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을 헤매는 우문호초왕부 대문 밖에 큰 등롱이 두 개 걸려 있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가운데 불빛만 형형하다.원경릉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구사가 황급히 부축하며, “왕비 마마 조심 하십시오.”“고마워요!” 원경릉은 구사의 차가운 눈빛을 올려다 봤다.“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구사가 그녀를 놓아주며 물었다.원경릉은 발을 삐어서 아팠지만 구사가 부축하게 하고 싶지 않아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걸어 들어갔다.안으로 들어가며 앞만 보고 걷는 탕양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저께 밤 왕야께서 궁을 나오시다가 습격을 당하셔서 상태가 매우 위중하십니다.”“얼마나 심각한데요?” 어쩐지 어제 입궁하지 않았다 싶었는데 습격을 당해서 였구나.“한 때 숨이 멎었으나 제왕 전하가 자금단을 가져오셔서 숨이 돌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으시고 어젯밤 유시(오후 5시~7시)부터 줄곧 열이 높고 호흡이 약해지신 데다 피를 두번 토하셨습니다.” 탕양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제서야 날 찾아온 거예요?” 원경릉이 서두르며 물었다.탕양은 뛰듯이 걸으며, “왕야께서 궁에 알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젯밤은 상황이 너무 다급한 나머지 입궁하여 황제 폐하께 알렸는데, 태상황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시켜 정황을 파악하시고 상선이 저희에게 왕비 마마를 급히 모셔가라고 분부하셨습니다.”탕양도 태상황이 왕비 마마를 돌려보낸 의중을 알지 못했고, 상선이 말하길, 왕비 마마는 왕야를 구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했다.원경릉은 태상황이 어떻게 자신에 대해 알았는지, 황제 폐하가 건곤전에 왔다가 다시 간 것이 초왕부의 전갈을 받았기 때문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구사는 뒤를 따라 걷다가 탕양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원경릉에게, “왕비 마마께서는 태상황 폐하의 의중을 아십니까?”“모르지, 어서 가보자.” 원경릉은 발이 심하게 아픈데다 마음이 너무도 황밍했다. 이건 분명 몸의 원래 주인의 정서가 남은 탓일
사경을 헤매는 우문호와 치료하는 원경릉원경릉은 우문호의 볼을 가볍게 때리며, “우문호, 우문호.”하고 불렀다.“때리지 마세요, 이미 정신을 잃었어요.” 제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원경릉은 다시 얼굴을 때리며, “우문호, 일어나요, 눈 좀 떠보세요.”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을 잡고 가볍게 뒤틀었다가 세게 잡아당기며 “눈 좀 떠보세요.”“당신이란 여자를 할바마마는 뭐 하러 보내신 건지 모르겠군.” 제왕은 손을 뻗어 원경릉을 떼어 놓으려 할 때, 우문호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을 봤다.원경릉은 제왕을 밀쳐내고 약간 화를 내며: “옆으로 비켜요, 방해하지 말고.”제왕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이 여자는 뭐 이리 무자비한 건데?원경릉의 두 손으로 우문호의 머리를 감싸고, 입으론 “우문호씨, 저 좀 보세요.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우문호는 눈 앞이 흐릿하지만 목소리는 들린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추녀”원경릉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기가 누군지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요?”“짐은 습격을……”의식은 깨어났다.“좋아요, 이제 검사할 거예요. 아프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두부 출혈과 내출혈 상황을 확인해야 되거든요.” 원경릉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압박하며 점점 아래로 손을 이동해, 심장, 폐……우문호의 가슴에서 쌕쌕 소리가 나며 전신을 경련하더니, 얼굴색이 붉게 충혈되고 호흡곤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원경릉은 내상으로 기흉이 일어났음을 신속하게 판단했다.“형……”“왕야……”사람들은 우문호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자 놀라 앞으로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원경릉은 재빨리 병풍 뒤로 가 약상자에서 주사를 꺼내 온다.“탕양, 왕야를 눌러주세요, 왕야는 지금 기흉을 일으켜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예요. 공기를 빼내야 합니다.” 원경릉이 말했다.“뭐라구요?” 탕양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놀라서 원경릉 손에 주사만 바라본다.원경릉은 찬찬히 설명하며, 탕양의 손을 끌어다 우문호의 양 팔을 누르게 시키며, “최대한 왕야
