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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나상준의 눈빛이 처음으로 잠깐 흔들렸다.

그도 왜 이러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캐리어에 눈길이 갔다.

중간 사이즈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마치 잠시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올 것처럼 가벼운 짐이었다.

“이혼서류는 확인했지? 이건 가현이가 따로 뽑은 서류인데 메일로 보낸 것과 똑같아.”

“확인해 보고 사인하고 법원에 제출하면 돼.”

차우미는 미리 준비했던 이혼서류를 담담한 표정으로 나상준에게 건넸다.

나상준은 서류를 펼쳤다. 큼지막하게 쓰여진 협의 이혼 신청서라는 글자가 왠지 거슬렸다.

그는 서류를 뒤로 넘겼다.

차우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마치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듯이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원해서 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와 결혼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된 것도.

3년을 같이 보낸 시간에 그녀는 아무런 유감도 없었다.

“난 사인했으니까 문제없으면 당신도 사인해.”

나상준이 마지막 장을 펼치자 차우미는 준비한 볼펜을 그에게 건넸다.

볼펜까지 벌써 준비해 놓았다니.

평소에도 그녀는 항상 존재감이 없으면서도 그가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걸 대신 준비해 주었다.

나상준은 착잡한 시선으로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그가 차에서 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줄곧 잔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어쩌면 그녀는 이 관계를 이미 진작에 내려놓은 것 같았다.

나상준은 호수처럼 고요한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다가 볼펜을 들고 사인란에 묵묵히 사인했다.

그러자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들은 그 길로 캐리어를 차에 싣고 법원으로 향했다.

이혼 수속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가현이 말했던 것처럼 법원 직원들 점심 시간 전에 그들은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운전기사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어디로 갈 거야? 데려다줄게.”

차에 오르기 전, 그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냥 형식적인 말로 들릴 뿐,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차우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알아서 갈 수 있어. 일 봐.”

그가 바쁜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그는 아무런 미련없이 차에 올랐다. 마치 평소에 그녀를 집에 두고 출장을 가는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차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뒷좌석에 탄 나상준은 백미러로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음이 울리자 그는 상념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뉴욕 지사에 문제가 좀 생겨서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티켓 예약하고 알려줘.”

“네.”

차우미는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시야에서 그의 차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비춰주고 멀리서 봄꽃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손을 들어 광선을 살짝 가리고 예쁘게 피어난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봄은 새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행복해야 해, 상준 씨. 그리고 나도 행복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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