뱅 돌았다. 머릿속에는 이미 갱단을 불러 심지안을 괴롭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에 고청민 선배는 분명 기뻐할 것이며 자신이 본인 대신 혼내준 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그리고 기쁜 마음에 자신에게 밥을 사줄 것이고 선물도 챙겨줄 것이다...도윤지는 볼이 발그레해져선 인터넷에서 불량배를 고용하고 심지안과의 거래주소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여분의 돈을 더 보내며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기까지 했다.오후 네 시.불량배 몇 명이 거래장소에 도착했다. 그들이 두리번거려도 도윤지가 보낸 사진 속 사람은 찾지 못했다.“뭐야, 왜 없어. 오랜만에 손맛 좀 보고 싶었는데.”사진을 본 불량배들은 흥분한 터였다. 이렇게 예쁜 여인이라면 돈 안 줘도 괜찮았는데.“이미 30분이나 기다렸는데, 안 오는 건 아니겠지?”“안 와? 지금 누구 놀려?”“전화로 물어봐. 번호 있잖아.”“어어. 암표상인 척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남성이 마침 전화를 걸려 할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그쪽이 암표상이야? 거래하러 왔는데.”굵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남성은 거래자가 친구를 데려왔겠거니 생각했다. 남자가 더 있어도 괜찮았다. 그에겐 대여섯 명의 형제가 있었고 1남 1녀는 쉽게 수습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남성이 고개를 돌리자 첫눈에 보인 것은 튼튼한 가슴근육이었다.그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2미터의 다부진 몸을 가진 안철수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손바닥을 내밀며 물었다.“물건은?”조여오는 압박감에 남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한참 떠듬떠듬 말했다.“물, 물건은...”“여기 2천만 원. 빨리 좀.”안철수가 2천만 원 현금을 그의 앞에 내놓았다. 한눈 가득 노란색 지폐가 들어오자 왠지 불법 거래하는 기분이 들었다.게다가 안철수의 험상궂은 얼굴은 척 보기에 좋은 사람 같지도 않았다.겁에 질린 남성은 2천만 원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말했다.“그... 형님, 죄송합니다. 이미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렸어요
“없었어요. 안심하세요. 하지만 경미한 폭행을 당했을 수는 있어요.”심지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언론에 풀기 위해 사람을 샀다.진술서를 작성하고 수액을 다 맞으니 이미 새벽 5시였다.심지안과 진유진은 병원 근처 호텔에 아무 방이나 잡아 휴식했다.두 사람 다 너무 피곤했기에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깨어났다.체크아웃 후 에너지 보충을 위해 아래층 식당에서 음식을 가득 주문했다.옆 테이블에는 예쁜 옷을 차려입은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처음 들어오고부터 자리에 앉기까지 그들은 쉴 새 없이 재잘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아휴, 인플루언서들이 정말 하루아침에 끝장났네.”“진짜, 그 사람들이 학폭 가해자들일 줄이야. 틱톡에서는 그렇게 착한 척 굴더니.”“지난달에는 모교에 기부도 했다며. 이제 보니 다 조회수를 얻으려고 연기 한 거였네.”“그러니까. 댓글 창에 그 많던 팬들도 이제 한 명도 안 보여.”“뭐 어쩌겠어. 경찰까지 대동했다는데 빼박이지 뭐.”심지안은 핸드폰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그만큼 돈을 썼으니 고용한 사람들이 자기 일을 확실히 해냈을 거라 믿었다.진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쉼 없이 스크롤을 오르내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서러운 듯 입을 삐죽였다.“네가 한 거야?”심지안이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어젯밤 그녀는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뻔했다.“당연하지.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야.”심지안이 연근 조각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살벌했다.“배후에 임시연이 있어. 내가 못마땅하니 너한테 화풀이한 거겠지.”“이번에야말로 정말 혼쭐 내줘야겠어.”임시연이 그동안 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심지안은 결코 잊은 것이 아니었다. 자꾸 이러저러한 작은 일들에 얽매여 상대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임시연은 계속 그녀의 한계를 건드렸다. 이제 그녀가 마음껏 날뛰는 좋은 때는 다 갔다.“어떻게 하려고?”진유진이 묻자 심지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임시연한테 다섯 살 짜리 아이가 있어