우문호의 수혈과 봉합수술“여러분 피를 초왕 전하에게 드린다는 뜻입니다.”호위 대장 서일은 소매를 걷고 손톱을 그어 피가 떨어지니 우문호의 입에 떨어뜨리며 “제 피를 전부 드려도 괜찮습니다.”원경릉은 서일을 보고 “충심이 가상하군요, 하지만 이렇게는 초왕 전하에게 도움이 안됩니다. 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위에 도달할 뿐 혈관에 들어가지 않아요, 당연히 심장으로 흐를 수도 없죠, 어서 지혈하세요, 피 낭비하지 말고.”서일은 놀라서, 입안 가득 피를 머금은 우문호를 보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게 아니라고요?”원경릉은 테스트 시트에 서일의 피를 묻히고, 다른 사람도 원경릉이 말한대로 혈액을 한 방울씩 테스트 시트에 떨어뜨렸다.원경릉은 이번엔 우문호의 손가락에서 피를 채취해 검사했다.잠시 후 원경릉은 테스트 시트를 보더니 “구사, 탕양, 이렇게 두 사람의 피는 쓸 수 있겠어요.”이 두사람은 모두 O형이고, 우문호는 A형이다.구사와 탕양은 뻘쭘하게 서서 원경릉의 지시를 기다렸다.“앉으세요!” 원경릉은 수혈도구를 가져왔다. 긴급 수혈은 상황을 따질 수가 없다. 그저 저들이 모두 심각한 통증이나 질환이 없고,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약도 먹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구사와 탕양은 자신의 피가 그 얇디 얇은 관을 타고 나오는 것을 보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으나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니 그녀의 안색이 한층 더 심각해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혈액 두 팩을 빼더니 원경릉은 침대에 혈액을 걸고 우문호에게 수혈했다.청진기로 내장 파열이나 내출혈 상태를 점검하는데,혈흉이 잡힌다. 방금 혈흉 상태에서 기침을 하니 기흉이 생긴 게 틀림없다.원경릉은 다시 천자로 피를 빼내자 우문호는 거의 정신이 돌아와서 눈으로 계속 원경릉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지게 보는데, 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흉강에서 피를 뽑아 내도 우문호는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원경릉의 이마에 피가 튀는 것만 보였다.그리고 우문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원경
제왕의 오해원경릉은 일어나 시큰거리는 손목을 움직이는데, 어깨와 목은 뻐근하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좌중에 있는 사람들은 인턴도 아니고 심지어 간호사 자격도 없으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없으니 당연하다.“왕비 마마, 많이 힘드시면 기상궁에게 와서 도와 달라 하심이 어떠십니까? 기상궁은 바느질 솜씨가 출중하지요.” 서일이 머쓱한 듯 건의했다. 방금 체면을 구겼으니 이번 기회에 만회해 볼 심산인 모양이다.“만약 왕야께서 옷이라면 기상궁이 와서 도와주면 좋지요.” 원경릉이 담담하게 얘기했다.제왕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금 뭐하는 겁니까? 상처는 저절로 아무는 법인데, 왜 꿰매야 하는 것이요?”이 여자가 의술을 알긴 조금 아는 것 같지만, 정통 의술이 아니라 어디 무당의 의술 같은 것으로 그 상자는 무당의 상자인 게 틀림없다. 만약 할바마마의 분부가 아니었으면 제왕은 결단코 순순히 원경릉이 이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가장 기가 막힌 건 원경릉이 제왕의 피가 초왕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말인데, 제왕과 초왕은 아버지가 같고 혈맥이 상통한 사인데 쓸 수 없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원경릉은 제왕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무릎을 천천히 폈다.제왕은 불같이 화가 났다. 명취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군, 이 원경릉은 입만 열면 거짓말에, 경거망동을 일삼고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구나.제왕은 줄곧 초왕의 상태가 호전된 것이 자신의 자금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절대 원경릉때문이 아니다.그리고 이 나쁜 원경릉이 또 봉합을 계속하려고 하는 것이다.그러던 중, 우문호가 깨어났지만 의식이 또렷하지 못해 몽롱한 가운데 원경릉을 보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원경릉은 그의 고통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혼수상태에서 봉합하고 있다지만 우문호의 몸이 통증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약 상자에 더이상 마취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마치 약 상자가 우문호를 괴롭히기라도 하듯이 어제 약 상
