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금여의 상태는 한결 좋아졌다.구급차가 오자, 고모 강운경이 허둥지둥 들어왔다.엄마 안금여가 아무렇지 않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멍해졌다.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후에 말했다.“엄마, 구급차가 왔어요. 빨리 가요.”강운경은 안금여가 일시적으로 좋아졌을 뿐이라고, 다음 발작이 또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안금여를 재촉했다.방금 거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강운경은 모르고 있었다.온몸이 상쾌하고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겨진 안금여가 고개를 저었다.“나는 괜찮아, 안 가도 돼.”안금여의 대답에 강운경은 바로 마음이 조급해졌다.“어떻게 안 갈 수 있겠어요? 엄마, 엄마 건강을 가지고 농담하고 싶지 않아요.”안금여는 강운경 자신과 조카 무진 두 사람에게는 정신적 지주였다.그러니 뭐라고 해도 절대 쓰러져서는 안 된다.이제 안금여가 점점 늙어가면서 무슨 큰 병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강운경과 무진은 매일 조마조마하다.안금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어찌될까 걱정이었다.“나는 정말 괜찮아, 왜 시간을 낭비해 가며 피곤하게 병원에 가야 하니?” 안금여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성연의 약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병원에 간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더군다나 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들을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하게 느껴졌다.‘그리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테지, 아, 너무 귀찮아.’강운경은 평소 무엇이든 엄마 안금여의 말에 따랐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물러서지 않았다.“안 돼, 엄마, 저랑 꼭 함께 병원에 가셔야 해요.”마음을 정하지 못한 안금여가 무의식 중에 성연을 돌아보았다.성연 역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안금여는 이미 노인이기 때문에 어떤 합병증이 생길지 자신도 알 수가 없다.역시 기계로 검사해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자신의 방법은 당장에 드러난 증세를 억제시키는 정도에 불과하다.성연이 동의하는 것을 본 안금여는 마지못해
안금여와 강운경이 병원으로 떠난 뒤, 성연은 집사를 찾았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집사에게 말했다.“집사님, 모든 고용인들을 모아 주세요.”“작은 사모님,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집사가 물었다.안금여가 사고가 났을 때 집사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번 일은 진정되었지만, 집사는 여전히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집의 고용인들에게 냄새가 나는군요.”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집사는 평생 강씨 집안의 고택을 지켜온 노인이다.누구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집사에게는 문제가 생길 수 없었다.집사의 얼굴도 같이 가라앉았다.“누굽니까? 감히 대담하게도 노부인에게 손을 대다니!”젊었을 때부터 강씨 집안에서 일했고, 강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은혜가 산처럼 컸다.강씨 집안 사람을 다치게 한 사람은 제일 먼저 집사 자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아직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고용인들 사이에 있을 거예요. 집사님, 빨리 안배해라.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지나면 도망가고 말 거예요.” 성연은 그 사람이 먼저 알아차릴까 봐 걱정했다.범인이 영리한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 고택의 촘촘한 수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가려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이 일을 한시도 늦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집사는 두말없이 성연의 지시에 따라 즉시 사람을 소집했다.모두 아홉 명의 가사도우미가 모였다. 모두 한 줄로 선 그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불안한 빛이 역력했다.성연은 비록 스무 살도 안 된 소녀였지만, 굳은 표정을 지을 때 몸에서 발산되는 위압감은 강무진 못지 않았다.성연의 모습을 본 그들은 성연이 무엇을 하려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댈 것 같아 한순간에 위기감을 느꼈다.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용인들 사이에 서서 강렬한 눈빛으로 세세하게 살폈다.고용인들 모두 선별 과정을 거쳐 안금여를 돌보기 때문에, 모두 상냥한 사람들이었다.한동안 성연은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턱을 만지
성연도 모두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구석진 곳에 선 여자는 서른일곱, 여덟 모양으로 보였다.가사도우미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녀는 날씬한 체형에 광대뼈가 높게 튀어나와 옷이 헐렁하고 볼품없이 보였다.확실히 불쌍해 보이는 얼굴이다. 사람들이 그녀를 처음 보면 절대 다른 사람을 해칠만한 담력이 없어 보일 것이다.그러나 이때 그녀의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떠올랐다.할머니 안금여를 해친 사람이 그녀가 확실함을 증명했다.여자는 성연을 매섭게 째려보았다.한동안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성연에게 발각되었다.이미 들켰으니 그녀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주먹을 꽉 쥐더니 갑자기 성연에게 공격을 가했다.전문가로군 하며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여자 고용인의 행동에 현장에 있던 다른 고용인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자신들과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내던 사람이 흉악한 범인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황할 때 성연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몸을 피하는 동작을 취했다.사람들에게는 그저 동작을 좀 빨리 해서 겨우 여자의 공격을 피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위치에서 성연은 은침을 한 웅큼 꺼내 모두 던졌다.여자 고용인은 성연이 이런 기술을 가졌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기민하게 은침들을 피했다.그러나 던진 은침이 워낙 많은지라, 그녀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이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결국 은침 세 개가 여자 고용인에게 꽂혔다.그녀는 무릎에 힘이 빠지며 불쑥 한쪽 무릎을 꿇었다.옆에서 고용인의 동작을 보던 집사는 순간 멍해졌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이 여자가 스스로 무릎을 꿇다니.’성연의 동작을 똑똑히 본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궁지에 몰린 여자는 나른해진 다리를 끌며 옆에 있던 고용인을 인질로 잡으려 했다.옆에 있던 고용인도 바보가 아닌지라 필사적으로 피했다.여자는 뜻밖에도 성연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몰랐다. 그
