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물어보고 포두(捕头-포졸 대장)와 아역(衙役-관아에서 부리던 하인을 일컫는 말)의 보고를 들었다. 검시관(仵作)의 검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경조부를 떠날 때 이미 술시(戌时)가 넘었다.말을 급하게 몰아 회왕부 안에 들어서보니 뜻밖에도 원경능과 낙양공주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공주부의 그 사건 이후로 셋째 누님은 원경능이라 하면 뼈에 사무칠 정도로 미워했다. 그가 의심스러운 심정으로 다가가자 낙평공주는 그를 보고 먼저 미소를 지었다.“방금 네 얘기를 했는데 마침 네가 왔구나. 어? 다섯째 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구나. 어디 아픈 것이냐?”우문호가 원경능을 흘끔 쳐다보았다. 원경능은 찻잔을 괴상하게 들고 물을 마시며 남몰래 그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그가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셋째 누님, 관아에 일이 많아서 좀 피곤한 것뿐입니다.”“피곤하냐? 그럼 얼른 원경능을 데리고 왕부로 돌아가거라.”낙평공주가 말했다.“먼저 여섯째를 보고 오겠습니다.”낙평공주가 손을 내저었다.“지금은 가지 말거라, 방금 잠들었어.”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원경능을 바라보며 말했다.“본궁은 처음에 왜 부황께서 원경능더러 여섯째의 병을 치료하게 하셨는지 이해가 안 갔어. 하지만 오늘은 많이 나아져 있더구나. 기침도 잦아졌고 아직 각혈도 안 했다. 보아하니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아.”우문호가 원경능을 흘끔 바라봤다. 알고 보니 여섯째의 병세가 호전되어서 셋째 누님이 그녀를 다시 보게 된 듯싶었다.“허면 셋째 누님은 여기 계십시오, 저흰 먼저 가보겠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가보거라, 내일 일찍 오고.”낙양공주가 말했다.두 사람은 몸을 돌려 나갔지만 희씨 어멈은 뒤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왕부에 남아 회왕의 약 먹는 상황을 지켜봤다. 반드시 단 한 번도 거르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회황은 약을 먹
서일이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왕부에 들어섰다. 그는 장방(账房)에 가서 종이, 붓, 먹, 벼루를 챙겼다. 장방 선생은 그의 사촌 동생이었는데 선지(宣纸) 천 장을 달라고 하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이렇게나 많이요? 곳간(库房)에 가야 할 듯싶어요. 탕 대인께 곳간의 열쇠를 받아 혼자 알아서 꺼내세요.”서일은 탕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탕양은 방금 장부 대조를 마쳤는데 그가 천 장의 선지를 요구하자 의아해서 질문했다.“그렇게 많은 종이로 무얼 하려고 그러는가?”서일은 울상을 지었다.“탕 대인, 이번엔 꼭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무슨 일인가?”탕양이 이상히 여기며 물었다. 서일이 울상을 짓는 모습을 처음 봤다.“왕야께서 저에게 ‘예의염치’ 네 글자를 천 번 베끼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예의’는 쓸 줄 아는데 ‘염치’는 어떻게 씁니까?”탕양이 눈썹을 치켜 떴다.“이상하군, 자네가 ‘염치’를 쓸 줄 모르는 건 당연하네. 자넨 염치가 없으니까. 헌데 어떻게 ‘예의’를 쓸 줄 안단 말인가? 자네한테 예의가 어디 있다고?”서일이 발을 굴렀다.“전 이렇게 비참한데 지금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저를 도와주지 않으면 나중에 탕 대인도 제 도움 받을 생각 하지 마십시오.”탕양이 웃었다.“자네가 언제 날 도와준 적 있는가?”“언젠가 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서일이 원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탕양은 웃으며 열쇠를 가지고 그와 함께 나갔다.“가세, 곳간에서 종이를 가져와야지. 허나 자넨 왜 왕야께 벌을 받게 되었는지 내게 알려주어야 하네.”서일은 길을 걸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왕부까지 마차를 몰고 왔으니 분명 제가 발을 젖히고 왕야와 왕비를 마차에서 내리게 할 것 아닙니까? 헌데 누가 마차 안이 더울 줄 알았겠습니까, 왕야와 왕비는 온 얼굴이 땀 투성이였습니다. 왕비의 옷깃도 벌어져있었고요. 잠깐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왕야께서 저를 욕하셨습니다.”탕양이 잠시 멍하니 걸음을 멈췄다.“정말인가?”그가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
