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율은 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예전에 자신도 이 가게의 메뉴판을 본 적 있었다. 제일 비싼 와인이라고 해봤자 한 병에 4백만 원 정도였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4천만 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 룸 안에 있는 사람이 자신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의심스러웠다.아는 사람이었다면 왜 굳이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물러선다면 부모님들은 어쩌고 또 수아는 어쩐단 말인가?도범은 몇 년간 군인 생활을 했었고 뜨거운 열정도 지닌 남자였다. 또한 그는 싸움도 제법 하는 것 같았는데 두세 명 정도는 쉽게 눕힐 수 있어 보였다.하지만 상대가 너무 많았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장정들이었고 한눈에 봐도 길거리의 양아치와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도범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혼사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만약 도범의 성질에 정말 그들과 싸움이라도 붙게 되면 그땐 진짜 큰일이었다.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한 박시율은 속으로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외식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면 이런 곳에 와서 밥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길가에 널린 아무 가정식 백반집에 가서 몇 만 원짜리 밥을 먹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을 것이다.이제 다른 선택권이 없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순간 안으로 들어선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룸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왕 씨 집안의 도련님, 왕호였다.“왕 씨 가문의 도련님이 이 레스토랑의 보스인 줄은 몰랐네!”박시율이 담담하게 웃으며 문을 닫았다.“도련님은 내가 아래층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네. 그래서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장난을 친 거야? 난 이런 장난을 즐기지 않아!”“하하!”왕호가 웃으면서 몸을 일으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시율이 너는 지금까지 줄곧 나를 본체만체했었지. 내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네가 순순히 날 만나러 왔겠어?”왕호가 미소 지
이 자식이 단지 그녀의 얼굴 한번 보려고 이런 일까지 벌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부모님이 아직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내려가 봐야 돼. 그 술은 원래 가격대로 한 병에 4백만 원씩 계산해 줘. 정확히 총 9600만이야. 남은 18병은 포장해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박시율은 말을 마치고 곧장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잠깐!”그녀가 막 손잡이를 돌리려고 할 때 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박시율, 너 그 쓰레기 같은 데릴 사위 녀석이 진짜 9600만 원을 계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난 그를 믿어. 그가 계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 사람은 비록 당신처럼 부유하지는 못해도 나를 속일 사람은 아니거든!”박시율이 싸늘하게 말했다.“하하 미안한데 박시율, 너 정말 내가 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아?”왕호는 이미 약이 바싹 오른 상태였다. 그의 눈에서 광기가 일었다.“오늘 8억 1600만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여기서 못 나갈 줄 알아!”“너…”박시율은 연약한 줄로만 알았던 왕호가 이런 말까지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녀가 머리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박시율 난 이제 더 이상 얌전하게만 앉아서 널 기다릴 생각이 없어. 내가 널 좋아한 시간이 5년이야. 지난 5년간 넌 단 한 번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았어! 오늘 밤 이 8억 1600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네 남편은 여기서 죽는 거야. 아 그리고 네 부모와 딸도 밑에 있었지?”“박 씨 집안의 체면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못해도 손 좀 봐주는 건 괜찮잖아? 어차피 너희 박 씨 집안은 우리 왕 씨 집안을 해코지할 수도 없어. 그저 일개 삼류 가문일 뿐이잖아?”왕호가 싸늘하게 웃으며 박시율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박시율,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난 진심을 다해서 너에게 다가가려고 했었는데 네가 날 보는 척도 하지 않았잖아? 결국 너 때문에 내가 이런 방법까지 쓰게 된 거야!”“왕호 당신 정말 미쳤
