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건지, 약 효과 때문에 괴로운 건지 알 수 없었다.자꾸만 옆에 있는 사람의 몸에 밀착하고 싶었다.“더... 더워... 나 너무 힘들어요... 구승훈 씨...”구승훈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안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잠시 후 그가 코웃음을 쳤다.“강하리, 여기 구승훈 같은 건 없어. 난 현우 오빠지.”그렇게 말하며 그가 강하리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데 강하리가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약효가 지나갔는지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자 안현우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강하리의 동공이 확 움츠러들었다.“안현우, 꺼져!”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고 안현우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꺼지라고? 내가 가면 누가 널 기분 좋게 해주겠어? 강하리, 얌전히 있어. 나 구승훈만큼 잘해!”안현우는 말을 마친 후 강하리를 껴안고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강하리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도망가려 했지만 다시 한번 발목이 잡혀 뒤로 끌어당겨졌다.이윽고 그가 벨트로 강하리의 몸을 내리쳤다.“망할 년이 아직도 도망가려고 하네!”강하리는 눈물을 흘렸다.“안현우, 구승훈이 알면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현우는 웃었다.“안다고 해도 침대 위에서 네 방탕한 모습만 볼 텐데? 생각해 봐, 나랑 자고도 걔가 널 원할까?”안현우가 앞으로 다가가 침대에서 그녀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강하리, 보여? 저기에 네가 망가지는 모습이 다 담길 거야.”그가 옆에 설치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하자 강하리의 몸이 덜덜 떨렸다.“안현우, 원하는 게 뭐야? 뭐든 다 들어줄게, 제발 날 보내줘, 응?”안현우는 콧방귀를 뀌었다.“강하리, 내가 원하는 건 너야.”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강하리의 옷깃을 잡아 뜯었고 강하리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몸부림을 쳤다.그러다 안현우가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소품을 집어 안현우의 머리에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하지만 약에 취해 힘은 턱없이 약했고 안현우는 조금의 상처
구승훈은 강하리를 안은 채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고 노진우가 바짝 뒤따랐다.“대표님, 안 대표는...”안현우는 구승훈의 발길질에 숨이 넘어갈 뻔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통을 꾹꾹 참으며 웃었다.“구승훈, 너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날 때렸어? 우리 두 가문이 어떤 사이인지 잊지 마!”구승훈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앞으로 나아가 안현우를 한 번 더 걷어차더니 발로 안현우의 목을 짓밟았다.“무슨 약을 먹인 거야?”안현우의 동공이 움츠러들며 구승훈이 전혀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구승훈, 정말 여자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구승훈이 힘껏 발로 밟자 안현우는 순식간에 숨 막히는 공포를 느꼈다.“무슨 약을 먹인 거야!” 구승훈은 굳은 얼굴로 다시 물었고 안현우는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약 이름은 A, 암시장에서 샀고 해독약이 없어. 이대로 있으면 저 여자는 바보가 되겠지.”구승훈의 눈동자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가며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여자를 바라보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러고는 분풀이하듯 다리를 뻗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안현우를 발로 찼다.“잘 지키고 있어.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까.”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다시 충혈된 눈으로 정주현을 바라보았다.“정주현 씨, 방에 다른 카메라나 녹음기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안현우 평소에 더럽게 노는 놈인데 영상 유출되지 않게요.”정주현은 이를 악물고 구승훈 품에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구승훈, 그 여자 건드리지 마, 알았어?”걸음을 멈칫한 구승훈은 대꾸하지 않고 강하리를 안은 채 방을 나섰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그는 직접 전화를 걸었다.노민준, 노민우의 사촌 형이자 현재 명인병원의 원장으로서 약물에 대해선 천재인 사람이었다.“A라는 약이 있다는데 혹시 들어봤어?”노민준은 다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너 그 약 먹었어?”구승훈은 설명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해독할 수 있어?”“다른 건 시도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A는 답이 없어. A가
안현우! 강하리는 성에 차지 않는 듯 그의 셔츠를 잡아당기며 놓아주지 않았다. 구승훈은 이미 흠뻑 젖은 셔츠를 아예 벗어 버리고 넓고 단단한 가슴으로 강하리를 벽에 단단히 밀착시켰다. “날 원해, 하리야?” 강하리의 의식은 이미 한참 흐려져 있었고, 안현우는 지난번 김주한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약물을 썼다.몸속에서 솟구쳐 오르던 욕망이 온몸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대답해 줘.” 남자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강하리의 허리선을 따라 부드럽게 아래로 쓰다듬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기분 좋게 해줄까?”강하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를 세면대로 데려가 앉힌 후 쭈그려 앉았다.참을 수 없는 욕망이 마침내 분출구를 찾았다.남자는 강하리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최대한의 쾌락을 선사해 주려고 애썼다.언젠가 자신이 여자를 위해 이런 짓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꺼이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강하리의 속눈썹이 파들 떨리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절정에 다다른 순간 발끝이 움츠러들었다.고개를 든 구승훈의 입가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입을 헹구고 다시 강하리에게 다가와 키스를 했다. “좀 나아졌어?” 그녀의 귓가에 비비적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강하리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고 구승훈은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 그녀는 침대에 눕히기 바쁘게 다시 감겨왔다. 남자의 몸은 욕망으로 부풀어 올랐지만 마음은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안현우, 절대 멀쩡하게 살려두지 않을 거야! 밤새 뒤엉키며 구승훈은 그녀를 으스러질 듯 품에 꽉 안았다.오랜만에 느끼는 쾌락에 그는 광기에 물들어 갔다. 새벽이 다가오고 나서야 구승훈은 겨우 진정된 여자를 품에서 놓아주고 가운을 걸친 다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안현우 어딨어?”남자는 담배를 손에 끼운 채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연결되자 정주현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구승훈! 강하리 어디로 데려갔어? 이
