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취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주재상주재상의 얼굴에서 노기가 서서히 사라지자, 태사의에 앉은 주재상은 오히려 우울하기 그지없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만약 네가 말하지 않으면 제왕비 노릇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주씨 가문에 말 잘 듣는 아가씨가 어디 한둘이냐.”“할아버지 손녀 말 좀 들어주세요, 손녀가 절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 주명취는 엉엉 울며 눈물이 눈에서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데, 말할 수 없이 가련하고 처량해서 누구든 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재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줄곧 눈물을 믿지 않는다.“눈물을 거두고, 당장 나가거라!” 주재상은 차갑게 말했다.주명취의 얼굴에 마침내 두려움과 후회의 빛이 떠오르며, 급하게: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희상궁과 할아버지의 인연을 이용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확실히 제가 태상황 폐하의 약에 독을 넣으라고 희상궁에게 시켰습니다, 손녀는 그저 태상황 폐하께서 다시 좋아지셔서, 초왕이 다시 득세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손녀도 큰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너는 어찌 희상궁과 나의 관계를 알았느냐?” 주재상의 목소리가 음산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주명취는 할아버지의 이런 무서운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놀라서 입술을 덜덜 떨며 뭐든 다 줄줄 불며,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이 일은 할머니가 의견을 내신 거로, 할머니 말씀으론 희상궁이 널 책임질 거다, 네 뜻을 얘기만 하면 희상궁이 자기 목숨을 버리더라도 널 위해 하고자 할 거라고, 저도 안 믿었는데 희상궁에게 얘기했더니, 희상궁이 바로 알았다고 했어요.”말을 마치고 주명취는 다시 서둘러: “할아버지, 희상궁은 절대로 태상황 폐하를 시해하려 했던 사실을 입 밖에 낼 리 없고, 할아버지 이름이 거론될 일은 더더군다나 없으니 안심하세요.”주재상은 눈을 감고 얼굴 전체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게, 마치 나무토막 같다.주명취는 벌렁벌렁 가슴이 뛰어 손수건을 꼭 쥐고 어찌
주명취 동생 주명양을 만나다.키가 호리호리하고 용모가 수려한 남자, 주재상은 눈을 내리깔며, “왕비는?”“그녀는 총명한 사람이니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고 입단속을 철저히 할 것입니다.” 주재상은 눈을 감고 눈에 띈 살기를 거두었다.주명취는 서재를 떠나 바로 가지 않고 동생 주명양의 방으로 갔다.주명양은 올해 막 15살이 되었는데 용모가 주명취와 정말 흡사하지만 교만하고 자기자랑이 심한 편이라 주명취의 침착한 성정만 못하다.주명양이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의 병이 낫고 벼슬이 계속 높아져서, 이 때문에 주명양은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받았고, 그 정도가 적자인 오빠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주명취는 사실 처음부터 할아버지는 동생을 초왕의 후궁으로 주실 생각이 없으셨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만약 동생이 초왕부로 시집을 가면 정비의 자리는 조만간 동생 손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그래서 주명취는 주명양이 제왕의 후궁이 되는 것을 결사반대한 것으로, 이건 바로 정비인 주명취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할아버지가 주명취를 중용한 것은 그녀의 성격이 침착하기 때문으로 만약 자기가 사단을 일으키면 할아버지가 그녀를 버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여기까지 생각하고 주명취는 걱정 근심이 갈수록 더했지만 주명양을 만나니 여전히 큰 언니의 따듯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큰 언니,” 주명양이 주명취를 보고 뒤돌아오며 기뻐한다. 언니의 손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고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것이 방금 안에서도 가만 있질 않았음이 짐작이 간다, “언니한테 새 놀이 보여 줄게.” 주명취는 한 줄기 피비린내를 맡고 동생의 취미가 떠올랐다. 주명취는 진작부터 일고 있었지만 이번엔 또 누구를 괴롭혔나 걱정이다. 과연, 주명취를 끌고 간 곳에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하녀 하나가 보였는데, 그 하녀는 열 서너 살 즈음으로 머리 위에 그릇을 올려 놓았는데, 그릇 안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그 하녀가 누가 오는 것을 보고 아주 조금 움직이자, 자기도 모르
