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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다음 날 아침, 유나는 밤새 준비한 두툼한 제안서를 품에 꼭 안고, 시후와 함께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

유나는 65층짜리 빌딩 앞에 서자, 현 상황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어떻게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1조 원 규모의 사업이다.

지나가던 거지가 1조 원을 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유나는 모두의 앞에서 할머니와 약속을 했기에 어떻게든 이번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

우두커니 서서 발만 내려다보던 유나는 서류 뭉치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시후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유나 씨,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유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시후 씨는 여기서 기다려 줄래요?"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본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걸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시후는 더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태리 씨, 조금 전에 제 아내가 당신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태리 씨가 해야 할 일은 아시겠죠?"

"물론이죠,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께서 오시면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엠그란드 그룹과 대현 그룹이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다수 있습니다. 대현 그룹 쪽에서 이번 호텔 건설 사업 건에 대해서도 협업 요청이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사업안 검토를 위해 제안서와 자료도 모두 제출 받은 상태인데 어떻게 할까요?"

"앞으로 두 번 다시 대현 그룹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

***

그 사이, 유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부회장님과 만나게 해 달라고 면담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일류 대기업의 부회장인 이태리가 자신과 만나 줄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비서가 그녀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유나 님 맞으시죠? 부회장님께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저를 따라오세요. "

"네...? 아, 네! " 면담 약속을 잡기 위해 온 거였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니... 자신이 올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어리둥절해하면서 비서를 따라갔다.

이태리 부회장 같은 성공한 사업가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도저히 무슨 영문인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비서의 뒤를 쫓았다.

부회장실에 도착하자 이태리가 의자에서 일어나 공손히 유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유나 씨. 저는 엠그란드 그룹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태리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유나는 국내에서 가장 저명한 여성 사업가를 직접 만나게 되자, 목소리가 떨리는 걸 겨우 참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태리 부사장님! 오늘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엠그란드 그룹에서 사업 준비 중인 호텔 건설 프로젝트 건으로 찾아 뵈었습니다. 저희 WS 그룹은 다른 회사들에 비해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저희는 맡은 사업에 항상 최선을 다하여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에서는 인정받고 있습니다!"

유나는 서류 파일을 건네며 "이번 메가 프로젝트를 위해 저희 WS 그룹에서 준비한 포트폴리오입니다. 부디 검토 부탁드립니다."

태리는 싱긋 웃으며 서류를 건네받았다. 잠시 서류를 훑어본 후 태리가 입을 열었다. "유나 씨, 저는 WS 그룹이야말로 저희 엠그란드가 찾던 완벽한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유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 와중에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일이 왜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이렇게 쉽고 빨리 정해지는 거였던가?’

이태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WS 그룹이 저희의 요구사항이나 자격요건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회장님께서 유나 씨를 높이 평가하고 계셔서 이번에 새로이 WS 그룹과 거래를 해보고자 합니다. "

"회장님께서요?" 유나는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놀라서 되물었다. "혹시 회장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은 회장님이라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은 회장님이요?"

"네, 회장님께서 신원이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 그런 가요. 저는 제 남편 말고 은씨 성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태리가 유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기에, 그녀는 그저 말없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남편 '은'시후 말고는 은씨 성을 가진 사람을 못 봤지만, 아주 아주 먼 친척이겠거니 싶었지 고아에 골칫거리 취급 받던 남편이 그 '은 회장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다.

"유나 씨가 제안서에서 제시한 계약 금액이 150억 원이었죠?"

유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액수가 너무 큰가요?"

이태리는 소리 내어 웃으며 "하하 아뇨, 사실 예상한 거랑 조금 달라서요."

"무슨 말씀이시죠?"

태리는 잠시 책상으로 돌아가, 책상 위 서류 더미에서 파일 하나를 집어 와, 유나에게 건넸다. "회장님께서 견적서 금액을 300억에 맞추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저희 쪽에서 미리 300억 원 규모의 계약 초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지금 당장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싶습니다만..."

"네? 아, 저기 이건..."

유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제대로 얘기나 들어줄까 싶었던 엠그란드 그룹 쪽에서 미리 계약을 준비해 두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계약 규모는 두 배가 되었다!

할머니의 목표 금액은 150억 원이었는데, 계약서에 적힌 숫자는 300억 원이다!

문득 전날 밤 가족회의에서 자신에게 이 일을 맡으라고 말하던 남편의 진지하고 확신에 찬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 했을까?

그들이 엠그란드 그룹 사옥 입구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번 일에 비관적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기라도 했다는 걸까?
댓글 (2)
goodnovel comment avatar
박동성
부회장에서 부사장으로 직책이 떨어짐 ㅜ
goodnovel comment avatar
GOO “GOO” KHG
회장에서 갑자기 사장으로 직첵이 바뀌었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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