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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차우미가 짐을 챙겨 나가려는데 통화를 마친 나희연이 다가왔다.

이혜정이 말했다.

“그래. 너도 나가려고? 그럼 네 새언니 좀 태워다 줘.”

“잘됐네요! 어차피 나가는 길이었으니까 새언니 픽업은 저한테 맡기세요. 번거롭게 송 기사 아저씨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 잘됐네.”

나희연과 차우미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라 본가를 떠났다.

가족이기는 하지만 각자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 평소에 만날 일이 많지 않았다. 모임 때 말 몇마디 건네본 게 전부였다.

그녀와 나희연의 관계가 그러했다.

두 사람은 딱히 친하다고 할 수 없었다. 명절 때나 만나서 안부를 나눈 게 전부였다.

운전하는 중에도 나희연은 업무 전화로 바쁘게 보냈다.

조수석에 탄 차우미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이혼 얘기를 친정에 꺼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양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차우미가 나상준과 결혼하게 된 계기는 할아버지 대에 쌓은 인연 덕분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아주 예전에 나동석 회장의 목숨을 구해준 적 있었다. 그가 세상을 뜨고 회사가 잠깐 주춤하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이혜정은 그 은혜를 항상 잊지 않고 있었다.

차우미가 이혜정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은 할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에서였다. 마침 그녀가 일하는 곳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매일 시간 내서 할아버지를 돌봐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할아버지 병실을 찾아갔는데 그때 낯선 할머니가 한분 와계셨다.

그 할머니가 바로 나상준의 할머니, 이혜정 여사였다.

그렇게 알고 지낸지 반년이 흐른 어느 날, 할아버지는 이혜정에게 아주 괜찮은 손자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떠냐고 차우미에게 물었다.

그렇게 둘의 혼사가 성사되었다.

사실 차우미는 결혼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나이도 비교적 어린 편이었고 아직은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그렇게까지 추천하니 적당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아, 드디어 좀 조용해졌네!”

통화를 마친 나희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차우미도 정신을 차리고 바깥을 보니 이미 도심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가씨, 저기 신호등 앞에서 세워줘요. 난 택시 타고 갈게요.”

시댁에서는 차를 잡기가 쉽지 않아 시내까지 데려다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상준이 출장 가면서 차를 끌고 나갔기에 원래는 송 기사한테 부탁할 예정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나희연이 태워준다고 해서 따라왔지만 굳이 바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나희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안 되죠, 새언니. 내가 데려다준다고 장담하고 나왔는데 어떻게 그래요?”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핸드폰이 또 울렸다.

나희연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차우미는 그녀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나도 가볼 데가 있어서 그래요. 저기 앞에 신호등에서 세워주고 일 보세요.”

나희연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인상을 펼 수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차가 멈춰서자 차우미는 차에서 내리며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 조심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나희연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차우미는 주변을 둘러보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승안로펌으로 가주세요.”

한편, 서혜지는 예은이를 데리고 정원에 놀러 나가고 나명덕과 나명석은 장기를 두었다. 문하은과 나명석의 아내 장연화는 시어머니 이혜정과 함께 2층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 덕분에 안개가 자옥히 끼었고 집 안 공기도 서늘했다.

봄 향기를 맡은 정원의 꽃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며 봄 햇살을 맞아 바람 따라 춤을 추었다.

“둘째야, 아줌마한테 가서 고구마 케익 다 됐는지 물어봐. 저번에 보니까 예은이가 그걸 좋아하더라고.”

시어머니의 말에 장연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어머님. 지금 가서 확인해 볼게요.”

그녀는 그렇게 다과실을 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이혜정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애들도 다 생각이 있겠지. 너무 애들 일에 간섭하진 말거라.”

콕 꼬집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뜻음 명확했다.

문하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시어머니와 시선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 우미랑 상준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머님이 좋은 아이라고 고집하시니 말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결혼한지 벌써 3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아이 소식이 없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그래서 시어머니로서 며느리한테 한마디 한 게 다예요.”

“저도 엄마니까 자식 일이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하잖아요.”

“주혜민이 귀국했다지?”

이혜정 여사는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근엄한 표정으로 문하은을 노려보았다.

문하은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노인은 시선을 회피하는 며느리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시어미로써 한마디 해야겠구나. 애들도 이제 성인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야. 어미로써 애들 일에 너무 간섭하는 건 좋지 않아.”

문하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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