성연은 여자를 보면서 한편 자신이 무언가 빠뜨렸다고 느꼈다.성연이 다시 반복해서 기억을 떠올린 후 비로소 똑똑히 깨달았다.조금 전 저 여자가 움직인 반응과 속도는 절대 보통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다.‘이 여자가 마지막 킬러였어!’저들이 마지막 하나 남은 킬러를 할머니 안금여 옆에 심어 놓았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세 명의 킬러는 자신에게 붙이고, 한 명은 안금여에게 붙였다.사람들이 그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두 여자, 특히 병약한 노인을 상대하기 위해 전문 킬러를 보내다니.만약 저들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직 목숨이 붙어있겠는가?성연은 이 여자의 신분을 알아차린 후 경계심이 일었다.성연은 여자 앞에 가서 몸수색을 했다.여자는 악착같이 발버둥쳤다. “뭘 하려는 거야? 뭘 하하려고? 날 놓아줄 게 아니면 그냥 깨끗하게 끝내줘. 꾸물거리지 마.”성연은 침묵했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지닌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그러니 어떻게 여자의 바람대로 되게 할 수 있겠는가?성연은 아직도 여자의 입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지금 죽고 싶으면 여자만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이 여자 고용인은 늘 이런 말도 안되는 수작을 받아서 적지 않은 인명을 해쳤을 터였다.성연이 이렇게 한 것도 단지 사람들을 위해 제거한 것일 뿐이다.계속 여자의 몸을 더듬어 내려가던 성연의 손에 마침내 허벅지 안쪽에서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성연도 거리낌 없이 바로 손을 뻗어 안의 물건을 만졌다.코끝을 가까이 갖다 대어 냄새를 맡아 보니 과연 독약이었다.먹는 순간 즉사하는 독약.이런 킬러들은 스스로에게 정말이지 지독했다.정보를 지키기 위해서 꺾이지 않으려는 수단이었다.여자는 성연의 손에 든 하얀 알약을 보고 동공이 움츠러들었다.음독 자살할 생각이었던 그녀는 바로 성연이 가지고 있던 약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던 성연은 여자가 돌진할 때 돌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여자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고용인들도 신속
무진은 바로 이쪽 일을 내려놓고 고택으로 달려갔다.세 명의 이사들은 이미 무진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서 무진은 그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며 막무가내로 강요하지 않았다.저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이들은 둘째, 셋째 일가를 무너트릴 열쇠였다. 무진이 손건호에게 저들을 잘 지켜보게 지시했다. 어떤 사고도 발생하면 안된다.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 후에 무진은 고택으로 돌아왔다.고택에 온 무진은 성연과 시선을 교환한 후, 수하에게 여자 고용인을 서재로 데려가 심문하게 했다.어쨌든 홀에는 이목이 너무 많았다.이제 막 머리를 내민 것이라, 무진도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을 해치려던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직은 모른다.누군가가 더 이상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무진은 이 방법을 생각해냈다.할머니 안금여의 안전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도대체 누가 널 보낸 거지?” 무진이 의자에 앉아 굳은 얼굴로 여자를 심문했다.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을 거부하는 모습.이 여자는 아주 고집스럽게 무진과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게 확실했다.죽으면 죽었지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며 무진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래도 참아야 해.’만약 이 여자가 진짜 둘째, 셋째 일가 쪽에서 보낸 첩자라면, 강명재와 강명기의 범행을 밝히는 증인을 한 명 더 확보하도록 회유해야 했다.그러면 강명기와 강명재는 죄목이 더 늘어나 평생 감옥에서 나오기 힘들 것이다.“당신 정체는 지금 이미 다 드러났어. 당신 배후에 있는 사람에게 이미 쓸모가 없어진 거야. 심지어 당신의 존재는 그들에게 위협이 되겠지. 스스로 잘 생각해 봐. 그때 가면 저들은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협력한다면 살아날 방법이 있을 거다.” 무진이 먼저 당근을 던졌다.사람의 목숨은 큰 유혹이다. 여기에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그러나 무진이 제시한 조건을 듣고 여자는 코웃음을 쳤다.“내가 바보인 줄 알아?”무진이 그녀를 놓아
동남아시아 용병? 무진이 바로 떠올린 예전에 죽은 킬러 몇 명 역시 같은 지역이었던 것 같다.‘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역시 같은 패거리였어.’그 중에 분명 연관성이 있으리라 확신했다.그러나 지금 사람은 이미 죽었고, 정보를 얻으려고 해도 알 길이 없다.무진은 손건호에게 우선 이 여자의 시신을 가져가서 살펴보게 했다.서재로 들어온 성연이 이 장면을 보았다.그리고 무진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성연은 무진이 아무것도 심문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렸다.발자국 소리를 듣고 무진이 고개를 드니 앞에 서 있는 성연이 보였다.무진이 물었다.“성연아, 너 어떻게 이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렸어?”성연은 사실대로 대답했다.“나는 할머니를 치료해 드릴 때,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까닭이 누가 음식에 독을 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즉시 집에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위해 집사 아저씨에게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여자의 정체가 자동적으로 드러났어요.”