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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끝 연애 시작
이혼 끝 연애 시작
작가: 김의연

제1화 3년의 혼약

“이진 씨, 계약 기간 만료됐습니다. 도련님께서 이혼 서류에 사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윤씨 가문 저택, 이진은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높이 상투처럼 틀어 질끈 맨 머리, 흐릿한 눈동자, 가무잡잡한데다 누렇기까지 한 피부에 좁쌀처럼게 나있는 주근깨, 젊은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이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집사가 건네온 서류를 펼쳐보았다.

“3년이란 시간이 참 빠르네요.”

집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뭐라도 말해야 이진이 사인을 하려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이진이 이대로 떠난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다. 물론 외모와 신분이 자기 집 도련님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마음씨만은 곱다고 여겨왔으니.

그런데 웬걸. 자금만치3년이라는 세월 동안 윤씨 가문 사모님으로 지낸 사람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혼 서류에 사인하는 게 아니겠는가?

“지난 3년간 감사했습니다.”

사인을 마친 서류와 펜을 집사에게 넘긴 뒤 이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남편 윤이건과 3년을 함께 지내왔지만 부부의 정이라 할 것도 없었다. 신혼 첫날밤에도 두 사람은 그저 멀뚱멀뚱 앉아 꼬박 밤을 새웠으니 말이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에서 각각 생활을 했고 서로 마주쳐도 겨우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만 나눴을 뿐 그게 끝이었다.

물론 지난 3년간 남편이라는 사람과 얼굴도 한번 제대로 서로 마주치지 않고 지냈다지만 집사는 언제나 그녀를 살갑게 대해줬다.

“너무 내외하시네요. 짐은 제가 다 싸두었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만약…….”

“괜찮아요.”

집사는 순간 멈칫 하면 이진을 바라보았다.

오늘 이진이 평소보다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고분고분하며 고개도 쳐들지 않았는데 지금 모습은 아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눈을 마주치는 것도 모자라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우아한 미소까지 보여줬으니 말이다.

‘이제 윤 회장님 은혜는 이걸로 다 갚았네.’

이진은 트렁크에서 외투 한 벌을 꺼내 몸에 걸치고 질끈 묶은 머리를 풀어헤쳤다. 코 아래로 내려온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두고 클렌징 티슈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그러자 주근깨가 난 노란 얼굴이 점점 벗겨지면서 뽀얀 피부를 드러냈다. 흐리멍덩하기만 하던 눈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안경에 가려졌던 오뚝한 코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집사님, 기회가 되면 다시 봐요.”

말을 마친 이진은 긴 머리카락을 한번 홱 넘겨 털어주고는 저택을 나섰다. 아직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사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로.

그러던 그때, 윤이건 한테서 걸려온 전화 벨 소리가 집사를 다시 현실로 끌어냈다.

“사인했나요?”

“네, 도련님. 사인은 마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진 씨가 평소와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집사는 방금 떠나간 이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시각, 윤씨 저택에서 나온 이진이 핸드폰을 꺼내려고 할 때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섰다.

“보스, 오랜만이에요. 저 보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운전석의 창문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얼굴에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보스가 다시 솔로로 돌아온 날인데 제가 어떻게 잊어요?”

이진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차에서 내려 그녀 양옆에 놓인 짐을 차에 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잇따라 차에 오른 뒤 이진은 옆에 앉은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모습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보스, 그렇게 보지 않으면 안 돼요? 저 심장이 멈출 것 같단 말이에요.”

양손으로 가슴을 막으며 겁탈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을 짓는 케빈의 모습에 이진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3년이나 지나 다시 보스의 이런 모습을 보니 영 어색하긴 하네요.”

그 말에 이진은 백미러에 얼굴을 슥 비춰봤다. 확실히 어색한 모습이긴 했다.

예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YS 그룹 대표이자 남편이었던 윤이건이 자기를 좋아하는 게 오히려 불가능했다.

하지만 갑자기 드는 옛날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3년 전, 윤이건이 결혼하던 날 신부가 도망갔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마침 이진과 인연이 닿은 윤씨 가문 어르신 윤해철이 그녀에게 3년간만 윤씨 가문 며느리로 지내달라며 계약 결혼을 제안해 왔다.

은혜를 입어 동의한 계약 결혼이었지만 이제 그 3년이란 계약 기간이 만료됐으니 생명의 은혜를 보답한 셈이었다.

“보스. 우리 어디 가요?”

때마침 들려오는 케빈의 목소리가 이진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이진은 손가락으로 차창을 톡톡 두드렸다.

“인수합병 파티 준비는 끝났지?”

이제 그들이 진 빚을 돌려받을 때가 왔다.

“오케이.”

이진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아차린 케빈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액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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