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251 - Chapter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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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1화 민도준을 위해 죽겠다는 거야?
시윤은 혜정의 말을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다.“혈육도 상관하지 않고, 민재혁 같은 사람 때문에 모든 걸 걸겠다고?”시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한 표정에 혜정은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다른 사람은 민도준이 잔인하고 포악하고 인간성 없다고 하는데, 동서도 민도준 사랑하잖아.”“도준 씨는 달라.”“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 재혁 씨를 보거든.”혜정은 싱긋 웃으며 시윤을 바라봤다.“내가 재혁 씨를 만난 게 14살 때였거든. 그때 재혁 씨는 내 외할머니 손에 떠밀려 우리집에 방문했었어. 그리고 난 마침 이복동생인 원재한에게 밀려 분수대에 빠졌었지. 그런데 원재한이 하인들을 불러 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았어. 그때 겨울이었는데, 내 기억 속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거든.”“그때 민재혁이 구해줬어?”“아니.”혜정은 기억을 더듬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재혁 씨는 사람들이 떠난 뒤 나를 구해줬어. 원재한과 충돌해 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았거든. 원재한의 뒷배는 새엄마였으니까. 그 뒷배가 없어지면 원재한도 나랑 똑같아질 수 있었어.”시윤은 그 순간 우연히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원준섭과 결혼한 아내는 모두 일찍 죽는다는 소문, 심지어 두 아내 모두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원혜정의 어머니는 아마 진짜로 병사했을지도 모르지만, 원준섭의 어머니는...“나중에 재혁 씨가 적합한 여자를 찾아줬고, 그 여자가 새엄마로 들어온 뒤로 난 더 이상 매맞지도 않고 밥 굶는 일도 없어졌어.”이야기를 이어나가던 혜정의 눈빛이 일순 부드러워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차가워졌다.“재혁 씨가 그랬거든, 나랑 평생 함께할 거라고. 그래서 그 사람 찾으러 내려가려는 거야.”혜정은 자기가 이야기하는 동안 몰래 밧줄을 푸는 시윤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동서, 힘 빼지 마. 그 밧줄 특수 제작한 거라 절대 못 끊어. 안에 와이어가 있거든.”그러다 시간을 한번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다.“시간 거의 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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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2화 절체절명의 순간
혜정은 태연한 눈빛을 한 채 아예 몸부림도 치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으며 눈빛으로 도관 쪽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갈 뿐.“저기...”도준은 답을 듣기 바쁘게 혜정을 옆으로 밀쳐버리고는 시윤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그걸 본 시윤은 다급하게 소리쳤다.“얼른 가요! 여기 곧 있으면 폭발해요.”소리를 치는 와중에 깜빡이는 숫자를 확인하니, 시간은 어느새 01:30를 가리켰다.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밧줄을 풀기 시작하자 시윤은 미친 듯 소리 질렀다.“안 돼요. 얼른 가요. 안 그러면 우리 둘 다 죽는다고요! 이거 안에 와이어가 있어 풀 수 없어요!”분명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도준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왜? 나랑 같이 죽는 것도 싫어?”시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말없이 점점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봤다. 그때, 도준이 칼 한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 칼은 몇 년 전 도준이 시윤의 혀를 잘라버리겠다고 겁줄 때 꺼냈던 칼이다.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슨 재질로 되어 있는지 와이어는 쉽게 끊어졌다.그 순간 어두웠던 시윤은 얼굴이 환해졌다.도준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깔끔하게 밧줄을 모두 잘라냈다.00:55.손과 발에 묶여 있던 밧줄이 모두 끊어졌다는 기쁨을 미처 누릴 새도 없이, 시윤은 다시 절망으로 빠져버렸다.전에 두꺼운 밧줄로 꽁꽁 묶여 있어 미처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밧줄 아래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절망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희망 뒤에 다가온 절망이라고 했던가? 이 순간, 시윤이 딱 그랬다.그때 구석에서 혜정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 어때? 마음에 들어?”이 모든 건 혜정이 일부러 꾸민 짓이다. 도준에게 제가 느꼈던 절망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00:29.시간을 확인한 시윤은 힘껏 도준을 밀어냈다.“얼른 도망쳐요!”