할머니 안금여가 독을 먹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소행이 틀림없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무진도 성연의 말을 믿었다. 성연의 설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꼈기에.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든 듯이 중얼거렸다.“이것 설마 아수라문의 목표인 건가?”무진이 생각하기에 몇 번이나 그들이 갔을 때 사람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그리고 그 동안 서로 세력 다툼을 하지 않던 아수라문의 사람들이 갑자기 북성에 나타났다.‘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어쩌면 아수라문의 사람들이 킬러들이 세 명밖에 없는 줄 알고 해결한 후에 철수했을 수도 있다.생각지도 못한 점은 마지막 킬러 하나가 강씨 집안의 고택에 잠입해 있었다는 것.무진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성연의 귓가에 들려왔다.성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무진 씨 어쩜 이렇게 똑똑하지? 그토록 빨리 모든 일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다니 말이야.’만약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자신의 신분을 곧 무진이 알아챌 것 같았다.성연은 일부러 화제를 돌리며
해가 기울어지며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숙인 황금 빛 논자락이 오랜 역사를 품은 이 시골 마을에 색채감을 더하고 있다.마침 하교 시간이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을 따라 늘어선 교복 차림의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책가방을 손에 든 송성연이 아이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다소 나른한 듯한 표정에 몸을 더 작아 보이게 하는 헐거운 교복, 개성을 드러내는 길이가 다른 바지자락. 개구장이처럼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흔들거리며,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얼굴이 더욱 시선을 끌게 한다.길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더위를 식히던 할아버지가 성연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성연이 학교 다녀오는 거냐?”“네. 학교 다녀왔어요.”성연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한 알을 꺼내 건넸다.“새로 나온 맛이에요. 드셔 보세요. 무척 달아요.”“그래.”‘허허’웃으며 받은 할아버지는 잠시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참, 네 아버지가 또 왔었다. 너를 도시에서 지내게 하려고 데리러 온 걸게야.”그 말을 듣던 성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며, 어두워진 눈동자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집 쪽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벤츠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하…… 그렇다면 좋겠네요!”성연의 입가에 한 줄기 조소가 걸렸다.성연의 부모는 어렸을 때 이미 이혼했다. 3개월도 안 되어 새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그녀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도 데려왔다.계모는 그녀를 키울 수 없다며 집에서 쫓아냈다.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성연의 친엄마 역시 그녀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을 불쌍하게 생각한 외할머니가 데려와 여태까지 키웠다.하지만 몇 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할 수 없이 엄마가 성연을 떠맡았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려 안달이 난 엄마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녀를 아버지에게 버릴 생각인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성연을 키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성연이 막 집 입
남자는 거의 1미터 90에 육박하는 키와 체중이었다.묵직한 체중에 눌린 성연이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넘어졌다.“윽, 아파!”성연에게서 숨이 터져 나왔다.등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정도로 넘어진 데다 위에서 누르고 있는 남자때문에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이중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그러다 성연은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심하게 잘 생긴 이목구비는 성별이 모호할 만큼 정교해서 천사와 요괴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반듯한 미간을 쓸어 올리니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냉랭한 포스가 배어 나온다.꽉 다문 얇은 입술은 서늘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도자기 같은 피부는 병적일만큼 창백해 보였다.그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이마 위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약하고 가쁜 호흡이 그녀의 얼굴 위에 뿌려졌다.몹시 초조해진 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다 뭐람?’그러나 남자가 이미 몸을 누르고 있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젖 먹던 힘까지 짜내 간신히 일어난 성연은 남자를 끌며 근처의 폐창고로 갔다.이 폐창고는 평소 달리 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성연이 망설이지 않고 피로 물든 비싼 양복과 셔츠를 재빨리 풀어헤쳤다.상처가 드러났다!복부에 위치한 새끼손가락 길이의 상처는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흘린 피의 양을 봤을 때, 확실히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이 상황이라면 병원에 보내는 게 맞겠지만, 이 작은 마을엔 제대로 된 병원이라고는 없었다.유일하게 진료하는 보건소에서도 이 상처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성연에게는 이 정도 상처 치료쯤 일도 아니었다. 성연은 손을 재게 놀리며 책가방을 열고 안에서 잡다한 병이랑 용기들을 꺼내었다. 남자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한 다음 지혈을 시키고, 약을 발랐다!치료하는 모든 과정들이 아주 깔끔한 것이 매우 숙련되어 보였다.모든 처치를 끝낸 성연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