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청곡은 할아버지의 확신하는 눈빛을 보고, 할아버지가 분명 방법을 남겨뒀다고 생각해서 안심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대담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할아버지, 아니면… 2달 지나면 제가 수술해서 아이를 일찍 낳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할게요, 그럼 할아버지께서도 아쉬움이 안 남으실 것 같아서요. 그때부터 출산 예정기간까지 조금 남긴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거예요.” 어르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되겠어? 내가 아쉬워한다고 해서 아이를 미리 낳는다니, 엄마 뱃속에서 크는 게 제일 좋은 거니까, 그러지 마, 난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청곡아, 넌 너무 철이 들었어. 너무 철이 든 여자한테는 쉽게 소홀해질 수 있어. 남자들은 약간은 거친 여자들을 좋아해.” 국청곡은 자신을 비웃듯이 웃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말로는 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할 때, 그 여자가 어떻든 다 아껴줄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여자가 아무리 잘해도 다 잘못됐다고 생각하겠죠. 그 사람이 절 사랑하지 않는데, 철이 안 들 수가 없잖아요? 제가 철이 들었으니 지금까지 참아준 거겠죠.” 어르신은 또 한숨을 쉬었고, 힘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국청곡은 그런 그를 부축해서 눕혔다. ”할아버지, 쉬세요, 저는 그럼 더 방해 안 할게요.” ...... 목가네. 경소경은 갑자기 늦은 밤에 찾아왔고, 온연은 목정침이 일어나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 “어디가요?” 목정침이 대답했다. “소경이가 왔어, 볼 일 있다고. 더 자.” 그녀는 잠이 살짝 달아났다. “이 새벽에 온 거면 급한 일 있는 거 아니에요? 나도 같이 가서 무슨 일인지 들을래요, 혼자 왔데요? 몽요는 안 오고요?” 목정침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함께 내려갔다. 경소경은 이미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딱 봐도 표정이 심란하고 안 좋아 보였다. 온연은 대략적으로 무슨 일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는 두 남자에게 물
온연도 목정침의 생각에 동의했다. 예전에는 다들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길 생각이었다. 왜냐면 그때는 진몽요가 임신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망설일 게 없으니 미리 말하는 게 나았다. 경소경도 목정침의 제안에 동의하는 듯 보였지만 망설였다. “그럼 이 얘기는 누가 해? 어차피 난 못 하겠어… 아니면 온연씨가 하실래요? 몽요씨랑 사이도 제일 좋고 그 사람 성격도 잘 알잖아요.” 온연은 거절했다. “두 사람이 부부니까 소경씨가 말하는 게 제일 좋죠. 여자 달래는 법에 일가견 있잖아요? 저도 지금까지 같이 숨겼으니 걔가 화낼까 봐 무서워요. 소경씨가 하세요, 저한테 다 떠넘기지 마시고요.” 목정침은 서로 미루는 걸 보며 말했다. “됐어, 정 안되면 그냥 다 같이 말해, 아무도 피할 생각 말고.” 경소경은 의심스럽게 그를 보았다. “다같이에 너도 포함된 거야?” 목정침은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를 위해 내려놨다. “나도 포함시킬게, 됐지? 자 이제 대책을 세웠으니 잠이나 자자. 토요일에 다같이 밥 먹는다고 하고 여기로 데려와.” 경소경은 걱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나 가 볼게, 더 늦으면 내가 집에 없는 거 들킬지도 몰라. 우리 다같이 문제에 직면하기로 얘기된 거니까, 그때 가서 입 닫고 있으면서 나 혼자 다 뒤집어쓰게 만들지 마. 그럼 나 진짜 무서울 거 같아… 이번만 넘기면 진짜 그 다음부턴 너희가 시키는 거 다 할 게!” 온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 했다. “누가 뭘 시킨다고 그래요? 됐어요, 토요일에 얘기해요. 너무 마음고생 하지 말고 잠 잘 주무세요. 다크서클이 너무 내려와서 거의 팬더랑 맘 먹겠어요.” 경소경은 자신이 새벽에 몰래 나온 줄 알았으나, 백수완 별장에 돌아간 뒤 문을 들어서자 마자 진몽요 때문에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그녀는 머리를 푸르고 하얀 잠옷 원피스를 입은 채 계단 앞에 서서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이렇게 차려 입고, 차까지 가져가고 말이에요.” 그는 심장이 내
