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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강하리는 허리가 뻣뻣해져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몸을 돌릴 때는 꽤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맞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구승훈의 눈빛은 아주 어두웠다. 조금 전 열정이 넘치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안팎으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떡하긴, 병원에 가야지.”

강하리의 안색은 약간 창백해졌다. 두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구승훈은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강하리, 우리가 정한 룰은 기억하지?”

강하리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래... 룰... 우리 사이는 애초에 게임일 뿐이었어. 대표님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강하리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반대로 구승훈은 구씨 가문의 장손이자, SH그룹의 후계자이다.

강하리가 구승훈과 만나게 된 것은 100% 우연이었다.

3년 전, 어머니 정서원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강하리는 급하게 돈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화려한 별장 밖에 꼬박 하루 무릎 꿇고 있다가 기절까지 했는데도,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구승훈이 길고양이 줍듯이 그녀를 주운 것이었다.

병원에서 눈을 뜬 그녀에게 구승훈은 ‘게임’을 제안했다. 마음 없이 몸만 쓰는 그런 게임 말이다.

그때 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보수는 있어요?”

구승훈은 그녀의 속물 같은 모습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피식 웃으며 오히려 칭찬했었다.

“똑똑하네.”

그렇게 두 사람은 게임을 시작했다.

강하리는 꽤 일찍 룰을 파괴했다.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는 게임 파트너를 짝사랑했다.

가슴 속에서 퍼져가는 아픔을 애써 무시하고 강하리는 미소를 짜냈다.

“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구승훈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강 부장은 똑똑해서 참 좋아.”

강하리는 꾸벅 인사하고 그가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대표이사실을 벗어났다. 부하직원 안예서는 벌써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 회의 시작까지 5분 남았어요!”

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잡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을 향해 걸어갔다.

...

회의가 끝났을 때는 어느덧 저녁 10시가 되었다.

안현우는 치밀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강하리도 몇 번이나 그에게 넘어갈 뻔했을 정도로 말이다.

두 사람은 누구도 먼저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양측 다 비교적 만족스러운 가격을 협상한 다음에야 다음 분기의 계약서를 체결했다.

회의가 끝나고 물건을 정리하다 말고 안현우는 강하리에게 물었다.

“강 부장, 계약을 체결한 기념으로 한잔하지 않을래요?”

“오늘은 시간이 늦었어요. 제가 다음에 거하게 한턱낼게요.”

안현우는 강하리의 거절이 안중에도 없는 듯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어쩐지 그다음이 영원히 안 올 것 같은데요?”

강하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안현우는 지난해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도 명확하게 거절했었다. 하지만 일하면서 자꾸 만나게 되어서 그런지, 그는 번마다 거절당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아닌 고생한 직원들을 봐서라도 회식 자리는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말을 마친 안현우는 함께 회의한 직원들을 쓱 둘러봤다.

남다르게 좋은 사무실 분위기 덕분에 직원들은 회식을 아주 좋아했고, 지금도 반짝이는 눈으로 강하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 장소는 안현우가 정했다. 도착하고 보니 구승훈도 자주 다니는 클럽이었다.

안현우는 사람들과 함께 조용한 룸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강하리만 데리고 다른 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종종 이렇게 술자리에서 인맥을 공유했기에 강하리는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하지만 룸 문이 열리자 수많은 연예인에게 둘러싸인 구승훈부터 보였다.

룸 안에는 구승훈의 쓰레기 친구들 천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여자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구승훈의 곁에 앉은 여자는 무명 연예인이었다.

그녀는 한껏 유혹하는 자태로 자신을 뽐냈다. 그러나 구승훈은 몸을 뒤로 기댄 채 받아주는 척하면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거절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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