하지만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칼과 힘을 이용해 억지로 수갑을 끊이려 했다.남의 생사를 쥐고 주무르던 두 손은 날카로운 수갑의 모서리에 베어 피가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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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3화 도준 씨 보러 갈래요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은 탓에 시윤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그 순간 양현숙이 얼른 다가와 시윤을 일으켜 세우며 눈물을 흘렸다.“윤아, 이제 막 깨어났는데 자신을 괴롭히지 마.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그냥 잠깐만 보고 오려는 거예요. 보고 나면 바로 돌아와 얌전하게 몸조리할게요. 저 지금 도준 씨 보러 갈래요.”승우는 반쯤 넋을 잃은 듯한 시윤을 보자 얼른 양현숙을 붙잡았다.“엄마, 보러 가게 해요. 아무리 막아도 소용없을 거예요.”그때 시윤이 승우의 팔을 잡았다.“오빠, 데려다줘.”“그래. 그런데 너 아직 몸이 허약하니 휠체어를 구해올게.”얼마 뒤, 승우는 휠체어에 앉은 시윤을 밀고 병실을 나섰다.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시윤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그 순간, 꿈속에 본 것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하더니 도준이 저를 구하던 장면도 떠올랐다.아무런 모략도, 준비도 없이,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에 들어오는 ICU병동에 시윤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도준 씨가 왜 이런 곳에 있어? 아, 그때 나를 밖으로 밀고 늦게 나왔으니까 나보다 조금 심하겠지. 그래도 아무 일 없을 거야. 지금껏 그렇게 많은 위험한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 돌아오던 사람이 고작 원혜정한테 당했을 리 없잖아.”혼잣말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시윤을 보자 승우는 마음이 아파 끝내 그녀가 만든 거짓된 환영을 깨부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이내 병실 문 앞에 도착했다.문 앞에는 한민혁, 민시영, 케빈, 심지어 민지훈과 최수인도 와 있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눈빛으로 시윤을 바라봤다. 하지만 시윤은 그들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한 듯 미소를 지었다.“다들 와 있네요? 왜 문 앞에 서 있어요? 도준 씨 자고 있어요?”시윤의 말에 다들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시영이 먼저 앞으로 다가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윤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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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4화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고?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고?’‘도준 씨가 어떻게 영영 깨어나지 못해? 말도 안 돼.’시윤은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충격을 받은 듯한 비명 속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윤이 씨!”“윤이 씨!”“...”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시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하지만 시윤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모두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며 일어난 시윤은 약 몇 초간 멍해 있다가 혼잣말을 반복했다.“저 방금 악몽 꿨는데, 글쎄, 도준 씨가 깨어나지 못한대요. 이거 도준 씨한테 말하면 도준 씨가 무조건 웃을 걸요.”시윤이 다시 참대에서 내리려 하자 다들 허둥지둥 다가왔다.그때 양현숙이 먼저 시윤을 막아섰다.“너 아직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돼. 지금은 조용히 안정을 취해야 해.”하지만 시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멍한 눈빛으로 ‘도준 씨 보러 갈래’라는 말만 쉴 새 없이 반복했다.더 이상 시윤을 묶어 둘 수 없다는 걸 알아챈 양현숙은 끝내 울부짖었다.“너 자신이 아니라도, 배 속의 아이를 위해 생각해야지!”그 말에 시윤은 어리둥절했다.“뭐라고요? 아이?”“네, 윤이 씨 임신했어요. 일주일 됐대요.”시영이 나지막하게 끼어들었다.시윤은 고개를 숙인 채 평평한 제 아랫배를 바라봤다.그리고 도준이 약에 당한 날,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나 그날 약 먹었는데? 아니지, 그 약 도준 씨가 준 거였는데.”“뭐야, 설마 가짜 약 줬던 거야? 나쁜 놈.”분명 입으로는 욕설을 내뱉었지만 배를 쓰다듬는 시윤의 손길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크게 반응했다.“아니야. 나 그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다치기까지 했는데, 아이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그 말에 시영이 다급히 위로했다.“괜찮아요. 윤이 씨는 폭발 직전에 밖으로 밀려나 곧바로 구조돼서 의사 말로는 별문제 없대요. 윤이씨만 이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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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5화 이 소식 알려주고 싶어요
