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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집으로 돌아온 예은이는 어른들과 인형놀이를 시작했다. 서혜지는 그 틈을 타서 나준우를 끌고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이게 무슨 상황이죠? 당신 다 들었죠? 아주버님 긴장 좀 하셔야겠는데요?”

서혜지는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

나준우는 아내의 생각을 눈치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 상준이 형이랑 형수님 일에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아?”

“내가… 그랬나요?”

서혜지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과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아주버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람 좋고 성격이 좀 까칠하지만 그래도 딴짓하는 게 아니라 일에 몰두하는 느낌이고. 아내로서는 참 걱정할 게 없고 든든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형님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형님은 아주버님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아주버님은 너무 싸늘하시잖아요. 형님이 많이 서운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사실 모든 부부가 우리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아까 남자 목소리를 듣고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상대가 형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꼈거든요.”

“그래서 상준 아주버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아내인데 누군가가 그런 아내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느낌일지.”

“어쨌든 아주버님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여자 때문에 흔들리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야 하나?”

뒤로 가면서 점점 주제 넘은 그녀의 발언에 나준우는 살짝 언짢았다.

그는 아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게 안 느껴지나?

부부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었다는 건 두 사람의 신뢰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걱정됐다.

부부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차우미와 나상준을 걱정했다.

그 시각, 서재.

원목 자재의 책장이 줄 지어선 서재는 호화로우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서재에는 옛 그림이나 서예, 자기 등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곳에 앉아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게 했다.

아줌마가 차를 내오고 조용히 서재를 나갔다.

나상준은 소파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이혜정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우미랑 어떻게 된 거야?”

인생 경험이 풍부한 이혜정 여사였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나상준과 차우미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분명했다.

나상준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부드러운 톤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싸늘한 인상이 조금은 부드럽게 보였다.

“저희 이혼했어요.”

이혜정 여사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분명 심각한 문제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노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애지중지 키운 손자를 빤히 노려보았다.

나상준은 압박감 가득한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먼저 꺼냈어요.”

이혜정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노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손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네 잘못이야.”

간단명료하고 단호한 말이었다.

이혜정은 손자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3년 동안 밖으로만 돌고 집에 정을 두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너에게는 일만 중요하고 아내를 위한 자리는 남겨두지 않았지.”

“우미가 성격이 좋아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여자였다면 진작 난리 났을 거야. 우미가 널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넌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어.”

“넌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지. 난 너한테 꼭 우미랑 결혼하라고 강요한 적 없다. 결정은 네가 한 거야. 그런데 넌 너와 평생 같이 갈 동반자에게 제대로 된 관심 한번 준 적 없었어. 우미는 네 직원이 아니라 네 처야. 물질적으로만 만족을 주면 되는 게 아니라고.”

나상준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항상 마시던 차인데 오늘따라 뒷맛이 썼다.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싫었으면 넌 결혼을 선택해서는 안 됐어.”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한다고 맹세했으면 그 무게에 대한 책임은 졌어야지.”

“네가 회사에서 뛰어난 리더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넌 가정에 너무 무심했어. 난 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살아왔고 그래서 깨달은 것도 많아.”

“넌 우미보다 더 괜찮은 짝을 찾지 못할 거야.”

“다른 가족들은 네가 주혜민 그 애를 좋아해서 우미한테 차갑게 대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난 아니란 걸 알아.”

“그래서 우미를 너한테 소개해 줬던 거고. 너도 우미가 괜찮은 짝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결혼을 결심했던 거 아니더냐? 그런데 난 지금 너한테 많이 실망스러워.”

이혜정 여사의 눈빛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나상준은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갑갑하고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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