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왕을 보러 온 정후부 둘째 노마님 일행둘째 노마님의 태도는 점점 더 온화해 지며, “왕야를 방해 하는 건 아니겠죠? 만약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왕비께서 저희 대신 안배를 좀 해 주세요.”원경릉이: “안배할 필요 없어요, 직접 소월각에 가시면 초왕은 안에 있습니다.”난씨가 이 말을 듣고, 일부러 의아한 척 하며, “왕야와 왕비마마가 같은 방을 쓰지 않으세요? 두 분은 부부인데다 아직 후궁도 없는데 왜 각방을 쓰세요?”이런 극도로 도발적인 말을 원경릉은 다행히 그 자리에서 직접 듣지 못했으나 희상궁이 옆에서: “왕야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으셔서 왕비마마의 잠을 방해할까 소월각을 옮겨 가셨습니다.”난씨는 희상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 넌 누구지? 왜 한번도 본적이 없지?”“희상궁입니다, 태상황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지요, 태상황 폐하께서 초왕부에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희상궁을 출궁시켜 제 시중을 들게 하셨죠.” 원경릉이 평소처럼 말했다.둘째 노마님이 이 얘기를 듣고, 얼른 일어나 희상궁에게 예를 갖추며, “태상황 폐하 곁에 계시던 희상궁이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둘째 노마님 괜찮습니다, 전 한낱 종입니다. 주인을 모실 뿐이지요.”희상궁의 주인은 초왕비다. 둘째 노마님 일행은 초왕비를 전혀 공경하지 않으면서, 초왕비의 종인자신에게 예를 갖추다니, 이게 대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희상궁의 비유를 둘째 노마님은 당연히 알아 차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상궁은 태상황 폐하 곁에 있던 사람으로 어엿한 궁녀신데, 저는 봉호를 받은 것이 없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지요.”희상궁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참기 힘들었다.봉호를 받은 게 없는 몸이, 그래 이번엔 또 무슨 법도를 내세우려나? 인사 예절은 인사 예절일 뿐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 없다.원경병은 원경릉을 보고, “사람들이 요즘 언니랑 왕야가 잘 지낸다는데 정말이야?”원경병은 매사 대놓고 말하는 편으로 알고 싶으면
우문호는 서일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흰 비단 옷을 입고 허리에 금옥 허리띠를 두른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햇빛이 비쳤다. 환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든 군주 같았다. 느리게 한걸음 한걸음 걷는 그의 모습이 매우 힘겹게 보였다.힘겨게 도착한 우문호는 원경릉을 본 순간 미간이 부드럽게 풀리며 입가에 살짝 미소가 드리웠다. “왕야 괜찮으십니까?” 둘째 노마님이 서둘러 안부를 물었다. 옆에 있던 난씨가 놀란 듯 벌떡 일어났다. 우문호는 원경릉에서 둘째 노마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둘째 노마님. 본왕은 괜찮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원경릉의 곁으로 다가가서는 살짝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화가 났습니까? 오늘은 본왕을 보러오지도 않고, 화내지 마시지오." 원경릉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도대체 어쩌자는거야? 나를 위해서 일부러 다정한 척 하는건가? 사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화안났습니다."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가 안났으면 됐습니다. 오늘 본왕과 함께 밖에 나가자고 했던거 아직 유효합니까?”라고 하였다.‘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아. 손님이 계십니다.” 우문호는 난감한 표정으로 둘째 노마님을 보았다. “그래요? 그럼 못 나가는 건가요?”“시간이 늦었네요. 늙은이는 돌아가 봐야겠습니다.”둘째 노마님이 서둘러 채비를 했다. “이렇게 일찍이요? 좀 더 앉아계시지요.” 우문호가 적극적으로 둘째 노마님에게 말했다. “아니옵니다. 늙은이가 아직 할일이 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있으면 왕야와…… 왕비님을 찾아뵙겠습니다.”둘째 노마님이 말을 하며 난씨와 원경병에게 눈빛을 보냈다. 원경병은 “방금 누이께서도 제게 여기서 며칠 묵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럼……” 둘째 노마님은 재빨리 우문호의 안색을 살피더니 그의 표정이 그닥 불쾌해 하지 않는 것 같자 “그럼 왕비를 잘 모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신경쓰이게