승우는 사실 본인의 생일날 그 편지를 시윤에게 보여주려 했었다. 하지만 하필 그날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편지를 계속 숨겨두지만 않았어도, 시윤이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테고, 혜정도 복수할 기회가 없었을 텐데.승우는 무슨 벌이든 달갑게 받을 수 있지만, 시윤은 너무 억울하다. 만약 시윤이 이 모든 걸 알게 된다면 아마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좀 진정한 뒤, 시윤은 여전히 걱정이 됐는지 다시 한번 정밀 검사를 받았다.다행히 시영의 말대로 큰 문제가 없었지만, 병상에 누워 있는 게 아이한테 좋다는 소견이 떨어졌다.“아직 일주일이라 티 나지는 않지만 곧 자랄 테니 1달쯤이면 초음파로 확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산모님 몸이 많이 허약해 위험할 수 있으니 되도록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세요. 스트레스는 금물이니 일주일 정도 병원에서 지내며 경과를 지켜봅시다.”“감사합니다.”시윤은 병원 복도에 서서 한참 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다.그러다 한참이 지나자 핸드폰을 꺼내 윤영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해원에서의 공연은 다른 배우분께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시윤의 일을 들은 윤영미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극단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만 신경 써. 절대 나쁜 생각 하지 말고.”“네.”시윤은 제 아랫배를 문질렀다.“전 잘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그 뒤로 일주일 동안, 시윤은 아무 일 없었던 듯 지극히 정상적으로 행동했다.의사의 분부대로 병상에 누워 제때 약을 먹고, 밥을 먹으며 극단 후배들이 병문안 왔을 때도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심지어 동생의 애교에 기쁘게 웃을 때도 있었고, 도준과 같은 병원에 있었지만 한 번도 그를 보러 찾아가지 않고 안정을 취하는 데만 집중했다.모든 사람은 시윤이 아이를 위해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신을 찾았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갔다.검사 결과 각종 수치는 정상으로 나왔고, 아이는 매일 안정적인 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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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6화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있어
여전히 병상에서 미동도 없는 남자를 보자 시윤은 이내 풀이 죽었다.“하, 됐어요. 도망 안 칠게요. 아들인데 도준 씨를 닮았으면 나 혼자 절대 감당 못 해요. 나만 괴로울 순 없지.”한참 동안 말하던 그때, 얼굴에 느껴지는 한기에 손을 대보니 저도 모르는 새에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도준을 빤히 응시하던 시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도준의 몸 위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제발 일어나요. 깨어나면 가짜 피임약 먹은 것도 탓하지 않을게요. 네? 어떻게 저 혼자 둘 수 있어요? 우리 아이 태어나자마자 아빠 없는 애 만들 거예요? 그러니 제발 일어나요.”너무 흐느끼다 못해 시윤은 숨이 가빴다.“천하의 민 사장님 아니었어요? 못하는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됐어요.”도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지금껏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말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결국 시윤은 눈을 꾹 감으며 고통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다 나 때문이야...”만약 그녀라는 약점만 없었으면, 도준은 이런 함정에 절대 빠질 리 없다.그런데 지금껏 항상 도준이 저에 대한 사랑을 의심만 해왔으니.너무 총명한 사람이라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절대 이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어왔기에, 시윤은 항상 도준을 의심해 왔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맞는지, 또 일종의 목적으로 사랑하는 척하는 건 아닌지.그러다 그날, 하늘을 찌르는 불길 속의 그를 본 순간, 시윤은 도준이 저를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멍하니 도준을 바라봤다.“그날 그게 꿈이 아니었어...”시윤이 술에 취한 그날 들었던 도준의 고백은 모두 진짜였다.하지만 하필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시윤은 도준의 손을 들어 올렸다. 의료 기기를 연결한 탓에 도준의 손은 기억 속에서처럼 뜨거운 열기를 띠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시윤은 도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도준 씨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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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7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잠시 뒤, 시윤은 도준의 주치의를 만났다.