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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박물관에 진열된 조각상들은 전부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골동품이었다. 대체로는 신수나 선인을 묘사한 조각상들이 많았다.

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방문객들을 위해 박물관에는 조각사가 작품을 만드는 공방도 따로 만들었다.

박물관에서 주로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작품은 전부 조각사가 주문을 받아 만든 것들이었다.

차우미는 공방의 조각사 중 한 명으로 취직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어 보니 푸른 남방에 회색 캐주얼 바지를 입은 온이샘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이샘은 아일랜드 일정을 마무리한 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택했다. 차우미가 안평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주저 없이 안평으로 와서 거처를 찾고 이곳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그럼에도 해외 업무를 마무리하는데 20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고역이었다.

온이샘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슴이 다시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늘이 이런 식으로 다시 기회를 내려주실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무조건 잡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놓치는 일은 없을 거야.’

차우미는 어쩐지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의 잔잔한 애수를 담은 눈빛은 그녀에게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차우미가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만약 다른 사람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이 남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차우미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옆에서 그녀와 같이 작품을 만들고 있던 조각사가 그녀의 말을 듣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그녀와 온이샘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우미 씨 친구예요?”

차우미가 결혼했을 때 결혼식에 참석했던 동료들이었기에 그녀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차우미가 홀로 고향에 돌아와서 다시 일하고 싶다 했을 때 눈치 빠른 동료들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3년을 고향을 등지고 살았으니 분명 힘들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녀의 인품을 잘 아는 그들이었기에 안 좋은 이유로 이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온이샘의 등장에도 동료는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차우미는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뻐서 방문객들 중에도 그녀에게 호감을 표현하거나 소개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 동료 자신도 포함이었다.

하지만 그때 차우미는 연애에 관심없고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그녀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추종자들은 아쉽지만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인물 좋고 집안 환경이 좋다고 들었는데 고향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결혼상대가 재력이 상당한 집안의 자제라는 걸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 결혼이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했던 대로 되어버렸다.

2주 동안 작업에만 몰두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를 추종하던 자들도 슬슬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온 게 아닐까 생각하고는 했다.

그랬기에 온이샘의 등장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매력 넘치는 여자는 이혼하더라도 여전히 환영받는 법이니까.

온이샘은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역시 날 잊었구나?”

이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녀가 진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우미는 온이샘이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을 보고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각칼을 내려놓고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어디서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누구였죠?”

온이샘은 순수하고 맑은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진심을 확인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서흔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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