한바탕 끝난 뒤 진몽요는 만족스럽게 입가를 핥았다. “오늘 잘했으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한 말은 지켜야 되니까 먹을 거 만들어 줄 게요. 평소에는 당신이 다 하니까 나도 가끔은 당신한테 해줄 때가 있어야죠.” 경소경은 소파에 누워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그는 정말 그녀가 이렇게 평생 행복하면서 영원히 전지 같은 자식을 모르길 바랐다. 토요일 저녁, 경소경와 진몽요는 약속대로 목가네에 왔다. 맘껏 먹고 마시기 위해 진몽요는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다. 진몽요가 샤브샤브를 좋아하는 걸 알고, 온연은 특별히 주방에 부탁해서 식재료를 준비했고, 진몽요는 헐레벌떡 앉아서 말했다. “연아 그래도 너가 날 제일 아는 것 같아. 소고기가 엄청 신선한 거 보니 비싼 거고만.” 온연이 경소경에게 눈치를 주자 경소경은 놀랐다. “우선 먹죠, 다들 가만히 있지 말고요.” 온연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굴렸고 경소경이 겁먹을 줄 알았다. 그녀는 원래 자신이 입을 열생각이 없었어서 콩알이에게 맑은 국물에서 소고기를 집어주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목정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전지 아직 살아 있어요.” 진몽요는 몸이 굳었다. “갑자기 그 얘긴 왜 해요? 설마 내가 지금 그 사람 어딨는지 궁금해할까 봐요?” 누군가 말문을 열었으니 경소경도 더 이상 쫄지 않았다. “예군작이 전지예요, 진짜 예군작은 이미 남아프리카에서 죽었고요. 예가네 어르신은 이미 이 일을 알고 계신데, 예가네에 이 가짜 후계자 말고는 상속받을 다른 후계자가 없어서, 예가네 어르신이 어쩔 수 없이 전지를 진짜 예군작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셨어요.” 진몽요는 손에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무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이게 재밌는 농담 같아요? 예군작씨가 어떻게 전지예요…?” 말을 하면서 그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안야가 경소경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뒤집어 씌운 일만 연관시켜 보기만 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안야의 아이의 아빠
진몽요는 갑자기 흥분해서 낮게 소리쳤다. “그만해요! 걔가 뭔데 날 위해요? 걔가 뭔데요? 날 그렇게 해친 걸로 모자랐데요? 걔만 아니었어도 우리 아빠는 죽지 않았을 거고, 우리 집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거고, 나도… 그런 일 안 겪어도 됐었어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놓고 그걸로 모자랐데요?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거래요? 내가 3년동안 진심을 다해서 개를 키웠더니, 돌아보니 그 개가 아주 세게 날 물었어요. 그 개가 이제 와서 죄책감 때문에 잘해보려고 그런 건 아니겠죠? 진짜 우습네요!” 예군작이 처음부터 그녀에게 접근해서 잘해줬던 걸 생각하면, 그녀는 무서웠다. 그녀는 이번생에 다시는 전지와 엮이고 싶지 않았고 평생 안 만나길 바랐다. 콩알이는 진몽요 소리에 놀랐고 온연은 아이를 품에 안았다. “몽요야, 진정해. 넌 전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잖아. 걔가 돌아온 건 너를 위해서이고, 너에 대한 죄책감을 메꾸려는 거겠지. 근데 걘 집착에 미친 사람에 가까워. 그때 제일 좋은 너를 잃었고, 또 후회하고 널 붙잡으려고 하잖아. 감정은 너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넌 이미 경소경씨가 있고, 이제 두 사람 사이에 아이도 있으니, 전지가 뭘 하든, 다 걔 일이지. 우리가 알려주는 건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뜻이야, 그래야 걔가 너한테 진실을 말했을 때 속수무책이진 않을 테니까.” 진몽요는 화가 나서 웃었다. “그래, 알겠어. 내가 퍽이나 메꿔주길 바라겠다. 걔가 나한테 준 상처는 영원히 지울 수 없어. 걔는 사실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자신만 사랑하지. 아니면 나한테 그렇게 상처를 주고도 나랑 경소경씨를 갈라놓으려 했겠어? 그냥 자기가 더 편하게 살고싶어서 그런 거야, 자기 무덤을 판 사람들은 뭐든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들 내가 크게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 난 방금 살짝 흥분하긴 했지만 상관없어. 예군작이든 전지든 내가 신경이나 쓸 거 같아? 이제 다시는 나한테 함부로 하지 못 하게 할 거야!” 목정침은 소고기가 올려진 접시를