제왕의 깊어진 오해와 열이를 만나러 간 원경릉상선은 웃음을 띤 채 뒤늦게 알아차린 제왕을 보며, “그렇지 않으면, 태상황 폐하께서 어찌 한밤중에 왕비 마마를 왕야께 보내 치료하라 하셨겠습니까?”제왕은 이번엔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인 듯 원경릉을 아주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봤다. 상선은 다시 원경릉에게, “태상황 폐하께서 소인에게 왕비 마마의 상처가 좀 나아지셨는지 물어보라 하셨습니다.”원경릉은 마음속으로 탄식하며, 도대체 이 늙은이는 어디까지 사람을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태상황 폐하께서 기억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상선은 웃으며 “다행입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왕비는 상처 치료 잘 하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셔야 한다고, 다음 번 곤장이 멀지 않았으니 강인한 신체와 정신을 길러 더욱 맹렬한 폭풍우를 견뎌야 한다고 말입니다.”원경릉은 눈을 내리 깔고 묵묵히 마음 속으로 방금 그 말을 되새겼다. 이 놈의 늙은이가 진짜 못하는 소리가 없네.제왕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봤다. 제왕은 알고 있다. 태상황의 말투는 항상 이런 식이다. 총애하면 할 수록, 이렇게 얘기하곤 하셨다.이 여자는 도대체 뭐지? 그저 궁에서 며칠 병수발을 들었을 뿐인데, 어째서 할바마마께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느냐 말이다. 상선이 가고 제왕은 원경릉에게 “당신 도대체 할바마마에게 무슨 미약을 쓴 것인가?”원경릉은 눈을 흘깃 하더니 대꾸하지 않는다.“말 좀 하시오, 당신은 어찌 이리 무례하오?” 제왕이 화를 냈다.원경릉은 눈도 하나 꿈쩍하지 않고 바로, “제왕부로 돌아가세요!”“무슨 뜻이냐?” 제왕은 당황했다. 아니 제왕부로 돌아가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지금 원경릉이 예의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내쫓아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원경릉은 조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말했다.“당….당신….무슨 배짱으로?” 제왕이 목소리가 꺾이며 성을 냈다.원경릉은 “여기는 초왕부고,
자금탕의 비밀과 깨어난 우문호원경릉은 기상궁을 보며 “어떤 불편함을 얘기하는 거지?”원경릉은 사실 지금 온 몸이 불편하다. 단지 고도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라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지만, 앉거나 엎드릴 때 여전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 상처의 통증보다 더 심하게 느껴진다.기상궁은 고개를 흔들며, “사실, 쇤네도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아마 탕대인이나 서 호위 대장님은 자세히 아시겠지만, 쇤네가 아는 것은 자금탕을 마시면 오장 육부를 손상시켜 처음엔 피를 토하고, 기침을 하고, 악몽을 꾼다고 했습니다. 전에 어떤 하인이 몰래 왕부의 골동품을 내다 팔았는데 죽어도 아니라고 벽에 부딪혀 자결하려는 것을, 탕대인이 그 하인에게 자금탕을 내렸는데, 하인은 자백하고 대략 보름쯤 후에 없어졌습니다.”원경릉은 겁이 나서 벌벌 떨며, “보름만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자금탕때문에?”“탕대인 말씀에, 자금탕을 마신 후엔 반드시 1년반동안 약을 먹고 정양해야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은 죄질이 흉악해서 탕대인이 몸조리를 해주지 않아 죽었지요. 죽기 전에 피를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하고, 기침을 심하게 했어요. 한번 기침을 하면 멈춰지지가 않고 죽을 때는 얼굴이 보랏빛이었지요.”기침으로 산소가 부족했나?기상궁은 망설이며, “또 하인이 죽기 전에 늘 귀신이 많이 보인다고, 자기를 저승으로 잡아가 심판을 받게 할 거라고,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자금탕은 다른 말로 ‘황천탕’이라고도 하지요.”원경릉은 멍하니 기상궁을 보고 입가에 쓴 웃음을 띠며, 우문호, 넌 도대체 얼마나 원경릉을 미워하는 거니? 그리고 제일 기가 막힌 현실은, 원경릉이 된 그녀가, 여전히 최선을 다해 우문호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진짜 윤회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녀와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은 우문호 집안 조상 무덤이라도 파헤쳤나 보다. 그렇지 않고 서야 이런 인과응보를 받을 리 없다. 원경릉은 마음을 가다듬고 소위 귀신을 봤다는 건 분명 환각으로 뇌에 산소가
