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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남지훈은 주방에서 한 시간 동안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내 몇 가지 요리를 식탁에 내놓았다.

그는 족발 콩나물 볶음과 족발 수육, 그리고 여러 가지 밑반찬을 만들었고 그중에는 과일을 깎아 놓은 접시도 있었다.

“소연아, 밥 먹어.”

남지훈이 그녀를 불렀다.

소연은 한쪽 다리를 절룩이면서 주방으로 왔다. 그녀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

남지훈이 물었다.

소연은 남지훈을 흘겨보며 말했다.

“전부 열량 폭탄 음식들이잖아! 어젯밤에 나보고 무겁다고 해놓고 나 살찌우려고?”

남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만든 요리들은 모두 가정식이었고 족발 콩나물 볶음엔 특히 콜라겐이 가득했다. 뭐가 문제인 거지?

그는 문제의 핵심을 알지 못했지만 일단 입을 열었다.

“족발엔 풍부한 콜라겐이 들어있잖아. 콜라겐은 피부에 아주 좋아.”

남지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저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소연은 채소만 깨작거리다가 맛있게 먹는 남지훈의 모습에 족발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족발이 느끼할 줄만 알았던 소연은 먹으면 먹을수록 아주 고소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소연은 확실히 배가 고팠다.

회사에서는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이사 온 새집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도우미를 고용하고 싶지 않았다.

남지훈의 요리 실력은 아주 괜찮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쉬는 날엔 그는 계속 월셋집에서 요리를 해먹었기에 가정식에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남지훈은 자신의 요리 실력 또한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만든 이 요리들은 전에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한바탕의 식사가 끝나고 그릇은 이미 깨끗하게 비어 있었고 뼈만 덩그러니 접시에 남아있었다.

수저를 내려놓은 소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변해버렸다!

“나... 난 거실 가서 좀 쉴게.”

남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연의 빨개진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얼른 주방으로 돌아가 설거지를 했다.

소연은 절룩거리며 소파에 가서 앉았다. 아까 너무 많이 먹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나쁜 자식!”

그녀는 씩씩대며 자신의 다리에 상처가 있다는 것도 망각하고 테이블을 세게 걷어찼다!

“쓰읍!!!”

엄청난 통증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속으로 남지훈을 몇천 번이나 욕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남지훈이 소연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발은 괜찮아?”

그는 아까 소연이 식탁까지 걸어오는 모습을 떠올리며 아마 별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소연은 말하지 않았고 그도 더 이상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은 결혼 계약서에 따라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별로 아프지는 않아.”

소연은 말하면서 가방에서 은행 카드를 꺼내 남지훈 앞에 내밀었다.

“우리가 3년 동안 같이 살게 되었으니 절대 네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집에서 쓰는 물건들을 이 카드로 사면 돼. 만약 큰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나한테 미리 알려줘. 나한테 그냥 알려주기만 하면 돼. 내 답장도 기다릴 필요 없어.”

그녀는 또 가방에서 폭스바겐 차량 키를 꺼냈다.

“이건 지하 주차장에 있는 파사트 키야. 네가 써. 혹시 운전면허 없으면 얼른 가서 하나 따. 집에서 이미 우리가 결혼한 사실을 알았을 텐데 계속 버스 타고 출근하면 내가 너한테 못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실거야.”

소연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세 명의 오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어느 구석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에 빠졌던 그녀는 테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커튼 좀 쳐줘.”

커튼을 치자 맞은 켠 건물에 있던 소한용은 머리를 긁적였다.

“나 설마 들킨 건가?”

남지훈은 카드와 키를 다시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 돈은 필요 없어. 아직 나에겐 200만 원 정도 있으니까. 아직은 충분해. 차도 필요 없어. 그냥 버스 타고 다니면 돼.”

“너도 알 거 아니야. 우리가 앞으로 함께 3년간 살게 되었으니 네 돈만 쓰고 살 순 없어.”

“고작 200만 원 갖고 돈이라고 하는 거야?”

소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무자비한 말에 남지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달 월급보다도 많은 200만원은 그에게 있어선 아주 큰 돈이었다. 근데 고작이라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소연은 카드와 차 키를 다시 가져갔다.