경소경은 의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 집에는 왜요? 만약 가고 싶으면 내일 아침에 일찍 가면 되잖아요, 저녁에 가서 뭐하게요?” 진몽요는 툴툴거렸다. “내 말 좀 들어주면 안돼요? 갑자기 예군작씨가 나한테 줬던 그 꽃이 엄마집에 있던 게 생각나서, 당장 가서 버리려고요! 우리 엄마가 만약 그 꽃이 전지가 준 거인 걸 알면, 매일 물 주기는커녕 당장 시들게 만들 거예요!” 경소경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맞네요, 가서 처리해야죠.” 강령네 집으로 차를 타고 간 뒤, 그들이 온 걸 보고 강령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기뻐했다.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미리 말도 없이, 밥은 먹었어?” 진몽요는 강령과 말할 겨를도 없이 바로 안방에 있는 베란다로 가서 그 화분을 찾았다. 경소경은 어쩔 수 없이 강령의 말에 대꾸했다. “그… 저희는 먹고 왔어요. 몽요씨가 가지러 올 물건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들리게 됐어요.” 물건을 가지러 왔다는 용건인 걸 듣고 강령은 기뻐하지 않았다. “난 또 너희가 나 보러 온 줄 알았는데, 그냥 얼굴만 잠깐 비치러 온 거야? 됐다, 평소에는 보고 싶어도 얼굴 보기 힘들더니만.” 경소경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저랑 몽요씨랑 평소에 바빠서, 아이도 저희 엄마가 봐주고 계시잖아요. 저희가 시간 나면 뵈러 올게요.” 진몽요는 그 화분을 들고 금방 나왔고, 강령은 이상하게 여겼다. “이 꽃은 왜? 이 꽃 가지러 온 거야? 너 그 꽃 별로 안 아낀다며? 그래서 우리 집에 계속 뒀잖아.” 진몽요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어… 그… 예전에는 이 꽃이 뭔지 몰랐었는데, 이틀전에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집에서 키우면 안되는 식물이라고 하더라고요.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해서 가져가려고요. 엄마 나이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그쵸? 엄마, 오늘은 늦었으니까 우선 소경씨랑 먼저 갈게요. 일찍 쉬세요.” 강령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래, 가는 길에 운전 조심하고, 그 꽃 별로면
경소경은 약간 불안했다. “내 생각엔… 그냥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시 돌려줄 필요 없잖아요. 몽요씨… 괜찮아요?” 진몽요는 그를 보고 웃었다. “당신 생각에는요? 내가 언제 안 괜찮은 적 있었어요? 무슨 걱정을 해요? 난 절대 죽지 않는 천하장사라고요. 그때는 내가 자발적으로 전지를 건드렸어요. 아니면 우리 집이 망하고 사람도 죽지 않았겠죠.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나니까,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나 대신 막아달라고 하면서 피할 수는 없죠. 난 무섭지 않아요. 전지가 아무리 무서워도, 나랑 예전에 3년이나 만났었고, 걔도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비록 걔가 하는 짓들은 귀신보다 더 무섭지만요…” 경소경은 달래듯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요, 그럼 집으로 가죠.” 진몽요는 자신이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꿈에 져버리고 말았다. 이 날 밤, 그녀는 밤새 악몽을 꿨고, 놀라서 몇 번이나 깼고 이로 인해 경소경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날이 막 밝아지자 그녀는 어떻게 해도 잠에 들지 못 했고, 경소경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꿈에서 아빠가 나왔어요, 무섭게 나를 보고 혼내면서,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나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죽지 않았을 거라면서 날 탓했어요…” 경소경은 천장을 보면서 초췌한 몰골이었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했다. “아니에요, 아버님이 어떻게 당신을 탓해요? 그때 당신은 몰랐잖아요, 당신도 피해자예요.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 꿈을 꾼 거예요. 옛말 중에, 낮에 하는 생각은 밤에 꿈에 나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생각을 비워요, 그런 쓸데없는 거 걱정 말고요. 만약 미리 결과를 알았더라면 당신은 절대 이렇게 될 때까지 두지 않았을 거예요.” 진몽요는 억울해서 물었다. “당신도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죠? 구제불능일 정도로요.” 경소경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바보 같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나만 아는 바보예요.” 8시까지 버티다가 진몽요는 겨우 잠에 들었다. 경소경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은 경소경을 놀라게 만들었다. “몽요씨… 괜찮아요? 강한 척할 필요 없어요, 울고 싶으면 울어요,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해지잖아요.” 진몽요는 그를 노려봤다. “내가 왜 울고 싶겠어요? 전지가 돌아온 걸 알고, 게다가 일부러 내 옆에 접근했다는 걸 알고 놀라서 울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3살짜리 애도 아니도, 왜 날 무시해요? 