원경능은 온몸을 긴장시키며 재빨리 눈을 피했다. 그를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한번 흘끔거리고는 급히 눈길을 피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새가 놀란 것 같았다.따뜻한 숨결을 담은 그의 입술이 닿아오자 그녀는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오늘 밤은 소월각에 머무는 게 어때?”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분출하지 못한 갈망을 억누르는 목소리였다.원경능이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눈을 뜨며 그를 확 밀쳤다. 그녀가 긴장한 듯 일어나서 급하게 말했다.“저는…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야겠어요.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단숨에 먼 곳까지 내달렸다. 그녀는 헐떡거리면서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받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두 사람은 원래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그가 자신을 좋아하나? 말도 안되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이를 갈며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어찌 그녀를 좋아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이치에 맞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았다.필시 그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러나 그녀에게 얻을 게 뭐란 말인가? 돈? 없었다. 지위? 그가 더 높았다. 권력? 그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그녀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노릴 수 있단 말인가?“왕비, 괜찮으십니까?”뒤에서 탕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능은 깜짝 놀라며 몸을 곧게 펴고 뒤돌아봤다. 그는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딘가 준수하고 대범해 보였다. 원경능이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탕 대인, 간 떨어지게 만들 셈인가?”“용서하십시오, 왕비.”탕양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허나, 왕비는 그 정도로 담이 작은 사람은 아닌 듯싶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원경능이 무슨 면목으로 탕양에게 이 일을 말하겠는가? 그녀는 그저 쓴 웃음을 지었다.“괜찮네, 과식한 듯해서 정원에서 산책하고
우문호는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았다. 얼굴에는 난폭한 기운이 감돌았다. “너… 본왕의 이불이나 씻어라.”서일은 한쪽 눈을 감싸고 그 곳을 보다가 멍해졌다. “왕야, 이불에 오줌을 누신 건가요?”주먹 하나가 또 날아왔다. 다른 한쪽 눈도 시커매졌다. 우문호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제야 마음속에 치밀어 올랐던 화를 얼마간 억누를 수 있었다. 서일은 울상이 된 얼굴로 이불을 끌어안고 나갔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기라가 들어와 다시 이부자리를 깔았다. 조심스레 우문호를 바라보니 그는 화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예리한 눈길로 그녀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것이 소름이 끼쳤다.왕야는 오늘 어찌 이러는 것인가? 기라는 전전긍긍하며 이부자리를 다 깐 후 재빨리 물러나겠노라 아뢰며 자리를 떴다.우문호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뒤였다.이렇게 괴로웠던 적이 없었다. 서일은 이불을 두드리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탕양이 손에 등불을 들고 다가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예의염치’를 베끼는 대신 이불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서일은 새댁이 애절한 눈빛을 보내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탕대인은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습니까?”“잤었네. 헌데 자네의 울부짖음에 깨어난 것이 아닌가?”탕양이 그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왜 자꾸 왕야의 노여움을 사는 게야?”서일도 억울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 더 발분하지 않으면 왕야는 조만간 자네를 내보낼지도 모르겠네.”탕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서일은 혼비백산하여 손에 있던 이불을 던지며 물었다. “탕대인, 그게 사실입니까? 왕야가 절 내보낸다고요?”“자네 더 약삭빠르게 굴지 못하면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이네.”탕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서라도 우리 초왕부에 들어 오고 싶어 한다는 걸.” 서일은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마음이 잔뜩 찢겨져 나갔다.맞
