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준은 전화기 너머의 보고를 들으며 낮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원래 말이 적었고, 할 때도 짧게 말하는 편이었다.차우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으로 아침 식사가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했다. 이미 시간이 좀 지났으니 아침 식사가 오고 있을 터였다. 차우미는 앱을 열어 아침 식사 배달 상황을 확인했다. 몇 분 후면 도착할 예정이었다.차우미는 방문을 바라보며 나가서 기다릴까 생각했다. 나상준이 전화를 받는 동안, 안에 있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 나상준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영 그룹과의 후속 협력 조건을 추가해. 협력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손실은 주영 그룹에서 배상하도록 한다고.”“열 배로.”차우미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특히 열 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어버렸다.차우미는 졸업 후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졸업 전 실습도 회사에서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회사의 업무 환경을 좋아하지 않았고, 당시의 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녀는 야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큰 성장을 하거나 나중에 어떤 관리자나 매니저가 되는 것도 꿈꾸지 않았다.그녀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었다.그리고 그녀는 안평 대학이 아닌 주강시에서 주해대학을 다녔다. 그녀는 원래 멀리 떠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주해대학을 선택한 것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기 위해서였다. 외부의 세계가 어떤지 보고 싶었다.하지만 주강에서 4년을 보냈을 때, 그녀는 주강의 생활에 적응했지만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향을 더 좋아했고 조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고향인 안평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그녀가 부모님께 자기 생각을 말했을 때 부모님은 모두 그녀를 지지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강을 떠나 안평으로 돌아와서 자
NS 그룹과 주영 그룹은 협력 관계였다. 이 협력은 개인의 감정을 담지 않은 단순한 협력이었다.만약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면 나상준은 이렇게 냉담하지 않았을 것이다.열 배의 보상이라고 말한 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이영진 변호사는 최근 주영 그룹의 안 좋은 소식이 터졌다고 말하며 주영 그룹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NS 그룹과 주영 그룹이 협력한다면 영향을 받을까 봐 방금 나상준이 그렇게 말한 거였다.하지만 열 배의 보상은 너무 한듯했다. 그리고 주영 그룹 대표는 주혜민의 아버지였기에 나상준이 이렇게 냉담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합당하지 않았다.어젯밤, 자신과 주혜민의 관계는 소문과 같지 않다고 나상준이 차우미에게 알려줬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었다.그들이 친구 사이일 수도 있었다. 어떤 친구인지는 차우미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그러나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주영 그룹과 나씨 가문은 서로 아는 사이였다. 보통관계가 아니었기에 보통 친구 사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나상준이 자신의 눈앞에서 주혜민을 안고 떠났던 그 날 밤을 차우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나씨 가문과 주영 그룹이 어떤 관계인지, 주혜민과 어떤 사이인지 잘 몰랐지만 이 일에 대해서 나상준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차우미의 마음속에 친구와 가족은 달랐다. 일 처리를 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상황을 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과 나상준의 관계처럼, 이혼했다 하더라도 낯선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나상준이 배상을 원할 수도 있지만 열 배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보상이면 된 듯했지만 그는 열 배라는 보상을 제시해 정상에서 많이 벗어났다. 차우미는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나상준이 원래 이렇게 무자비한 사람이었나? 아니면 이 사건이 그렇게 심각한 사건인가?’차우미는 어제 병원에서 자신이 소문에 대해 말하자 나상준의 얼굴에 변화가 생긴 점을 떠올렸다.소문을 들은 그는 분명히 화
허영우는 나상준이 그 말을 한 후 통화가 끊긴 줄 알았다.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나상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영우는 나상준이 중요한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어 올려 집중해서 나상준의 말을 기다렸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봤다. 차우미는 계속 걸음을 멈추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상준이 입을 열었다.“계속 협력하고 싶다면 주혜민은 빠지라고 해. NS 그룹에서는 전문직이지 않은 사람이 일에 왈가왈부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고 전해.”차우미는 나상준의 말을 명확히 들었다. 특히 그녀가 룸을 나와갈 때 그녀는 주혜민이라는 세 글자를 들었다. 그는 주혜민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은 낯선 사람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낯선 사람 같았다.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따뜻함도 없었다. 마치 그는 주혜민과 아무 관계가 없는 듯 보였다.그러나 그들은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예전 그날 밤. 차우미의 눈앞에서 주혜민을 안고 간 사람이 나상준이 아닌 다른 사람 같았다.“알겠습니다.”나상준의 말을 들은 허영우는 마음이 놓였다.‘대표님께서 하시려던 말씀이 이거였다니.’요 며칠 주영 그룹의 일 때문에 주혜민이 나상준을 찾으러 몇 번 왔었다. 두 집안의 관계로 보았을 때 나상준이 주영 그룹에 이렇게 무정하게 대할 순 없었다.나상준은 줄곧 공사 구분을 해왔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없었다. 주혜민도 포함이었다.그러나 이번 일은 나상준이 의도적으로 한 거라는 걸 잘 알았기에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차우미가 나가는 것을 본 나상준은 급히 통화를 끊었다.밖으로 나간 차우미는 멀리 가지 않고 룸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기다렸다.그녀는 기다리면서 일에 대해 생각했기에 나상준이 뒤에 한 말을 듣지 못했다.그녀는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한다고 한들 이득이 될 게 없었기에 그녀는 이 기