초왕과 결혼을 부추기는 주명취, 할머니의 변고주명양이 근심에 쌓여, “전에 엄마가 나를 초왕한테 시집보내려 했는데, 난 초왕한테 시집가기 싫었어, 그리고 후궁이라지 뭐야, 난 첩은 되고 싶지 않아.”주명취의 눈꼬리가 빛나며, “초왕은 그래도 나은 편이야, 태후께서도 초왕비를 심하게 질책하시진 않으실 걸, 초왕의 생모가 현비마마시고, 현비마마는 태후의 친조카거든, 이런 관계가 있으니 태후는 초왕부 사람들에게 상당히 관대하셔, 너도 봐, 초왕비가 혼인한 뒤로 입궁해서 문안한 적이 별로 없는데 태후께선 아무 말씀도 안하시잖아.”“초왕……”주명양의 머리속에 서서히 절세미남이 떠오르며,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성문에서 였는데 그 때는 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조정으로 개선할 때라, 크고 멋진 준마를 타고 금빛 갑옷을 입은 모습이 위풍당당했다.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초왕을 알고 지냈는데, 그때 초왕이 주부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초왕이 큰언니를 보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주명양은 담담하게: “난 초왕에게 시집가고 싶지 않아.”주명취는 어리둥절해 하며, “왜?” 주명취는 사실 동생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초왕이 올 때마다 주명양은 몰래 문 뒤에 숨어 훔쳐보곤 했으니까.“초왕은 원씨 집안 딸이랑 결혼했잖아, 원경릉같은 여자랑 결혼한 사람인데, 난 초왕 맘에 안 들어.” 주명양이 말했다.“초왕은 원씨 집안 사람의 흉계에 빠진 거야,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게다가 할아버지께서 네가 혼례를 치르겠다고 하면 초왕이 원경릉과 헤어지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던 걸.”주명양은 주명취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고, “언니 왜 계속 나를 초왕한테 시집 보내려고 하는 건데?”주명취가: “언니는 널 위해서지, 초왕은 보기 드문 호남이라 그 사람한테 시집가면 분명 행복할거야.”주명양은 냉소를 지으며, “그래? 그렇게 좋은데 언니는 왜 안 갔어?”주명취는 눈빛이 다소 어두워지며, “그건 그 사람이 이미 원경릉이랑 결혼을 했기 때문이야.”“정후는 그때 공주부에서 왜 계략을
실망스런 제왕과 화가 난 정후말씀을 못하신다고?주명취는 넋이 나간 듯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너무 잔인해요, 너무 잔인합니다.”제왕은 의혹의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왜? 누가 잔인한 거요?”주명취는 할아버지의 그 냉정한 눈빛을 떠올리고 다시 이번 잔혹한 행동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 본처로 살았건만, 그저 희상궁에 대한 험담 한 마디 했다는 이유로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어야 하다니.주명취는 문득 겁이 났다.제왕의 품에 몸을 파묻고 그녀는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연로하신 데, 이런 화를 입으셨으니,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제왕은 주명취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한다, “물어보니, 주부의 어느 계집종이 보약을 뜨거운 물이라고 할머니께 잘못 가져다 드렸는데, 할머니께서 몸이 허약하셔서 보약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지라 성대가 망가져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요. 다음날 어의를 청해 맥을 짚어보니 괜찮다고 합니다.”주명취는 마음속으로 제왕의 멍청함을 꾸짖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변명조차 제왕은 믿고 있다.이런 단순한 바보에게 앞으로 어떻게 그녀가 의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태자의 지위를 빼앗을 수나 있을까? 주명취가 가장 먼저 직감적으로 느낀 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점이다.만약 문호 오빠였으면 진작에 사건을 통찰하는 비범함으로 앞으로 방비를 강화해 안전하게 그녀를 보호했을 것이다.우문호를 떠올리자 주명취의 마음이 아려 온다.그때 우문호를 함정에 빠뜨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전력을 다해 제왕을 밀고 있었고, 태상황의 병도 위중해서 문호 오빠를 돌아볼 여지가 없었기에 주명취는 눈물을 머금고 우문호를 포기했다. 