저택 지하 창고.창고라고 했지만 실은 철창이었다.철창 한쪽 벽에는 온갖 종류의 고문 도구가 걸려 있었다.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구승훈은 불쾌감이 얼굴에 스쳐 지나갔고, 밀려오는 역겨움을 참으며 긴 다리를 뻗어 그중 한 케이지로 다가갔다.그곳에는 안현우가 가운데에 묶여 있었는데 상반신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몸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구승훈이 들어오자 안현우가 피식 웃었다.“구승훈, 네가 이렇게까지 그 여자를 소중히 여길 줄은 정말 몰랐네!”구승훈의 얼음장 같은 얼굴에는 표정이 하나도 없었다.그는 안현우를 힐끗 보고는 옆에 있는 벽으로 걸어가 채찍을 잡고 근처 양동이에 담그더니 안현우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바로 채찍을 휘둘렀다.채찍이 닿자 살갗이 벗겨지며 안현우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구승훈, 너 이 새끼...”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채찍이 날아왔고 안현우의 비명소리가 지하 창고에 계속 울려 퍼졌다.정주현과 노진우가 달려갔을 때 안현우의 몸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정주현은 순간 멈칫하다가 옆으로 가서 헛구역질을 해댔다.구승훈은 그를 힐끗 보고는 채찍을 옆으로 던지며 노진우에게 눈치를 주었다.“깨워.”노진우는 짧게 대답하고 양동이에 담긴 얼음물을 들이부었다.안현우는 멍한 상태로 눈을 떴고 그의 눈은 진작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승훈아, 승훈아, 오랜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살려줘, 응? 다신 안 건드릴게, 다신!”구승훈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만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안현우는 독하고 무정한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경험했다.그리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에 대해 사실은 하나도 몰랐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구승훈, 안씨 가문에게 밉보일까 두렵지도 않아?”구승훈은 피식 웃었다.“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날 처음 보는 것처럼 말하네?”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다시 채찍을 들어 이번에는 안현우의 하반신을 내리쳤다.비명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고 안현우가 또다시 기절한 후에야 구승훈은 채찍을 던지고 어두
강하리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어젯밤 그 사람 누구지?구승훈이었나?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흠칫한 강하리는 그대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손연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좀 어때, 괜찮아?”강하리는 입술마저 하얗게 질려 있었다.“연지야, 나...”손연지가 얼른 달려와 안아주었다.“괜찮아, 이제 다 지나갔어.”강하리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어젯밤의 기억은 어렴풋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안현우와 있었던 일만 해도 악몽이 되기에 충분했다.강하리는 여전히 손연지의 품에 기대어 몸을 떨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진정한 그녀가 이렇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손연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구승훈이 연락했어.”강하리의 몸이 흠칫하면서 이불 위에 놓여있던 손을 말아쥐었다.어젯밤 그 사람이 구승훈인가?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조차 다행인지 괴로운 건지 알 수 없었다.그동안 구승훈에 대해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와 밤을 보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어젯밤에 너랑 구승훈...”손연지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강하리는 가슴에 맺힌 서러움을 억지로 삼키며 눈물을 닦았다.“연지야, 나 가서 쉬고 싶어.”손연지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얼른 가자.”그녀는 강하리에게 옷을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이 호텔 입구에 다다르자 밖에서 들어오는 구승훈이 보였다.“왜 좀 더 자지 않고.”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강하리는 복잡하고 여러 감정이 뒤엉킨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어젯밤 당신이었죠?”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맞아, 하리야.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해도 돼.”그 말을 하자마자 강하리는 그의 뺨을 때렸고 때린 후에도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구승훈은 뺨을 맞고도 그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때려도 화가 안 풀려?”강하리가 눈을 질끈 감고 손연지를 밖으로 끌어당기는데 구승훈이 그
