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평소에는 치고받고 하는 오빠지만 지금만큼은 옆에 있어줘서 마음이 든든했다.용기를 낸 소은정이 대답했다.“저는 연예인도 공인도 아닙니다. 제 사생활에 대해 대답할 이유도 의무도 없습니다. 또다시 저희 집 앞으로 찾아오시면 사생활 침해로 바로 고소하겠습니다.”방금 전에는 기세에 밀려 살짝 흠칫 하긴 했지만 그녀는 인기를 바라는 연예인이 아니다. 기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박수혁 씨와 서민영 씨의 관계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서민영 씨의 사고 소식에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만약 서민영 씨가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로 다치거나 죽었다면 제가 신을 매수했다고 생각하실 건가요?”어색한 분위기 속, 기자들 중 하나가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은 심호흡으로 분노를 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앞으로 다시 두 사람 일로 저한테 찾아오지 마세요. 두 사람 관종짓에 장단 맞춰줄 생각 없습니다.”말을 마친 소은정은 소은해를 남겨두고 바로 자리를 떴다.뭐야? 구해줬더니 이렇게 버리고 떠나는 거야?소은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여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한편, 소은해만 남자 기자들은 자리를 떠야 하나 인터뷰를 계속해야 하나 망설이기 시작했다. 기자들 중 일부가 주섬주섬 카메라를 정리하자 소은해가 비아냥거렸다.“뭐 저에 대해 물으실 건 없으신가 봐요? 저랑 은정이 사이가 궁금하시다면서요? 박수혁, 서민영 두 사람의 교통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 물어볼 거예요?”소은해가 내뱉은 질문은 확실히 기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기사거리긴 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기자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뜨려던 그때, 소은해가 가장 앞에 서 있던 기자의 옷깃을 잡았다.“뭐가 그렇게 급하세요. 아직 제 말 안 끝났습니다...”베테랑 기자였던 그는 소은해에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저... 저희는 더 이상 묻고 싶은 게 없습니다. 하실 질문 있으시면 하세요.”
소은해는 단호한 소은정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찼다. 방금 전 기자에게 분부했던 자신이 너무 자비를 베풀었나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대기업을 이끄는 대표로서 이 정도 박력은 필요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나 이제 출근해야 해. 어떻게 할 거야?”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물었다.방금 전 사건에도 흔들림 없는 동생의 모습에 소은해는 흐뭇하게 웃었다.“나 호랑이 데리고 가면 안 될까? 아빠가 요즘 나만 괴롭힌단 말이야. 걔라도 있으면 좀 나을 것 같은데.”잠깐 생각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상, 매일 야근의 연속일 텐데 혼자 두는 것보다 오빠와 아빠와 함께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소은정이 흔쾌히 허락하자 소은해는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얼른 가봐.”소은해는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 안으로 쏙 들어갔다.뭐야? 비밀번호는 언제 알아낸 거야...한편, 태한그룹.이한석이 부랴부랴 달려와 박수혁에게 기사 내용을 보고했다.소은정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들이 영상으로 인터넷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영상 속, 단호하게 기자들의 무례한 질문을 받아치는 모습에 네티즌들은 통쾌함을 감추지 않았다.“기레기들, 아침부터 저게 무슨 짓이야?”“우리 은정이 언니 좀 그만 내버려 둬.”“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을 것이지. 사고 낸 기사님은 무슨 죄래...”“은해 오빠 멋지다...”“은해 오빠, 은정이 언니랑 잘 어울리세요! 불륜 남녀들은 꺼져!”......댓글을 확인하던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기자들이 왜 은정이 집까지 찾아간 거야?”박수혁의 질문에 이한석은 어이가 없었다.지금 불륜 남녀로 찍힌 상황에 가장 궁금한 게 그거라니...하지만 대표의 질문에 이한석은 고분고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뭐...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간 거 아닐까요...”소은정, 소은해, 한 사람은 지금 최고의 화제를 자랑하는 여자에 다른 한 사람은 최고의 톱스타, 기자들의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이었다.“아닐까요
하지만 소은정은 박수혁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의 곁을 스쳐지났다.문 앞의 경비원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도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의 무심함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그녀의 마음속에 정말 그의 자리는 없는 것일까?소은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지만 빌딩을 들어가기도 전,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박수혁 대표님, 올해 안으로 서민영 씨와 결혼하실 계획이신 겁니까?”“불륜 타이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서민영 씨 말고 숨겨둔 다른 애인은 없으십니까?”“정말 불륜녀 때문에 소은정 씨와 이혼하신 겁니까?”“소은정 씨에 관한 루머를 퍼트린 게 박수혁 대표님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이십니까?”......끊임없이 밀려드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기자를 노려보았다.무시무시한 포스에 기자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른 기자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거성그룹 경비원들이 달려 나와 기자들을 막아섰다.길이 뚫렸지만 박수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떠들던 기자들도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다시 한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찾아온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오늘 이 기사, 인터넷에 올린다면 기자로서 쓰는 마지막 기사가 될 테니 각오하세요.”차가운 박수혁의 말에 정적이 이어졌다. 박수혁의 말은 결코 한낱 허풍이 아님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소은해의 수표를 받은 기자도 그 포스에 눌려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2층 베란다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소은정은 예상대로인 박수혁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박대한이 안심하고 회사를 맡길만해.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다니.하지만 불륜남녀라는 타이틀에도 계속 서민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민영을 위해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한 소은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박수혁이