차우미는 멈칫했다. 이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와 비닐 주머니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뭔가 생각난 차우미는 고개를 돌렸다. 배달원이 음식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차우미는 배달원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차우미 앞으로 온 배달 음식이 맞나요?”이 말을 들은 배달원은 배달 음식에 적혀있는 이름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네, 차우미 씨 맞으세요?”차우미는 웃으며 대답했다.“네. 저에요. 제게 주세요.”“여기요.”배달원은 음식을 차우미에게 건네줬다. 차우미는 배달 음식을 바라봤다.죽과 반찬, 그리고 찐만두였다. 모두 담백한 것들이었다. 아프기에 기름진 것보다는 담백한 걸 먹는 게 좋았다.걸어온 나상준이 차우미의 손에 들려있는 아침을 봤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가자.”“응?”차우미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나상준을 바라봤다. 그러나 나상준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멍해 있던 차우미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얼른 나상준의 뒤를 따라갔다.“병원에 가는 거야?”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자 나상준은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차우미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상준의 옆에 서서 그를 바라봤다.‘상준 씨가 가자는 게 병원에 가자는 뜻이겠지? 자기 절로 자기 몸을 아껴야지. 누가 아껴주겠어?’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나상준의 성격 때문에 확신하지 못한 차우미는 그에게 물었다.나상준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차우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차우미의 질문을 들은 그는 입을 열었다.“안가.”그는 확실하게 차우미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달했다.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는 확고했다.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상준의 표정을 바라보며 차우미의 눈에 의문이 생겼다.예전에 그가 감기에 걸리면 허영우가 그녀에게 알려줬다. 그리고는 나상준의 병을 보러 의사가 찾아왔었고 나상준도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진찰을 받았었다.그러나
나상준의 말에 차우미의 생각이 끊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그녀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녀는 나상준과 함께 먹으려고 아침을 시킨 것이지 혼자 먹으려고 시킨 게 아니었다.차우미는 압박감이 감도는 나상준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있어. 상준 씨와 함께 먹으려고 담백한 음식으로 주문했어. 내 말은 아침을 먹고 난 뒤에 병원에 가겠느냐는 뜻이었어. 상준 씨, 병원에 안 가봐도 괜찮겠어?”밑도 끝도 없는 나상준의 말을 차우미는 알아듣지 못했다. 특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의 물음에 차우미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나상준은 부드러운 그녀의 표정과 맑은 그녀의 두 눈에 담긴 관심과 걱정을 보았다.자신이 병원에 가지 않으면 그녀는 계속 이렇게 걱정할 것 같았다.띵 하는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32층에 도착했다.나상준은 시선을 거두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약 챙겨줘.”나지막한 나상준의 목소리가 차우미의 귓가에 들려왔다. 차우미는 깜짝 놀랐다.‘약을 챙겨 달라고? 상준 씨는 걱정 안 되나?’걸어 나가는 사람을 보며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 침대에서 보았던 나상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배달 음식을 들고 얼른 나상준을 뒤따라갔다.“난 의사가 아니야. 내가 챙겨 주는 약은 의사보다 못해.”나상준은 모퉁이를 돌아 익숙한 듯 차우미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차우미의 말을 들은 그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어젯밤에는 괜찮았잖아.”나상준은 귀찮다는 듯 앞을 바라보며 차우미가 묻는 말들에 대답을 해줬다.나상준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렸다.“어젯밤에 괜찮지 않았잖아.”“약을 먹은 뒤에 분명히 이상했어. 그 뒤론 왜 괜찮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상준 씨.”나상준의 큰 보폭을 따라가려면 차우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다.그래서 차우미는 빠른 걸음으로 나상준을 쫓아가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나상준의 말 없는 모습에 차우미는 긴장했다. 차우미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나상준의 눈빛은 마치 차우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읽은 듯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의 눈길을 피했다.마치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그녀는 나상준을 바라보지 못했다.차우미가 시선을 돌리자 나상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순간 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심장이 쿵쾅거렸다.“난...”“만약 김온이었다면 네가 이러지 않았겠지.”차우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나상준의 말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평온하게 불공평한 일을 말하고 있었다.그렇다. 불공평했다.차우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상준을 바라봤다.‘지... 지금 뭐라는 거야? 이건 선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데?’나상준이 왜 김온을 언급했는지 차우미는 알 수 없었다.순간 차우미는 멍해졌다.나상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 입을 열었다.“3년 동안 부부로 지냈는데 친구보다 못한가 보지.”“차우미, 너 지금 엄청 불공평한 거 알아?”