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퇴근하고 갈게요.”구승훈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그래, 데리러 갈게.”“아니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강하리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다가 다소 무력한 웃음을 지었다.잠시 침묵하던 그는 주방에서 국을 끓이고 있는 가정부를 바라보았다.“해장국은 됐으니까 가서 장 좀 봐오세요.” 가정부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집에 식재료 아직 있는데요.”구승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며 느긋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장 다 보고 나면 오늘은 그만 퇴근하세요.”당황한 가정부는 이윽고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하리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요? 달콤한 것 빼고, 물고기나 새우 이런 거 좋아해요?”가정부는 조금 당황했다.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강하리를 위해 요리를 해준 적은 몇 번 되지 않았다.강하리가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다.“대표님께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이 말을 들은 구승훈은 눈빛이 어두워졌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불쾌했다.가정부는 다른 뜻은 없었고, 그저 구승훈이 자신보다 더 잘 알거라 생각한 것이었다.하지만 그 말이 조롱처럼 들렸다.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었던 구승훈이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 있자 더 무서워 보였다.구승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가정부는 서둘러 말했다.“일단 장부터 보고 올게요. 언제 한번 아가씨에게 새우만두를 해준 적이 있는데 몇 개나 드신 걸 봐서 꽤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돌아와서 만두 찔게요.”가정부는 말을 마친 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은 온몸에 냉기가 감도는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강하리는 오후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정주현은 서류 챙겨 들고 그녀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왔다.“만나야 할 사람이 두 명 있는데 오늘 저녁은 클라이언트와 먹을까요?”
하지만 그가 차에 타기 전에 노진우가 다가와서 차 문을 막았다.“도련님, 이대로 강하리 씨 차에 타면 강하리 씨 평판에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정주현은 코웃음 치며 다른 쪽으로 돌아갔고 노진우도 재빨리 뛰어넘어 반대편 차 문을 막았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하리는 두통이 밀려오는 느낌에 곧장 밖으로 나가 택시를 불렀다.강하리가 떠나려는 모습을 본 정주현은 화가 나서 노진우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노진우, 넌 진짜 구승훈 개야!”노진우는 정주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도련님은 잘 보이려고 꼬리 흔드는 개 같네요.”말을 마친 그는 정주현이 화를 내기도 전에 차를 몰고 떠나버렸고 정주현은 휴대폰을 들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승훈 씨, 우리 페어플레이 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대체 강하리 옆에 노진우는 왜 붙이는 거예요?”구승훈은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정주현 씨, 그쪽은 매일 곁에 있으면서 난 사람 좀 붙이면 안 됩니까?”정주현이 피식거렸다.“참 간사하시네요.”“당신은 순수한가?”“난 적어도 그 여자한테 장난은 안 쳐요. 구승훈 씨, 정말 강하리를 돕고 싶었으면 그냥 조용히 돕기나 할 것이지 왜 그 기회를 틈타 동정을 바라는 건데요.”구승훈은 나른하게 웃었다.“내가 왜 조용히 도와야 하죠? 이왕 도와줬으면 알게 해야죠.”그렇게 말한 뒤 그는 전화를 끊었다.강하리는 아파트 문 앞에 서서 망설이다가 노크를 했다.구승훈은 문을 열고 현관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지문 인식하면 되잖아, 왜 노크를 해?”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남의 집에 왔을 때는 예의를 지켜야죠.”구승훈도 웃었다.“하리야, 여기가 남의 집이야?”강하리는 대답 대신 그의 시선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 신발장을 열었고, 슬리퍼에 손이 닿자 잠시 멈칫했다.그녀가 신던 슬리퍼는 이미 사라지고 옆에는 새로운 신발이 놓여 있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님용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구승훈은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강하리의 몸이 심하게 경직되며 순간 심장 박동이 멈춘 것 같았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대꾸하면서도 더 꽉 안았다.“하리야, 가만히 있어. 잠깐만 안고 있을게, 잠깐만.”여전히 희미한 술 냄새가 남아 있는 남자의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으며 옅은 담배 냄새도 묻어났다.강하리의 몸이 더욱 굳어졌다.싱크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그녀의 귓가로 온통 남자의 숨소리가 맴돌았다.심장이 점점 더 세차게 뛰었고 강하리는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이거 놔요.”하지만 구승훈은 여전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놓아주는 대신 그녀의 몸이 으스러질 듯 더 세게 안았다.“하리야, 너무 보고 싶었어.”강하리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남자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며 붙잡았다.“가만있어 하리야, 더 움직이면 내가 너무 힘들어.”당황한 강하리는 홧김에 구승훈의 발을 밟았고, 밟고 나서야 구승훈의 단단한 아래가 그대로 느껴졌다.두 사람은 조금의 틈도 없이 바싹 밀착해 있어 구승훈의 물건이 자신의 허리춤에 닿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구승훈, 이... 이 변태!”구승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었다.“너무 보고 싶었어. 가만히 있어, 나 진정 좀 하게.”누구라도 이 상태로는 전혀 진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단지 조금만 더 그녀를 안고 싶을 뿐이었다.주방에서 아내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었다.강하리의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구승훈은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이 보고 싶은 적은 없었는지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하지만 제 발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될 것 같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구승훈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정말 진정하는 중인듯했다.하지만 그곳의 단단함은 여전했고 강하리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때 구승훈의 입술이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하리야,