회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원경능은 우선 밖에서 엊저녁 시중들었던 머슴에게 설명을 들었다. 머슴은 엊저녁에도 각혈했었지만 기침은 많이 좋아졌다고 보고했다.희씨 어멈도 약을 먹은 정황을 보고했다. 저녁 식사 후 한 번, 밤중에 일어나 각혈한 후에 한 번 먹었고 오늘 아침 분은 아직 먹지 않았다고 했다. 원경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멈 수고했네. 낮에는 내가 지킬 테니 가서 주무시게.” 희씨 어멈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엊저녁 소인도 잠을 잤습니다. 그저 약 드실 시간에 깨어나 약을 드렸을 뿐입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로비께서 전문 인력을 보내시어 시중들게 하여 소인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알겠네, 로비마마는 어디 계신가?”원경능이 물었다.“주무시고 계십니다. 엊저녁 온밤 지키셨습니다.” 원경능은 좀 의아했다. 오늘 로비는 그녀를 감시하지 않을 셈인가? 비록 어제 로비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원경능은 그녀가 자신을 완전히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회왕이 엊저녁 좀 괜찮아 진 것이 그녀의 생각을 바꾼 것일 터였다. 회왕은 아직 깨나지 않았다. 그러나 원경능과 희씨 어멈이 밖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깨어났다. 두어 번 기침을 하자 머슴이 얼른 달려가 시중들었다. 양치질시키고 세수시키고 머리까지 빗긴 후 다시 좁쌀죽을 들여왔다. 회왕을 아주 적절하게 보살펴 드렸다. 우문령이 입 가리개를 하고 들어왔다.“여섯째 오빠, 다섯째 올케가 지금 밖에 와있어요.” 회왕은 미소를 띠고 우문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어. 이 계집애야, 너는 왜 이리 일찍 온 거야?” “제가 이 왕부에 거주한지 며칠 됐어요, 몰랐어요?”우문령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어?”회왕은 멍해 있다 눈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넌 현모비의 책망이 두렵지 않느냐?” “모비는 한결같이 하찮은 일에도 크게 놀라는데요
원경능의 입가에는 담담한 미소가 어려있었다.그러나 회왕도 밖에서 하는 말을 들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귀가 밝아서가 아니라 기왕비의 목소리가 너무 큰 탓이었다.회왕은 웃었다. 한 가닥의 비꼼이 얼굴에 나타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 졌다. 회왕이 말했다. “다섯째 형수, 들으셨습니까? 본왕이 낙심한 것이 아닙니다. 밖에 있는 저 사람들도 사실은 본왕이 좋아질 거라 믿지 않고 있습니다.”“밖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의 의원은 바로 저니까요.”원경능은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침대 옆에 앉았다.회왕은 그녀를 보고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다섯째 형수는 지금 그 입 가리개를 쓰고 저에게 치료가 잘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다섯째 형수 본인도 믿지 않는 것 아닙니까?”원경능은 그가 아직도 마스크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이 입 가리개가 왕야의 마음을 괴롭게 한 건가요?”회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괴롭지 않습니다. 그저 본왕이 죄인이라 느낄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죽음을 전파하는 죄인 말입니다.”원경능이 말했다. “당신은 원죄(原罪)가 아니에요. 원죄는 바로 이 병이지요. 당신은 그것에 크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일 뿐입니다. 사실 전 이 입 가리개를 벗을 수도 있어요. 제가 꼭 이 병에 전염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겁니다. 생명은 아주 소중한 것이니 저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제 자신을 보호할 겁니다. 왕야는 아주 불행히도 이 병에 전염되었지요. 요 삼 년 동안 아마 적지 않은 쓴맛을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침상에 누워 어디도 가지 못하고, 조금 움직여도 기침으로 폐가 다 터지는 것 같았을 겁니다. 왕야의 고달픈 상황을 이해합니다. 왕야가 그 어떤 의원도 신임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틀림없이 예전에도 지금 상황처럼 조금 좋아졌던 적이 있었을 거예요. 새 약을 바꾸면 조금씩은 효과를 보이니까요. 그러나 며칠 지나면 병세를 억제하지 못해