심지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맹수같이 매섭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이때 진유진이 깨어났다....심지안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회식이 끝나고 마주쳤는데 날 못 가게 막고 이상한 음료까지 마시게 했어. 그 이후론 기억이 없어.”“쯧쯧, 조신한 척은. 우리랑 잘만 놀았잖아?”김슬비가 팔짱을 끼며 악의 가득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심지안이 진유진을 품에 안고 그들을 차갑게 훑어보았다.“임시연이 시킨 거야?”“그래. 꽤 총명하네.”이제 뒷배가 없어진 김슬비는 무어라 반박하지도 않았다.“드디어 미친 거야?”전에 연회에서 임시연과 한바탕 싸우더니, 갑자기 또다시 붙었다.김슬비가 눈을 부라렸다.“네가 뭘 알아?”임시연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이미 패가망신한 데다 수많은 브랜드가 이미 계약을 해지해 버렸고 배상금은 영원히 갚을 수도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많은데.임시연이 왕후가 되고 자신을 위해 좋은 말 몇 마디만 하면 여론이 뒤바뀌어 다시 예전의 스타가 될 수 있다.이런 저급한 인플루언서들과 어울리며 망신당하는 것이 아니라.하여 그녀는 술집에서 진유진을 보고 바로 임시연에게 연락했다.“내가 알든 말든 큰 의미 없어. 네가 곧 끝장날 거란 것만 알면 돼.”심지안이 유진을 잘 앉혀놓은 뒤, 테이블에 놓여있던 술병을 들고 김슬비를 향해 다가갔다.김슬비는 조금 두려웠지만, 심지안이 자신을 해칠만한 대담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뭐 하려고, 설마 그걸로 날 치려는 건--”“퍽.”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못다 한 말이 끊기면서 술병은 김슬비의 정수리에 부딪혔다.순간 침묵이 흘렀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김슬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눈을 부릅떴다.“감히 날 때려?”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사납고 무서운 짓을 할 수가 있지?“내 친구를 건드릴 거였으면 이 정도 후과는 생각했어야지.”심지안의 붉은 입술이 호를 그리며 웃
“세움 그룹의 반은 원래 제 것이었어요.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는데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담담한 목소리에 원망이 담겨있다.어쨌든 그는 이방인일 뿐이고,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심지안이다. 옳든 그르든 그 마음은 무조건 편향되어 있다.“우선 마음 가라앉히고 이야기 잘 나눠봐요. 회장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지 않을 거예요. 그저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일 뿐 정말 회사에서 쫓아낼 생각은 아닐 거예요.”“정말 쫓아내는 게 아니라면 왜 외부 언론에 알렸겠어요?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일종의... 변칙적인 보호일까요?”늙은 비서가 떠보듯 말했다. 사실 지금은 아무도 성동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심지안까지 포함해서.“필요 없어요. 지금 날 이렇게 대한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실망했어요.”진심으로 진심을 바꿀 수 없다면, 그럼 차라리 됐다.자기만을 위해 살 것이다.가족에 대한 사랑은 2순위에 두고.이기적으로 살면 많이 생각할 필요도 고통 받을 필요도 없다.고청민이 야윈 손목에서 팔찌를 빼내 갖고 놀았다. 눈빛은 사람 한 명이라도 죽일 것처럼 매서웠다.늙은 비서는 불시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얼른 물러났다.그녀는 일개 직원일 뿐이다. 성씨 가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그녀와는 상관도 없었고 그녀가 상관할 바도 아니었다.사실 회장님께 주의를 주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히 그럴 순 없었다... 과도한 개입은 좋은 일이 아니니까.가끔은 모른 척 차갑게 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밤늦게까지 일에 몰두하던 심지안이 지점장과 화상회의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바깥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심지안은 의자에 누워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지친 눈을 비비며 책상 옆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와 메시지를 확인했다.그중 낯선 번호가 심지안의 관심을 끌었고, 그녀는 중얼중얼 따라 읽었다.“엄교진 원장님의 예약 표를 판매 중...”이전에 암표상이 대신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
