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자격

사랑받을 자격

에:  강미나  연재 중
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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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어느덧 3년.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성보라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시각 깔깔 웃으며 다른 여자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는 남편 주재윤. 그렇게 성보라는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사실 결혼 생활 3년 동안 말이 부부지, 남이나 다름없었던 두 사람. 성보라는 마음을 굳히고 이혼 합의서를 주재윤에게 내민다. 죽어도 이혼은 안 된다는 그의 말에 성보라는 그제야 이 결혼이 그녀에 대한 복수라는 걸 깨닫게 된다.전 여자친구와 손잡고 그녀에게 복수를 시작한 주재윤. 그러다가 성보라와 전 여자친구가 동시에 납치됐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 여자친구를 구하는데... 그 순간 성보라는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리게 된다.그렇게 성보라는 주재윤을 하루하루 잊었고 이젠 반대로 주재윤이 그녀에게 매달린다.시간이 더 흘러 국내 OST 퀸이 된 성보라. 시상식 무대 뒤에서 주재윤은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늦은 사과를 건넨다.“미안해.”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해맑게 웃는 그녀.“누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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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위성 시.시커먼 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쩍였고 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천둥소리가 우르르 쾅쾅 울려 퍼졌다.바닥에 흥건했던 피가 빗물에 씻겨나갔다. 울음소리와 처참한 비명이 빗소리와 한데 뒤섞여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길거리의 신호등이 매정하게 깜빡였다.성보라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 전화를 잡았다. 엄청난 폭우를 그대로 맞고 있는 데다가 온몸의 고통까지 더해져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고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시선마저 흐릿해졌다.멀지 않은 곳에서는 귀청을 째는 듯한 폭발음과 공포에 질린 비명이 들려왔다.성보라는 휴대 전화를 꽉 움켜쥐었다. 30분 전에 봤던 사진이 떠오르더니 입가에 절망적인 미소가 지어졌다.오늘은 그녀와 주재윤의 결혼기념일이다. 쇼윈도 부부이긴 했지만 작년까지도 주재윤은 결혼기념일에 제때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성보라는 이 기회를 빌려 주재윤과 제대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저녁 열 시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주재윤은 들어오지 않았다.그렇게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의 카카오 스토리에서 백아연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주재윤의 사진을 보고 말았다.폭우가 성보라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여자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남편을 하필 오늘 같은 결혼기념일에 본 탓인지 성보라는 순간 이성을 잃고 집을 뛰쳐나가겠다.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멀쩡하던 차가 가던 중에 갑자기 고장 난 바람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남북 대교에 들어서자마자 사고가 나고 말았다.폭우 속 교통사고인 데다가 안에 갇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절망에 빠진 성보라는 무의식적으로 주재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기계음 소리가 폭우 속에서 울려 퍼졌다.“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성보라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절망이 가득했다.“재윤 씨... 재윤 씨...”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가 통했다.“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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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허연지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알았어. 우리 보라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위성 시에서 가장 실력 있는 변호사를 찾아서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게 할게. 그리고 탄탄한 복근이 있는 오빠들도 찾아줄게. 너 아주 좋아서 입도 못 다물걸?”성보라는 허연지에게 스카이 캐슬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스카이 캐슬의 별장은 성보라와 주재윤의 신혼집이었다. 3년 전 두 사람이 결혼한 후로 성보라는 쭉 여기서 지냈고 주재윤은 집으로 들어온 날이 얼마 없었다.별장의 인테리어와 가구들 전부 성보라가 정성 들여 고르고 꾸몄다.사실 그녀도 전에는 주재윤과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꿈을 꿨었다. 그런데 그녀의 뜻대로 주재윤의 아내가 되었지만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재윤의 마음 하나 잡지 못했다.성보라는 과거의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헤어드라이기 어디 있어? 