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확실하게 말했다.차설아를 향한 성도윤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자 그녀는 그와 영원히 재결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차설아는 예전에 성도윤이 무사하기만 하면 그녀는 그에게 철저히 멀리하겠다고 하늘과 거래를 했다.맹세는 맹세였다. 맹세를 한번 세우고 다시 깨뜨린다면 반드시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이번 사고도 아마 하늘이 그녀에게 준 경고일 것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이 맹세를 깨려고 한다면 성도윤도 아마 더 이상 운이 좋게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성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계속하여 차설아를 떠보았다.“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상황을 봐야지.”차설아는 너무 지쳤기에 길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어찌 됐든 계획이라는 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결국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몇 달 전까지만 해도 차설아는 성도윤과 함께 원이와 달이 네 식구의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계획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전부 변해버렸다. 정말 모든 것이 운명이고 조금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그래서 지금 차설아는 더 이상 어떤 계획도 세우고 싶지 않았고 되는대로 살고 싶었다.“나랑 함께해요...”성진은 갑자기 진지하게 차설아의 손을 잡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또렷하게 고백했다.“저도 이제야 깨달았어요. 전 설아 씨를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사랑했어요. 성도윤은 이미 끝장났어요. 성대 그룹의 미래는 지금 제 손에 달려있어요. 저는 설아 씨와 함께 성대 그룹, 나아가서 전체 성씨 가문의 운명을 지배하고 싶어요.”차설아는 담담하게 성진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말했다.“넌 역시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군. 내 생각이 맞았다면 네가 이렇게 큰 판을 짰으니 이제 슬슬 마무리하는 거지?”“아니에요. 설아 씨야말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죠. 제가 얻어낸 성과는 모두 설아 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죠. 제가 성도윤을 꺾지 못한다면 설아 씨와
성진은 차설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허허. 입을 꼭 다물고 있겠다고?”차설아는 이 말이 너무 우스웠다.“네가 만약에 정말 입을 꼭 다물고 있겠다면 그 영상이 어떻게 서은아의 손에 들어갈 수 있어? 다시 말해서... 이건 단지 네가 성도윤을 꺾기 위한 수단이었지.”“죄송해요.”성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이렇게 한 것도 전부 설아 씨를 너무 사랑하고 설아 씨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죠. 성도윤을 설아 씨 곁에서 떠나게 할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요...”성진은 그 말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사실 우리 도윤 형님은 정말 설아 씨를 사랑했어요. 서은아와 사귀는 건 두말할 것이 없고 성대그룹의 회장 자리를 내놓으라 해도 기꺼이 내줄 것 같았어요. 이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넌 정말 치사한 놈이야.”차설아는 성진은 매섭게 노려보며 경멸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넌 이전에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어. 지금도 그를 이길 생각을 하지 마. 내 이 일은 내가 자수할 거야. 이 일로 그를 협박하여 대표 자리를 가지는 거라면 꿈 깨.”“아니에요. 제가 설아 씨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설아 씨의 명예와 자유를 걸고 모험할 수 있겠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성도윤의 명예와 자유를 걸고 설아 씨를 위협하고 싶어요.”성진은 복잡한 표정으로 웃으며 눈빛에는 여우 같은 교활함이 배어 있었다.“날 위협한다고?”차설아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제가 말했다시피 저는 설아 씨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설아 씨를 가질 겁니다. 성도윤과 서은아가 함께 있으면 저는 설아 씨는 성도윤을 멀리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당신들은 헤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 함께 죽으려고 했죠. 제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세요?”“괴롭다면 가서 죽으면 되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차설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녀는 정말 죽도록 짜증이 났다. 성진 같은 미친놈을 건드렸으니
“꺼져, 이 미친놈아!”차설아는 성진이 미친 줄만 알았을 뿐 그의 말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너 같은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자란 이끼야. 네가 똑똑하다면 어두운 곳에 계속 조용하고 옹졸하게 자라겠지. 만약에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한다면 난 반드시 네가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그녀는 손에 장식품을 하나 집어 들고 성진한테 힘껏 던져서 그를 쫓아내려고 했다.성진은 늘씬한 몸매로 쉽게 피했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화내지 마세요. 절 보고 싶지 않다면 제가 그냥 가면 되죠. 어차피 조만간에 저에게 부탁하러 올 거예요. 그때 저랑 함께 아이를 낳죠.”“꺼지라고. 변태 새끼야!”완전히 분노에 휩싸인 차설아는 다리에 상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병실에서 들 수 있는 물건은 죄다 들어서 성진에게 던졌다.