“네가 궁 안에서 술에 취했고, 건곤전에서 일어났던 일이 기억이 안나느냐?”우문호는 하얗게 질린 원경릉의 표정이 우습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원경릉은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탁자 위로 올라가 욕을 퍼부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 상황에서도 다행스럽게 그녀에게 약간의 이성이 버티고 있었기에 아무도 못알아 듣는 영어로 욕을 했었다.하지만, 세상에…… 건곤전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니.“구사의 말에 의하면 황조부께서 너 때문에 놀라서 나한상에 숨어 찍 소리도 내지 않으셨다는데!” 우문호의 말에 원경릉의 머릿 속에서 끊겼던 필름이 이어지는 듯 했다. 원경릉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좌절했다. 그녀는 그런 그녀가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의 우문호의 얼굴에 화가 났다. “모두 너! 당신 때문이라고!”우문호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 말 다신 하지마. 우린 비긴거야.”비기긴 뭘 비겨!?원경릉은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우문호의 처지도 나아지지 않았고 그를 미워해봤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입궁해서 사죄를 드려야겠습니다.”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며 “환복하고 먼저 나가계시면 나도 금방 환복하고 나갈게.”라고 말했다.우문호는 딱히 내키지 않는다는 듯 느릿느릿 일어섰다. “어쨌든 본왕의 상처도 많이 괜찮아졌으니 궁에 같이 들어가서 네가 황조부께 변명을 할때 몇마디 거들어 주겠다.”“고마워!” 원경릉은 태상황을 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가 같이 가 준다니 내심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그 시각, 원경병은 지낼 곳을 고른 후에 바로 봉의각으로 돌아왔을 무렵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 우문호와 원경릉을 보았다. “두분 어디가십니까?”“입궁을 해야해.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원경릉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원경병이 그녀의 표정을 보고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얼른 궁으로 들어가보라고 손짓했다. 원경릉은 가끔 자신의 여동생이 어른스럽고 이해심도 많은 것 같다고 느꼈다.
우문호는 아프다는 듯 가슴을 문질렀다. 이 사태만 진정되면 반드시 원경릉은 아무도 없는 암실로 데리고 가서 개를 풀어 물어 뜯도록 냅둘 것이다. 씩씩거리는 그를 보니 원경릉은 속이 다 시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이도 잠시 파랗게 질린 우문호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너무 세게 물었나 후회가 밀려왔다. “미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고의는 아니야.”우문호는 그녀의 진실한 눈빛에 마음이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다잡았다. ‘마음 약해져서는 안된다. 지금 이 여자는 미안한척 하고 있는거다 절대 믿으면 안된다.’“어휴.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미친 여자처럼 돌변해서 미안해요.” 원경릉은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끊임없이 그에게 사과를 했다. “저는 당신이 정말 나를 위해주는 것을 압니다. 제 친정까지 와서 저를 도와주시고, 제가 술에 취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주절거렸던 것도 기억해주고……. 사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당신의 말에 반박하고, 대들고……”우문호는 진정이 된듯 냉소를 띄며 “됐다. 본왕은 사사건건 알고 싶지 않다.” 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그의 말이 고마웠다. “저는 왕야가 도량이 넓은 분인걸 압니다. 앞으로 태후마마 앞에서 제 칭찬을 좀 많이 해주십시오.”“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했다. 본왕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왕야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남자 다루기 은근 쉽네. 칭찬 몇마디 툭툭 건네면 바로 넘어온다니까.’사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수작을 부리는 것을 눈치챘지만, 눈 한번 딱 감고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였지만, 오히려 궁에 들어가는 그의 마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원경릉과 혼인을 한지 1년. 그 동안 매번 궁으로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궁에서 그를 아끼는 모든 이들의 눈에 근심이 가득했었다.마차가 궁으로 점점 가까워질 수록 그는 이유없이 기분