못 찾겠어.”성보라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잡이를 어찌나 꽉 잡았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2층을 올려다보았다.귀엽고 아담한 여자가 몸에 샤워 타월만 두르고 있었는데 하얀 어깨와 늘씬한 다리가 그대로 드러났다.성보라를 본 백아연은 당황하거나 난감해하기는커녕 되레 일부러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보라 언니, 왔어?”소파에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훤칠한 키에 차갑고 준수한 얼굴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완벽한 예술 작품 같았다. 그는 백아연의 목소리를 따라 싸늘한 눈빛으로 성보라를 쳐다보았다.성보라의 이마에 칭칭 감은 붕대를 보자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눈살을 찌푸리면서 성보라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어두운 그림자에 시선이 가려진 성보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을 비웃었다.‘자기 애인이라고 엄청 아끼네? 잠깐 쳐다봤을 뿐인데 바로 내 앞을 막는다고?’“머리는 왜 그래?”목소리가 어찌나 차가운지 남편의 다정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성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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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3년 동안 꾹꾹 참아온 억울함이 거대한 분노가 되어 점잖던 성보라의 이성을 흔들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성보라가 고함을 질렀다.“으악...”문틀을 꽉 잡은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방과 냄새가 이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졌다.아래층에 있던 백아연이 가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언니 밖에서 무슨 사고라도 당했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심하게 다칠 리가 없잖아.”백아연의 시선이 주재윤의 손에 닿자마자 입을 움켜쥐고 말했다.“오빠, 그거 당장 버려.”성보라의 피가 묻어있어 더럽다는 생각뿐이었다.주재윤은 그제야 들고 있던 붕대를 내려다보면서 멈칫했다.‘이렇게 더러운 걸 내가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들고 있었어?’마음속에 주재윤도 알아차리지 못한 짜증이 밀려왔다. 그는 붕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을 꼼꼼하게 씻었다.다 씻고 나왔을 때 백아연은 여전히 샤워 타월을 두른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주재윤과 두 눈이 마주친 백아연은 쑥스러운 듯 얼굴이 발개졌다.“옷이 아직 위층에 있는데 나랑 같이 가지러 가면 안 돼? 보라 언니가 무서워.”“가자. 옷 다 입으면 집에 데려다줄게.”주재윤이 백아연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때 성보라의 비명을 들었다. 그 순간 또 화가 확 치밀었다.‘미쳤나? 왜 저래?”백아연은 샤워 타월을 두른 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머리가 아파서 저러는 거 아니야? 홈닥터 부를까?”그러자 주재윤이 덤덤하게 말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도 다쳤잖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흉터 생길 텐데.”백아연이 걱정하는 척했다.“아연이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주재윤은 그녀의 젖은 머리를 어루만졌다.“헤어드라이기랑 옷 가져다줄게.”“알았어.”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성보라는 돌아서서 주재윤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정말 역겨워, 주재윤.”백아연이 소리를 지르며 성보라를 막았다.“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때려?”성보라는 이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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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주재윤은 저도 모르게 백아연을 부축하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성보라를 잡았다. 손이 그녀의 몸에 닿은 순간 정말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그는 성보라를 들어 올리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온 후 홈닥터에게 전화를 걸었다.샤워 타월만 두른 백아연이 방문 앞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두 눈에 불만이 스쳤다. 하는 수 없이 스스로 옷을 챙겨입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오빠.”주재윤은 난장판이 된 화장대를 힐끗 보더니 백아연을 차갑게 쳐다보았다.“이 사람 물건 건드렸어?”비록 성보라와 부부의 감정도 없고 한방에서 잔 적도 없지만 성보라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성보라는 물건을 아무렇게나 놓는 버릇이 없었다.백아연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깨물면서 치마를 움켜쥐었다. 눈시울이 또다시 점점 붉어졌다.“언니 물건 일부러 건드린 게 아니야. 오빠도 알잖아, 우리 집 형편이 좋지 않은 거. 이렇게 좋은 화장품을 본 적이 없어서... 한번 발라보고 싶었어.”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면서 난감해하며 또 억울해했다.어릴 적 그녀의 가정 형편이 별로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예쁜 걸 싫어하는 여자는 없기에 참지 못한 것도 대충 이해는 되었다.주재윤의 두 눈에 비친 차가운 기색이 그제야 조금 사그라들었고 말투도 한결 다정해졌다.“다음엔 그러지 마. 필요한 게 있으면 장 비서한테 얘기해.”