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휴대폰 화면에 뜬 발신자는 다름 아닌 나상준이다.주변은 고요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심지어 가느다란 빗소리마저 사라져 버린 듯했다.차우미는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를 보고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기억 속의 나상준은 한 번도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허영우가 그녀를 알리면 알렸지 나상준이 직접 알린 적은 없었다.마치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그런데 지금 나상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우미에게 있어 이런 일은 마치 하늘에 핀 꽃을 보는 것처럼 몽환적이라 믿어지지 않았다.휴대폰은 아직도 윙윙거리며 손바닥에서 진동하고 있다.그 진동은 그녀에게 이것은 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그녀는 손끝을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녀의 가랑비를 머금은 것 같은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치 비 오는 그날 밤, 이혼을 제기하던 그때처럼 말이다.바 앞에 서서 컵을 들고 물을 마시던 나상준은 그녀의 잔잔한 목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물 안 나와.”찬물이 나상준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 내려갔고, 나상준은 개운함을 느꼈다.그럴 줄 알았다. 나상준은 급한 일이 있기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그는 워낙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중요한 말만 했었다.휴대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무거운 목소리에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수도 요금 안 낸 거 아니야?”“몰라.”나상준은 정말 모른다.나상준은 매일 회사 일로 바쁘다 보니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하나도 몰랐다.그녀는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샤워하다가 단수된 거야?”그녀는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응.”“기다려 봐. 내가 낼게.”말을 끝낸 차우미는 휴대폰 앱으로 수도 요금 10만 원을 냈다.별장에서는 수도 요금보다 전기 요금이 더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면적이 크다 보니 전기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별장에서 나오기 전, 그녀는 이미 모든 걸 확인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은 그대로 멈췄다.“선배.”차우미는 온이샘에게 다가갔다.온이샘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통화 끝났어?”“응.”온이샘은 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그럼 먼저 일 보십시오.”스님은 저녁 수업이 있어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스님도 합작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떠났다.차우미는 멀어져가는 스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확실히 스님이 우리보다 이 진달래 산에 대해서 더 잘 아실 거야.”그 스님은 대략 예순, 일흔의 나이로 이 산에서 오래 산 것이 분명해 보였다.온이샘이 스님에게 진달래 산의 상황을 여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맞아. 나중에 스님을 찾아뵈어야겠어.”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날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지니 절의 등불은 더욱 밝아졌다.다만 밤이 깊으니 안개가 짙어졌고, 등불이 안개 속을 가득 메워 주변이 몽환적으로 물들었다.두 사람은 한가롭게 걸었다. 이 고요한 밤, 그들의 발소리는 평화롭게 들려왔다.그런데 갑자기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차우미는 외투를 걸치지 않았고, 쌀쌀한 바람은 산의 서늘한 기운과 한데 섞여 그녀는 저도 몰래 추위에 몸을 떨었다.그 모습에 온이샘은 즉시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차우미는 멈칫하더니 이내 사양했다.“괜찮아, 선배.”“나한테 뭘 사양해. 너 이러다 감기 들면 내가 어떻게 너희 부모님께 설명하겠어?오늘 아침에 분명 두 분에게 약속드렸단 말이야.”온이샘은 옷을 움켜쥐고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우연히 손끝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고, 그는 저도 몰래 손을 움츠렸다.다만 아주 미세한 이 터치로 그는 그녀의 피부와 체온을 느꼈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이런 과분한 친절을 받아들일 수 없어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온이샘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자기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온이샘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그는 늘 차우미에게 신경 썼고, 그녀가 아플까 봐 걱정했다.
