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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화

하은별은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가 불만스러운 투로 서정원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서정원은 귀를 만지작거렸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리네요.”

하은별은 어쩔 수 없이 목청을 높였다.

“미안해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최성운의 차가운 목소리에서 무한한 위엄이 느껴지자 하은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성운의 사무실에서 나온 뒤 하은별은 서정원을 노려봤다.

그녀는 시골 사람인 서정원이 이렇게 똑똑할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실수로 그녀의 덫에 걸려 최성운의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하은별은 반드시 복수할 셈이었다. 오늘 당한 모든 걸 이자까지 더해서 서정원에게 돌려줄 셈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서정원은 회사에 조금 더 남아있었다. 그녀는 하은별이 넘겨준 데이터를 검사한 뒤에야 돌아갔다.

운성 그룹에서 나온 뒤 서정원은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정확히 그녀의 곁에 멈춰 섰다.

최성운의 차였다.

“타요.”

최성운은 차창을 내린 뒤 고개를 돌려 서정원을 바라봤다.

서정원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갈게요.”

최성운은 미간을 좁히더니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서정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이 시간대에 택시 잡기 어려워요. 또 늦은 시간에 회사로 가서 정원 씨를 데려와 밤새 돌볼 생각은 없어요.”

어젯밤 겪었던 일이 떠오르자 서정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최성운을 흘겨봤다.

“다 최성운 씨 때문이잖아요!”

최성운은 흠칫했다. 어젯밤 일이 그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마 하은별 씨가 최성운 씨를 짝사랑하는 거 모르는 거예요?”

서정원이 입꼬리를 당기며 반문했다. 최성운 때문이 아니라면 하은별이 왜 그녀를 고깝게 생각하고 온갖 수단을 써서 그녀를 잘라버리려 하겠는가.

‘하은별이 날 짝사랑한다고?’

최성운은 항상 감정에 무뎠다. 그는 어릴 적 만났던 그 소녀에게 마음을 전부 빼앗겨 다른 여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최성운은 서정원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들썩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요, 질투하는 거예요?”

“미쳤어요?”

서정원은 짜증스레 그를 흘겨봤다.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지만 최성운이 긴 팔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최성운은 그녀를 차에 앉힌 뒤 명령조로 말했다.

“잘 앉아 있어요!”

서정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최성운은 운전석에 앉아 문을 잠갔다.

“할아버지랑 약속했어요. 석 달 동안 서정원 씨 안전하게 지킬 거라고.”

최성운이 고집을 부리자 서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원도 최성운과 잘 지낼 거라고 할아버지랑 약속했었다.

석 달만 지나면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갈 것이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석 달을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정원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마디마디 분명한 큰 손이 그녀의 가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뭐 하는 거예요?”

서정원은 화들짝 놀라며 경계하듯 옆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았다.

최성운은 몸을 살짝 기울였고 그의 큰 손은 그녀의 가슴 앞을 지나쳤다. 그녀를 끌어안는 것처럼 보여서 굉장히 야릇한 자세였다.

최성운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전벨트 해주려고요.”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서정원은 최성운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났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다가 안전벨트를 하는 것마저 잊었으니 말이다.

손바닥을 통해 남자의 손등에서 온기가 전달되자 서정원은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최성운은 손을 빼낸 뒤 자세를 바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의 미간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온화함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 그는 서정원에게서 아주 옅은 향기를 느꼈는데 그가 기억하는 향기와 똑같았다.

설마... 서정원이 바로 어릴 때 그를 구한 적이 있던 그 소녀인 걸까?

몸을 돌린 최성운은 그윽한 눈빛으로 옆에 앉아 있는 여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낮았고, 미처 감추지 못한 설렘이 느껴졌다.

“서정원 씨, 혹시 어릴 때 납치당한 적 있어요?”

“네?”

안전벨트를 한 서정원의 귓가에 최성운의 엉뚱한 질문이 들렸다.

'납치라니? 갑자기 웬 납치?'

최성운은 참 뜬금없었다.

서정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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