백아연은 울다가 이내 다시 웃더니 반짝이는 두 눈으로 주재윤을 쳐다보았다.“알았어, 오빠.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보라 언니한테 화 풀라고 얘기해 주면 안 돼?”“알았어. 일단 거실 가서 기다려. 이따가 홈닥터가 오면 데려다줄게.”“알았어. 오빠 말 들을게.”백아연이 거실로 나간 후 주재윤은 다시 성보라의 침대 옆으로 왔다. 그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에 닿았을 때 눈빛이 살짝 변했다.‘성보라, 또 무슨 수작인 거야?’부모님 모두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인 그녀는 학자 집안에서 자랐다. 남들의 눈에 비친 그녀는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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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열이 내리자 성보라의 안색도 또다시 창백해졌다. 그녀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에 담긴 실망감을 감추려 했다.“재윤 씨, 우리 이혼해.”병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답답하고 무거워졌다. 성보라는 주재윤의 싸늘한 두 눈을 덤덤하게 쳐다보다 결의에 찬 말투로 말했다.“이혼하자.”그러자 주재윤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성보라, 지금 나 협박해?”“협박 아니야. 당신에게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혼하자.”성보라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이혼?”주재윤은 허리를 숙여 기다란 손가락으로 성보라의 아래턱을 꽉 잡았다.“대체 날 뭐라 생각하기에 나랑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또 이혼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이혼하는 건데? 성보라, 잊지 마. 그땐 네가 먼저 내 침대로 기어들어 왔어.”성보라는 주재윤의 검고 어두운 눈빛과 마주했다. 증오와 원망뿐인 감정에 성보라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창백한 입술을 움직이며 성보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러니까 이젠 당신에게 자유를 주겠다고.”“꿈도 꾸지 마.”주재윤은 싸늘하게 이 한마디만 던진 후 휙 가버렸다.성보라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이혼하면 오히려 주재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을 텐데 왜 동의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몸의 상처로 인하여 엄청난 오해를 샀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가정부 최혜자는 주씨네 본가에서 임영옥을 돌봤었다. 그런데 성보라와 주재윤이 결혼한 후 임영옥은 젊은 부부가 할 줄 아는 게 없을까 봐 최혜자를 주재윤네 집에 보냈다.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온 최혜자는 산산조각이 난 청화 자기와 쓰레기통에 버려진 피 묻은 붕대를 보고 뭔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성보라를 챙기라는 주재윤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가봤더니 온몸에 가득한 상처를 보고 더는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임영옥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알려줬다.주재윤은 성보라를 싫어했지만 그의 부모는 며느리를 끔찍이도 아꼈다. 특히 임영옥은 누구보다도 성보라를 예뻐했다. 최혜자의 말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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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백아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어머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주재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백아연을 감싸고 돌았다.“엄마, 아연이는 성보라를 보러 왔어.”백아연을 부를 땐 다정하게 아연이라고 부르면서 성보라는 성까지 붙이는 걸 듣고 임영옥이 노발대발했다.“경호원 몇 명 불러서 보라 지키게 해요. 개나 소나 다 들여보내지 말고. 공기가 오염되잖아요.”최혜자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 지금 당장 경호원 부르겠습니다.”백아연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병실을 뛰쳐나갔다. 주재윤이 따라 나가려 하자 임영옥이 냉랭하게 호통쳤다.“거기 서!”주재윤이 눈살을 찌푸렸다.“회사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임영옥이 성보라를 가리키며 말했다.“와이프가 지금 아파서 누워있는데 회사에 나간다고? 주재윤, 넌 보라를 신경도 안 써?”“엄마.”“나가서 기다려.”주재윤은 성보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성큼성큼 병실을 나갔다. 그 눈빛에는 온통 조롱뿐이었다.임영옥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침대 옆으로 다가가 성보라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물었다.“저 빌어먹을 녀석이 널 때렸다면서? 내가 제대로 혼낼 테니까 보라 넌 걱정하지 마.”‘날 때렸다고?’성보라는 살짝 의아했지만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컨디션도 좋지 않아 임영옥이 뭐라 하는지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저 괜찮아요.”“재윤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임영옥은 성보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넌 푹 쉬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어머님, 저랑 재윤 씨...”