깨아난 우문호와 원경릉의 말다툼제왕이 비집고 들어와 기뻐하며, “형, 깨어난 거야?”우문호는 빙긋 웃으며 제왕에게, “네 자금단 덕을 봤구나.”제왕은 크게 손을 흔들며, “자금단이 뭐라고, 난 동생이라 전장에 나가지도 않고 원래부터 자금단이 필요 없어.”우문호의 웃고 있는 낯빛이 가라앉아 있다.잠시 후, 우문호는 “아우야, 탕양, 둘은 먼저 나가서 쉬고 있거라.”제왕은 “안 힘들어, 쉬고 왔어.”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탕양을 바라봤다.탕양은 제왕을 손을 끌고, “맞아요, 제왕 전하, 소인이 몇 가지 여쭙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뭔데 그래 여기서 말해.” 제왕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탕양이 끌고 나갔다.원경릉은 원래 마음이 답답했는데 이 장면을 보니 그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우문호는 눈짓으로 “좀 와봐.”우문호의 목소리는 미약하기 그지 없고, 기력이 하나도 없어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사람 같은데 정신만은 여전히 비교적 냉정하고 굳건하다.원경릉이 가까이 다가가 우문호가 말하는데 힘들지 않게 했다. “말해봐.”“할바 마마 용태는 좀 어떠셔?”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자신의 상태를 물을 줄 알았는데, 태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이 사람이 인간성은 더럽고 잔인한데다 폭력적이지만 효심 하나는 지극한 것 같다.“병이 오래되었으니, 좋아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그럼 너 입궁해서 계속 병간호해라, 짐은 너 없어도 돼.”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의아하게 쳐다보며, “위험한 고비가 아직 남았는데 만약 내가 가면 절반의 확률로 넌 죽어.”“짐이 생각이 있어, 이번 고비는 짐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우문호가 말했다.하하.자신을 맹신하고 있군.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이삼일 더 남아서 왕야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입궁할께.”“가라면 좀 가!” 우문호의 차가운 표정으로, 이 여자는 정말 좋게 대할 수가 없어.“생각이 있다고.” 원경릉은 조용히 말했다.“너…
원경릉이 그에게 링거를 꽂아두고는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는데 주명취가 시녀를 데리고 뜰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명취는 제비 자수가 놓여 있는 오색비단 치마에 넓은 청색 소매 저고리를 입고 허리에는 저고리 색과 비슷한 띠를 두르고 있었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달린 비녀, 새하얀 귓볼 그 아래에 작은 초롱 귀걸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귀걸이가 찰랑찰랑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가 났다.제왕은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마차를 타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주명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두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함께 돌계단을 올랐다. 원경릉은 문 앞에서 냉담한 표정으로 주명취를 바라보았다. 주명취는 원경릉을 보자마자 슬쩍 제왕과 맞잡은 손을 풀었다. “초왕비님 안녕하십니까.”“응.” 원경릉이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제왕은 화가 치밀었다. 황실에서는 예의를 지켜 왕비에게 ‘예.’라고 대답해야지. ‘응’이라니? 주명취는 손을 뻗어 제왕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왕은 이런 주명취가 참으로 현명하게 느껴졌다. 상대가 예의 없게 행동한다고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모습. 이런 주명취를 보고 있으니 문득 저런 여자를 아내로 삼은 우문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들어갑시다.” 제왕이 주명취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명취는 이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원경릉은 문가에 기대어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주명취는 침상 옆으로 다가가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왕야 괜찮으십니까?” 그녀의 두 눈이 그의 눈썹 뼈 상처에 머물렀다. ‘이렇게 가만히 그를 바라본적이 있던가.’주명취의 가슴이 두근거렸다.‘우문호. 왜 좀 더 용기내지 않은 것이야. 만약 당신이 태자가 될 수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서 슬픔이 솟구쳐 올랐다. 주명취와는 상반되게 우문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