그녀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싫었기에 몰래 사람을 시켜 정후부의 둘째 부인에게 접근해, 둘째부인이 정후에게 꾀를 전하게 하고 공주부에서 일이 터졌을 때, 주명취는 일부러 원경릉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엔 그저 황제가 체면을 중시하니 기껏해야 문호 오빠가 원경릉을 후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다초어의는 이 날도 여전히 와서 우문호의 상처를 치료하며 이 봉합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자, 탕양이 사람을 시켜 원경릉을 모시고 왔다.원경릉은 초어의에게: “이건 녹는 실이라 인체에 흡수되요, 실밥 빼낼 필요 없어요.”“녹는 실을 만들 수가 있습니까? 대단해요, 대단해!” 초어의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문호는 오히려 상당히 괴로워하며, “그 말은 앞으로 이 실을 달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니냐?”“맞아요, 실 없으면 죽고 실 있으면 살죠.” 원경릉이 비꼬듯이 말했다.요 이틀간 같이 있는게 유쾌해서 자연스럽게 서로 웃긴 소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됐다.서일은 초어의의 의술에 탄복하며 왕야의 상처를 치료하는 틈에 얼른 앞으로 나가 가르침을 청하며, “어의, 요즘 내 몸이 이상한데, 날 좀 봐줄 수 있겠습니까?”“서시위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초어의는 겸손하고 온화해서 서일이 일게 왕부의 시위라고 함부로 보지 않는다.“요즘 계속 졸고, 머리가 멍한 게, 방귀가 잦고 냄새가 심합니다. 입냄새도 심하고 머리에 기름이 끼고 엉덩이에도 종기가 몇개나 났습니다. 어의, 이리 와서 내 종기를 좀 봐 주십시오, 특히 이게……” 말하며 어의를 병풍 뒤로 끌고 간다.원경릉이 바로 병풍 앞에 앉았는데 서일의 옷 벗는 소리가 들려 상당히 어색했다.우문호는 병풍 쪽으로 화를 내며: “서일, 당장 방에 가서 벗어.”병풍안에서 서일의 긴 방귀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리더니 막판에 거의 폭발음 같은 것이 울리며 순간 뚝 하고 그쳤다.“딱 이 냄새예요, 어의, 보세요, 저 무슨 병인가요.” 서일은 우문호의 열 받은 모습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어의는 코를 막고 밖으로 도망가며, “알았어요, 서시위, 무슨 병인지 알았습니다, 비허곤습(脾虛困濕)으로 비위가 약해지고 소화기능이 떨어진 것이니 돌아가서 이틀 치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냄새가 심해서 원경릉은 숨을 멈춘 채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탕양이 얼른 뒤를 따라 나오며 우문호는 기다시피
정후부의 초대진심으로 항복이다.천천히 시선을 넓혀, “그럼 어서 나한테 이혼장 써주면 되겠네, 나보다 더 예쁜 여인을 왕비로 맞으면 돼지.”우문호는 마음 속으로 열이 뻗쳤지만, “조만간 그럴 거야.”왕비 노릇하기 싫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자기가 되겠다고 달려든 거 아닌가?우문호는 화제를 바꿔, “방금 탕양 말이 정후부 사람이 다녀갔다 던데.”“너 계속 거기 앉아 있을 거야?” 우문호는 어쩔 줄 모른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가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아서, 왕비의 책임을 다하도록 여기서 널 돌보겠다고 했어.”“누가 너한테 돌봐 달라고……” 우문호가 이렇게 말하다가 곧 뜻을 알아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희 아버님 초조하신 가 보다.”“왕야 덕분이지,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것 같지만.”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화를 내며: “우린 비겼으니까 누구도 말 꺼내기 없기다.”“말도 못 꺼내냐, 왕야 너 켕기는 게 얼마나 많은 거야?”“원경릉!” 우문호가 일갈하며, 그녀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니 다시 마음이 약해서 말을 삼키고, “네 입을 꿰매지 못한 게 진짜 한이다.”원경릉의 눈이 아래를 향해, “봉합하게? 왕야는 내가 아직 완전히 숙련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너 지금 내 덕에 다 나았잖아?”우문호는 기가 막히고 창피하기도 해서, “이 일은 다시 거론하지 말자, 다시 거론하면 일가족을 멸할 줄 알아.”원경릉은 킥킥거리며, 바로 비꼬아 주려다 탕양이 다시 정후부 하인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봤다.“왕비 마마, 정후부 사람이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탕양이 말했다.원경릉은 살짝 눈을 들고, “무슨 일이야?”그 하인은 초왕을 보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며, “소인 왕야를 뵙습니다, 왕비마마를 뵙습니다.”“무슨 일이냐?” 