성보라는 두 사람이 이혼하려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은 확정되지 않아 일단은 비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임영옥이 이혼을 반대하면 더 어려워지니까.“저랑 재윤 씨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성보라가 말했다.병실 밖으로 나온 임영옥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너 보라 때렸다며?”“때렸다고요?”주재윤은 하도 어이가 없어 잘못 들은 줄로 알았다.‘내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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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기침하던 성보라가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몸이 아직 많이 허약한 탓에 에어컨 바람에 머리가 살짝 아팠다.주재윤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결국 하는 수 없이 삼계탕을 가져다주었다. 안방 문을 어찌나 세게 밀었는지 문이 쾅 하고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곧이어 그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자 이모가 만든 삼계탕이야.”성보라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하얀 셔츠와 검은 정장이 그의 완벽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더 위로 날카로운 턱선과 매정한 입술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주재윤이 따뜻한 말 한마디 한 적은 없지만 얼굴이 잘생긴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어엿한 사업가까지 되어 더욱 성숙하고 섹시해 보였다.성보라는 어릴 적부터 주재윤을 짝사랑했지만 주재윤은 그녀를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잠깐 정신을 딴 데 판 사이 주재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일어나.”성보라가 삼계탕을 다 먹어야만 어머니의 잔소리를 안 들을 테니까.입맛이 없었던 성보라는 도무지 삼킬 수가 없었다. 주재윤과 또 싸우고 싶지 않아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거기 놓고 가. 이따가 먹을게.”주재윤이 바로 갈 줄 알았는데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방을 나가기는커녕 되레 성보라를 비웃었다.“성보라, 당신 계획이 너무 뻔하다는 거 알아?”성보라가 두 눈을 떴다. 맑디맑은 두 눈이 그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지금 입맛이 없어서 그래. 그러니까 그만 나가.”주재윤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성보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주재윤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이불을 확 들췄다.“아픈 척...”하려던 말이 뚝 멈췄고 주재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의 두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파란 이불 속 성보라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얀 피부와 가느다란 허리가 참으로 유혹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유혹적인 몸매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어두운 침묵이 방 전체를 순식간에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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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방 안의 불을 끄자 어두컴컴해졌다. 열린 커튼 사이로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둥근 달이 보였다. 그런데 날씨가 화창한데도 달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마치 앞날이 잘 그려지지 않는 그녀의 인생처럼.성보라는 휴대 전화를 꺼내 카카오톡으로 허연지에게 문자를 보냈다.[변호사 찾았어?]허연지가 칼답을 보냈다.[몇 명 찾긴 했는데 주씨 가문 사모님의 이혼 합의서라고 하니까 다들 감히 받지 못하더라고.]사람들은 이혼하더라도 주재윤이 먼저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재윤의 허락 없이 감히 성보라에게 이혼 합의서를 작성해주지 못했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재산 분할이 걸려있으니까.누가 감히 주재윤의 재산을 나누겠는가 말이다.성보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그 사람들한테 난 아무 조건 없다고 전해줘. 맨몸으로 나와도 된다고.][맨몸으로 나오겠다고?]성보라는 휴대 전화를 꽉 쥐고 씁쓸하게 웃었다.[이혼만 하면 돼.]이런 결혼 생활이 하루라도 더 지속되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알았어. 그럼 훨씬 쉬워지지. 다른 변호사 더 알아볼게.]이튿날 아침, 성보라는 전날보다 훨씬 많이 좋아졌다. 이젠 직접 내려와 아침도 먹었다. 임영옥은 다정하게 웃으며 성보라를 걱정했고 직접 국까지 떠다 주었다.성보라가 국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어머님.”그때 주재윤과 결혼했을 때 성보라는 시부모님이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할까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그녀에게 매정하게 군 건 주재윤이었고 주성용과 임영옥은 그녀에게 참 잘해줬다. 심지어 친딸처럼 잘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임영옥은 며칠에 한 번씩 무조건 전화해서 성보라의 안부를 물었다. 주재윤의 스캔들 때문에 임영옥도 불같이 화를 냈고 성보라 앞에서 주재윤을 꾸짖기도 했다.주재윤의 부모님은 성보라를 정말 진심으로 아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녀는 이미 주재윤과 이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성보라의 두 눈에 어둠이 스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국을 마셨다. 