큰 소리가 나자 간호사들은 이내 달려왔다.“환자님, 이제야 위험에서 벗어났는데 이렇게 흥분하시면 안 돼요. 상처가 너 심해질 수 있어요...”“이 사람은 미친놈이에요. 빨리 쫓아내 주세요. 이 새끼가 가지 않으면 제가 갈게요!”차설아는 다리 상처의 고통을 참으며 미친 듯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이곳에는 1분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있다가는 그녀가 성진을 죽일 것만 같았다.“환자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니 먼저 자리를 피해주세요.”간호사는 차설아를 부축하며 강경한 태도로 성진이 떠나기를 요구했다.“좋아요. 지금 바로 갈게요. 설아 씨를 잘 보살펴야 합니다. 만약에 머리카락이라도 하나 다치면 저는 당신 병원의 모든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리겠어요.”성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 반 진담 반인 어조로 말하며 돌아서서 병실을 떠났다.“환자님, 지금 어때요? 호흡이 원활해요?”간호사는 차설아를 부축하여 다시 침대에 눕혔고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저 미친놈만 없다면 전 죽지 않아요.”차설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성진이 만약에 계속 이곳에 있었다면 그녀는 이미 화가 나서 죽었을 것이다.“정
“어? 민이 이모는 이곳에 웬일이세요?”당황해진 차설아는 다리의 상처를 덮으려고 했다.“뭘 가리고 있어요. 정말 급해 죽겠네요.”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아가씨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다 알아요. 왜 이렇게 멍청한 거예요. 왜 그런 남자를 위해 강에 뛰어드는 거죠. 아가씨가 죽으면 두 아이는 어떡해요? 성철 도련님과 제 생각은 해본 적이 있어요? 아가씨께 만약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저는 천번 만번 죽어도 아가씨의 부모님께 사죄드리기에 부족해요.”“죄송해요. 민이 이모, 저도 그때 머리가 텅 비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모도 걱정하지 마세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니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차설아는 가슴을 툭툭 치며 씩씩하게 말했다.“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그건 시내를 도는 강이고 그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 곳곳에 돌멩이가 널려 있는데 자칫하면 영영 아가씨를 볼 수 없게 되었어요. 아이고...”“알았어요. 앞으로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게요. 어쨌든 저는 민이 이모의 귀염둥이잖아요. 이모 말씀 잘 들을게요.”차설아는 말하며 어린 시절처럼 민이 이모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민이 이모는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어떻게 이 일을 알게 된 거죠?”차설아는 원래 기쁜 소식만 전했고 나쁜 소식은 감추어 두고 있었다. 이런 일이라면 그녀는 절대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그들한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성진이라는 자식이 알려줬어요.”민이 이모는 성씨 가문 사람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성진은 아가씨가 성도윤을 구하기 위해서 강에 뛰어들어서 생명이 위급하고 하며 이 병실로 찾아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가씨를 잘 보살펴달라고 했어요. 말하는 걸 딱 봐서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확실히 나쁜 새끼예요. 앞으로 상대하지 마세요.”차설아는 이제 숨길 수 없다는 걸 느꼈고 전부 말했다. 자신이 어떻게 소영금과 서은아에게 속아 넘어갔고 또 어떻게 위험에서
백매 의료단에 대해 사실 차설아는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고 단지 신기한 조직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의학계에서 지위가 매우 높았다.전통 의학으로 잘 낫지 않는 많은 환자가 백매 의료단의 치료를 받으면 결국 전부 다 나았다.특히 백매 의료단 단장님은 보통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염라대왕과 사람을 빼앗는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소문에 따르면 백매 의료단 단장님은 쉽게 진찰하지 않고 제자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이 세상에 살아 있는지도 몰랐다.뜻밖에도 이렇게 유명하고 신비스러운 인물이 바로 민이 이모의 친아버지였다. 세상은 정말 작았다.“민이 이모,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다니. 어쩐지 이모의 의술도 그렇게 뛰어나시더라니. 제 유모를 하기에는 아까운 재능이에요. 앞으로 민이 이모께서 백매 의료단을 물려받겠죠?”차설아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님을 보는 것처럼 숭배하는 눈빛으로 민이 이모를 바라보았다.그와 동시에 묵묵히 민이 이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님의 딸인데 자기 옆에서 하인 노릇을 하게 했고 하찮은 일만 도맡아 하고 있으니 정말 후회스러웠다.민이 이모는 즉시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차설아의 손을 잡고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아가씨, 그게 무슨 뜻이에요? 혹시 제가 어디 잘못해서 저를 쫓아내려는 거예요? 제발 저를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 사모님께서 저의 민씨 가문에 생명을 구해준 은혜가 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어릴 적부터 말했어요. 저의 사명은 바로 차씨 가문을 지키는 것이라고요. 저는 이미 아가씨를 돌봐주는 데 익숙하죠. 만약에 굳이 저를 쫓아내신다면... 저는 죽음으로 은혜를 마저 갚겠어요.”“민이 이모, 오해하셨어요. 저는 단지 이모가 신의님의 딸로서 더 중요한 사명이 분명히 있을 텐데 저 때문에 원이 달이를 돌봐주면 이모의 재능이 아까워서 그러는 거죠. 이모께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백매 의료단을 계승해야 이번 생이 헛되지 않을 거예요.”
