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세미나 리셉션 현장.하나는 학술적 분위가 이렇게 다분한 장소는 정말 익숙지 않았다. 그녀는 상언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얼른 물을 한 모금 마셨다.물을 넘기기도 전에 옆에 누군가가 나타났다.그 자리는 원래 이상언이 있던 자리였다.하나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그녀 앞에 자리 잡은 케이티를 바라보았다.케이티는 친절하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청했다.“안녕하세요. 아직 자기소개를 못 했네요. 케이티라고 합니다. 외교관 셔면이 제 아버지세요.”임하나는 마음속 요동치는 강한 거부반응을 애써 숨기고자 했다.“네, 임하나입니다.”“알고 있어요.”케이티는 하나가 대화를 이어가 주기를 기다렸지만, 한참을 지나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임하나 씨!”케이티는 범인을 취조하듯 딱딱한 말투로 불렀다.하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네, 케이티 씨, 무슨 일이세요?”케이티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노발대발했다.“정말 예의가 없군요. 이 선생님이 어떻게 당신같은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하나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다시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바로 이때, 귓가에 온화하고 박력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케이티,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지 케이티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는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기본 매너부터 챙겨!”하나가 고개를 들어 화난 얼굴로 케이티를 째려보는 이상언을 보았다.그의 목소리는 비록 크지 않았지만, 워낙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어디를 가든 대접받고 자란 케이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하자 즉시 얼굴이 빨개졌다.“하나 씨한테 말을 걸었는데도 무시하고 대꾸도 하지 않고... 매너 없는 건 저쪽이라고요.”하나가 막 따지고 들려는데 상언이 다짜고짜 나섰다.“너랑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건 너를 싫어한다는
이씨 저택 앞.이서가 차량 제공을 요구하자, 입구의 경호원은 다급했다.“아가씨, 사모님이 외출하시기 전에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절대 아가씨를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H선생님에게 사고가 났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집에 잠자코 있겠어요?” 이서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제발요, 차 좀 준비시켜 주세요. 두 시간 내에 가지 않으면 그 사람 큰일 나요.”이서가 얘기하는 그 H선생님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SY 대표라는 걸 이씨 집안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지환이 사고 났다는 얘기에 경호원의 안색이 변했다.“그럼... 아가씨, 도련님이나 사모님께 먼저 전화해 보세요. 죄송하지만 그분들 허락 없이는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지금 그분들이랑 통화가 안 된다고요. 부탁해요. 나한테 무슨 일 생겨도 괜찮으니까 제발 내보내 주세요.”“통화가 안 된다고요?”이서는 경호원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보내주세요, 제발요.”울어 빨갛게 부은 눈을 본 경호원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래요, 아가씨, 그럼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이서는 그제야 기운을 차린 듯했다.“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경호원은 즉시 차를 몰고 박예솔이 보낸 주소로 출발했다.같은 시각, 줄곧 암암리에 이서를 보호하던 어둠의 세력도 이서를 따라나섰다. 그중 깍두기 머리를 한 남자가 손에 든 총기를 만지작거리며 불평을 늘어놨다.“아니, 보스가 외출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왜 또 한밤중에 외출이냐고?”옆에 있던 또 다른 나이가 좀 많은 남자가 그의 팔을 툭 건드렸다.“죽고 싶어? 보스 귀에 들어 갔다가는, 앞으로 우리 보스 곁에 못 있을 줄 알아...”별로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지만, 깍두기 머리 사내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많이 작아졌다.“형님, 우리는 보스의 그림자들이잖아요. 하루 종일 여자만 지키고 있는 거라면, 나는 정말이지, 보스랑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합니다!”“너 이 자식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말을 마치고, 이서는 차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뒤 따라오던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도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멍해졌다.특히 깍두기 머리를 사내는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불만을 늘어놓았다.“씨X, 저 여자 지금 뭐하는 거야?!”이서의 돌발 행동에 김겸도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되찾았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경호원도 두고.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깍두기 머리를 사내는 다소 득의양양해서 말했다.“내가 뭐랬어요? 이 여자 요물 맞다니까요, 우리 보스를 유혹하는...”같은 시각, 경호원에게 자초지종 물으러 갔던 조직원이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보스한테 뭔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뭐라고?”차 안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깍두기 머리를 사내는 바로 일어섰다.“보스가? 그럴 리 없을 텐데...”“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 사람은 얼른 차에 올랐다.“빨리 아가씨 쫓아 갑시다.”깍두기 머리 사내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듯했다.“그럼 저 여자가 외출한 게 보스 때문이었어?”그 사람은 묵묵부답했다.하지만 답은 불 보듯 뻔했다.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한참 뒤에야 김겸이 말했다.“그러니까 경호원을 두고 간 것도 괜히 무고한 사람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릴까 바였던 거였어?”그녀의 이런 무대포적 행위는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하지만 현재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이서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과감한 행동에 마음속 깊이 탄복했다.침묵의 차량 행렬은 어둠을 뚫고 끊임없이 앞으로 질주했다.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이서는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다.그녀는 엑셀을 최대한 밟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빛은 확고했다.결국 그녀는 마지막 1초를 남겨두고, 마침내 창고 입구