임영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오락 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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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주재윤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어찌 된 게 성격이 점점 사나워지지?’예전의 성보라는 항상 말투도 나긋나긋했고 소리를 지르는 법이라곤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깨웠다고 욕까지 퍼부었다.주재윤은 화가 나지 않았고 되레 흥미가 생긴 듯 성보라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가 혀를 차며 싸늘하게 웃었다.“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고개를 홱 돌린 성보라는 가슴이 저릿했다. 예전에는 진심으로 결혼 생활을 잘해보고 싶었고 주재윤의 마음을 잡고 싶었다. 하여 좋은 아내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점잖고 다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주재윤의 진심을 얻지 못했고 매번 상처만 받았다.이젠 주재윤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해 더는 인내심을 갖고 얘기하기도 싫어졌다.“할 얘기 있으면 하고 없으면 나가.”성보라의 말투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주재윤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볼 기세였다.‘이번에는 또 언제까지 밀당하나 두고 보자.’“주재윤 씨...”성보라가 입을 열었다.“침대에 가서 자.”주재윤이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말투는 여전히 차갑고 혐오가 가득했다.“우리가 따로 잤다는 걸 엄마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그러고는 살금살금 문을 열고 나갔다.성보라는 가슴팍을 두드리면서 자신을 비웃었다. 조금 전 주재윤이 침대에 가서 자라는 한마디만 했을 때 순진하게도 그녀를 걱정하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다행히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이어 말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표정 관리를 못 할 뻔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낯뜨거웠다.성보라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주재윤이 덮었던 이불을 이불장에 넣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이불과 베개를 침대에 놓고 편안하게 누웠다. 그런데 잠이 하나도 오질 않았다.그렇게 6시 30분까지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씻었다. 다 씻고 나오자 방에 누군가 들어와 있었는데 바로 임영옥이었다.임영옥이 다정하게 물었다.“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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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주재윤은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걸어가더니 자신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우유 마셔.”성보라가 고개를 들고 우유를 받았다.“고마워.”널찍한 원피스인데다가 주재윤이 또 서 있어서 시선을 조금만 내려도 그녀의 하얀 쇄골과 그 아래 아름다운 가슴 라인이 보였다. 순간 머릿속이 찌릿했다.성보라는 우유를 다 마시고 빈 컵을 내려놓았다. 입가에 우유가 묻어 무심결에 혀로 입술을 핥았다.그런데 몸이 갑자기 붕 뜨는 걸 느꼈다. 주재윤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 것이었다. 책상 위에 놓았던 우유컵을 슬쩍 건드린 바람에 쨍그랑하고 바닥에 깨지고 말았다.성보라는 본능적으로 주재윤의 목을 잡고 경악한 눈빛으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순간 정신이 번쩍 든 주재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자신이 뭔가 이상해졌다는 걸 알아챘다. 성보라를 보면서 생전 없었던, 있어서도 안 될 충동이 생긴 것이었다.바닥에 널브러진 유리컵 조각을 본 주재윤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우유에 문제 있어.’성보라는 그를 밀어내면서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다.“이거 놔, 주재윤.”짜증이 삽시간에 확 밀려왔다.주재윤은 어두운 얼굴로 품속에서 계속 발버둥 치는 성보라를 보면서 호통쳤다.“움직이지 마.”성보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있는 힘껏 때렸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무 감정도 없으면서 왜 안는 건데? 당신이 이럴 때마다 겨우 굳힌 마음이 또 흔들린단 말이야.’주재윤은 그녀를 안으려 했지만 성보라는 절대 그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주재윤의 어깨를 힘껏 밀어내면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그런데 주재윤이 침대 옆에 서 있다는 건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성보라가 밀어버리자 주재윤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침대에 누웠고 성보라는 그의 가슴팍에 누워버리고 말았다.어색한 침묵이 1초 동안 흘렀다. 곧이어 하늘이 빙빙 돌았다. 주재윤이 이불로 성보라를 꽉 눌러버린 것이었다.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창백했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특히 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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