초왕이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하인은 이런 엄숙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를 듣고 이빨을 덜덜 부딪히며, “예…… 후작 나리께서 소인에게 마마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정후의 생각과 둘째 노마님의 방문어의가 진찰을 마치자 정후는 비로소 어의와 서일을 만류해 본관에서 차를 마셨다.정후는 넌지시 서일에게, “왕야의 상처는 좀 나아지셨나?”“후작 나리께서 마음 졸이셨지요, 왕야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서일은 역시 바깥이 제격이다.“그러면……” 정후는 웃으며, “왕비마마는 손수 왕야를 돌보시는가? 내 딸이 우리집에서 워낙 응석받이로 자라서, 왕야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왕야는 왕비마마께 화를 내신 적이 없습니다.” 서일이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애먼 소리를 하는데 당연히 이건 탕양이 당부한 것으로, 만약 정후가 왕비와 왕야의 관계가 공고하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왕비마마를 못살게 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정후는 그다지 믿지 못하겠지만, 하인이 말하길 왕비마마가 왕야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 직접 눈으로 봤다고 하니 혹시 원경릉이 정말 초왕의 환심을 산 게 아닐까?어의가 여기서 절묘한 어시스트를 펼치는데, 어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탄식하길: “왕야와 왕비마마의 사이가 정말 좋으시기도 하지, 요 며칠 왕야의 상처를 치료하시느라, 왕비마마께서 내내 옆에 계셨으니.”당연히 어의는 원경릉이 다가온 게 어의를 몰래 스승으로 삼으려는 의도인 것을 몰랐다. 원경릉은 한의학은 잘 모르지만 한의학 요법은 신뢰하는 것이, 무릇 약물 연구 개발을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한약에서 얻어낸 성분으로 약을 만든 경험도 있기 마련이다. 말라리아와 홍반성 루프스를 치료하는 아르테미시닌도 개똥쑥에서 직접 추출하거나, 개똥쑥의 함량이 비교적 높은 청호산(青蒿酸)에서 추출해 반합성하여 만든다. 그래서 요 며칠 원경릉은 계속 어의에게 한의학을 배우는 방법을 생각했다.정후는 초어의의 말을 듣고, 이건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초왕이 왜 원경릉에 대한 관점을 바꿨는지는 상관없고, 어찌 됐든 잘된 일이지만 지금 주씨 가문엔 밉보인 게 확실하고 되돌릴 여지도 없으니 차라리 초왕에게 기대하는 편이 낫다.초왕은
초왕을 보러 온 정후부 둘째 노마님 일행둘째 노마님의 태도는 점점 더 온화해 지며, “왕야를 방해 하는 건 아니겠죠? 만약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왕비께서 저희 대신 안배를 좀 해 주세요.”원경릉이: “안배할 필요 없어요, 직접 소월각에 가시면 초왕은 안에 있습니다.”난씨가 이 말을 듣고, 일부러 의아한 척 하며, “왕야와 왕비마마가 같은 방을 쓰지 않으세요? 두 분은 부부인데다 아직 후궁도 없는데 왜 각방을 쓰세요?”이런 극도로 도발적인 말을 원경릉은 다행히 그 자리에서 직접 듣지 못했으나 희상궁이 옆에서: “왕야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으셔서 왕비마마의 잠을 방해할까 소월각을 옮겨 가셨습니다.”난씨는 희상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 넌 누구지? 왜 한번도 본적이 없지?”“희상궁입니다, 태상황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지요, 태상황 폐하께서 초왕부에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희상궁을 출궁시켜 제 시중을 들게 하셨죠.” 원경릉이 평소처럼 말했다.둘째 노마님이 이 얘기를 듣고, 얼른 일어나 희상궁에게 예를 갖추며, “태상황 폐하 곁에 계시던 희상궁이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둘째 노마님 괜찮습니다, 전 한낱 종입니다. 주인을 모실 뿐이지요.”희상궁의 주인은 초왕비다. 둘째 노마님 일행은 초왕비를 전혀 공경하지 않으면서, 초왕비의 종인자신에게 예를 갖추다니, 이게 대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희상궁의 비유를 둘째 노마님은 당연히 알아 차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상궁은 태상황 폐하 곁에 있던 사람으로 어엿한 궁녀신데, 저는 봉호를 받은 것이 없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지요.”희상궁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참기 힘들었다.봉호를 받은 게 없는 몸이, 그래 이번엔 또 무슨 법도를 내세우려나? 인사 예절은 인사 예절일 뿐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 없다.원경병은 원경릉을 보고, “사람들이 요즘 언니랑 왕야가 잘 지낸다는데 정말이야?”원경병은 매사 대놓고 말하는 편으로 알고 싶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