공은 공, 사는 사라지만 박수혁이 그녀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화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두 대표의 날카로운 언쟁에 회의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박수혁은 침묵하며 소은정을 바라보았고 그녀도 그에 대한 혐오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그 시선을 마주했다.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 왜 그 눈빛에 자꾸 상처를 받는 걸까?박수혁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이때, 임춘식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제 생각에도 소 대표님 말씀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결국 소은정 뜻대로 진행하게 되고 세 사람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사안들을 의논하기 시작했다.회의가 끝나자 이한석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보고했다.“대표님, 태한그룹 주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마침 옆을 지나던 소은정은 이한석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쌤통이다.“중점만 말해.”이한석은 바로 태블릿을 건넸다.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1위는 바로 “박수혁, 서민영 두 사람의 불륜.”자극적인 글귀와 실명 언급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분노...네티즌들의 분노가 올라감에 따라 태한그룹의 주가는 끊임없이 하락세를 보였다.“불륜일 줄 알았어. 더럽게...”“저런 사람들이 계속 우리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게... 현타 온다.”“은정 언니, 팬클럽 주소예요!” ......댓글을 훑어보던 박수혁은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들어 임춘식과 대화를 나누는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평소처럼 침착하고 차분한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소은정은 살짝 고개를 돌렸지만 곧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은정아.”박수혁의 목소리에 소은정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불꽃이 튀기는 듯한 팽팽한 기싸움에 임춘식은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인기 검색어, 네가 한 거지?”박수혁의 질문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소은정은 여유롭게 머리를 넘기며 대답했다.“그래.”박
경비원들의 손에 이끌려 박수혁의 사무실에 도착한 박예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곧이어 경비원이 바로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았다.“오빠, 갑자기 왜 이래?”모르쇠를 대는 박예리의 뻔뻔함에 박수혁은 어이가 없었다.“왜 이래?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은데?”박수혁의 말에 흠칫 놀라던 박예리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몰라? 데리고 들어와.”박수혁이 이한석에게 말했다.그와 동시에 소은해에게 수표를 받은 기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기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박 대표님, 박예리 씨, 안녕하세요.”박예리는 기자가 자신의 정보를 팔아넘긴 줄 알고 바로 박수혁의 팔에 매달렸다.“오빠, 저 기자 말 다 거짓말이야. 난 기자들을 매수한 적도 없고...”아차, 박예리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면 저 남자가 누구인지도 몰라야 하는 게 인지상정, 마음이 급해 스스로 모든 걸 인정해 버린 꼴이었다.박예리는 어색하게 손을 풀고 말했다.“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박예리,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박수혁의 차가운 말투에 박예리는 숨이 턱 막혔다. 무슨 짓을 해도 넘어가 주던 오빠였는데... 왜 이러는 걸까?오빠를 건드리지 말라며 당부하던 엄마 이민혜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소은정 그 여자를 건드린 것뿐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박예리가 다시 불쌍한 척 연기를 하려던 그때, 기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대표님, 박예리 씨... 아직 잔금도 안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저도 그 돈 못 받겠습니다. 그러니까 전 놔주시죠.”“닥쳐!”다급해진 박예리가 소리쳤다.멍청한 기레기 주제에 눈치 없이 어딜 끼어들어!“박예리, 이제 네가 할 일은 하나뿐이야. 은정이한테 직접 사과해.”“내가 왜? 내가 왜 그 계집애한테 사과를 해! 결국 그 계집애가 피해 본 건 아무것도 없잖아.”이번 사건으로 소은정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린 데다 태한그룹 주가까지 떨어져 이미 짜