방에 돌아온 차우미는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시간은 이제 9시를 가리켰다.늦지 않은 시간이지만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고, 등산을 한 탓인지 잠이 몰려왔다.그녀는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겠다고?”“오기석, 내가 똑똑히 말하는 데 절대 안 돼!”“......”“하하, 좋아. 이리 와. 나 때려 봐!”“......”“퍽!”“......”“오기석, 너 가만히 안 둬!”“......”차우미는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지만 오랜만에 등산을 한 탓에 온몸이 쿡쿡 쑤셔 일어나지 않았다.이따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몸싸움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점차 그 소리는 사라졌다.모든 것이 조용해졌고 그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연기가 풍겨왔다.숨을 쉴 수 없었다.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방 안에는 언제 연기가 피어올랐는지, 그 연기는 방 안 가득 자욱이 퍼져있었다.차우미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고, 그 냄새는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정신을 차린 차우미는 입과 코를 막고 사방을 둘러보았다.방안에 불은 나지 않았지만......차우미는 벽 사이로 스며 나오는 연기를 보고 재빨리 옷을 걸치더니 문을 열고 나가 옆방으로 들어갔다.옆방은 이미 문이 활짝 열렸고, 그녀는 방 안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의 방과 연결된 벽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녁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릇을 떨어뜨린 젊은 여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그녀의 이마는 피로 물들었다.차우미는 깜짝 놀라 안색이 확 변했지만 워낙 차분한 성격이라 우선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도움을 청했다.“누구 없어요? 여기 불 났어요, 사람이 다쳤어요!”그녀는 사람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가 여자의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여자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숨결을 살펴보았다. 숨이 붙어있다.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화재와, 여자의
그 상황을 발견한 차우미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엎어지려는 병풍을 옆으로 밀어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병풍이 넘어졌다.온이샘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외쳤다.“차우미!”“선배 빨리 나가!”그녀는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고통도 잊은 채 온이샘을 잡고 밖으로 당겼다.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방에서 쉬던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 분분히 밖으로 나와 상황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달려갔다.어떤 사람은 신고 전화를 걸었고 어떤 사람은 손을 거들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소방차 경찰차 그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였다.차우미와 온이샘은 사고 현장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목격자였고 차우미는 병풍을 밀다가 다쳤기에 여자를 따라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온이샘도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병원에 도착하자 여자는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고 차우미도 손의 상처를 치료하러 갔다.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경험있는 구급대원이 그녀의 상처를 간단히 처리해 주었기에 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는 그녀의 화상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히 화상이 심하지 않고 제때 처리도 잘했기에 흉터는 남지 않을 것 같네요. 아직 나이가 젊으니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게 좋죠.”차우미의 안색은 고통으로 인해 미세하게 창백해졌다. 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아픈 줄도 몰랐고 나중에야 통증이 전해졌다.특히 이 순간, 그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의사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네요.”그 상황에서 그녀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심지어 생각도 안 하고 그녀는 그런 행동을 했다.후회는 없었다.흉터가 남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온이샘은 차우미 옆에서 거즈로 꽁꽁 싸맨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안색은 그녀보다 더 창백했다.‘나 때문에 다쳤어. 내가 지켜주지 못했어.’두 사람은 주의 사항을 들은 뒤에 진료실에서 나갔다.온이샘은 차우미에게 말했다.“일단 앉아서 좀 쉬어. 내가 가서 약 받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온이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내가 책임질게.”“알았으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곧 돌아올게.”“그래.”온이샘이 떠난 뒤, 차우미는 그 자리에서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선배가 없었더라면 그녀와 그 여자는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잠시 후, 온이샘은 약을 가지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응급실 밖에는 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차우미는 그 젊은 여자의 상태가 무척 궁금했다.그들은 형사들에게 오늘 밤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상세하게 진술했다.“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날이 밝았으니 두 분도 어서 돌아가서 쉬세요.”“나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차우미와 온이샘은 형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병원을 떠났다.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마무리했으니 나머지는 형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하고 시간은 다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병원을 나온 차우미는 청량한 새벽 공기를 맡으며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이렇게 밤을 새운 적은 거의 처음이었다. 긴장감이 풀리자 피곤이 몰려왔다.다친 손은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자 점점 통증이 옅어지고 있었다.온이샘은 새빨갛게 충혈된 그녀의 눈을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씻고 좀 쉬어야겠다. 남은 일은 쉬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차우미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두 사람은 전에 묵었던 호텔로 돌아갔다.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겼다.씻고 싶은데 손의 부상 때문에 씻기가 불편했다.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느라 진땀을 뺏더니 온몸에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고 몸은 땀범벅이 되어 끈적거렸다.차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이 손으로는 간단한 일마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온이샘은
