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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시후는 스쿠터를 타고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

그는 엠그란드 회사 주차장 한편에 스쿠터를 세웠다. 시후가 시동을 끄자 곧 그의 맞은 편으로 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들자 한 젊은 커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고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자는 한 눈에 봐도 이지적인 느낌의 미남이었다. 한편, 여자 쪽은 화려하게 빼입고 있었다. 다소 천박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녀 또한 미인이었다.

알고 보니 두 미남 미녀는 유나의 사촌 김혜빈과 그녀의 약혼자 임현우였다.

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맞닥트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시후는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그들에게서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시후 씨 아니에요~" 시후를 발견한 혜빈이 큰 소리로 불렀다.

혜빈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시후는 소름이 온몸을 타고 퍼지는 것을 느꼈다.

아는 척하는 사람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없었기에, 시후는 예의상 웃으며 물었다. "아, 혜빈 씨... 여기엔 무슨 일로 왔죠?"

혜빈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 "저희야 엠그란드 그룹 이태리 부회장님을 만나러 왔죠."

그리곤 그녀는 임현우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로이드 그룹은 전부터 엠그란드 그룹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거든요. 앞으론 로이드 그룹뿐 아니라 WS 그룹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시후는 로이드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사업 파트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다. 막 회사를 인수했기에 세부 사상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현우 씨, 사업 수완이 대단하시네요! 두 분 정말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했다.

현우는 시후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이 새끼는 어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지금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을 수 있는 거지?

어째서, 왜, 유나 씨 같은 사람이 이런 루저 새끼랑 결혼을 한 거지?

이 인간만 없었다면, 난 유나 씨와 잘 되었을 텐데... 누가 외모도, 인성도, 다 뒤떨어지는 김혜빈이랑 약혼하고 싶어 하겠어?

현우는 가식적인 어조로 물었다. "그러는 시후 씨는 여기에 어쩐 일이죠?"

"전 이력서를 내러 왔어요." 시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력서요?" 현우는 경멸을 담아 코웃음을 쳤다. "시후 씨가요? 시후 씨가 엠그란드에 이력서를 내러 왔다고요? 지금 농담해요?"

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현우 씨와는 상관 없잖아요."

그들이 시후를 불러 세운 건 그를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엔 혜빈이 바통을 이어받아 시후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현우 씨~ 시후 씨 말대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시후 씨, 학위는 있어요?"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능력은 있고요?"

"시후 씨 같은 사람은 보안팀에 지원 했어도 엠그란드 쪽에서 사절이라고요.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길거리에서 고물이나 주워다 파는 게 안 낫겠어요? 그러면 한 달에 적어도 70, 80만 원은 벌겠죠."

그리고 나서 그녀는 시후의 발치에 물병을 내던지며 히죽 웃었다. "자, 그거 드릴 테니까 갖다 파세요. 어디 가서 제가 시후 씨 신경도 안 썼다고 그러지 마시고요."

임현우도 웃음과 함께 조소를 보냈다. "시후 씨 같은 구제불능도 가족은 가족이니까, 도와 드릴게요~ 제가 엠그란드 그룹 부회장님이랑 아는 사이니까, 화장실 청소부 자리 좀 마련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시후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제가 뭘 하든 알 바 아니잖아요? 두 사람 일이나 신경 쓰세요. 엠그란드 그룹은 초대기업이라서, 당신 같은 쓰레기와는 협업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지금 누가 쓰레기라고?" 현우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단 거지?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시후는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하고는, 임현우의 분노 어린 외침을 뒤로 한 채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시발! 거기 서! 거기 서라고!! 내 말 안 들려?!"

임현우는 성큼성큼 걸어가 이내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후를 따라잡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시후의 얼굴에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엠그란드 그룹 건물 안이었다. 괜한 소동을 일으켜 사업 파트너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으드득 "한 번만 봐준다, 진짜... 으득 다음엔 안 봐줄 거니까!" 그는 이를 갈았다.

그런 임현우를 보고는 은시후는 코웃음 치며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임현우, 당신이란 인간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조만간 후회하게 될 거야, 당신!"

"너 이...."

현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달려들려는 것을 혜빈이 말렸다. "저런 쓰레기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 없잖아요, 현우 씨가 참아요."

그는 여기에서 손을 올리는 게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기에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

***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후는 곧바로 빌딩 최상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향했다.

박 기사가 이미 엠그란드에서 그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을 담당한 사람은 이태리라는 여성이었다.

이태리는 한국에서도 저명한 여성 사업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에 탁월한 사업 수완까지 겸비하고 있었기에, 젊은 나이에 엠그란드 그룹의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엠그란드 그룹의 성공 배경에는 그녀가 있었다.

이제 엠그란드 그룹은 인수되었기에, 전 회장은 은퇴했고 부회장 이태리는 새로 취임하는 회장을 보좌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태리는 시후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신임 회장이 이렇게 젊고 매력적인 남자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일단 제 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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