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섹시한 블랙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여전히 말랐지만 몸매는 여전히 쭉쭉빵빵했다. 육경한은 그런 소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실 육경한은 소원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숨 쉬기도 힘들만큼 마음이 아팠다. 이 고통은 5년 전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던 그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시간이었다.소원은 어디서 이름 없는 시체를 구해 그를 희롱한 것이었다.그날 소원을 우연히 마주치고 바로 시체에서 DNA를 채취해 조회했지만 맞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길 가던 노숙자와 마주친 것 같았다. 하지만 육경한은 이런 장난에 바보처럼 놀아나고 말았다.육경한은 그런 소원을 사악하고 매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가 당한 걸 생각하면 목 졸라 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왠지 자꾸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전해지는 고통도 파도처럼 계속 밀려들기만 할뿐 끝나지 않았다. 총을 맞는다 해도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소원은 육경한과 마주친 것에 크게 놀라지 않은 듯 보였다. 그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렇게 물었다.“육경한, 이거 좀 놓지?”태연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걸로 봐서 소원은 육경한에게 전혀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덤덤한 말투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이 같았다.하지 말아야 할 장난을 한 건 분명 소원인데 왜 그녀는 이렇게 태연하고 침착할 수 있는 거지? 도대체 왜?육경한은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입 밖으로 내뱉었다.“소원. 나 갖고 노니까 재밌었니?”소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저기요. 소원이 놓아달라는 거 못 들으셨어요?”육경한은 윤혜인의 말을 아예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손목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윤혜인이 손을 내밀어 육경한을 뜯어말리며 화냈다.“이거 놔요!”육경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윤혜인을 밀쳐내려 했지만 가늘고 약한 팔에 단단히 잡
주훈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경매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지 이준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냥 조금 더 에돌아가는 수고를 무릅쓰고 윤혜인과 더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하지만 눈치 없는 김성훈이 찬란하게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너희들이랑 좀 작작 다녀야겠어. 아니면 나까지 윤혜인 씨한테 홀대당하겠는걸?”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김성훈을 힐끔 쳐다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넌 솔로 기간이 너무 오래된 것 같아.”“...”김성훈은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런 팩폭을 들어야 하는 걸까? 솔로가 뭔 죄인가?이준혁이 이내 이렇게 덧붙였다.“너랑 잘 어울릴만한 돈 많은 여자 알고 있는데.”김성훈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걱정하지 마. 나 아직 짱짱해. 소개팅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우씨 가문 셋째 딸, 우희 말이야.”“이런!”김성훈이 괴성을 질렀다.“어떻게 우희를 소개해 줄 생각해? 그런 드센 여자를 소개해 준다는 건 나보고 죽으라는 거 아니야?”우희는 사랑에 죽고 사는 사랑에 미친 여자로 소문나 있었다. 우희가 전에 쫓아다니던 남자는 그 공세를 이기지 못해 이민을 선택했고 다시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제일 중요한 건 우희가 아주 어릴 때 김성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김성훈이 외국으로 가고 나서야 목표를 바꿨다.김성훈이 귀국한 지도 꽤 오래됐지만 우희는 그를 떠올리지 못한 듯싶었다. 우희가 쫓아다니던 그 시간은 마치 악몽처럼 생각날 때마다 김성훈을 괴롭게 했다.“나한테 우희를 소개해 주면 나도 윤혜인 씨한테 다른 도련님 소개해 줘야지. 요즘 서울 재벌 3세들이 그렇게 우수하다던데. 야망이 큰데 연하라 풋풋하니 데리고 놀기 딱 좋지...”이준혁이 차갑게 웃으며 대뜸 이렇게 불렀다.“우희야.”김성훈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이름 부른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나 김성훈, 이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 없...”“준혁 오빠!상큼한 목소리가 김
“나는...”육경한이 말끝을 맺기도 전에 소원이 비아냥댔다.“내가 왜 죽지 않고 살았나 했더니 다 너 때문이네.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내 명예까지 실추되는 게 억울했나 봐.”육경한의 잘생겼지만 차가운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왜? 할 말 없어?”소원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할 말 없으면 비켜. 기억해. 이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가 될 거야. 다음은 없어.”소원이 이렇게 말하더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육경한이 큰 손바닥으로 소원을 벽에 바짝 밀었다.육경한은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마치 앞에 선 소원까지 활활 태우려는 것 같았다.그는 소원을 부서트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맞다고 하면?”