병원에서 나온 심지안은 세움 그룹 직원에게서 얼른 처리할 일이 있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고청민이 사임한 뒤로 대부분의 무거운 책임이 심지안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바빠졌다.성연신은 성우주를 데려오러 학교로 향했다.카시트에 앉은 우주는 휴대폰으로 열심히 서류를 확인하는 아빠를 바라보며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아빠, 상의할 게 있어요.”성연신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말해.”“엄마한테 밥 좀 시키지 않으면 안 돼요? 여자한테는 명령하는 게 아니라 아껴줘야 해요.”화면 스크롤을 올리던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난 네 엄마가 해주는 밥이 좋은걸.”“가끔 한 끼 정도는 이해해요. 우리 집에 셰프가 부족한 것 도 아니고 매일 하는 건 얼마나 힘들겠어요.”“매일 시킨 적도 없잖아.”“어쨌든 생각해 보라고요.”점심에 그렇게 평생 밥을 못 먹어본 사람처럼 주접스럽게 먹더니. 그마저 그 모습에 놀란 참이었다.다 머고 나니 접시들은 조금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은 건지 깨끗했다.저한테도 남겨주지 않았다.이기적인 아빠 같으니라고.성연신이 어쩔수 없다는 듯 말했다.“나도 그건 싫지만 네 엄마가 하는 밥이라면 항상 평소보다 더 먹고 싶어져.”3일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그는 배고픈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지안이 음식을 차려 대령하면 마치 굶어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흡입하게 되었다.전아내 앞에서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다.우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버지 말씀도 틀린 것이 없었다.엄마가 만든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맛있다.“그럼 이렇게 해요. 가끔 몇 끼 하는 건 괜찮은데 엄마가 요리할 때 아빠가 옆에서 좀 도와줘요.”우주는 마치 애어른인 양 진지하게 훈계했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요리는 요리사가 해야 할 일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요리하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지만,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아직 다시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 경험 자체를 모두 잊게 된다면 반드시 고통스러울 것이다.고청민 쪽에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는 데다 최면술 자체가 해만 되고 유익한 점이 없으니 없앨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없애야 했다.인간의 신체적 능력에는 항상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그의 어머니처럼...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온전한 데가 없습니다.“최면술을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지금은 좀 어렵잖아요.”의사가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연신 씨 신통력이 대단하니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절 난처하게만 하지 않으면 돼요.”강제적으로 최면을 푸는 것, 그는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만일 뜻밖의 변고라도 생기면, 심지안을 잃으면 본인도 죽을 수 있었다.이때 심지안이 약을 가지고 돌아오자, 성연신은 의사를 슬쩍 흘겨보았다. 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약은 제때 먹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다음 번 재검사는 언제 하나요?”“음... 당분간은 약만 먹고 2주 후에 재검사받으러 오세요.”의사는 압박감에 어정쩡하게 대꾸했다.“제 병이 많이 심각한가요?”심지안의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 아득함이 느껴졌다.“그리고 제 병은 의학용어로 뭐라 부르나요?”의사는 계속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병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면에 걸렸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건 좀 별로겠지? 잊은 것을 기억하려 할 수록 두통이 강해질 테고 악순환이 될 테니까.“글쎄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전국적으로 사례가 비교적 적어서.”손바닥만 한 심지안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성연신은 매서운 눈초리로 의사를 힐끗 쳐다보았고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의사는 그저 억울했다. 최면술은 원래 드문 데다 이렇게 성공한 최면술을 보기는 더더욱 어려웠기에 틀린 말도 아니었다."사례가 적다고 치료가 어려운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사납던 성연신의 훤칠한 얼굴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그는