“마음대로 해. 넌 어차피 팔다리 멀쩡하니까 확실히 돈은 잘 벌 수 있겠네.”

소연이 카드와 차 키를 다시 가방에 넣는 모습에 남지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돈도 없으면서 자존심은 왜 세워!

남녀가 한 집에 살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남지훈과 소연의 공통 화제가 아주 적었다.

남지훈은 소연의 가족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계약 결혼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조용히 있었다.

하룻밤이 지났지만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남지훈은 전화벨 소리에 시끄러워 깨버렸고 발신인을 확인하자 전 여자친구 이효진이었다.

남지훈은 휴대폰에 뜬 전 여자친구의 번호를 보자마자 차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방안이 아주 조용해졌다.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하려던 때에 오늘 회사 출근 안 하냐는 이현수의 문자를 받았다.

남지훈이 사직서를 내기 전에 김명덕이 먼저 그를 해고했다.

해고당했으니 그러면 당연히 상응하는 보상이 있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카드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을 떠올린 그는 김명덕을 찾아가 자신의 월급을 돌려받을 생각도 했다!

김명덕의 약점을 손에 넣은 그는 김명덕이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수한 후 남지훈은 두유를 갈았다. 그리고 간단한 토스트와 삶은 계란을 준비해뒀다.

소연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소연이 아침을 먹는지 안 먹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일단 식탁에 아침을 남겨두고 메모지를 남겼다.

명덕 테크.

남지훈을 발견한 이현수는 배시시 웃으면서 다가갔다.

그는 남지훈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명덕 테크 회사 내부에서 이현수만이 남지훈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다.

김명덕이 남지훈의 여자친구를 빼앗아 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남지훈은 그날 김명덕에게 주먹을 날렸고 그 후로부터 두 사람은 원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니 남지훈과 가까이 지낸다는 건 김명덕의 눈 밖에 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그들은 남지훈이 오늘 출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현수가 물었다.

남지훈의 처지에 대해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전 여자 친구의 일로 이현수는 남지훈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지훈의 상태는 그의 예상보다 아주 굳건했다.

남지훈이 답했다.

“아버지께서 아직 병원에 계시거든요. 일단 건강을 되찾은 후 다시 생각해볼 겁니다. 사전에 말도 없이 갑자기 절 해고했으니 보상금을 받을려고요. 그래서 일단 그 돈으로 버티며 살아가야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남지훈은 아직 계획이 없었다.

모든 건 자신의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은 후 진행할 생각이었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따가 저도 아버님 뵈러 병문안 갈게요. 저도 이젠 더 이상 김명덕을 위해 일할 맛이 나지 않네요. 매일매일 시간만 보내다가 퇴근을 하니까 엄청 기분이 상쾌한 거 있죠!”

김명덕과 이효진의 일에 대해 남지훈은 아직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그는 김명덕이 그를 사지로 몰아넣었을 때 밝혀버릴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김명덕의 와이프가 김명덕의 행동을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말을 하는 와중에 인사팀 대리가 다가와 남지훈에게 종잇장 한 장을 넘겨주었다.

“남지훈 씨, 남지훈 씨는 이미 김 대표님께서 해고하셨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석현 대리는 마치 돈 떼어먹은 사람을 쳐다보듯 말했다.

남지훈은 해고 통지서를 보며 대충 장석현 옆에 툭 던졌다.

“해고만 하면 끝인가요? 정리 해고당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해고당한 직원에겐 보상금을 줘야 할 텐데요. 보상금은 어디 있죠?”

“보상금이라니요?”

장석현은 웃어 보였다.

“김 대표님께 폭행을 행사해놓고 보상금까지 받으시려고요? 정말 꿈도 크시네요!”

남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제가 직접 김명덕 씨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당신의 말은 효력이 없으니까.”

장석현은 냉소를 지었다.

김명덕이 남지훈에게 보상금을 준다는 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남지훈은 이효진도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제와 다른 점은 이효진은 김명덕의 다리 위에 앉아있지 않았다.

남지훈이 들어오자 김명덕은 바로 몸을 일으키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훈 씨, 왔어요?”

이효진도 서둘러 마중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남지훈은 당황해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김명덕, 이 멍청한 새끼가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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