예순이 다 돼 가는 노정숙은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환자분 가족 되시죠? 임신했다고 들었는데, 축하해요.”“감사합니다.”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선생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전에 도준 씨가 뇌사 판정 받을 수 있다고 한 게 무슨 뜻이죠?”“현재 상태로 봤을 때 민도준 환자분의 대뇌는 정상적인 활력징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일반적으로 식물인간이라고 하죠.” “보통 식물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건데, 민도준 환자분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합니다. 대량의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탓에 체내에 아직 독소의 일부분이 남아 대뇌가 계속 무의식 상태거든요. 독소는 점차 대뇌와 신장에 퍼지면서 결국엔 뇌사를 초래할 수 있어요.”시윤은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 없었다.“그럼 열흘이라고 했던가요?”“네, 저희가 민도준 환자분의 상태로 유추한 기한입니다. 만약 열흘 뒤에도 의식이 없다면, 뇌사 판정을 내려야 할 거고, 뇌사 상태로 24시간이 지나면 사망 선고를 할 수 있습니다.”그렇다는 건, 더 이상 깨어날 거라는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뜻이었다.지금은 그나마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 체온을 느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는데, 만약 도준이 정말 죽어 얼음장 같은 시체가 된다면...시윤은 생각할수록 눈앞이 아찔했다.의사로서 수많은 생이별을 본 노정숙은 그저 너무 슬퍼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아니요, 그럴 순 없어요.”시윤은 갑자기 흥분한 듯 노정숙의 팔을 잡았다.“선생님, 뇌사를 막을 방법은 없어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노정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지금 환자분의 진단 결과는 외부에 아무 반응도 없는 거로 나오지만 가끔 의학적으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죽어가던 사람이 자식의 목소리에 다시 살아나거나, 심장이 멎은 지 십몇 분이 지난 할머니가 손자의 목소리에 다시 심장이 뛰는 경우도 있으니까요.”“만약 포기하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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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8화 민혁에게 잡힌 승우
다음날, 시윤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도준 씨, 사실 도준 씨가 아이 낳자고 했을 때 엄청 싫었거든요. 처음에는 비밀이 알려질까 봐 무서웠고, 그다음엔 공은채의 일이 해결되지 않아서, 그리고 나중엔... 아빠의 죽음 때문에...”“분명 공은채의 계획을 알았으면서 우리 가족이 희생양이 되는 걸 지켜보고, 마지막엔 아빠를 뛰어내리게 만들었잖아요.”“그때 저 정말 도준 씨 많이 미워했어요. 그런데 피어섬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상황을 목격하고 나니 도준 씨를 미워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그런 상황을 겪었다면 아마 도준 씨보다 더 잔인하게 변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고 쉽게 용서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빠 때문에.”여기까지 말한 시윤은 한참 동안 눈물을 글썽거렸다.“그런데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요? 도준 씨가 목숨을 바쳐 저를 구했으니 아빠의 목숨을 갚은 거나 마찬가지래요. 그래서 없던 일로 하자고.”“도준 씨, 용서할게요. 그러니 도준 씨도 저 용서해 주면 안 돼요? 일어나 봐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제 도준 씨 애도 낳고 싶어요. 몇 명을 낳든 상관없어요.”“도준 씨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도준 씨, 제발 말 좀 해봐요. 제발 대답해 줘요, 네?”“...”그 시각, 시윤이 도준의 몸에 엎드려 통곡하는 걸 본 승우는 눈빛이 점점 복잡해졌다.지난 이틀동안 시윤은 항상 이랬다. 무덤덤하다가도 뭔가를 그리워하고, 갑자기 무너졌다가 다시 냉정을 되찾기를 반복했으니.그리고 승우 역시 편지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밀어 넣기를 수없이 반복했다.도준이 뇌사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승우는 시윤에게 아무런 후회도 남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윤이 편지를 보면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두려웠다.시윤이 꼬박 이틀동안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승우 역시 온갖 생각으로 괴로워했다.그리고 이 순간 역시, 시윤이 몸을 떨면서 우는 걸 보자 승우는 꺼냈던 편지를 도로 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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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9화 사랑하는 여보