커튼이 열려 있는 방 안에는 햇살이 비쳐들어 소파에서 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길게 늘어진 검은 생머리가 소파에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고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길게 드리워진 속눈썹이 자연스럽게 눈밑에 그림자를 만들었다.온이샘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고 있는 차우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많이 피곤한 탓인지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그녀는 계속 자고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침대에서 이불을 챙겨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녀의 하얀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홍조가 드리운 게 보였다.호흡도 평소보다 거칠었다.온이샘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불덩이 같았다.“우미야.”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 그녀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온이샘은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호텔을 나왔다.그 시각 청주시.어젯밤 밤새 내린 비로 공기 중에는 짙은 안개가 드리웠다. 아침해가 뜨면서 안개는 조금 걷혔지만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나상준은 평소처럼 일어나서 트레이닝을 갈아입고 조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고 출근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걸음을 멈추었다.거실의 소파에 어머니 문하은이 앉아 있었다.옅은 자색 원피스에 하얀색 외투를 걸치고 목에는 같은 브랜드의 스카프를 걸친 그녀는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소리를 들은 그녀는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지금 출근하는 거니?”나상준은 조용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소파로 다가가서 앉은 그는 미리 준비된 커피잔을 들었다.아직은 가정부가 출근할 시간이 아니었다. 차우미가 이 집에 있을 때 삼시 세끼는 전부 그녀가 담당했지만 그녀가 떠난 뒤로는 아무도 그의 아침을 챙겨주지 않았다.그 뒤로 나상준은 따로 가정부를 고용했지만 청소만 하고 밑반찬과 저녁을 챙기는 게 전부였다.문하은은 부드러
교외에 위치한 동안 호텔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하기 좋은 곳이었다.점심 때가 되자 주차장으로 외제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가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운전기사가 내려 뒷좌석 차 문을 열자 나상준은 옷차림을 정리하며 차에서 내렸다.안으로 들어가던 일행이 그를 알아보고 다가왔다.“상준이 왔구나?”원 회장 사모님인 서혜란이었다.그녀는 나상준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잘 지내셨어요?”“그래. 어서 들어가자꾸나. 네 엄마는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 나랑 같이 들어가자.”“바쁘실 텐데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들어갈게요.”“괜찮아. 마지막으로 널 봤을 때가 네 결혼식 날이었나?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시간 참 빨라.”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서혜란과 나상준은 홀을 지나 안쪽 정원으로 들어갔다.동안 호텔은 파티홀과 정원이 바로 이어진 구조였다. 간단한 생신연이라고는 하지만 호텔 전체를 통째로 빌려 주최한 이 파티에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나상준이 안으로 들어서자 주변에서 호기심에 찬 시선들이 쏟아졌다.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그리고 대기업 오너로서의 자신감과 카리스마는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양호한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가만히 있어도 부티가 넘쳐 흘렀다.“저분은….”“NS그룹 대표잖아. 잊었어? 결혼식에도 갔었잖아.”“아…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그런데 왜 혼자 왔을까? 와이프는?”“아직 몰랐어?”“뭔데?”“둘이 이혼했대.”“뭐라고?”“쉿! 소리 좀 낮춰.”“왜 이혼했대? 잘 살고 있는 거 아니었어? 와이프도 참하게 생겨서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는데?”“원인은 모르겠고 이혼한 건 사실이야.”“아이는 어쩌고?”“애는 없대. 애 태어났으면 축하연에도 우리 불렀겠지.”“그러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 같구먼.”사람들은 나상준의 뒤를 쫓으며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정원에는 나
아련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였다.사람들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주혜민은 나상준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따뜻한 햇살이 그녀의 청순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자신을 등지고 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사람들의 시선이 주혜민에게서 나상준에게로 옮겨졌다.나상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뒤에 선 여자를 향해 미세하게 미소를 지었다.“혜민아.”주혜민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문하은은 주혜민과 아들을 번갈아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우린 빠져줄 테니까 너희끼리 얘기 나눠. 오랜만에 보는 건데.”그 말을 들은 주변 아줌마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젊은이들끼리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을 텐데 얘기 나눠.”“자, 우린 이제 들어갑시다.”“저쪽에서 카드게임 하고 있던데 그쪽으로 가보자고.”“좋아.”그렇게 아줌마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주혜민은 아련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3년 전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뒤로 첫만남이었다.그날 이후 그녀는 해외로 출국했다가 3년만에 돌아왔다.주혜민은 나상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얘기 좀 할까?”그의 앞으로 다가선 그녀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제안했다. 3년을 안 본 사이지만 어제 만난 친구처럼 친근했다.나상준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두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문하은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만족스러운가 보네?”옆에 있던 친구가 장난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문하은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에이, 말을 말아야지.”“내가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이면 그냥 하지 마.”“그러니까 갑자기 하고 싶어지는데? 사실 난 우미 걔가 성실하고 성품도 온화한 것이 참 괜찮았었어.”문하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애들 이미 이혼했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