“차설아, 우리 이혼해.”등 뒤에서 성도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차설아는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다.지글거리는 뜨거운 기름이 얼굴에 튀었지만,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우리는 명의상 부부일 뿐 정은 없잖아. 이제 4년이란 시간도 채웠으니, 이쯤에서 끝내자.”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느껴졌다.차설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드디어 이날이 왔군.’4년 전 차씨 집안이 파산당하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부담감에 못 이겨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결국 차설아는 홀로 모든 뒤처리를 감당하게 되었다.차설아의 할아버지와 성도윤의 할아버지는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였고, 차설아의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성도윤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차설아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눈에 밟히던 사람이 바로 어린 손녀딸이기에 성도윤의 할아버지한테 잘 좀 챙겨달라고 신신당부했다.그래서 이런 유명무실한 혼인을 치르게 된 것이다.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고, 성도윤한테 푹 빠졌다.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라는 역할만 충실히 이행한다면 언젠간 그의 마음을 얻을 거로 믿었다.하지만 이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너한테 보상으로 800억이랑 동탄구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줄게. 이건 이혼 신고서야. 별다른 문제 없다면 사인해.”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 대수롭지 않은 그의 태도는 마치 이혼마저 하나의 사업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차설아는 서류를 건네받아 일련의 숫자를 내려다보았다.4년에 800억이라...성씨 집안은 역시나 씀씀이가 달랐다.“꼭 해야겠어?”차설아는 서류를 내려놓고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그녀가 4년 동안 사랑한 남자는 조각 같은 외모에 훤칠한 몸매를 가졌는데, 매사에 진지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했다. 그는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응.”성도윤의 싸늘한 음성에는 일말의 망
어쩐지 성도윤이 오늘 밤에 나가라고 하더니, 새로운 애인을 집에 빨리 들이기 위해서일 줄이야!아까 고작 이런 남자 때문에 가슴 아파한 자신을 떠올리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임채원은 도도하게 차설아 앞으로 걸어가 거만한 말투로 쌀쌀맞게 말했다.“당신이 차설아야? 아직도 안 갔어? 도윤이가 가라고 하지 않았나? 여태껏 미적거리며 버티고 있었던 거야? 뻔뻔스럽기도 하네.”차설아는 그녀의 도발 따위 가뿐히 무시하고 계속해서 땅바닥에 널브러진 짐을 챙겼다.“이봐, 당신 귀먹었어? 내 말 안 들려?”“미안, 못 들었어.”차설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개가 멍멍 짖는 소리만 들렸거든.”“감히 나한테 욕한 거야?!”“내가 언제 욕했어? 본인이 직접 인정하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말을 마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길을 막는 임채원을 향해 고개를 까닥했다.“비켜줄래? 사람이 지나가면 개도 눈치껏 피해준다고.”“이...!”임채원은 화가 나서 발발 동동 굴렀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전설 속 성씨 집안 둘째 며느리는 동네북으로 소문났을 텐데, 입이 이토록 거침없을 줄이야!이를 본 도우미가 쪼르르 달려가 아첨하기 급급했다.“채원 양, 화 푸세요. 집에서 쫓겨난 여자 때문에 몸이라도 상하면 본인만 손해잖아요. 앞으로 이 별장의 안주인은 채원 양이라고요, 저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죠. 둘째 도련님의 부탁대로 채원 양이 지낼 방을 마련했으니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도우미의 말이 기분이 풀어진 임채원은 차설아를 공기 취급한 채 도우미를 따라 별장으로 들어갔다.매서운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밖에 또다시 차설아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눈앞의 웅장한 저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이곳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엔 이처럼 초라한 결말을 마주하니, 정말 아이러니했다!“안녕!”차설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그날 밤 도심으로 올라온 그녀는 원룸을 계약했다.비록 방이 크지는
다음날.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차설아는 8시 30분부터 구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일찍 도착한 건 물론 화장까지 정성껏 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롱드레스를 입고 그동안 풀어헤쳤던 머리카락마저 높게 묶어 백조처럼 길고 하얀 목덜미를 훤히 드러냈다.멀리서 보면 여신이 따로 없었고, 우아하면서도 시크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하지만 그날 밤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열이 살짝 난 탓에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9시 정각이 되자, 은색 부가티 베이런이 지상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섰다.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설아를 발견하자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꽤 적극적이네?”성도윤은 무심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스쳐 지나가 기다란 다리로 접수창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별난 놈이야.’차설아는 듬직하면서도 어딘가 쌀쌀맞아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몰래 생각했다.‘뒤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줄 알았네! 자기도 급하게 가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이혼 신고는 생각보다 빨리 처리되었다. 사인하고 날인하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새로 도입된 법에 따르면 이혼하고 나서 한 달 동안 숙려기간이 있는데, 등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혼을 원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둘 중에서 아무나 접수증을 들고 와서 취소해도 돼요.”구청 직원은 말을 마치고 이혼 접수증 2부를 각각 나눠줬다.매일 매일 이혼을 접수하면서 울고불고 심지어 현장에서 싸우기는 별의별 상황을 다 접했지만, 이렇게 무덤덤하게 처리하는 부부는 처음 본다.게다가 남자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여자는 날씬하고 예쁘기만 한데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어쩌다 이혼까지 하게 되었단 말인가?차설아는 접수증을 건네받아 빼곡히 적힌 내용을 들여다보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이혼할 때 숙려기간이 있으면서 결혼하기 전에는 왜 없대? 만약 혼인 신고할 때 숙려기간이 있다면...”성도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