같은 시각, 차에 있던 ‘어둠의 세력’의 대장 앤서니는 지환이 하지호의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받았다.그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조백이었다.조백은 지환의 비서이다. 따라서 그가 보내온 정보는 틀림없다.‘그렇다면 창고에 있다던 그 사람은 누구지?’앤서니는 창고 쪽을 한 번 보고는, 지환을 구하는 게 더욱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명령을 내렸다. 차를 돌려 도시의 반대쪽으로 당장 출발한다고.깍두기 머리 사내가 있는 차량에도 명령이 전달되었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멍해졌다.“우리가 당했어. 우리를 이쪽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략이었어.” 김겸이 말했다.“우리가 아가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하지호가 일부러 아가씨를 이쪽으로 끌어들인 거야.”“나쁜 새끼! 정말 고약하군!”“...”모두가 하지호를 욕하고 있을 때, 깍두기 머리 사내는 창고의 방향을 바라보며 어눌하게 말했다.“우리 모두가 보스를 구하러 가면 아가씨는 어떻게 합니까? 여기 인적이 드문데 설마 혼자 두고 가실 겁니까?”그의 말을 들은 김겸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인적이 드물다는 건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오히려 안전해. 아가씨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그리고, 보스는 우리랑 반대쪽에 있어. 우리도 빨리 출발해야 해. 아가씨는 혼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실 거야.”깍두기 머리 사내는 점점 멀어져 가는 창고 대문을 보며 마음 한 켠은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있었다.같은 시각, 모든 차량이 출발한 걸 CCTV로 확인한 박예솔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어떻게 가짜 주소를 보내 그X을 처리해 버릴 생각을...”“내가 뭐랬어? 난 네 편이라고 했잖아.”박예솔의 얼굴에 드러난 승자의 웃음을 보며, 하지호도 입술을 보기 좋게 올렸다.“어때?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들어?”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박예솔은 갑자기 유턴한 차량이 창고의 위치로 돌진하는 걸 보았다.마침 이서에게 손쓰려던 뚱보는 인기척을 듣고
윤이서는 결혼했다.그러나 결혼 상대는 그녀가 8년 넘게 사랑을 했던 약혼자인 하은철이 아닌 만난 지 5분도 안 된, 기본적인 정보만 대충 아는 남자였다.“후회되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사무소 대기실에서 남자는 조금 귀찮다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흘겨보았다.윤이서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은 하은철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3일전, 줄곧 윤이서를 피했던 하은철이 직접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순간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성껏 꾸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은철뿐만이 아니라 그와 손을 깍지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수정도 함께 있었다.--그녀의 사촌 여동생!그녀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때, 하은철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네 신장을 수정이에게 주면 너와 결혼할게.”윤이서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몸이 굳어지며 믿을 수 없단 듯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남자의 눈빛은 시종 차갑고 증오로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을 8년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 한 약혼녀가 아닌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마치 갈 곳을 잃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 같았다.하은철과 어릴 때 약혼한 사이였고, 16살 되던 해 귀국한 후, 하은철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이 8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녀는 빨래와 밥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에게 걸맞는 아내가 되기 위해 피아노, 그림 등을 배웠으며 심지어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오직 그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해주기 꿈꾸며.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매몰찼다. 하은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심지어 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슨 문제 있나요?” 하지환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벌리고 있다가 또 하지환이 오해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니요, 가요.”어차피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도중에 윤이서는 하은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스크린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윤이서는 마치 지난 8년 동안 비굴했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전에는 모두 그녀가 먼저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며 그의 관심을 끌려했다.그러나 하은철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지 않았다.설령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 마디 관심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윤수정을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정말 컸다.“안 받아요?”