박시율한테서 나는 향긋한 내음이 왕호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었다.박시율은 왕호한테서 나는 술 냄새에 속이 메슥거려 곧바로 있는 힘껏 그를 밀쳐버렸다.“당신 선 넘지 마!”왕호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안았던 여운을 되새기고 있었다. 자그마치 5년이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그녀의 손도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불과 몇 초전, 그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하하, 내가 선을 넘었다고?”왕호가 씩 웃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알았어. 넌 내가 좋아하는 여자니까 나도 그만큼 널 존중해 주지. 그럼 이렇게 해. 네가 지금 8억 1600만 원을 내놓을 수 있으면 이대로 순순히 돌아가도 좋아. 그런데 네가 계산할 돈이 없다면 내가 선 넘는 걸 할 자격이 없어.”“난…”박시율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가 무기력하게 답했다.“우리한테는 그만한 돈이 없어!”“돈이 없어?”왕호가 비열하게 웃었다.“돈이 없으면 네 남편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갚아야지. 그러면 네 딸은 아빠를 잃을 거고, 네 부모 역시 멀쩡하게는 못 나가겠지. 아, 내 부하들이 좀 거칠어서 말이야!”박시율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을 본 왕호가 이어서 말했다.“시윤아, 난 정말 진심으로 너를 좋아해. 이러는 건 어때? 나도 너를 괴롭히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 밤 나랑 커피 마시러 나가서 얘기 좀 하고 영화까지 보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그냥 커피 마시고 영화만 보면 된다고?”박시율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마음속에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비록 예전에 왕호가 그녀를 존중해 주긴 했었지만 오늘 일만 봐도 그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하하, 네가 만약 다른 걸 하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지!”왕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사실 내가 원하는 건 그렇게 큰 게 아니야. 내가 널 오랜 시간 동안 쫓아다녔었는데 네가 한 번도 나랑 제대
도범은 몇 년간 군인 신분으로 전장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성격이 너무 충동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만약 이대로 싸움이라도 난다면 틀림없이 멀쩡하게 나갈 수 없을 것이다.“걱정하지 마. 내가 누구야, 나 왕 씨 집안 도련님이야. 그것도 집안에서 유일하게 상속권을 부여받은 도련님인데 허튼소리 하겠어?”왕호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박시율은 문을 열고 룸을 나섰다.왕호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나와 문 앞에 서있는 뚱보 매니저한테 지시를 내렸다.“시율 아가씨는 내 오랜 친구이니까 그 8억은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 친구의 얼굴을 봐서 오늘 이 저녁은 내가 산 걸로 해둬. 돈은 받지 마!”“그러면, 남은 와인 18 병은…”매니저가 잠시 고민하더니 그에게 일깨워줬다.“당연히 포장해 드려야지. 계산서에도 20병 가격대로 찍혀있잖아. 시켜서 남았는데 당연히 가져가게 해야지!”왕호가 씩 웃었다. 어차피 그 술의 성본을 따져보면 그저 몇 백만 원에 불과했다. 4천만 원에 한 병이라는 건 처음부터 박시율을 함정에 빠트릴 미끼였을 뿐이었다.“고마워.”박시율이 애써 미소 짓고 매니저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아래층에서 기다리던 서정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럴 일 없을 거예요. 비록 우리가 쫓겨난 신세긴 하지만 우리 딸이 박 씨 가문 사람인 건 변치 않는걸요. 여기 보스라는 사람도 막 대할 수는 없을 거예요.”“아까 그 사람 말투로 보아 아는 사람 같아 보이던데.”나봉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애써 위로했다.“오 분 됐어요. 제가 들어가서 확인해 볼게요!”시간을 확인하던 도범은 오 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혹시 박시율한테 무슨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되었다.“너 이자식, 우리 보스의 허락 없이는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어…”장정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도범의 앞을 가로막았다.“퍽!”하지만 채 1초도 안 되어서 도범의 발차기에
