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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네가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실망할 일은 없을걸?”

임유진은 이 말만 남기고 다시 양말을 신고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유진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나중에 절대 실망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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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 임유라는 매일매일을 불안에 시달렸다. 그날의 하 감독의 태도는 이상하다 못해 지금까지도 이해되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그다음 날 하 감독은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총감독마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심지어 교체된 이유를 제작진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함정이었다. 하지만 유라는 왠지 모르게 총감독까지 교체된 이유가 하 감독의 일과 관련 있으며 나아가서 유진과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의심만 하기를 며칠째, 유라는 하 감독이 오른손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오른손은 하 감독이 임유진을 때린 손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자, 유라는 몹시 불안해졌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날 하 감독이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 임유진에 대한 태도가 변했어. 게다가 하 감독이 이렇게 된 건…… 너무 우연의 일치 아닌가? 아니면…… 임유진 뒤에 정말 대단한 백이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대단한 백이 있다면 유진이 고생을 하며 길거리에서 청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혼자서 끝내 결론을 얻어내지 못한 유라는 그날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하지만 임정호는 작은딸이 큰딸더러 술 접대를 하게 했다는 걸 듣기 바쁘게 유라를 째려보았다.

“넌 어떻게 네 언니한테 술 접대를 시킬 수가 있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안은…….”

“술 접대가 뭐 어때서요? 게다가 유라도 우리 집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유라가 유명해져야 우리 가족도 잘 먹고 잘살 거 아니에요. 설마 당신, 그 감옥 다녀온 큰딸한테 희망 거는 거예요?”

한참을 말하던 임정호는 방미령의 말에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아빠, 언니가 설마 정말 무슨 백이라도 찾은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으면 하 감독이 언니를 그렇게 쉽게 놔줄 리가 없어. 더욱이 지금은 아예 입원해 계셔!”

유라가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정호도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오히려 옆에서 보고 있던 미령이 끼어들었다.

“당신이 걔 아버지잖아요. 뭐라도 좀 물어봐 봐요. 만약 진짜로 백이 있다면 집에도 알려줘야 할 거 아니에요. 백이면 괜찮지만, 또 무슨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우리 집에 피해를 줄까 봐 그래요. 감옥이 얼마나 험악한 곳인데 그곳에서 어떤 사람과 알게 되었는지 누가 알아요?”

미령은 말하면 말할수록 자기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꼴에 무슨 돈 있는 사람을 백으로 뒀겠어? 딱 보니까 무슨 깡패거나 감옥에서 나쁜 사람들과 어울렸겠지.’

그걸 듣고 있던 정호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유진 그 계집애가 만약 또 우리 집에 피해를 준다면 당신이 말 안 해도 내가 그 애 발목을 분지를 거야!”

한편, 집에서 음식 준비를 하면서 혁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유진은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얼른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유진 앞에 보이는 사람은 유진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혁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유진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세 사람은 그녀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집안으로 쳐들어왔고, 심지어 맨 앞에 서 있던 정호는 들어오기 바쁘게 밑도 끝도 없이 유진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감옥에서 설마 이상한 사람들과 친분을 쌓은 거니? 내가 말해두는데, 만약 집안에 또 피해를 주면 그때는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다!”

“제가 뭘 했다고 저한테 이러세요?”

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자기 아버지를 바라봤다.

“너 사람 시켜서 하 감독 팔 부러트린 거 아니야? 하 감독이 뭘 했다고. 그저 술대접 좀 하라고 한 게 뭔 잘못이라고 사람이 어쩜 그렇게 모질게 굴 수 있니? 옥살이하고 왔으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니. 쯧쯧, 대체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길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어?”

하지만 여전히 필터 없이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를 보자 유진은 일순 냉소가 흘러나왔다.

“벌 받을 사람 벌 받았네요. 그리고 술 접대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당신의 착한 딸 임유라더러 하라고 해요. 저한테 더러운 수작 부리지 말고!”

“그건 네가 얘한테 빚진 거잖니! 너만 아니었으면 얘…….”

“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지도 않았겠죠. 그러니까 전 얘한테 빚진 적 없어요!”

유진의 반박에 지켜보고 있던 유라가 이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언니, 나 언니 원망한 적 한 번도 없어. 그러니 아빠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이 정도 연기력이면 벌써 오스카상도 받고 남았겠는데 왜 연기할 때는 이런 실력을 보여주지 않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자기 딸에게 완전히 넘어간 미령은 얼른 유라를 달래며 유진을 뚫릴 듯이 째려봤다.

“유라야, 아무리 화나도 그렇지, 어쩜 동생한테 화풀이할 수 있어? 너희 아버지도 네가 나쁜 길로 빠져들까 봐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니. 네가 또또 감옥에라도 간다면 우리 더는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녀!”

“당신도 그만해, 쓸데없는 얘기 그렇게 많이 해서 뭐해? 아무튼 너 얼른 하 감독한테 가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용서를 구해. 이 일로 우리 유라한테 절대 피해 가지 않도록 해. 알아들었어? 만약 네가 또 유라 앞날을 망친다면 내가 그땐 너 가만 안 둬!”

아버지의 명령조가 담긴 말투에 유진은 웃음만 나왔다.

‘설마 진짜로 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이제는 나 같은 건 작은딸한테 완전히 밀려났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나?’

“저 사과 안 해요. 그리고 다들 나가주셨으면 좋겠네요. 여긴 그쪽들 반기지 않으니까.”

유진의 말을 듣자마자 정호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버럭 화냈다.

“네가 감히!”

그는 말하면서 유진을 향해 뺨을 날렸다.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갑자기 발목에 전해지는 통증 때문에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일전에 다쳤던 발목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진은 운명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 맞을 준비를 했지만, 그때 마침 손 하나가 정호의 손을 허공에서 막아버렸다.

“혁아!”

유진은 저도 모르게 지혁의 이름을 불렀다. 지혁이 마침, 이 순간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지혁은 방안에 들어온 세 명의 불청객을 차가운 눈으로 훑었다. 일전에 유진의 자료를 조사한 적이 있는지라 지혁은 당연히 이 세 사람이 각기 유진의 아버지, 계모 그리고 이복 여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가시죠!”

이윽고 차가운 목소리가 지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내 딸 때리겠다는데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당장 이거 못 놔?”

손목이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만 같아 정호는 체면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방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대로 팔을 영영 못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호의 소원대로 지혁은 정호를 문밖으로 던져버렸다.

미령과 유라는 서둘러 달려 나가 정호를 부축했다.

“임유진, 너 외간 남자가 네 아버지를 이렇게 대하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니?”

“저 남자 누구니?”

미령의 지적에 정호까지 따져 물었다.

“집안 꼴 아주 잘 돌아가네. 임유진, 아주 능력자네,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남자를 꾀었…….”

하지만 버럭 소리치며 비아냥거리던 정호는 갑자기 하던 말을 멈췄다. 왜냐하면 정호를 노려보고 있는 남자의 눈에서 정호는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을 계속했다간 생명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잠시 멈춘 그 찰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이 방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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