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하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윤이서는 남자의 완벽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입을 열기도 전에 맞은편 하은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당장 병원으로 오지 못해! 지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수정이는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나는 이미 너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넌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윤이서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비록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은철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잖아?” 윤이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데, 너는 줄 수 있어?”“뻔뻔한 년!”하은철은 그녀를 비꼬았다.“나는 절대로 너 같은 여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윤이서, 너 지금 오면 아직 하씨 집안 아
윤이서의 가슴은 놀라움에 줄곧 두근거렸다.마치 바다에서 떠 있다 마침내 부목을 잡은 것 같았다.고개를 들자 그녀는 마침 하지환의 눈빛과 부딪쳤다.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장난기가 없었고, 오히려 무척 다정했다. 그 순간, 윤이서마저 하마터면 그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황급히 윤재하와 성지영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놀라서 소파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윤재하는 먼저 반응하여 고개를 들어 윤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윤이서는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하지환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이런 전 없었던,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는 느낌은 그녀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고 이때 귓가에서 하지환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오늘 금방 혼인 신고를 했는데, 정말 너무 바빠서 두 분께 미처 알리지 못했네요.”윤재하는 화를 참으며 이성을 유지했다.“이서야!”윤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네, 저 사람 말이 모두 사실이에요. 난 결혼했고, 그 이유는 바로 하은철과 결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지영이 달려와 윤이서의 두 어깨를 쥐고 말했다.“이서야, 너 왜 그래? 너 줄곧 은철을 좋아했잖아, 지금 은철이 마침내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너 어떻게…….”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며 하지환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솔직히 말해봐, 누가 널 협박한 거 아니야?”성지영이 하지환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윤이서는 얼른 설명했다.“엄마, 아무도 나를 협박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날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그녀는 지쳤다.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성지영의 손톱은 윤이서의 살에 깊이 파고들었다.“이서야,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 네가 은철과 혼약을 맺었을 때부터 우리는 널 그의 미래의 아내로 키웠고, 네가 시집가는 것은 윤씨 가문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 그 따위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야!”윤이서는 통증에
하지환은 어두운 얼굴로 사람을 조수석에 앉힌 다음 운전석으로 올라왔고 문을 쾅 닫았다.윤이서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고 하지환의 보기 흉한 안색을 슬쩍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낼 사람은 분명히 그녀인데, 왜 하지환이 그녀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지?다음 순간, 하지환은 갑자기 차에 시동을 걸었고, 차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윤이서는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꽉 잡았고, 목소리는 바람에 의해 다르게 변했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하지환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고, 검은 눈동자는 마치 어두운 밤의 야수처럼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순간, 평범한 아우디 A6는 철장에서 벗어난 맹수처럼 조용한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했다.윤이서는 창백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안전벨트를 잡았고, 큰 소리로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바람소리는 마치 블랙홀처럼 그녀의 소리를 삼켰다.그렇게 윤이서는 차츰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광풍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불도록 내버려 두며 하지환이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3일 전, 그녀는 이미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자살은 너무 아파서 그녀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부모님이 아무리 자신을 하씨 집안으로 시집가게 만들고 싶어도 하은철의 황당한 요구만 들으면 반드시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것 또한 그녀가 하지환을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그러나 부모님의 눈에는 윤씨 집안을 다시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행복보다 훨씬 중요했다.20여 년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은 지금 산산조각이 났다.바람은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향해 불었고, 그녀는 이미 눈물이 다 말랐다.마음은…… 죽었으니까.차 속도는 어느새 느려졌고 윤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차는 해변에 도착했고, 노을에 물든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마치 작은 검은 점처럼 움