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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려고 하니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고 어젯밤 난폭했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용기를 내어 방 안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은화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퇴근하셨네요?”

송연아는 인사하며 안을 훑어봤고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으나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대표님 안에 계세요.”

송연아는 신발을 갈아신고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강 대표님.”

강세헌은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고 비아냥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

결혼하기 싫다며 티 낼 때는 언제고 갑자기 태도가 변하니 밀당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송연아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일부러 건드린 게 아니라 정말 실수였어요. 죄송해요.”

“설마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강세헌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굽신거리는 송연아의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고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 사실을 송연아가 알게 된다면 그를 변태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존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려야 하는 불쌍한 신세였다.

송연아는 넋을 잃은 채로 그를 바라보다 일자리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비위를 맞췄다.

그녀는 물 한 잔을 따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강세헌을 보며 말했다.

“강 대표님, 넓은 아량으로 저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억지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본 강세헌은 비웃으며 말했다.

“웃는 게 참 못생겼네요.”

긴장을 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웃고 싶었으나 강세헌 앞에서는 도저히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강세헌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말 너무 죄송해요.”

“사과하려면 성의를 보여야죠.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던가?”

무표정으로 내뱉은 말들은 야박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송연아는 침입자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녀도 침입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강세헌은 줄곧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는데, 싫은 건 송연아도 매한가지였다.

다들 강세헌의 편만 들었고 그 누구도 송연아의 마음을 헤어려 주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은 그녀의 두 눈은 밝게 빛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강세헌은 순간 가슴이 뭔가에 저격당한 듯 숨이 막혔다.

익숙하면서 낯선 느낌이 그를 덮쳤고 그는 태연한 척하며 눈길을 돌렸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불쌍한 척하는 거예요?”

그는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고 송연아는 애써 평정심을 찾으며 입을 열었다.

“이혼 안하려고 일부러 버티고 있는게 아니에요. 당신과 헤어지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서명해서 이혼을 못 하는 거란 말이에요!”

동정심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녀에게 이제 자존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엄마가 많이 아파요. 할아버지 덕분에 치료받을 수 있게 됐고 도움 주신 할아버지의 조건에 응할 수밖에 없었어요. 세헌 씨만 이 결혼 싫어하는 줄 알아요?”

순간 강세헌의 눈빛에서 싸늘함이 느껴졌다.

“그럼 당신도 이 결혼 싫어한단 말이에요?”

“당연하죠! 엄마만 아니었으면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

송연아는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자신의 감정을 추슬렀고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는 그녀의 말이 강세헌의 심기를 건드렸다.

“저랑 결혼한게 억울해요?”

말을 이어가던 강세헌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네.”

송연아는 곧바로 질문에 답했고 그녀의 답에 강세헌은 분노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억울하다는 거지? 깨끗하지도 못한 주제에 뻔뻔하기까지 하네!’

싸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고 송연아는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몰랐다.

“결혼 생활이 괴로워요?”

“네.”

송연아는 솔직하게 말했고 강세헌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이 그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힘든 생활 어디 한번 잘 버텨봐요!”

강세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연아의 말에 기분이 상한 그는 이혼할 생각이 사라졌고 그녀를 옆에 두면서 괴롭히고 싶었다.

“대표님...”

“다시 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요.”

단호하게 말하는 강세헌의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급해서 옷깃을 덥석 잡았다.

“전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너무 간절해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강세헌은 귀찮다는 듯 그녀를 밀쳤다. 힘들고 피곤했던 그녀는 힘없이 소파에 쓰러졌고 옷자락이 흐트러지자 하얗고 가느다란 허리가 반쯤 드러났다.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함은 보호 본능을 일으켰고 강세헌은 눈빛이 음침해지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저 유혹하는 거예요?”

온몸에 힘이 빠진 탓에 다쳤던 상처는 더 아파졌다.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옷이 말린 걸 알아챘고 당황하며 옷차림을 정리했다.

“발가벗은 채로 앞에 선다고 해도 전 전혀 관심이 없어요.”

생각 없이 싸늘하게 내뱉은 말은 비수처럼 꽂혔다.

송연아는 자신이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세헌은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랐고 힘 빠진 송연아는 꼼짝달싹 못 한채 소파에 누워있었다.

강세헌이 자리를 뜨자 오은화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왔다.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직 저녁 식사 못 했죠? 뭐라도 좀 챙겨드릴까요?”

입맛이 없었던 그녀는 지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졸려요.”

강세헌이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지 몰라 위층에 올라갈 수 없었던 송연아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누워있었다.

“담요 하나만 가져다주실래요?”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은화는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그럼 주무세요. 음식은 데워놓을 테니까 일어나면 드세요.”

송연아는 감겨오는 눈꺼풀 사이로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아주머니는 이 싸늘한 별장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따스함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고마워요.”

송연아는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고 아주머니는 웃으며 답했다.

“별말씀을요.”

두 눈은 서서히 감겨왔고 잠이든 그녀의 모습에 아주머니를 불을 끄고 자리를 피했다.

깊은 잠에 빠진 그녀는 일한 시가 넘도록 일어날 기미가 없었고 아주머니도 이제 자러 갔다.

새벽에 목이 말랐던 강세헌은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소파에서 잠이든 송연아를 발견했다.

몸에 걸친 얇은 담요는 어느새 반쯤 떨어졌고 강세헌은 다가가 그 모습을 보고서도 덮어줄 생각이 없었다.

발길을 돌리려 할 때, 마침 송연아가 그의 가운을 덥석 잡았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끈이 풀렸고 그 사이로 단단한 몸매가 드러났다.

강세헌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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