“태상황께서도 다행히 건강에 큰 지장이 없고, 네가 이런게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짐이 너에게 건곤전과 어서방 청소라는 벌을 내리겠다. 청소를 마치기 전에는 밥도 먹을 생각마라. 우문호! 너도 함께 벌을 받거라.”우문호는 명원제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왜? 내키지 않느냐?” 명원제가 분노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럴리가 있습니까!” 우문호가 재빨리 대답했다.명원제는 한숨을 내쉬며 “너희 둘을 보고있노라면 짐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매번 이렇게 사고를 치는 것을 보니 궁에서 할일이 없어 심심한 모양이야! 넌 다친거 호전되면 날짜를 골라서 경조부(京兆府)로 오거라. 내가 너에게 일거리를 주겠다. 앞으로는 빈둥거리지말고 조정에 도움이 되어보거라!”말을 마친 명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상황 쪽을 보았다. “부황께서는 이런 쓸모 없는 것들에게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에게 연민조차 아깝습니다. 부황에 총애를 힘입어 무슨짓을 할지 모르는 것들입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명원제가 말했다.“가보거라!” 태상황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예상밖의 은은한 미소가 보였다.명원제는 목여태감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명원제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원경릉이 주사를 부린것을 명원제가 몰랐겠는가? 그녀는 왜 술을 먹고 그 행패를 부린걸까? 어쨌든, 어서방에서 있었던 일로 분노해서 술주정을 부린 것 아닌가.태상황이 늘 원경릉을 감싸서 꾸짖을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번엔 원경릉이 제발로 찾아와 벌을 받을 구실을 만들어주니 명원제는 속이 다 시원했다.우문호는 명원제의 말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부황께서 한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내가 잘못들은게 아닐까? 부황께서 나를 경조부로 보낸다고? 나를 그렇게 신임하고 있다는 말인가?’경도(京都)에서 경조부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데 명원제가 우문호를 그곳으로 파견한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빨리 가서 청소하거라!” 태상황이 버럭 소리를
우문호는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쓸었다. 바닥을 쓰는 것은 간단해 보여도 이 안에 숨은 과학 지식이 있다. 낙엽은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잘 흩어진다. 고로 너무 힘을 줘서 쓸면 빗자루가 내는 바람에 낙엽이 오히려 더 흩어지게 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우문호는 낙엽을 잘 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이런 단순 노동으로 온 집중력을 빼앗기니 오히려 그의 마음이 편안해졌다.“왕야. 난각 쪽은 조심하십시오. 거기 위에 말벌집이 있습니다. 그 곳은 건들지마세요.” 상선이 충고했다.“말벌집?”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원경릉이 스쳤다. “예. 말벌들은 사나워서 낮에는 말벌집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이따가 밤에 불을 지펴 태울 예정입니다.”“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상선은 말을 마치고 태상황이 있는 건곤전으로 향했다.순간 우문호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곧장 탕양을 불렀다.“너는 가서 왕비에게 이 곳으로 오라고 하거라. 내가 어서방을 청소하겠다고 전하고.”탕양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왕야 어서방에는 보는 눈이 많은데 왕야께서 청소를 하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괜찮다. 구사가 그 곳에 있으니 문 앞에서 망을 보라고 하면 돼. 사람이 들어오면 내가 구석에 숨어있으면 된다.” 우문호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탕양에게 말했다.탕양은 그의 말을 듣고는 바로 원경릉이 있는 어서방으로 향했다.원경릉은 탕양의 말을 듣고는 우문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하며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빗자루를 들고 건곤전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는 그 곳의 낙엽은 이미 다 치워진 상태였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본왕이 아무래도 힘이 더 세니, 마당은 내가 다 쓸어두었다. 네가 난각과 옆 뜰을 쓸어주면 된다.” “왕야 고마워요.” 원경릉은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우문호는 난각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쪽이다. 가서 쓸거라” 라고 말했다.“이거 마저 쓸고 갈게요.” 원경릉은 바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원경릉은 저 멀리서 탕양이 우문호를 부축해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문호의 얼굴은 누구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있었고, 왼쪽 눈꺼풀은 주먹만하게 부어있었다.“말벌에 쏘였습니까?” 