나상준은 김온과 자신을 차별하는 차우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그제야 차우미는 나상준의 뜻을 알아차렸다. 나상준은 차우미가 자신을 밀어낼 이유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만약 김온이 아프다면 차우미는 김온을 돌봐 줬겠지. 이렇게 갖은 이유를 대며 머뭇거리지 않았겠지.’그는 달랐다.차우미는 김온과 나상준을 똑같이 대했지만 나상준은 차별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나상준의 뜻을 알아차린 차우미는 나상준의 생각에 웃음이 났다.나상준의 생각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마치 부모가 편애하고 있어서 어른과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차우미의 눈꼬리가 휘어졌다.“상준 씨,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난 그런 뜻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정말로 상준 씨를 보살펴 주고 싶지 않았다면 어젯밤에도 성우 씨 아니면 간병인을 불러 상준 씨를 돌봐주
겨울의 한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네 시를 넘기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봄의 시작을 알리며 아늑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초봄의 시작을 알렸다.시내의 어느 유치원.사무실을 나온 차우미는 처마 밑에 서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우산을 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오늘은 시댁에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시할머니는 가족간의 우애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다. 나 회장이 돌아가신 뒤로 가문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하루는 꼭 시간을 내서 본가로 돌아와 저녁을 같이 하는 풍습이 생겼다.이 풍습은 차우미가 NS그룹 며느리가 되기 전부터 이미 오십 년이나 전해져 내려온 풍습이었다.아침부터 비 온다는 예고는 있었지만 오후에 뒤늦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차우미는 조용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섯 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나상준은 며칠째 출장 중이었다. 아침에 나상준의 비서인 허영우에게 문자를 보내 확인했을 때는 예정대로 세 시 사십 분에 공항에 도착한다고 했다.네 시가 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을 것이다.차우미는 방향을 틀어 주차장을 벗어났다.청주에 있는 시댁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차우미는 직접 시댁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나상준이 집에 도착하면 그와 같이 시댁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관강동은 청주의 유명한 부유층들이 사는 주택가였다. 나상준과 차우미가 결혼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창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금방 싹을 피워내기 시작한 비에 젖은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차우미는 익숙한 길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서 검은색 롤스로이스 뒤에 차를 세웠다.차가 도착한 걸 보니 그가 돌아온 모양이었다.시동을 끈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집으로 들어갔다.“일단 그렇게 알고 진행해.”커다란 거실 창문을 통해 커튼 사이로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
시댁은 청주시 남부의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번화한 시내와 떨어져 산과 들을 등지고 지은 호화저택은 요양하기 최적인 곳이었다.차가 서서히 정원으로 들어서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날은 이미 저물었고 저택에서는 밝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빗소리와 가족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아늑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겼다.최우미는 곱게 포장한 쿠키를 들고 나상준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집 안에서 어린 소녀가 뛰어나오더니 앳된 목소리로 그들을 맞아주었다.“큰아빠, 큰엄마!”최우미는 미소 띈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박스를 아이에게 건넸다.“열어봐.”아이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더니 환호를 질렀다.“와! 백설공주랑 일곱 난쟁이다!”최우미는 동화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취향을 고려해 동화 속 캐릭터를 닮은 쿠키를 만들어 아이에게 자주 선물하고는 했는데 여느 베이커리 전문가와 비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마음에 들어?”“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큰엄마!”“마음에 들었으면 됐어.”가족들은 이미 모두 도착해서 최우미와 나상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있는 일이었기에 지각했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둘은 가족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하고 자리에 앉았다.나상준의 할아버지인 전대 회장님은 아주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네 아이와 함께 졸지에 든든한 가장을 잃었지만 이혜정 여사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녀는 홀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네 아이를 돌보고 회사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회사는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빚더미에 허덕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 회장이 사망한지 불과 3년이 되던 해에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막내아들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남편을 잃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식까지 잃은 이혜정 여사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는 대신, 다시 일어서서 홀로 아이들을 길러냈고 지금의 NS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장남인 나상준의 아버지 나명덕은 슬하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