자신의 작은 악의가 나비효과가 되어 태한그룹에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힐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애초에 그녀의 목표였던 소은정은 여전히 멀쩡하다니.집으로 돌아가자 역시 화가 잔뜩 난 박대한이 당장 나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누구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할아버지의 뜻도 오빠와 마찬가지였다. 소은정에게 직접 사과하라.그리고 사당에서 밤새 무릎을 꿇고 반성하라는 말과 함께 박대한은 방으로 들어갔다.다음 날, 성준상의 기일.성준상의 유골함 앞에서 서민영과 박수혁을 보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한 소은정이 흠칫 멈춰 섰다.역시 두 사람을 발견한 성강희는 소은정의 팔을 끌고 다가갔다.“준상아, 수혁이가 나한테 잘해줘. 그래서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마.”서민영은 쑥스러운 듯 박수혁을 힐끔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수혁아, 나도 알아. 소은정 그 여자 때문에 너도 많이 힘든 거. 최대한 빨리 다시 프랑스로 들어갈게. 그럼 소은정 그 여자도 잠잠해질 거야.”지금은 일단 물러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수혁이도 화가 풀리면 그녀를 모른 척할 수 없을 테지.박수혁이 대답하려던 찰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시야에 소은정의 애매모호한 표정이 들어왔다.무릎까지 내려오는 블랙 원피스, 아무런 액세서리도 하지 않은 심플한 차림이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분위기와 찰떡처럼 어우러졌다.“박 대표가 눈에 밟혀서 떠날 수나 있겠어? 그냥 남지 그래?”소은정이 비아냥거렸다.어딜 도망가려고. 내 복수는 이제 시작이야.“은정 씨가 여길 어떻게?”갑작스러운 소은정의 등장에 서민영의 표정이 바로 표독스럽게 변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두 사람이 왜 우리 형 앞에 있는 건데.”성강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박수혁은 진작 성강희가 성준상의 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반면 성강희는 어렸을 때 유학을 떠나 형이 박수혁과 아는 사이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서민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만약
성강희의 말에 서민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비웃음이 섞인 소은정의 눈빛에 입술을 꽉 깨물던 그녀는 바로 자리를 떴다.하지만 소은정은 그대로 그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서민영의 뒤를 바로 따르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도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성강희가 그 앞을 막아 나섰다.박수혁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성강희는 어떻게든 다시 확인받고 싶었다.차에 타려던 서민영은 그녀의 뒤를 따라온 소은정을 발견하고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따라오는 거야? 왜 날 비웃어주고 싶어서? 착각하지 마. 수혁이가 날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널 좋아한 건 아니니까.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벌써 다 잊은 건 아니지?”전 남자친구의 유언 때문이라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박수혁의 관심을 받았던 여자다.소은정, 넌 나한테 진 거야.말을 마친 서민영은 바로 차에 탔다. 붉은색 BMW, 그녀와 어울리는 화려한 차량이었다.멀어져 가는 서민영의 차량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은정도 차에 올라타 엑셀을 밟았다.한적한 도로에 있는 납골당이라 넓은 도로에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서민영을 추격하던 소은정은 그녀의 차량을 따라잡으려던 순간, 핸들을 오른쪽으로 홱 틀었다.“펑!”순간, 굉음과 함께 두 차량이 부딪혔다.찌그러진 차량 속, 서민영은 눈이 커다래진 채 소은정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소은정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유턴을 하며 서민영의 차와 마주 본 채 차량을 멈추었다.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소은정은 서민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걸 지켜보았다.누구한테 전화를 하는 건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소은정은 다시 엑셀을 밟았다. “쾅!”굉음과 함께 공포에 질린 여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찌그러진 채 옆으로 넘어진 차량, 자극적인 휘발유 냄새가 서민영의 코를 찔렀다. 소은정은 그제야 차에서 내려 또각또각 서민영 곁으로 다가갔다.무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민영을 내려보고 있는 모습, 애초에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박수혁의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 엉망이 된 서민영의 차, 그 옆에 우아하게 서 있는 소은정, 굳이 묻지 않아도 누가 한 짓인지 알 수 있었다.항상 친절하고 착하던 소은정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보면 몰라? 내가 한 거야.”할 말도 다 전했겠다, 박수혁도 왔겠다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이 바로 돌아섰다.이때 박수혁이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민영이랑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라 아니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왜...!”박수혁은 소은정이 그와 서민영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복수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느꼈던 질투에 대한 복수.비록 그 방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생각해?”순간, 박수혁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참 가만히 보면 은근히 자뻑이라니까. 세상 여자들이 다 당신을 좋아하는 줄 알지? 그래, 나도 좋아했었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말을 마친 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의 박수혁을 남겨두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천천히 움직이던 차는 박수혁 옆에서 다시 멈춰 섰다. 차창이 천천히 내려가고 소은정은 창문 틈으로 보고서를 휙 던진 뒤 바로 자리를 떴다.자뻑에 관종,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보고서를 집어 들어 내용을 확인한 박수혁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서민영과 남자가 소은정의 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사진이었다.그날 밤, 일어났던 그 사고가... 설마...그날 박수혁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소은정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그리고 소은정이 버리고 간 보고서는 서민영이 살인을 사주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그래서... 복수를 한 거였어?보고서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종이가 힘없이 구겨졌다. 성준상이 죽은 뒤로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질투로 인한 복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