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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무릎 꿇고 빌다

별장은 지금 바로 들어와 살아도 모자랄 것 없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그리며 야심 차게 신경 써서 인테리어를 마쳤던, 이미 모든 가구와 생필품을 갖춘 완벽한 별장이었으니까. 이렇게 쫓기듯이 딸만 데리고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늘부터 이 별장은,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곳이다. 경건하게 마음을 굳혔다가, 나는 또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냥 빌어먹을 신호연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기념일이 아닌 이혼선물일 테지만.

호기심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꾸 묻는 콩이에게 이곳이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사방팔방 콩콩 뛰어다녔다.

내 속도 모르고 좋아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심하게 아렸다. 차라리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아, 내 고통을 헤아려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나 같은 버림받는 인생 말고, 본인만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할텐데...

콩이가 막 잠들었을 때, 신호연이 찾아왔다.

연회장에서의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부은 걸로 보아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신호연은 이미연을 상관 하지 않고 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대역죄인의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오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사실 대역죄인이 맞긴 하지.

이 남자는 자존심도 없나 보다. 이게 벌써 몇 번째 꿇는 무릎인가. 몇 번을 꿇어도 결코 불륜이라는 더러운 버릇을 떼지는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다.

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또 전과 같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면 그냥 가.”

“여보... 내가 당신을 두고 어딜 가... 당신이 내 집이나 마찬가진데.”

신호연은 지은 죄를 모두 승인하는 모습이었다. 고분고분했고 더 이상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겨웠다.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꼴사나웠고 듣기도 보기도 싫었다.

“하하. 혹시 그런 말이 나를 돌려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는 실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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