뭇 사람들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인중과 태양혈을 누르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로비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그녀가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찢어질 듯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하고 기왕비를 손가락질했다. “왜서 그 애한테 그런 말을 했느냐? 그 애에게 남은 건 고작 그 하나의 희망뿐인데, 기어코 그를 죽여야만 속이 시원한 게야? 네게 거치적거리기라도 한 것이냐? 그 아이는 그저 환자일 뿐이고, 본궁의 친정에는 인재도, 권력도, 세력도 없다. 너희한테 방해가 되지 않는단 말이다!”로비의 이 말은 여러 사람들의 형식적인 가면을 찢어버린 셈이었다.누구나 다 기왕이 태자 자리를 꼭 얻으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비 같은 사람들은 그저 모르는 척했고, 기타 공주들은 더더욱 굳이 총명한 것처럼 기왕비의 가식을 찢어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기왕비가 대단히 난처할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기왕비는 난처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로비를 바라 보았을 뿐이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채 가시지 않은 한 가닥의 탄식을 내뱉었다.“로비 마마, 자고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하였습니다. 제 호의를 로비마마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대도 괜찮습니다. 요 며칠 회왕부에서 여러모로 애를 쓴 건 모두 제가 스스로 원해서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로비를 향해 무릎을 굽혀 인사하고는, 담담한 눈길로 원경능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먼저 물러나니, 여섯째 시동생을 잘 돌봐 주세요.”그녀는 천천히 돌아섰다. 허리를 곧게 펴고 걸을 때에도 치마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마치 뒤에 수천 수만의 궁비(宫婢)들을 거느린 것 같아 자못 기개가 있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기왕비의 모습이었다. 원경능은 거기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기왕비가 떠난 후 사람들은 한바탕 로비를 위로했다.로비는 안정을 조금 찾자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원경능을 보며 말했다. “초왕비, 그 애의 치료와 약을 쓰는 데
고사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말했다. “권세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모든 것이라고?”원경능은 비아냥거리듯 웃으면서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네. 난 권세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도 모든 것을 다 얻지는 못했네.”“권세란 종래로 끝이 없는 것입니다.”그랬다. 황제가 되면 또 하늘과 높이를 비긴다. 권세에 끝이 어디 있겠는가? 문득 우문호도 이럴까 궁금해졌다.그녀가 고사에게 질문했다. “그대와 초왕은 우의가 깊은 것 같은데,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는가?”고사는 웃으며 말했다.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어릴 때의 정은 매우 갸륵한 법이지. 그럼 그와 저명취 사이의 일도 그댄 알고 있는 것인가?”“알지요. 모두 알고 있습니다.”그가 담담하게 원경능을 보며 물었다. “무엇이 궁금한 것입니까, 왕비?”“궁금한 건 딱히 없네. 난 그들 사이의 일을 알고 싶지 않아.”원경능이 대답했다.고사는 좀 의외라고 느꼈다. “소신은 왕비가 왕야의 속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원경능은 머리를 돌려 그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지 말자’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좌우명이라네.”고사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는다’라… 왕야와 저명취 사이의 일을 아는 게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드는 일이란 말인가? 그녀가 두 사람 때문에 고민이 생기는 게 아닌 이상, 고민거리라 할 것이 전혀 없었다.원경능이 말했다.“힘들어, 걷지 못하겠으니 마차를 타야겠네.”고사는 그녀를 위해 발을 들어 올려주었다.“조심하십시오, 왕비.” “고맙네!”원경능은 마차에 올라 손으로 발을 잡고 고사를 쳐다봤다. “아침 저녁으로 배웅해 주어서 정말 고맙네, 고 대인.”“폐하의 명입니다.” 고사는 담담하게 말했다.발을 내려놓은 원경능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될수록 머릿속의 고민들을 다 밖으로 내보냈다.우문호는 원경능보다 조금 일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