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샤워를 마치고 밖에 나와 보니 최성운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기다란 두 다리는 서로 겹쳐져 있었고 예쁜 손은 경제 잡지를 한 권 들고 있었다. 그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채로 잡지를 보고 있었다.“난 이만 잘게요.”서정원은 최성운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말을 하자마자 뭔가 좀 이상함이 느껴졌다.“네?”고개를 든 최성운은 허스키하면서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날 초대하는 거예요?”‘뭐라고? 초대는 무슨!’서정원은 참지 못하고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정말 그냥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은 것뿐이었다.
“서정원 씨 우리 비서팀에 온 지도 며칠 됐죠. 우리 회사랑 프랑스 레이디 패션 다음 시즌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서정원 씨가 맡아요.”하은별의 눈빛에서 티 나지 않게 언뜻 질투가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서정원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말했다.“이건 프로젝트 자료예요. 서둘러 확인해요.”서정원은 자료를 건네받은 뒤 고개를 숙이고 한 번 훑어봤다.“네.”서정원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은별의 눈동자에서 질투가 불타올랐다.레이디 패션의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쭉 그녀가 맡았었다.그런데 오늘 아침 최
“오빠, 이모가 시킨 거야.”최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머니가 서정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서정원은 손님이었고 서정원이 사용인 방으로 쫓겨났다는 걸 할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분명 화를 낼 것이었다.“서정원 씨 물건들 다시 제 방으로 옮겨 놓으세요.”최성운이 사용인에게 지시하자 서정원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괜찮아요.”어젯밤 일을 떠올린 서정원은 미간을 좁히며 거절했다.그러나 최성운은 그녀의 태도에 조금 불쾌해졌다.사용인 방에서 지내더라도 그와는 같이 지내고 싶지 않다는
서정원은 최성운을 밀어내고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쿵 소리와 함께 최성운은 기가 막혔다.그를 내쫓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여자였다.사실 그는 그녀의 업무를 신경 써줄 생각이었다. 그가 하은별에게 레이디 패션의 프로젝트를 서정원에게 주라고 한 건 그녀에게 실력을 키울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서정원 같은 신입은 단번에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어려움이 많은 게 당연했고, 그래서 그는 직접 서정원을 가르칠 생각이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서정원은 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서정원은 당연
서정원은 최승철의 맥박이 안정적이고 몸이 건강하다는 걸 발견했다.그러니까... 최승철은 꾀병을 부린 것이었다.최성운은 할아버지께 효성이 지극했다.그래서 최승철은 꾀병을 부리는 방법으로 최성운이 서정원을 최씨 가문으로 들이는 데 동의하게 만들었다.손자를 위해 최승철은 참 많은 걸 신경 썼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와 최성운은 불가능했고 석 달 뒤면 최승철은 아마 실망할 것이다.서정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최성운을 바라봤고 최성운은 다정하게 서정원의 손을 잡았다.서정원은 본능적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조금 전 최성운과
손윤서는 도발하는 눈빛으로 서정원을 바라봤다.촌뜨기니 좋은 물건을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어쩌면 선물을 아예 준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그렇게 비교하면 최승철은 누가 명문가의 딸인지, 누가 최성운에게 더 잘 어울리는지 알게 될 것이다.최성운의 혼사는 최승철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기회를 잡아 최승철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최근 들어 손윤서는 이진숙의 마음에 들려고 온갖 방법을 썼다. 오직 이진숙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최성운은 여전히 그녀에게 냉담했고 그녀와 거리를 두려 했다.서정원은 최승
서정원은 웃었다. 그녀가 레오를 모른다면 세상에 레오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손윤서가 입은 드레스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또 예쁘지만 자세히 보면 모조품이었다.이 드레스는 작업실에서 딱 두 벌만 내놓았었다.하나는 할리우드 스타 에이디가 샀고 다른 한 벌은 영국 왕비가 샀다.그러니 손윤서가 입은 건 모조품이 확실했다.“제가 아는 바로 레오가 만든 정품은 치맛자락 안감에 하트 표식이 되어 있어요.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그 드레스에 표식이 있는지 없는지.”서정원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 하트 표식은 그녀가 직접 디
서정원은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잠깐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요?”최성운은 미간을 살짝 구기고 불만스러운 어조로 물었다.“곧 밥 먹을 텐데요.”무슨 중요한 일이 있길래 굳이 지금 떠나려는 걸까?“급한 일이 있어서요.”서정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문밖으로 향했다.그녀는 동물병원 의사에게 연락해서 물었다.“안녕하세요, 장 선생님. 저 서정원이에요. 저번에 제가 보냈던 강아지 지금 어때요?”전화 건너편에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이미 다 나았어요.”서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지금 데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