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5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며 차갑던 마음도 그녀라면 무서울 정도로 뜨거워지는 사람으로 변했다.아득하고 절망적인 나날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이 사람을, 살아서 움직이는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시뻘겋게 충혈된 육경한의 눈은 피가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캐물었다.“소원아, 나 진짜 너 사랑해. 너 없으면 못 살 정도로 말이야. 이제 어떡할 거야?”이렇게 말한 육경한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소원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 표정에서 육경한은 역겨움과 매정함을 읽어냈다.정확하게 읽었다. 소원은 그런 육경한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저 죽도록 싫을 뿐이다. 이 감정을 육경한이 정확하게 보고 알아채고 깨닫길 바랐다. 소원에게 육경한은 그저 쓰레기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육경한, 너 정말 역겹다.”하지만 이 말은 육경한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육경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소원아, 그런 말로는 나 못 밀어내.”이제 더는 5년 전에 뭐만 하면 발끈하던 육경한이 아니었다.“네가 싫어하는
육경한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표정은 여러 번 변했다.“무슨 말이야?”육경한이 보기 드물게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소원이 빨간 입술로 묘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허허. 육경한. 뭐든 다 알고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넌 탐욕스럽고 가식적이고 악독한 여자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린 것뿐이야. 내가 말한 사람 누군지 알겠어? 네가 오랫동안 좋다고 물고 빨았던 진아연, 그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락없는 사기꾼이야.”순간 육경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쇼는 이제 시작이었다. 소원은 이 순간을 참으로 오래 기다려왔다.소원은 육경한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어떤 표정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육경한, 너 출국하기 전에 내가 찾아갔었다고 했던 거 기억나? 너는 안 믿을지 모르지만 나 진짜 찾아갔었다?”“갔을 뿐만 아니라 60억을 준비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어. 하지만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났지.”전에는 코웃음 치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이 에피소드가 지금은 육경한을 무섭게 했다. 마치 귓가에 누군가 듣지 말라고, 더는 들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만약 그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다면 멍청했던 과거와 그 과거에 상처받은 소원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온몸의 피가 쑥 빠져나간 것처럼 손끝까지 하얘진 육경한의 차가운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온몸으로 범접할 수 없는 무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소원아, 지나간 일은 이제 꺼내지 말자. 내 곁으로 돌아오면 내가 잘해줄게.”지나간 과거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진상에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지금은 그 진상을 알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하지만 소원은 육경한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육경한의 표정이 어두워지면 질수록 소원은 끊임없이 쏟아냈다. 소원이 손수 만든 지옥에 뛰어드는 육경한의 표정이 미치게 궁금했기 때문이다.“안 믿는 거 알아. 근데 우연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 사라졌던
귓가에 울려 퍼졌던 절규와 절망을 육경한은 못 들은 척 차갑게 흘려보내곤 했었다.소원은 매 순간 변하는 남자의 표정을 보며 5년 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희열을 느꼈다. 다른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짓는 가식적인 미소랑은 다르게 말이다.“육경한, 내가 지금 말한 거 L 국에서 범인이 8년 전 자백한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어요.”“아니... 볼 필요 없어...”육경한은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버겁게 이 말을 뱉어냈다.더 찾아볼 필요가 뭐가 있을까?사실 전에 진아연이 위태로울 때 육경한에게 죽을 때까지 모르고 싶었던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하지만 육경한은 그 진실을 외면했고 자기를 기만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지금까지 잘 덮어놓았던 보호막을 소원이 억지로 찢은 셈이라 더는 가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어둡고 추악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육경한은 더는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육경한.”소원이 느긋하게 육경한의 이름을 부르더니 날카롭게 웃었다.“그런데 어떻게 서로 갚은 걸로 해?”“그러기엔 네 죄가 너무 크지?”이 한마디가 마치 풀스윙으로 날린 귀싸대기처럼 육경한의 볼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는 벙찐 표정으로 영혼이 쑥 빠진 듯 좀비와도 같았다.육경한은 오랜만에 다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거로는 부족했다.소원이 보고 싶은 건 육경한이 처절한 슬픔에 빠진 모습이 아니었다. 소원은 자신이 겪었던 뼈저린 고통과 살을 에는 듯한 상처, 그리고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절망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소원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매혹적인 말투로 말했다.“나는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네 쇼를 봐 줄 시간이 없어. 안녕.”육경한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안녕이라는 소원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다.“소원아, 가지 마.”목구멍은 끓는 물이라도 부은 듯 불타올라 목소리가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소원이 빨간 입술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거 알아? 우리