나이가 제법 어려 보이는듯한 그녀는 섹시한 미니스커트 차림에 블레이즈를 넣은 검은색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있었다. 입꼬리를 씩 올릴 때마다 보조개가 움푹 패어 들어가는 그녀는 트렌디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특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두 눈이 매력적이었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그녀는 보는 이들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저 애가 바로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라고? 진짜 예쁘게 생겼네. 나이도 어린데 벌써 미모가 저 정도면 2년 뒤쯤에는 얼굴로 이름 좀 날리겠는데?”한 남자가 그녀의 미모에 탄복하며 곁에 있던 다른 남자와 소곤거리며 말했다.“비켜!”도범은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한테는 관심도 주지 않고 곧바로 앞을 가로막은 장정들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거기 잘생긴 오빠, 무슨 일 있어요?”용 씨 가문의 아가씨는 도범을 보고 잠깐 멈칫거렸다. 보아하니 저 사람이 바로 아버지가 말했던 도범이라는 자가 확실해 보였다.그녀는 도범을 빤히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왜 아버지는 자신과 오빠한테 어떻게든 저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잘 보이기까지 하라고 했을까?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아버지가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분명 저 사람한테 뭔가가 있을 것이다.“잠깐만요 아가씨, 당신이 바로 그 중주 최고의 갑부 용준혁의 따님 맞으신가요?”도범이 미처 답하기도 전에 나봉희가 눈앞에 소녀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놀라 물었다.어쩐지 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범상치 않다 했었다. 심지어 레스토랑에 있는 장정들마저 그 여자아이를 보고 당황해하며 꺼리는 기색이었다.상대방의 신분이 범상치 않는 것이 확실했다.“맞아요. 제 이름이 용신애예요!”용신애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물었다.“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죠? 지나가다가 이 레스토랑의 장식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밥이나 먹으려고 들어왔는데, 왜들 싸우고 계시나요?”“아이고, 아가씨 그게 말입니다. 저희가 밥을 먹으러 왔는데…”
용신애가 손짓을 하며 소리치자 경호원들이 의자를 들고 마구잡이로 내려치기 시작했다.“신애 아가씨, 그, 그만하세요. 이것들은 전부 저희 왕 씨 집안의 재산이니 저희 체면을 봐서라도 멈춰주세요!”이런 용 씨 집안사람들을 마주한 레스토랑의 매니저는 더 이상 기고만장하게 굴지 못하고 우는 얼굴로 용신애가 왕 씨 집안의 체면을 봐서라도 멈추기를 빌어야 했다.“왕 씨 집안사람? 무슨 집안 재산이든 나는 상관 안 해, 당신들의 행동이 내 기분을 잡쳤으니 여기 다 깨부실거야!”용신애가 팔짱을 끼고 오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눈앞의 이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레스토랑 안에는 왕 씨 집안의 경호원들도 꽤 많았지만 죄다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그들은 용 씨 집안의 강대함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이들의 미움을 살 짓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용신애가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기 좋아할 줄은 그들도 몰랐다. 분명 그녀와는 큰 상관도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신애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 저희는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거죠?”나봉희는 그 모습을 보곤 용신애에게 물었다. 그녀도 속이 시원해졌다.“당연하죠, 계산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렇게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꼴을 제가 제일 못 참거든요.”용신애가 다시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이봐, 이 사람들 계산할 필요 있어? 필요하다면 내가 여기 불 질러버릴 거야!”“계산할 필요 없어요, 필요 없습니다. 남은 18병의 술도 전부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밥값도 줄 필요 없습니다. 신애 아가씨께서 모르고 계셔서 그렇지 저희 사장님 시율 씨랑 아는 사이여서 농담을 한 겁니다, 사장님께서 밥값을 계산할 필요 없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매니저가 얼른 대답했다.그리곤 다시 덧붙였다.“모, 모두 오해일 뿐입니다.”하지만 이미 망가져버린 테이블과 진열대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시율 씨? 박시율 씨 맞죠? 듣던 데로 미인이시네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물은 처음이네요.”
