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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네 살 꼬마인 예은이에게는 자유롭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스마트워치가 있었다. 아이는 가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스마트 워치로 전화를 걸고는 했다.

차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예은아.”

“큰엄마!”

앳된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우미는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예은이 밥 먹었어?”

4월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점차 따뜻해졌다. 이곳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봄의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라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예은이는 서혜지, 이혜정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나상준과 나준우도 있었다.

그들은 앞에서 걷고 서혜지와 예은이는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지자 서혜지는 저도 모르게 시할머니의 옆에 있는 나상준에게 시선이 갔다.

4월의 가족모임에 차우미는 오지 않았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나상준은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가족이지만 각자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도 있을 수 있는 법이기에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이혜정 여사도 답답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린 예은이는 차우미가 보이지 않자 나상준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물었다. 나상준은 그저 일이 있어서 못 온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예은이는 속아넘어갔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예은이는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다행히 시할머니도, 나상준 본인도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기에 서혜지는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서혜지는 차우미가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어린 예은이는 그냥 목소리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뻐서 방방 뛰었다.

“큰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

예은이는 스피커폰으로 통화했기에 남은 사람들도 차우미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사라졌다.

이혜정 여사가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었다.

서혜지는 눈을 깜빡이며 딸을 바라보았다.

수화기 너머로 차우미의 유쾌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졌다.

“큰엄마도 예은이 보고 싶지.”

그 말을 듣자 예은이가 입을 삐죽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럼 왜 예은이 보러 안 와요? 오늘 가족모임 했는데 큰엄마만 안 왔잖아요. 지난번에 같이 놀러 가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큰엄마 거짓말쟁이!”

아이는 전에 했던 약속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우미의 얼굴에 짙은 죄책감이 서렸다.

이혼할 걸 알면 그런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순간의 판단 착오였다.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걸으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큰엄마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갔어. 하지만 약속은 꼭 지킬게.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잠시 후, 차우미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 전해졌다.

많이 난감하고 힘겨운 목소리였다.

서혜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앞에서 걷고 있는 나상준을 바라보앗다. 나준우도 형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분명했다.

반면 이혜정 여사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상준이 오늘 입고 온 바지와 셔츠는 약간 주름이 져 있었다. 출장 갔다가 옷도 안 갈아입고 바로 본가로 온 모양이었다.

그에게서는 전과 다른 싸늘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엇다.

가족들도 그의 변화를 느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옆에 챙겨줄 사람이 사라져서 그런 것 같았다.

차우미가 옆에 있을 때는 그는 언제나 단정하고 비교적 온화한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모습이 전부 사라졌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예은이 큰엄마가 만들어 준 쿠키 먹고 싶어요. 내일 예은이 보러 오면 안 돼요?”

분위기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한 어린아이는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차우미에게 졸라댔다.

차우미는 아이의 간절한 말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해서 가줄 수가 없었다.

“큰엄마….”

차우미는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뒤에서 자전거가 달려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옆에 있던 온이샘이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조심해!”

그는 재빨리 차우미를 끌어당겼고 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

자전거 운전자가 사과도 없이 가버렸다.

그는 다급히 차우미의 상태부터 살폈다.

“괜찮아? 안 부딪혔어?”

조급함,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나상준의 가족들의 귀에도 전해졌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상준에게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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