육경환은 마치 희망이라도 본 듯 모든 걸 포기할 각오로 소원의 손목을 꼭 잡았다.“소원아, 나 안 믿는 거 알아. 근데 나 정말 후회해. 네가 떠난 그날부터 뼈저리게 후회했어. 그때야 발견했지. 너를 원망하는 것보다 너를 사랑하는 게 더 많았다는 걸.”육경한은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남은 핑계가 얼마 남지 않은 원망이었지만 진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의 원망은 애초부터 모래성에 쌓아 올렸기에 진실의 공격을 받은 순간 그대로 와르르 무너졌다.하지만 소원은 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사랑한다니, 육경환이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우스웠다.그녀에게 육경환은 그녀의 명예를 짓밟고 그녀의 회사를 무너트리고 그녀의 가족을 핍박해 죽게 만든 사람일 뿐이다.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한 육경환이 매 순간 지옥이었으면 했다.그런데 지금 감히 ‘사랑’을 거론하다니. 소원은 육경환에게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소원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원망을 꾹꾹 누른 채 덤덤하게 말했다.“대표님, 기회를 원한다고요? 뭐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육경한은 머리가 하얘졌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곧이어 소원이 전시 센터 대문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대표님, 저기 보여요? 저기는 전시 센터에서도 유동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죠. 저기 가서 기회 줄 때까지 무릎 꿇고 있어요. 어때요?”육경한은 소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는 전시 센터의 랜드 마크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하여 중요한 회의나 경매, 그리고 기자회견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꼭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육경한은 그냥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뉴스에 날 정도인데 무릎을 꿇고 있는다면 더 대박일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알 수 있었다.육경한의 표정을 살핀 소원의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대표님, 조금 전만 해도 후회한다고 그러더니, 이제 그 후회가 얼마나 싸고 우스운
참으로 큰 도약이 아닐 수 없었다.윤혜인이 노크하자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윤혜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울로 누군지 확인한 이진영이 순간 경계하기 시작했다.“당신 누구야?”윤혜인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진영 씨는 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나를 폭로하겠다는 거예요?”이진영이 넋을 잃더니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당신이 우리 남편을 꼬신 그 사람이에요?”윤혜인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이진영 씨, 입은 삐뚤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어요. 제가 그쪽 남편에 의해 누명을 쓴 건 맞아요. 근데 남편분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은 거 보면 모르겠어요?”이진영은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이 안에 갇혀 있는데 전혀 관심하지 않고 누구의 감언이설을 들었는지 윤혜인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사법 체계가 고작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영향은 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윤혜인은 이진영이 멍청한지 아닌지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냥 이 사건의 배후가 대가만 치르면 된다.감히 곽아름까지 들먹이다니, 윤혜인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줄 생각이었다.폭로를 좋아한다면 이번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의 대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사실 이진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임세희가 이 기회에 여론의 힘을 빌려 남편도 살리고 사람들에게 피해자 이미지도 굳힐 수 있다고 알려줘서 그대로 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일약 톱스타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여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우리 남편 가정적이기로 소문난 사람이에요. 모함할 생각이라면 포기해요.”“그냥 우리 남편한테 빌붙어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이었나 보죠?”“약을 탄 것도 모자라 검색어까지 내리고, 지금 이렇게 찾아와서 훈수까지 두는 거예요?”윤혜인의 눈동자는 경멸을 감추지 못했다. 윤혜인은 이진영의 머리로 어떻게 살벌한 정글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