“바로 갈게.” 구승훈은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구씨 가문 저택, 구동근은 어두운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안현우의 부모님이 앉아 계셨다.구승훈이 안씨 가문 외동아들인 안현우를 망쳐놨으니 안씨 가문 사람들은 구씨 가문과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따지고 들 생각이었다.구승훈이 문에 들어서자마자 구동근이 지팡이를 내리쳤다.“망할 자식! 너 정말 나 열받아 죽으라고 이러는 거냐?”구승훈은 휙 몸을 피하며 덤덤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집어 들고 구동근에게 걸어갔다.“진짜로 열받아 돌아가시진 마세요.”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구동근에게 건넸고 구동근은 화가 치밀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지팡이를 집어 들어 구승훈을 향해 마구 휘둘렀고 구승훈은 아예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지팡이가 무겁게 그의 몸을 때리자 옆에서 지켜보는 구승재의 마음도 아팠다.하지만 구승훈은 그저 차갑게 웃었다.“다 때리셨어요? 부족하면 더 때리세요.”구동근은 분노가 들끓었다.“이 망할 놈! 고작 그깟 여자애 때문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네 동생 앞길 망쳐놓고 오랜 친구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구승훈, 아주 잘하는 짓이다!”구승훈은 그저 웃기만 했다.“모두를 위해 쓰레기 처리한 겁니다. 괜히 돌아다니면서 남한테 피해나 줄 테니까!”“구승훈, 그게 무슨 말이야?”구승훈은 태연한 얼굴로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어요? 그쪽 아들을 본인이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세요? 쓰레기 같은 놈 그 정도로 만든 것도 봐준 겁니다.”구승훈의 말이 끝나자 안씨 가문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두 분노로 얼굴이 빨개졌다.“어르신, 우리 두 집안 자식들이 오랜 세월 친구로 지냈는데 손자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구동근이 손을 들어 구승훈의 뺨을 때렸고 구승훈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따귀를 맞은 그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참, 안현우 망가뜨리면서 다리도 부러뜨렸는데, 며칠 동안
“우리 층에 누가 임신했나 봐요!”“어떻게 알았어요?”“화장실 쓰레기통에 글쎄 임신 테스트기가 있더라니까요!”강하리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동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수군대는 두 명의 인턴을 바라봤다.그녀가 들어온 것을 발견한 인턴들은 안색이 확 변하면서 곧장 일하러 갔다. 그래서 그녀도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핸드폰은 오늘따라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임신 테스트기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벌써 퍼지고 있었다. 회사는 이런 가십거리가 가장 환영받는 곳이기 때문이다.점점 더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것을 보고 강하리는 머리가 찌릿찌릿 아팠다.‘내가 소홀했어. 적어도 종이에 잘 싸서 버려야 하는 건데. 만약 구승훈 대표님이 알게 된다면...’끔찍한 상상에 강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때 구승훈의 비서가 사무실에 노크하고 들어왔다.“부장님, 대표님께서 찾으세요.”강하리는 책상 아래에 있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강 부장님?”“네, 들었어요.”...대표이사실 앞에 멈춰 서서 강하리는 크게 심호흡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끝내기도 전에 구승훈의 전담 비서 신도윤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강하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알겠어요.”대표이사실에는 우드 향 향초를 태우고 있었다. 점심부터 협력사 임원과 술 한 잔 마신 듯한 구승훈은 다리를 꼰 채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반듯한 검은색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유난히 방탕해 보였다. 지그시 감은 눈도, 여유롭게 힘 풀린 몸도, 마치 정성껏 만든 조각상과 같았다.강하리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이러니까 주변에 여자가 끊기지 않지. 어느 여자가 이토록 완벽한 남자를 거절할 수 있겠어?’구승훈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얼굴도, 몸매도, 능력도... 적어도 겉으로는 흠이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오직 강하리만 그
강하리는 허리가 뻣뻣해져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몸을 돌릴 때는 꽤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맞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구승훈의 눈빛은 아주 어두웠다. 조금 전 열정이 넘치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안팎으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어떡하긴, 병원에 가야지.”강하리의 안색은 약간 창백해졌다. 두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구승훈은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강하리, 우리가 정한 룰은 기억하지?”강하리는 몸을 흠칫 떨었다.‘그래... 룰... 우리 사이는 애초에 게임일 뿐이었어. 대표님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강하리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반대로 구승훈은 구씨 가문의 장손이자, SH그룹의 후계자이다.강하리가 구승훈과 만나게 된 것은 100% 우연이었다.3년 전, 어머니 정서원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강하리는 급하게 돈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빌리려고 했다.하지만 화려한 별장 밖에 꼬박 하루 무릎 꿇고 있다가 기절까지 했는데도,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구승훈이 길고양이 줍듯이 그녀를 주운 것이었다.병원에서 눈을 뜬 그녀에게 구승훈은 ‘게임’을 제안했다. 마음 없이 몸만 쓰는 그런 게임 말이다.그때 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보수는 있어요?”구승훈은 그녀의 속물 같은 모습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피식 웃으며 오히려 칭찬했었다.“똑똑하네.”그렇게 두 사람은 게임을 시작했다.강하리는 꽤 일찍 룰을 파괴했다.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는 게임 파트너를 짝사랑했다.가슴 속에서 퍼져가는 아픔을 애써 무시하고 강하리는 미소를 짜냈다.“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구승훈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강 부장은 똑똑해서 참 좋아.”강하리는 꾸벅 인사하고 그가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대표이사실을 벗어났다. 부하직원 안예서는 벌써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