종이 위의 글씨체를 본 시윤은 일순 멍해졌다.“아빠? 아빠 편지잖아?”승우는 시윤에게 편지를 들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그게 하필 이런 혼란 속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비밀이 곧 들킨다는 공포가 덮쳐와 승우는 얼굴이 하얗게 지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대로 굳어버려 빼앗아 와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민혁은 안에 든 편지를 본 순간 상대를 오해했다는 머쓱함에 헛웃음을 지었다.“하하, 정말 편지었네. 그러게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하지만 민혁이 이내 놓아주었음에도 승우는 그 자리에 굳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윤아, 내 말 들어 봐...”그 순간 불안한 예감이 닥친 시윤은 눈살을 구겼다.“아빠가 엄마한테 주는 편지가 왜 오빠한테 있어?”“그게 그러니까...”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인지한 승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씁쓸함을 삼켰다.“이건 아버지가 뛰어내린 날 집에 두고 갔던 편지야. 내가 그동안 숨겼어.”“왜?”아버지가 뛰어내린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시윤은 고민도 없이 편지를 확인했다.하지만 몇 줄을 읽고 나서 숨이 턱 막혀왔다.[사랑하는 여보.]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 편지로 전하네. 요 며칠 나에 관한 뉴스 많이 봤을 거야. 당신이 그 말 다 믿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내 명예를 회복하려고 애타하는 것도 알아.그런데 정말 부끄럽지만 나 정말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술에 취해 내 제자인 공은채한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어. 나도 알아, 술은 그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 이런 걸 핑계라고 대는 게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지도. 나 변명하려는 거 아니야. 그저 당신이 사실을 알았으면 해서 그래.당신한테 모두 털어놓은 뒤 자수하고 교수 자리에서도 물러나려고 했어. 그런데 공은채가 아직 어려서 나한테 품지 말아야 하는 마음을 품은 것 같아. 제 목숨으로 우리 혼인에 끼어들려고 해. 어린 생명이 내 잘못 때문에 꺼져가는 걸 볼 수 없어서 설득하려고도 하고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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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0화 아버지 죽음의 진실
만약 본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리 알았다면 승우는 절대 그 편지를 숨기지 않았을 거다.승우는 편지에 적힌 시간보다 1시간 일찍 GH빌딩에 도착했다. 그날 옥상에서 본 이성호는 원래보다 열 살은 늙어 있었다.이제 막 공은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데다, 도준이 보복할 거라는 생각에 큰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탓이었다.하지만 기척을 들은 순간 그의 눈은 반짝 빛났었다. “네 엄마는? 혹시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승우는 아버지에게 본인이 시윤에게 느끼는 감정을 영원히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옆에만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친동생을 좋아한다는 말을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천륜을 배반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때문에 이성호의 물음에 승우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안 왔어요.”그 순간 이성호의 눈에 있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얘기를 이어나가는 승우의 눈에는 고통과 회한이 가득했다.“그 한마디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릴 줄 알았다면 절대 그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시윤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고개를 마구 저으며 뒷걸음쳤다.“그러니까 아빠는 도준 씨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가족에게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아빠를 버렸다고 생각해서 속죄하려고 했던 거야?”“왜...”시윤은 고개를 번쩍 들어 승우를 바라봤다.“왜 그랬어? 왜 편지를 숨겼어?”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승우는 시윤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내가 너 좋아하니까. 우리가 친남매인 줄 알고 그 마음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어. 미안해, 윤아...”승우는 점점 무너져가는 시윤의 머리를 만지려 했지만, 시윤이 차갑게 뿌리쳐 버렸다.심지어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빠는 이제부터 내 오빠 아니야. 나한테 아빠를 해친 오빠는 없어!”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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