“이분이 당신이 전에 말한 환자예요?”성연신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치료할 수 있는지 봐주세요.”그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심지안을 훑어보았다.“글쎄요. 일단 앉아서 상황을 좀 보죠.”그가 한쪽의 치료용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누워보세요. 최면을 깊이 걸어야 해요.”성연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지안을 위안했다.“제가 옆에 있으니까 긴장하지 말고요.”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안 무서워요.”이런 작은 일보다 그녀는 자신이 빨리 건강을 되찾길 바랐다.이번 의사는 지난번 병원에서 진찰을 본 의사보다 조금 더 빨랐다. 그의 지령에 따라 심지안의 신경은 차츰 풀렸고 온몸이 이완되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지난번과 다른 점은 심지안의 이번 꿈은 공포스러웠으며 마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다.하늘은 뿌옇고 유난히 어두웠다.그녀는 쉬지 않고 뛰어다녔고 강아지를 품에 꼭 껴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숨었습니다.잠시도 쉬지 못하다가 앞의 한 줄기 빛을 보고 나서야 심지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강아지를 다독였다.“괜찮아. 무서워 하지 마. 곧 안전해질 거야.”온몸이 하얀 털로 덮인 강아지의 새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문득 심지안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버젓이 강아지가 마귀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귀는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아악!”심지안이 비명을 지르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났다.성연신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겁 내지 마요. 다 가짜예요. 제가 있는 한 당신을 건드릴 사람은 없어요.”숨을 크게 몰아쉬던 심지안은 5분쯤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조금 나아졌다.“제가 무슨 꿈을 꾼 건지 아세요?”“네.”그녀가 의사가 건네주는 레몬물을 받았다.“이게 뭘 의미하는 거죠?”의사와 성연신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지안씨가 믿고 있던 강아지가 실은 마귀의 화신이며, 지안 씨 믿음을 저버리고 결국 물었다는 걸 의미하죠.”심
심지안이 음식을 들고 침실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문을 몇 번 두드리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저예요. 밥 먹게 문 열어봐요.”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것이 마치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심지안은 성연신이 들은 것을 눈치채고 참을성 있게 몇 번을 계속 두드렸다.“안 먹으면 원이랑 오레오한테 줄 거예요.”“벌컥.”문이 열리더니 성연신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깊게 바라보았다. 움푹 패어 보이는 눈두덩이 때문에 눈빛이 더욱 초췌해 보였고 턱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수염이 짧게 자랐으며 얼굴은 창백했다.그래도 끔찍하리만치 잘생긴 이목구비는 가리지 못했다.심지안은 문득 그의 모습이 웃겼다. 지금 그는 잘생긴 방랑자 같았기 때문이다.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푸하하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우중충한 분위기의 복도에 울려 퍼지면서 약간의 활력을 더했다.성연신은 그녀가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들고 있는 음식을 바라보니 문득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우렁차게 났다.그는 거칠게 음식을 받더니 원망하듯 말했다.“이렇게 늦게 보러 오다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우리가 이혼한 사이란 거 잘 알아둬요. 지금 연신 씨 보러 온 것도 우주 얼굴 봐서 온 거거든요. 정말 마음씨도 착하고 자비도 베풀 줄 아는 전 아내죠?”성연신은 콧방귀를 뀌더니 얼른 밥을 먹는데 몰두했다.“아... 지금이 더 방랑자 같아요.”10분 뒤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은 성연선이 당당하게 말했다.“아직 배가 부르지 않으니 더 해줘요.”심지안은 어이가 없어 그를 응시했다.“가정부나 시켜요. 제가 당신 보모도 아니고.”성연신이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당신이 해준 밥밖에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는데 어떡해요.”그도 당연히 심지안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위를 속일 순 없었다.밥이라곤 입에 대지도 못하던 그가 심지안이 만들어준 음식은 마치 마력이 있는 것처럼 술술 넘어갔다.비록 산해진미는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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