강하리는 그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구승훈은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가 보온병을 꺼냈다.강하리가 위층에서 내려오자 구승훈도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이거 가져가.”그는 보온병을 강하리에게 건네며 말했고 강하리가 거절하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아줌마한테 국 좀 끓여달라고 했어, 아주 담백한 거. 병원에 가져가서 아주머니한테 드리고 너도 좀 먹어.”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보온병을 강하리의 품에 밀어 넣었다.강하리는 차에 돌아와 멍한 표정으로 옆에 놓인 보온병을 바라보았다.노진우는 강하리의 표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강하리 씨, 구 대표님과 무슨 오해라도 있는 겁니까?”정신을 차린 강하리가 꿰뚫어 볼 듯한 그의 시선을 피했다.“아니요.”“없다면 왜 서로 좋아하는 게 화해하지 않는 겁니까?”강하리는 웃기만 했다.“병원으로 가요.”노진우는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정서원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강하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의 눈빛이 더욱 밝아졌다.“오늘은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조금 전 어머님께 식사 준비해 드리는데 굳이 아가씨 오시는 거 기다리겠다지 뭐예요.”간병인이 옆에서 말을 건네자 강하리는 웃으며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엄마, 이제부터는 제가 안 와도 제때 식사 하셔야 해요.”정서원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간병인이 다가와 보온병을 열자마자 감탄했다.“참 정교하게 빚은 새우만두네요. 국물도 최소 몇 시간을 끓였죠? 아가씨도 참 세심해요. 일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음식도 만들고.”강하리는 보온병에 담긴 새우만두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간병인은 작은 국그릇에 담아 강하리에게 건넸다.“얼른 어머님께 드리세요.”강하리는 새우만두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정서원에게 먹였지만 그녀는 국물을 두 번 정도 마시고는 더 먹지 못했다.강하리가 그녀의 팔다리를 움직이며 씻겨주려는데 정서원이
지난번 강찬수의 계좌에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해 구승훈이 말하려다가 송유라의 팬들이 병원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면서 중단된 적이 있었다.강하리가 구승재에게도 물어봤지만 구승재는 잘 모른다고 했다.이제 강찬수에 대해 알고 싶으면 구승훈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구승훈은 강하리의 전화를 받고 다소 놀랐다.“강하리?”“네.” 강하리는 대답하고 말을 이어갔다.“구승훈 씨, 강찬수 계좌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서요.”미소 짓던 구승훈의 얼굴이 들려오는 강하리의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굳어졌다.강하리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무슨 일이야?” 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병원으로 갈게.”전화를 끊은 후에도 강하리의 마음엔 여전히 아픔이 남아있었다.정서원에 대한 안타까움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함께 밀려왔다.당시 강찬수의 폭력으로 정서원뿐만 아니라 강하리의 운명도 바뀌었다.강하리는 심호흡을 하며 의자에 기대어 감정을 진정시켰다.노진우는 백미러로 강하리를 살펴보더니 그녀를 위해 차 음악을 틀어주었고 강하리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대표님께서 좋아하신다고 알려주셨어요.”강하리는 그를 힐끗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이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그가 강하리의 창문을 두드렸고 차창을 내리자 보이는 여자의 얼굴에 구승훈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여자의 눈가는 살짝 붉어져 있었고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구승훈은 마음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그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었죠. 강찬수에 대해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요?”구승훈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밥은 먹었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 “배 안 고파요.”지금은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짐작만 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오늘 정서원의 말을 듣고 나니 강찬수가 죽어버린 것조차 원망스러웠다.구승훈은 그녀를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우리 층에 누가 임신했나 봐요!”“어떻게 알았어요?”“화장실 쓰레기통에 글쎄 임신 테스트기가 있더라니까요!”강하리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동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수군대는 두 명의 인턴을 바라봤다.그녀가 들어온 것을 발견한 인턴들은 안색이 확 변하면서 곧장 일하러 갔다. 그래서 그녀도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핸드폰은 오늘따라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임신 테스트기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벌써 퍼지고 있었다. 회사는 이런 가십거리가 가장 환영받는 곳이기 때문이다.점점 더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것을 보고 강하리는 머리가 찌릿찌릿 아팠다.‘내가 소홀했어. 