원경릉은 우스꽝스러운 그의 얼굴에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상선도 우문호가 말벌집을 건들였다는 소리에 놀라 한걸음에 달려나왔다. 상선은 우문호를 보고 놀랐다.“왕야. 소인이 분명 말벌집이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경고를 했는데. 왜 벌에 쏘이신 겁니까?”“벌집이 있는지 누가 알았어요!” 우문호는 입 뻥끗하기도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소인이 아까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상선이 되물으며 우문호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갔다.“아이고. 쏘인 곳이 아프시겠습니다. 얼른 어의에게 가셔야겠어요.”상선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이 상황을 지켜본 원경릉은 드디어 이해가 갔다. 우문호는 말벌집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일부러 탕양을 시켜 자신이 어서방을 청소하겠다고 선심을 쓰는 척을 했고, 그녀가 말벌에 쏘이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사악할 수가 있지?’“어의를 어서방으로 부르시지오. 왕야께서는 어서방을 청소해야 하지 않습니까?” 원경릉은 담담하게 말했다.“고약한 여자야! 말벌은 너를 쏘지 않고 왜 나를 쏜 것이냐?” 우문호의 퉁퉁 부은 입술이 우스꽝스럽게 움직였다.“제 발을 제가 찍는다는 말 아시지요?” 원경릉은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우문호의 말이 맞다. 처음에는 말벌들이 원경릉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이리 오지마!’하고 소리를 치자 말벌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다른 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녀도 이 일이 정말 신기했다.우문호는 화가 나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지만 원경릉 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는 어서방으로 향했다.탕양은 그런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왕야께서 일부러 왕비를 골탕먹이기 위해 말벌집을 건들이다니, 어쩜 왕야는 날이 갈수록 유치해진다는
명원제는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방금 손대학사가 다녀갔는데, 그는 입이 방정맞기로 소문난 사람이라서, 만약 우문호가 어서방을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소문이 삽시간에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었다.“고개를 들거라!” 명원제의 목소리가 그의 왼쪽에서 들렸다.우문호는 걸레를 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비파를 안아 반쯤 얼굴을 가리고서는 “부황!”이라고 외쳤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명원제는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아 웃음을 참았다.“못난 놈. 넌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다!”우문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목여야. 제독고를 발라주거라!” 명원제가 명령했다.“제독고?” 목여태감이 어리둥절해하며 “여기……” 라고 말했다.“어서 빨리!”목여태감은 서랍 안에서 작은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상자를 꺼내어 우문호가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왕야. 제독고는 조금 쓰라립니다. 참으세요”“예 괜찮습니다. 전 본래 아픔을 잘 못느낍니다.” 우문호는 태감을 시켜 자신에게 연고까지 발라주는 부황에게 감동했다.그러나 목여 태감의 눈빛이 약간 우문호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우문호는 뭔가 이상했다. 이러한 생각도 잠시 제독고를 바르자마자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어딜봐서 조금 쓰라리는 정도인가? 연고가 뼛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살살! 살살 바르세요!”“이까짓 고통도 참지 못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명원제가 말했다.우문호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삼켰다. 그는 방금 목여태감이 자신을 불쌍하게 본 이유를 알것 같았다. 제독고를 바르고 난 곳은 마치 그의 피부가 아닌 것 같았다. 저릿저릿하더니 이내 감각이 없었다.게다가 눈꺼풀은 점점 부풀어서 이제 눈동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가보거라!” 명원제는 우문호의 꼴을 보더니 어서방 청소하는 벌을 면해주었다.“예. 물러가겠습니다.” 우문호는 황급히 두 손을 맞잡아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부은 눈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문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