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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봄날
작가: 유리

제1화

겨울의 한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네 시를 넘기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봄의 시작을 알리며 아늑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초봄의 시작을 알렸다.

시내의 어느 유치원.

사무실을 나온 차우미는 처마 밑에 서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우산을 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시댁에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시할머니는 가족간의 우애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다. 나 회장이 돌아가신 뒤로 가문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하루는 꼭 시간을 내서 본가로 돌아와 저녁을 같이 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 풍습은 차우미가 NS그룹 며느리가 되기 전부터 이미 오십 년이나 전해져 내려온 풍습이었다.

아침부터 비 온다는 예고는 있었지만 오후에 뒤늦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차우미는 조용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섯 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나상준은 며칠째 출장 중이었다. 아침에 나상준의 비서인 허영우에게 문자를 보내 확인했을 때는 예정대로 세 시 사십 분에 공항에 도착한다고 했다.

네 시가 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을 것이다.

차우미는 방향을 틀어 주차장을 벗어났다.

청주에 있는 시댁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차우미는 직접 시댁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나상준이 집에 도착하면 그와 같이 시댁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관강동은 청주의 유명한 부유층들이 사는 주택가였다. 나상준과 차우미가 결혼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

창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금방 싹을 피워내기 시작한 비에 젖은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차우미는 익숙한 길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서 검은색 롤스로이스 뒤에 차를 세웠다.

차가 도착한 걸 보니 그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시동을 끈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집으로 들어갔다.

“일단 그렇게 알고 진행해.”

커다란 거실 창문을 통해 커튼 사이로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곧게 뻗은 긴 다리에 항상 입고 다니는 검은색 정장을 걸친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 있었다.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차우미는 우산을 현관에 내려놓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불이 켜지지 않은 거실에 석양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모습도 조금은 부드럽게 보였다.

“왔어?”

그녀는 조용히 다가가서 그의 손에서 외투를 받았다.

“그래.”

아직 일이 채 끝나지 않은 건지 그는 여전히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고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심한 말투도 여전했다.

“올라가서 씻어. 옷은 준비해 뒀으니 다 씻으면 본가로 출발하자.”

차우미는 그가 오늘 돌아올 것을 대비해 미리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해 두었다.

3년 동안 그와 같이 생활하면서 이미 몸에 배길 대로 배긴 습관이었다.

나상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시댁으로 간다고 해서 굳이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나 하자는 취지로 만든 자리인데 매번 선물을 가져가면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게 시할머니의 입장이었다.

나상준에게는 조카가 한 명 있는데 그녀가 만든 쿠키를 무척 좋아해서 매번 시댁에 갈 때면 챙겨가고는 했다.

비가 점차 거세지는 가운데 그녀는 금방 씻고 나온 나상준과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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