적어도 종이에 잘 싸서 버려야 하는 건데. 만약 구승훈 대표님이 알게 된다면...’끔찍한 상상에 강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때 구승훈의 비서가 사무실에 노크하고 들어왔다.“부장님, 대표님께서 찾으세요.”강하리는 책상 아래에 있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강 부장님?”“네, 들었어요.”...대표이사실 앞에 멈춰 서서 강하리는 크게 심호흡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끝내기도 전에 구승훈의 전담 비서 신도윤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강하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알겠어요.”대표이사실에는 우드 향 향초를 태우고 있었다. 점심부터 협력사 임원과 술 한 잔 마신 듯한 구승훈은 다리를 꼰 채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반듯한 검은색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유난히 방탕해 보였다. 지그시 감은 눈도, 여유롭게 힘 풀린 몸도, 마치 정성껏 만든 조각상과 같았다.강하리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이러니까 주변에 여자가 끊기지 않지. 어느 여자가 이토록 완벽한 남자를 거절할 수 있겠어?’구승훈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얼굴도, 몸매도, 능력도... 적어도 겉으로는 흠이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오직 강하리만 그
강하리는 허리가 뻣뻣해져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몸을 돌릴 때는 꽤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맞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구승훈의 눈빛은 아주 어두웠다. 조금 전 열정이 넘치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안팎으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어떡하긴, 병원에 가야지.”강하리의 안색은 약간 창백해졌다. 두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구승훈은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강하리, 우리가 정한 룰은 기억하지?”강하리는 몸을 흠칫 떨었다.‘그래... 룰... 우리 사이는 애초에 게임일 뿐이었어. 대표님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강하리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반대로 구승훈은 구씨 가문의 장손이자, SH그룹의 후계자이다.강하리가 구승훈과 만나게 된 것은 100% 우연이었다.3년 전, 어머니 정서원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강하리는 급하게 돈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빌리려고 했다.하지만 화려한 별장 밖에 꼬박 하루 무릎 꿇고 있다가 기절까지 했는데도,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구승훈이 길고양이 줍듯이 그녀를 주운 것이었다.병원에서 눈을 뜬 그녀에게 구승훈은 ‘게임’을 제안했다. 마음 없이 몸만 쓰는 그런 게임 말이다.그때 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보수는 있어요?”구승훈은 그녀의 속물 같은 모습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피식 웃으며 오히려 칭찬했었다.“똑똑하네.”그렇게 두 사람은 게임을 시작했다.강하리는 꽤 일찍 룰을 파괴했다.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는 게임 파트너를 짝사랑했다.가슴 속에서 퍼져가는 아픔을 애써 무시하고 강하리는 미소를 짜냈다.“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구승훈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강 부장은 똑똑해서 참 좋아.”강하리는 꾸벅 인사하고 그가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대표이사실을 벗어났다. 부하직원 안예서는 벌써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릇한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으면서 여자는 더욱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하리는 그저 힐끗 보기만 하고 바로 시선을 돌렸다.강하리가 들어온 것을 발견한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기만 할 뿐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동생 구승재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그는 구승훈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강 부장도 술 마시러 왔어요?”“네, 안 대표님과 계약을 성사한 기념으로요.”강하리는 그들 속에 끼어들지 않고 구석 자리를 골라 앉았다.“왜 그렇게 멀리 앉았어요? 가까이 와 봐요!”구승재는 겁도 없이 강하리를 부추겼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구승훈과 그녀의 관계를 알았기 때문이다.구승훈은 누가 봐도 곁에 있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강하리가 들어온 후로부터 그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더욱 차가워졌다.강하리는 아주 예쁘게 생겼다. 분명히 청순한 인상이지만 묘하게 매혹적인 것이, 고리타분한 정장에 비즈니스적인 미소만 지어도 사람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역시 우리 형님 안목이란.’강하리와 같은 여자가 연예계에 진출한다면 거물들과 술자리 몇 번 가지는 것으로 톱스타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강하리는 구승재의 말을 듣고서도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룸 안의 사람들 속에 섞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구승훈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으니, 그녀가 다가갈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안현우는 어느샌가 술 한잔 들고 강하리의 곁에 가서 물었다.“강 부장, 한잔할까요?”“아뇨, 저는 몸이 불편해서 물로 대신할게요.”술잔을 받지 않는 강하리에 안현우는 기분이 상했다. 힘들게 만든 자리에서 그녀가 술 한 잔 마셔주지 않으니 말이다.안현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가 취한 틈을 타 무언가 해보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시크하게 한 모금도 마셔주지 않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구 대표님, 우리 강 부장 참 시크하죠? 이런 자리에서도 술 한 잔 안 마셔주네요.”구승훈은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