“뭐야, 저 자식 지금 둘째 아가씨랑 손 잡으려고 하는 거야?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 아니야?”“그러니까, 둘째 아가씨가 무슨 신분인지 생각도 못 하는 건 가? 데릴사위 주제에, 자기 때문에 마누라 가족 전부가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났는데 이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둘째 아가씨랑 악수를 하겠다는 거야?”레스토랑 안쪽에 있던 경호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의론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매우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사람은 들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도범의 귓속에 똑똑히 들렸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지도 못했다.도범은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웃으며 용신애를 바라봤다.“이럴 필요 없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용신애라고 합니다! 그쪽 금방 제대했다고 했죠? 제가 당신 같은 사람들을 제일 존경하거든요, 국가를 위해 공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우리 이번에 승리할 수 없었을 겁니다!”용신애가 사람들의 집중된 눈길 속에서 도범과 악수를 했다.그녀는 이성과 손을 잡아본 적이 많이 없었던 듯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남자로서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거 당연한 일 아닌가요.”도범이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서 이렇게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앞으로 제가 도와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옆에 있던 박시율은 고민해 보더니 매니저 옆으로 가 말했다.“왕 도련님에게 전해주세요, 오늘 도련님이 저희한테 이 밥 한 끼를 사준 게 아니라 용 씨 집안 둘째 아가씨께서 당신들의 행동을 못 봐주겠어서 우리가 돈을 내지 않게 해준 거라고요.”매니저는 입가가 떨렸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모두 다 용 씨 집안 둘째 아가씨 덕분입니다!”“알면 됐어요, 그러니까 저 도련님한테 빚진 거 없어요!”박시율이 차갑게 말하며 한시름 놓았다.방금 전, 왕호와 함께 커피를 마시겠다고 한 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왕호를 만나러
“오늘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지만 이 일 때문에 저 사람들 찾아가서 행패 부리면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 찾아낼 거야. 너희들이 왕 씨 집안사람이든 말든 상관없어!”도범이 떠난 뒤, 용신애가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경고하더니 그곳을 떠났다.“저 용신애 사람 화나게 하는데 뭐 있네. 하필이면 이때 나타나서는. 몇 분이라도 늦게 왔으면 좋았을 텐데. 박시율이 간 다음에만 왔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야!”난장판이 된 레스토랑을 보던 뚱보 매니저가 화가 나서 말했다.한편 룸에 있던 왕호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박 도련님 말대로 하니 정말 소용이 있긴 하네! 박시율 8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새하얘지던데, 도범 그 자식이 어디 그런 돈이 있겠어. 8천만 원도 못 내놓을 녀석이야! 박시율은 자기 딸이랑 부모를 가지고 협박했더니 금방 허락하더라고, 이따 몰래 나와서 나랑 데이트하면서 커피 한잔하기로 했어!”왕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박이성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성공 일화를 늘어놨다.“왕 도련님, 축하드립니다!”휴대폰 반대편의 박이성이 입꼬리를 올려 차갑게 웃었다.“왕 도련님, 제가 말한 대로만 하세요. 박시율이 마실 커피에 약을 조금 타기만 한다면 왕 도련님 말을 기똥차게 잘 들을 겁니다, 자기가 더 주동적으로 나설지도 모르고요!”“그러니까, 박시율도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니 어디 가서 말은 못 하겠지. 내가 그 성격 잘 알아, 그런 일을 떠벌렸다가는 자기 체면만 깎이는 게 아니라 부모님 체면에 박 씨 집안 체면까지 깎아먹는 꼴이지 않는가!”왕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늘 자신에게 무심하던 도도한 여신을 그는 드디어 품에 안게 생겼다.박시율의 곱상한 얼굴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몸매, 은은하게 풍기던 향기까지 생각하니 왕호는 쓰러질 것 같았다.하지만 기회가 이번 한 번밖에 없다고 생각한 왕호가 다시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박 도련님, 이 방법도 좋긴 한데 앞으로 계속 박시율이랑 같이 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