그래 봤자 좀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을 뿐이니까 걱정 말아요. 괜찮으니까 오늘 내 요리솜씨나 좀 맛 봐봐요.” 경소경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녀의 다른 모습은 평소와 심리상태가 다르다는 걸 충분히 나타냈기에 그는 같이 답답함을 느꼈다. 손을 씻고 식탁 옆에 앉은 뒤, 식탁 위에 올려진 풍성한 요리들을 보면서 그는 입맛이 떨어졌다. 진몽요는 불평했다. “왜 그래요? 내가 만든 건 맛없을까 봐 그래요? 내 요리 먹기 쉽지 않은데 싫어하는 거예요? 다음에 언제 먹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요리를 집어서 입안으로 넣었고,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이해했다. “아니요, 마음이 불안해서 그래요. 당신이 진실을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상상했었는데, 지금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어요…” 진몽요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다들 내가 똑똑하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무 생각없이 사니까 이러는 게 정상아니에요? 상처받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건 나 답지 않아요. 설마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야 다들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사실 생각을 바꿔보면, 전지는 내가 한 때 사랑했던 남자잖아요. 근데 내 앞에서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겠어요? 난 그냥 마음이 무겁고, 걔를 멀리하고 싶고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같은 엄마가 낳은 자식은 아니어도 목정침씨 친동생인데, 당신이 봤을 때 왜 둘은 그렇게 다를까요?” 경소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방면에서 보면 목정침은 전지보다 더 무섭고 극단적이었다… 그가 아무 말도 없는
창밖에 오후의 햇빛을 보며 어르신의 시선은 온통 그쪽으로 향했다. “군작아… 할아버지 밖에 나가서 햇빛 좀 쬐고싶다.” 예군작은 말없이 일어나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웠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의식하지 못 했다. 그는 혹시라도 이미 늙을대로 늙은 어르신이 다칠까 봐 두려워했다. 바깥 정원으로 나오니 온도는 딱 적당했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으며, 공기에는 맑은 잔디와 흙의 냄새가 베어 있었다. 어르신의 입가엔 오랜만에 미소가 걸렸다. “군작아, 우리 처음으로 이렇게 사이좋게 나와서 햇빛 보는 거지?” 예군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이에요.” 어르신의 흐릿한 두 눈도 웃고 있었다. “그러게… 처음인데…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네.” 예군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거 좋아하시면 언제든지 데리고 나와드릴 수 있는데, 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세요? 꼭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요. 그렇게 귀찮게 잘 하시더니, 이제 저를 더 못 괴롭히시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실 것 같은데요?” 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내가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그랬다면 넌 진작에 예가네를 손에 넣고 네가 하고싶은 거 하면서, 내 구속을 받지 않아도 됐었잖아.” 예군작은 망설이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생각했었죠, 한 두번이 아니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에요. 어차피 며칠 못 사실 텐데, 그렇게 마음이 급하진 않았어서, 속으로 생각만 하고 넘어갔죠.” 어르신은 웃었다. “허허… 만약 네가 진짜 군작이었으면 내가 일찍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내 친손자는 내가 제일 잘 알거든. 걔는 날 너무 싫어해서 만나기만 하면 이를 바득바득 갈 정도야, 너처럼 내가 하루하루를 버티게 둘 정도로 착하지가 않지.” 예군작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 예군작을 잘 모르니 함부로 욕하지 않았다. 잠시 후, 어르신이 갑자기 물었다. “청곡이는? 왜 갑자기 애가 안 보이지? 배도 많이 나왔으니까 네가 조심해, 혼자 함부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