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차에 기대 서 있었다. 정갈하게 빗은 그의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날려 흐트러졌고 고고한 그의 모습에 시크한 분위기가 더해진 것 같았다.강하랑이 나오는 모습에 그는 자세를 고쳐잡고 칠흑 같은 두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옆에 동행한 남자를 보자마자 그의 눈빛은 짙게 가라앉았다.강하랑의 어깨에 여전히 걸쳐있는 단이혁의 옷에 연유성의 눈빛에서 한기가 맴돌았다.그녀는 아직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고 바로 단유혁과 함께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연회장에 있었던 것처럼 그와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연유성
그가 입을 열었다.“하랑아, 너 연기 정말 못 한다. 네가 언제 일부러 계획하고, 언제 진짜 화를 내는 건지 내가 정말 모를 거로 생각해?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다 알아챌 수 있어.”적어도 지금까지의 이런 형편없는 발연기는 바로 알아챘다.강하랑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바로 사라졌다.연유성은 확 바뀐 그녀의 표정을 보며 강하랑이 밀당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투덕거리며 그녀와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았다.적어도 일상이 무료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연 대표님, 대표님 예비 신부가 차 안에 있어요.
“왜? 어차피 자리는 다 같지 않아?”연유성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지난번 강세미 생일 파티 때 강하랑은 일부러 뒷좌석에 앉아 그를 운전기사 취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조수석에 앉겠다고 한다.강하랑은 미묘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연 대표님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연유성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대체 뭘 알아야 하는 건데?”만약 단순히 강세미를 가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여하간에 지난번 강씨 가문에서 강세미가 한 일은 확실히 선을 넘는 짓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면서 강세미에
남자와 남자 사이의 그런 신경전 말이다.거기다 단유혁에게 다정한 어투로 말하는 강하랑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도 대표님, 저와 제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왜 대표님의 허락이 필요한 거죠? 하랑아, 타!”강하랑은 연유성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녀는 물론 조수석에 타면 같이 돌아가겠다는 말을 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막내 오빠를 이렇게 화내게 만들 수는 없었다.“막내 오빠, 난 그냥 저 사람이랑 이혼에 관해 얘기 나누다가 올 거야.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그
“둘은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거야.”연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비길 수 없는 건데? 단 대표님이 남자고, 강세미는 톱스타에다 여자라서? 지금 시대는 남녀평등이 대세야. 알아?”강하랑은 자세를 고쳐잡고 안전 벨트를 다시 했다.“그리고 대표님은 방금 도 대표님께 내연남이라고 말했잖아. 사실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나랑 강세미 둘 중에서 대체 누가 너의 내연녀인 거야?”차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자동차 엔진 소리를 제외하곤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려왔다.강하랑도 굳이 연유성의 입에서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를 향한 마음이 클수록 무너질 때 산산조각이 났다.만약 그녀에게 연유성을 원망하냐고 묻는다면 그녀의 대답은 ‘아니요.'였다.그를 사랑한 건 순전히 그녀의 마음이었고, 연유성도 그녀에게 희망과 기대를 준 적이 없었다.그녀가 기꺼이 사랑한 사람이었기에 굳이 원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이미 그간의 착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었기에 더는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어릴 때 그녀를 지켜주고 괴롭힘당하지 않게 도와주던, 심지어 그녀를 미래의 색시라고 부르
강하랑은 일부러 모른 척했다.“무슨 말? 나 기억 안 나.”“네가 나한테 만약...”“그래서 정말 그럴 거야?”연유성이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강하랑은 바로 말허리를 잘랐다.그녀는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 우뚝 서서 고개를 돌려 연유성을 보았다.한 층 높이 올라 서 있었던 그녀는 연유성과 시선이 비슷해졌다.“당연히 아니지.”연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강하랑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런데도 대답을 했다.“당연히 아니라면 그럼 그냥 넘어가면 되잖아. 뭘 캐물어?”강하랑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뜻밖의 모습에 강하랑은 놀란 듯 말을 더듬게 되었다.하지만 그녀를 의아하게 만든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그녀는 두 눈으로 직접 연유성이 자신의 앞에 쭈그려 앉아 따듯한 수건을 들고 마사지하듯 발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 모든 행동이 별일이 아니라는 듯 느긋하게 말했다.“안 그러면 누가 만들었겠어? 청진 별장에 또 다른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강하랑은 순간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 차린 그녀는 바로 발을 빼내려고 했다.하지만 그녀가 빼내기도 전에 연유성은 이미 그녀의 발을 놓아주었다.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